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13

주님은 더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 날 짜  :  05·13(월요일)
  • 찬  송 :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 성  경 :  베드로전서 3:8~17
  • 요  절 :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라 (15~16상)

우리 몸은 각 지체가 연결되어 움직이도록 창조되었고, 그렇게 자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춤은 ‘더’(more)입니다. 그 춤이 진심에서 우러나온다면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우리 목소리는 상대에게 자신을 표현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노래는 ‘더’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대로만 자기 역할을 해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역할을 넘어서 ‘더’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뿐입니다.
필요한 것보다 ‘더’ 하는 것, 그것은 선한 종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예수님이 산 위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셨던 말씀도 ‘더’였습니다(마 5:39~44). “친구만 사랑할 게 아니라 원수까지도 더 사랑하십시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더 돌려대십시오. 오 리를 가자는 이에게 십 리까지 더 가 주십시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더 주십시오.” 그냥 만들어진 대로만 살아도 몸은 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진심을 담아 ‘더’ 하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베드로는 마지막이라며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여기고 삶의 주인으로 삼으십시오.”(15) 그리스도를 모르고도 몸은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몰라도 몸을 움직여 살아갑니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시는 것은 ‘더’입니다.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삼은 사람만이 ‘더’로서의 ‘선한 양심’을 가지게 됩니다(16). 선한 양심을 갖는 것은 ‘저절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시고자 하는 ‘더’가 있어야 가능합니다. 의지를 담아야 할 수 있는 ‘더’입니다. 내가 하려고 해야 ‘더’를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말한 대로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않고 도리어 복을 비는 것도 ‘더’입니다. 필요한 것을 넘어서는 ‘더’라는 행함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갑니다.
충분히 자란 어른이 계속 자기 몸을 더 키우려고 한다면, 그것은 비만이거나 종양(암)이지 성숙이나 아름다움이 아닙니다. 어른이라면 자신을 키울 게 아니라 ‘새 생명’을 낳아야 합니다. 나 자신만을 위한 ‘더’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 가는 ‘더’를 찾아봐야겠습니다. 내 삶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어떤 ‘더’를 하라고 하시는지 귀 기울이는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나는 오늘 어떤 ‘더’를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은 몸으로만 살라고 부추깁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내 삶의 주인으로 모셨으니,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말씀대로 오늘도 ‘더’를 실행하며 살겠습니다. 분별하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정수 목사 _대한기독교서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