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2-29

헛된 삶 속에서, 기억하라

  • 날 짜  :  12·29(주일) 성탄 후 제1주, 송년주일
  • 찬  송 :  299장 하나님 사랑은
  • 성  경 :  전도서 11:9~12:8
  • 요  절 :  그런즉 근심이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이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검은 머리의 시절이 다 헛되니라 (11:10)

한 해를 보내며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다시 한 번 읽어 봅니다. 노인은 이틀 밤낮을 씨름한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잡았습니다. 그러나 포획의 기쁨도 잠시, 이미 녹초가 된 노인의 배 주변으로 상어들의 공격이 시작됐습니다. 그 잔인하고 끈질긴 이빨들의 공격에 맞서 필사적으로 싸웠지만 승산이 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결국 청새치의 머리와 뼈, 꼬리만 달랑 매달고 간신히 해안가로 다가서는 작은 배 안에서 노인은 소리칩니다. “난 진 게 아니야. 다만 너무 멀리 나갔다 왔을 뿐이야.” 그러나 얼마 후 자신을 돌보러 온 소년 마놀린에게 노인은 말합니다. “마놀린, 내가 놈들에게 지고 말았단다. 정말 철저하게 지고 말았어.”
내가 그렇게 매달리고 노력했던 것이 허무하게 사방으로 흩어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노인의 청새치가 상어들의 이빨에 거덜 나듯이 우리의 시간도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 충격, 염려, 스트레스에 물어 뜯겨 너덜너덜해진 것 같은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다시 한 번 전도서를 펴서 읽게 됩니다. 전도서는 시종일관 “모든 것이 헛되다!”(12:8)고 말합니다. ‘헛되다’라고 번역한 히브리어 ‘헤벨’은 숨결, 바람, 수증기, 안개 등을 뜻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검은 머리의 시절’에 추구하던 모든 것, 우리의 실력, 관계, 건강, 세상의 인정은 아침 안개처럼 흩어져 버립니다. 그러므로 아직 ‘해 아래’에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창조주’를 기억하는 것입니다.(12:1)
나를 지으신 분을 기억하는 것, 그것만이 우리를 세월의 허무함에서 건져 줍니다. ‘내 삶은 왜 이렇게 허무할까? 시간이 지난다고 뭐가 달라질까?’ 문득 이런 생각에 휩쓸리기도 합니다. 바로 그때가 그분을 기억해야 할 때입니다. 해 아래 모든 것을 지으신 분, 그리고 무엇보다 나를 지으신 분, 나의 연약함까지도 아시는 그분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헛된 꿈들이 출몰하고 우리를 갉아먹는 이 세상에 환멸을 느낄지 모르겠습니다. 빈손, 빈털터리로 한 해를 보낸 것 같은 허탈감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더욱 선포합니다. “그래, 헛된 거야.” 세상과 세월의 헛됨을 아는 지혜, 그 지혜 안에 깃드는 자유로움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허무하게 무너진 것 같은 상황에서 오히려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기 원합니다.

주님, 우리의 필사적인 노력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해 아래 빛나는 성공처럼 보이는 것도 한낱 숨결처럼 헛된 것임을 깨닫게 하옵소서. 오직 우리의 창조주를 기억하고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손성현 목사 _창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