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17강 1:18-24 교회와 무관한 사도직(1:23-24)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2-12-26 13:12
조회
80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바울은 유대의 교회들에 대해 의미 있는 말을 한다. 즉, 바울을 보지도 못한 그들이, 【23】[다만 우리를 핍박하던 자가 전에 잔해하던 그 믿음을 지금 전한다 함을 듣고] 【24】[나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니]라고 하는 것이다.

[믿음](피스틴, πίστιν)에 대해 홍현설 박사는, “신조나 신앙 고백 자체를 믿는 것이 아니며, 또한 인간적 행위에 대한 신뢰와 확고 또는 심리학적 의미의 내적 신념이 아니다.”❶라고 한 다음에, “새로운 창조의 주도자이시며 세계의 화해자이시며 모든 정의의 근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행위를 의미한다.······하나님은 진실하시고 성실하시기 때문에 결코 인간을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즉 신의 믿음직함( 信實性)에 대한 우리의 신뢰, 이것이 바로 구원의 방편이 되는 신앙이다.”❷라고 하였다.

바르트(K. Barth)는 “신앙은 우리가 그 위에 서 있는 근거지로서의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우리의 삶, 사고, 의지 및 감정의 전체에 관계되는 것이다. 신앙은 우리가 거기에 매어 달리는 한 가닥의 끈이며, 그것으로서 우리가 영양을 받는 유일한 음식이다.”❸라고 하였다.

한 마디로 말해, 믿음 곧 하나님께 대한 신뢰의 행위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요(엡 2:8, 마 16:17) 성령의 은사(고전 12:9)로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인 인간의 전 인격적인 응답이다. 전 인격적인 응답이란 인간의 삶, 즉 사고와 의지와 감정 및 행위의 전체가 하나님께 대해 복종적 관계를 맺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연합하며 사는 생활이다. 이러한 관계를 맺는 “믿음의 결단은 이미 인간이 태어날 때, 그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선재 은혜에 근거된 것이므로”(J. Wesley),❹ 인간이 믿는 것은 인간의 공로일 수 없으며, 반면에 믿지 않는 것에 대해 책임을 면할 길이 없는 것이다.

이 믿음은 또한 우리가 완전한 구원을 얻기까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방편이기도 하다(벧전 1:5).

여기의 [그 믿음]에 대해 블렉웰더(O. F. Blackwelder)는 “(1) 능력으로서의 믿음(3:11), (2) 응답으로서의 믿음(2:20, 3:2), (3) 신뢰로서의 믿음(2:16), (4) 언약으로서의 믿음(3:15-22), (5) 신앙으로서의 믿음(2:20), (6) 모험으로서의 믿음(5:5-6)이라는 의미가 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그리스도께 대한 신뢰”(R. T. Stamm)라기보다는 “예수께서 구세주이심을 믿고 알아야 할 교리”(E. Huxtable) 곧 그리스도교의 복음을 뜻한다.❺

바로 이 그리스도의 복음 또는 교리를 [잔해하던] 핍박자(1:13의 주석을 보라.)인 바울이, 지금은 그것을 전하는 사도가 되었다는 것은 실로 놀랄 만한 변화이다. 그러므로 유대에 있는 교회들은 이 사실을 듣기만 하고도 바울로 [말미암아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 것이다(1:5의 주석을 보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바탕은 결코 ‘바울 때문에’가 아니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불붙여 놓아진 자로서의 사도를 지시한다”(윤성범). 다시 말하면, 바울 자신의 변화와 선교란 바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의 행위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 말을 함으로써 자기를 직접 보고, 또한 자신에게서 직접 배우고도 거짓 교사들에 의해 흔들리고 있는 갈라디아 교회의 어리석음을 힐책하고 있는 것이다.

유대에 있는 교회들이 바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의 인격과 생활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인격과 생활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러한 생활은 하나님께 붙잡힌 삶이요, 하나님의 도구로서의 삶이다.

스탐(R. T. Stamm)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하였다. “그리스도인들이 바울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전에, 바울은 먼저 하나님의 독생자께서 자기 속에 사신 것처럼, 그들 사이에서 살아감으로써 그 자신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처럼 되어야 한다.······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대하여 올바른 사상들을 생각나게 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감사에 넘쳐 믿도록 하기 위해 사는 것이다.” 마이어(F. B. Meyer) 역시 “사람들이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을,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를 보게끔 해야만 한다.”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하고 있다.

1:18-24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자기가 베드로와 교제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야고보를 보고 베드로와 십오일 동안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이미 사도로서의 복음을 전한 지 삼 년이나 지난 일이며, 또한 십오일이란 기간은 사도가 되거나 복음을 배우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는 점을 시사함으로써, 자신의 사도직과 복음이 사도들 내지 교회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오히려 우리는 베드로가 바울과 십오일을 함께 지냈다는 사실로 미루어 베드로가 잠정적으로 바울을 사도로서 인정했음을 알 수 있다.

이어서 그는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서 전도한 것을 말한다. 특히, 그는 유대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교회들이 자신의 회심과 복음 전도를 듣고, 자신을 변화시켜 복음 전도자로 만드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말함으로써, 자신을 직접 보고 자신에게서 배웠으면서도 자신의 사도직에 대해 회의를 느끼는 갈라디아 교인들을 힐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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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홍현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서울:기독교 대한 감리회 총리원, 1968), pp. 20-26.
2) Ibid., p. 30.
3) in Ibid., p. 31.
4) 박장균, “웨슬레의 恩寵論” in 神學과 宣敎(서울신학대학, 1972), p. 73.
5) 윤성범: 구원의 길로서의 메시아 신앙이든가 그렇지 않으면 객관적인 능력으로서의 믿음의 메시지를 의미한다(갈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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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87-91.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5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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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12-26 13:14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히브리어도 표기 안 됨)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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