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정한 위로는 공감에서 시작합니다
- 날 짜 : 6월 10일(수요일)
- 찬 송 :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 성 경 : 욥기 8:1~6
- 요 절 : 또 청결하고 정직하면 반드시 너를 돌보시고 네 의로운 처소를 평안하게 하실 것이
라 (6)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살아서 너무 외롭다. 주변에는 친구도 없다. 집주인에게는
죄송한 마음이다.” 2016년 2월 서울 강남의 한 원룸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한 A씨
(29)의 유서 내용입니다. 극심한 고통과 외로움에 절망하여 삶을 비관하고 포기하
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상처받은 많은 현대인에게, 아니 우리 모두
에게 진정한 위로가 필요한 시대입니다. 진정한 위로는 쓰러진 이들이 다시 일어
날 수 있는 소망을 갖게 합니다.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위로자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위로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참된 위로는 어떤 것일까요?
진정한 위로는 ‘공감’에서 시작됩니다. 욥이 고통 중에 신음하며 괴로워하고 있
을 때 세 친구가 그를 위로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욥에게 진정한
위로가 되지 못했습니다. 욥의 고통과 탄식에 빌닷은 공감하지 않습니다. 대신 욥
과 자녀에게 있다고 생각되는 잘못과 허물을 지적하기 시작합니다. “네 자식들이
주님께 죄를 지으면, 주님께서 그들을 벌하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냐?(4, 새번
역)” 자녀를 잃어버린, 상상할 수조차 없는 고통 중에 있었을 욥에게 빌닷의 말은
더 큰 고통을 안겨 줄 뿐이었습니다.
상황의 판단자 또는 심판자는 참된 위로자가 아닙니다. 참된 위로자는 다만 고
통 중에 있는 이의 심정에 공감하며 함께 있어 주는 사람입니다. 사실 빌닷의 말이
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욥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의 위로입니다. 잘못이
나 죄의 지적이 아닌,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공감입니다.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나면 견인차, 경찰차, 구급차가 달려옵니다. 그런데 이들
이 찾아온 목적은 각각 다릅니다. 욥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생명과 치료를 목적으
로 달려오는 구급차와 같은 존재입니다. 아픔을 당한 이들과 함께 있어 주며 공감
하는 것이 진정한 위로입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에게 찾아오셔서 정죄하지 않고 그
들의 삶의 자리에서 공감하시며 위로와 소망을 주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위로가 필
요한 사람이 있습니까? 주님이 우리를 위로하셨듯, 힘과 용기가 필요한 사람을 찾
아가 참된 위로자가 되어 주십시오.
김동이 목사·제자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