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날 짜 : 3월 10일 수
- 찬 송 :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 성 경 : 시편 43:1~5
- 요 절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5)
시편은 날 것 그대로의 감정을 담아냅니다. 환희나 기쁨 같은 긍정적인 감정도, 좌절과 절망 같은 부정적인 감정도 실려 있습니다. 어떤 본문에서는 누군가를 저주하기도 하고, 원수를 좀 심판해 달라고 탄원하기도 합니다. ‘시’라는 문학 양식 덕분에 가능한 일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애먼 일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억울하게 고초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왜 하필 나한테만 이런 시련이 생기냐고 불퉁거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우리 시야가 좁아지게 마련이라 내가 겪고 있는 고통이 제일 커 보입니다. 다른 것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고통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떻습니까? ‘나만 아니면 돼.’ 혹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중국의 문호 루쉰은 한 산문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폭군의 신민은 폭정이 타인의 머리에 떨어지기만을 바란다. 그는 즐겁게 구경하며 ‘잔혹’을 오락 삼고 ‘타인의 고통’을 감상거리나 위안거리로 삼는다.” 천박한 영혼의 실상입니다.
오늘 본문의 화자는 뭔가 원통한 일을 당한 모양입니다. 불의한 자들이 자신을 재판하려 한다, 원수들의 억압에서 건져 달라며 하나님께 청원합니다. 뒤이어 주님의 빛과 진리로 이끌어 달라고 간청하다가 돌연 구원의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중요한 것은 시점입니다. 아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낙심과 불안감이 여전히 스멀스멀 솟구치지만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면 틀림없이 도와주실 것이라는 믿음의 고백으로 시편 43편은 끝납니다.
보험에 가입하는 것으로 혹시 모를 나중 일을 대비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으로 마음이 온전하게 든든해질 수는 없습니다. 낙심이나 불안감이 사라지진 않을 것입니다.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사서 고생하기를 자처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의 빛과 진리가 인도하는 길, 주님께 나아가는 길은 평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혹자는 참, 옳음의 반대말은 악이 아니라 편리함이라고 말합니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하나님 뜻에 순종하는 것, 그것이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의 삶의 방식입니다. 왜 나만 겪는 고난이냐고 불평하지 않고, 더 나아가 타인의 고통에 반응하며 살 때, 우리 인생은 참된 기쁨으로 충만해질 것입니다.
김민호 목사 _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