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사전]덴만(Denaman, Harry, 1893-)

선교사사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7-05 01:01
조회
242
미연합감리교회의 장기간 시무한 전도국 총무. 미감리교회의 강력한 평신도 지도자. 1893년 9월 26일 윌리엄 헤느리와 Hattie 덴만 부부의 아들로 출생한 해리 덴만은 남버밍검대학에서 공부한 후 1921년 A.B., 1930년 M.A., 1936년 아덴스대학에서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15년 테네시 실업회사에서 근무한후 1919년 주일학교협회로 자리를 옮겨 일하면서 버밍검제일감리교회 관리직을 맡아보기로 했다. 그 후 북앨라배마연회의 강력한 평신도 지도자, 교회연합회의 유능한 활동가로 재임한 후 마지막으로 미연합감리교 본부 전도국 총무에 피선되어 1965년까지 26년간 재임한 후 교회 공직에서 은퇴했다. 그는 총무 재임시 10년간 매해 한국에 와서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그의 전도운동은 김활란 박사가 이대 총장 재임시였던 1956년부터 시작되었다. 그해 10월 11일부터 19일까지 1주간 열린 전도부흥집회는 덴만 박사와 <다락방> 편집장 마츠 박사의 인도로 진행되었는데, 이 집회에서 학생 671명, 직원 300명이 세례를 받았고, 824명의 결심자를 얻었다.
덴만 박사의 전도집회는 처음 학원선교에 중점을 두고 열었으나, 점차 감리교 지방 교회연합전도회로 확대되었다. 1959년 11월 덴만 박사를 비롯하여 6명의 강사가 미국에서 들어와 16일부터 5일간 경기도 이천, 여주 두 지방 연합전도대회를 이천읍교회에서 개최한 바 있다. 오전에는 전도법 강의, 오후에는 전도 실습, 저녁에는 전도회로 열렸는데, 이 집회에 참석했던 한 사람의 말을 들어본다.
“이 집회를 통하여 지방 전도운동을 새로운 각도로 전개하도록 좋은 시범을 한 것으로 보인다. 이 집회에 참석한 모든 회원들의 마음에 ‘온몸과 시간 드려 이 복음 전하자’는 인상과 결의가 굳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다.....”
이 집회에 참석했던 목사, 전도사, 장로 55명에게 찬반을 물은 바 있다. 그 중 몇 물음에 대한 대답을 들어본다.

문: 이번 심방전도가 우리나라 실정에 맞는다고 보는지, 아닌지?
답: 실정에 맞는다. - 43 / 맞지 않는다. - 12
문: 앞으로 한국 교회에서 전도할 때 이번에 배운 방법을 쓰는 것이 좋을지, 아닐지?
답: 좋다. - 53 / 좋지 않다. - 2
문: 이번에 배우고 얻은 점은?
답: 좋은 체험을 했다 -21 / 전도에 확신을 얻었다. - 34
이처럼 한국 교회의 좋은 반응에 따라 전도집회가 부산, 대전, 공주, 마산 등 점차 지방으로 확산되자 해마다 덴만 박사 외 4-5명의 강사가 들어와 여러 지역에서 집회가 열렸다. 당시 이것은 한국감리교회의 연중행사처럼 되었다. 미국에서는 덴만 박사가, 한국측에서는 김활란 박사가 주도적 역할을 한 감리교회의 부흥운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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