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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작성자
원학수
작성일
2015-05-23 11:24
조회
1657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시편 22:14-21, 요한복음 20:24-25.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만에 죽음을 이기고 무덤을 열고 다시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이 부활하셨음을 여러 이론으로 부정하려고 합니다.

실수설이 있습니다.
여인들이 너무 어두워서 예수님의 시신이 묻힌 무덤을 잘못 찾아갔을 것이라는 설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6:2절에 의하면 이미 해가 떳고,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체가 묻혀있는 무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여자들의 전하는 말을 들은 베드로와 요한도 잘 알고 찾아갔습니다.

졸도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라 다만 기절했다가 깨어났다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15:44-45,절에 보면 예수님의 죽음은 공식적인 확인이 있었습니다.
로마 병정이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으니 만약 이때까지 죽지 않았더라도 창에 찔릴 때 죽었을 것입니다.

조작설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거나 도둑들이 훔쳐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값비싼 향로나 귀중한 수의를 훔쳐갔다는 상상은 가능하나(요 19:39-40) 먼저 수의를 벗겨 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체를 가져갔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습니다.
더욱이 로마 병정들이 지키고 있었으니 시체를 훔쳐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제자들을 사기꾼으로 모는 말입니다.

보관설이 있습니다.
유대인이나 로마의 당국자들이 증거를 만들기 위해서 시체를 가져다가 따로 보관했다는 설입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제자들이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소문을 내고 다닐 때(행 2:24,이하) 당국자들은 제자들을 사기꾼들이라고 입증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두 빈 무덤의 증거를 전복시키려는 사람들의 엉터리 같은 설명들임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주관적인 환상의 부활이 아닙니다.

또 객관적인 환상설로 예수님의 불멸하는 영혼 또는 영적 그리스도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제자들에게 어떤 객관적이거나 비물질적인 환상으로 보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수님이 여전히 영적으로 살아 계시다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실제적이고 역사적이며 진리가운데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은 무덤 속에 죽은 채 누워 계실 주님의 시신을 찾아 달려나온 여자들에게 첫 번째 부활의 모습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사도들은 여인들에게서 주님이 부활하셨고 그의 누우셨던 무덤은 비었다는 말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은 즉시 무덤으로 달려가 빈 무덤을 확인하였습니다.
그날 저녁 제자들은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잠그고 있을 때 예수님께서 그곳에 오셔 가운데 서셔서 “너희에게 평안할 지어다”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여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던 날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가 시신을 세마포로 싸고 값비싼 몰약을 시신에 발라 아리마대 요셉의 새 무덤에 장사 지내었던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는 아마 어떤 제자들이 숨어서 보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군병들은 돌을 굴려다 굴 문을 막고 인봉 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아무도 죽은 예수님이 살아 날 것이라는 것을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고 믿지 않았을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죽어갔으나 다시 살아나 영원히 살았다는 말은 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도 힘없이 죽어 가시는 모습에 실망한 사람들은 믿음도 사랑도 함께 장사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여러 번 다시 사실 것이라고 예언 하셨던 것을 지금 생각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이 완전히 머리에서 사라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이 마지막 숨을 거두고 나면 전과 같이 다시 살아 날 수 있다는 사실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죽음에 대하여 무거운 슬픔과 허탈감으로 가득했습니다.
모두 용기도 잃어버리고 의욕도 상실한 채 낙심자가 되어 옛 직업을 찾아 고향으로 되돌아 갈 생각으로 서두르고 있었습니다.

지금 두려움과 불안에 떨고있는 제자들에게 제일 필요한 것이 마음의 평안이라는 것을 주님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평안은 마치 사나운 바다에서 모든 격한 파도와 같은 것들이 순식간에 잔잔해 지고 고요해 지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평안은 모든 혼란과 격랑과 걱정이 사라져야 임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인사로 끝인 것이 아니라 당신이 분명히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음을 확인시켜주시기 위한 증거로 손의 못 자국과 옆구리의 창 자국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때 그곳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사실을 확인했을 때 지금까지 어둡던 실내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어 졌을 것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부활을 누가 무어라 해도 증거하고 싶어졌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증거 하는 것이 그들에게는 더 없는 보람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증거요 외침이 된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을 뵈옵지 못한 도마에게 “우리가 주님을 뵈었노라”하고 증거 한 것은 세상 어느 것보다도 그들의 분명한 확신이요 충만한 기쁨이었습니다.
사막에서 기갈로 죽게 된 사람이 오아시스를 발견하면 “물이다”라고 외치지 않을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지금 제자들의 형편은 그 보다도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의 순간이기에 “우리가 주를 보았다”라고 증언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여러분과 저도, 저와 여러분들이 영 안이 밝아져서 믿음의 눈으로 부활의 주님을 뵈올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열 명의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한 것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주님을 증거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이나 생명을 가졌다면 제일 두려운 것이 죽음인 것입니다.

죽음! 그것이 가장 무섭고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죽음을 해결해 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기울이며 찾고 연구하고 있지 않습니까?

중국의 진시 왕은 동남동녀 300인을 동방의 탐라국에 보내어 불사약을 구하려 보낸 것도 이 죽음을 면해 보려고 해서였습니다.
옛날 어떤 선비는 신선이 되겠다고 아침마다 이슬을 받아먹고 생식하고 도를 닦아 보았으나 그도 어쩔 수 없이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사람이 나이가 오래되면 온 얼굴에 주름이 늘어나고 힘이 없어져 가는 것은 죽음이 가까워져 간다는 증거입니다.
.

로마인들은 죽음이라는 것에 30가지가 넘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이름마다 죽음은 소망이 없다는 뜻으로 불려 진다고 합니다.
로마인들이 죽음을 가리켜 “낫을 들고 풀을 베는 자” “올무를 가진 사냥꾼” “독물을 가진 악마” “열쇠를 가진 간수”라고 불려지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죽음의 절망을 이겨보려고 온갖 노력을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병이 들면 약을 연구하여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죽음을 면해 보려고, 죽음을 얼마간이라도 연기해 보려고 해서입니다.
그러나 결국은 모두 죽습니다.

죄가 사람을 죽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죄는 갇혀있던 사망의 홍수를 끌어들이는 도랑처럼 인류에게 사망의 급류를 흘러내리게 하는 것입니다.
죄는 절망의 도화선 같이 진노의 불에 타 들어가 인류에게 사망의 다이나마이트를 터뜨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문제는 인간에게 벗을 수 없는 사슬과 고리가 되어 점점 조여오고 있었던 것입니다.
죄와 죽음이라는 심각한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비극적인 운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사망과 진노에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열 명의 제자들이 본 부활의 주님은 바로 우리의 죄와 사망을 해결하시고 승리하신 주님을 본 것입니다.
소와 염소와 양과 비둘기의 피가 육신의 죄를 씻고 제물이 되어 단 위에서 태워질 때 하나님과 화목이 이루어졌던 것처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상에서 흘리신 피와 물이 어찌 우리의 죄를 씻지 못하겠습니까?
죽음과 사망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천지와 만물을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3위1체의 하나님께서 어찌 이기시지 못하시겠습니까?
주님은 죽음과 사망의 권세를 깨뜨려 부수고 승리의 부활을 하셨습니다.
주님은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당할 죄인들을 위하여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화목제물이 되어 하나님과 화해케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는 증언은 죄와 사망을 이기신 주님을 증거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이제는 증거를 할 때입니다.
죄와 어두움에서 절망과 죽음과 사망에 짓눌린 영혼들에게 “우리가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로 부활하신 주님을 뵈었노라 누구든지 그를 믿으면 영생을 얻게된다”고 힘있게 증거 하는 중인이 되십시다.
열 명의 제자들이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 안에서 능력을 받아 승리의 삶을 살게 될 것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약한 자라도 강한 자의 그늘에 있으면 함께 강하여 집니다.

악어와 악어새는 서로 도와주며 함께 공생관계로 살아갑니다.
악어새는 사냥을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악어새는 악어가 동물들을 잡아먹은 뒤 일광욕을 즐기며 입을 넓게 벌리면 악어의 이빨들 사이에 낀 작은 고기 부스러기들을 뜯어먹으며 배를 채우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약하고 미련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들이라 할지라도 모든 것을 이기신 주님과 함께 있으면 무엇이 두렵겠습니까?
예수님은 “내가 세상을 다 이겼노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어린 다윗이 불레셋의 골리앗을 쳐죽였을 때 불레셋 진영은 흩어지고 모조리 도망을 치고 말았던 것처럼 염려와 걱정은 사라진지 오래입니다.
거센 폭풍으로 요동치던 갈릴리 바다에서 두려워 떨던 제자들이 주님께서 “바람아 잠잠 하라 파도야 잔잔 하라” 한마디에 순식간에 조용하게 평안을 찾은 것처럼 평안이 있게 된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하신 주님의 약속은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나 요단강을 다시 눈앞에 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대장부답게 담대 하라 내가 네 발바닥으로 밟는 곳을 모두 네게 주리라” 하시던 약속보다 이 약속은 몇 천 배나 힘이 있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 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요 20:21-23).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는 몇 가지의 분명한 보장이 있습니다.

①성령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3위의 하나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계시겠다는 약속의 보장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으로 함께 역사 하실 것입니다.

②우리에게 법정의 판사와 변호사 같은 영권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든지 사할 수 있는 권세가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그 권세는 세상 죄인들을 구원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도록 구원해야 할 사명을 주셨음을 의미합니다.

③법정의 검사와 같은 영권도 주어집니다.
우리가 남의 죄를 사하여 주지 않으면 그대로 죄가 남아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의 죄를 사하게도 하고 버려두기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악하고 무능해도 주와 성령이 함께 하심으로 조금도 두려울 것이 없이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한 영혼을 살리고 죽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주신 지상 명령을 더욱 심각하게 받아야 할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 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출발 명령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감당해야 할 과제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영혼을 구원해 내지 않고 주께 돌아온 자들에게 세례를 주지 않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지 않는다면 주님의 참된 교회, 주님의 참된 성도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 우리의 외쳐지는 모든 설교, 우리의 모아진 입술로 부르는 찬송, 우리의 심혈을 다 기울여 가르치는 성경연구, 우리의 정성 된 헌금, 이 모든 것의 최종 목표는 영혼구원이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안에서 승리의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성도 여러분!
살아 계시는 주님을 만나시고 부활의 주님을 영접하셔서 주님께서 주시는 능력 안에서 승승장구하시고 늘 승리하시며 주의 일에 더욱 힘쓰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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