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31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 날 짜  : 2022년 10월 31일 월요일
  • 찬  송 : 357장  주 믿는 사람 일어나
  • 성  경 : 하박국 2:1~5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4)

1517년 10월 31일은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95개의 논제를 게시한 날입니다. 역사가들은 종교개혁의 촉매가 된 그날을 기억하지만, 신앙인들은 그 전에 있었던 한 영적 사건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루터가 로마서 1장 17절 말씀을 통해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의 의’를 깨달은 일입니다. 종교개혁의 진정한 시발점은 그 말씀과의 만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이전에 비슷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서 ‘기록된 바’라고 언급했듯이 사도 바울 역시 어떤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를 깨달았는데,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4).” 하지만 로마서 말씀과 하박국 말씀에는 간과해서는 안 될 차이가 있습니다. 로마서의 말씀이 ‘믿음’에 방점을 두었다면, 하박국의 말씀은 ‘의인’을 강조한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한껏 부푼 교만한 자를 보아라. 그는 정직하지 못하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부유한 재산은 사람을 속일 뿐이다. 탐욕스러운 사람은 거만하고, 탐욕을 채우느라고 쉴 날이 없다. 그러나 탐욕은 무덤과도 같아서, 그들이 스올처럼 목구멍을 넓게 벌려도, 죽음처럼 성이 차지 않을 것이다(4~5, 새번역).” 의인에 대한 짧은 서술은, 앞뒤로 가득한 악인에 대한 설명에 에워싸여 외롭게 놓여 있습니다. 하박국 1장 4절 말씀처럼 말입니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짐이니이다.” 하박국은 믿음 이전에 의인과 악인에 대한 하나님의 정의를 다루고 있습니다.

믿음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는 믿음을 강조하다가 의인으로 사는 삶과 하나님의 정의를 놓치고 말았고, 의의 부재는 악의 창궐로 번졌습니다. 교회가 또 다른 종교개혁을 요청받는 막다른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믿음이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의롭게 되었다면 의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사모해야 합니다. 의인의 일을 할 뿐만 아니라 악인의 일들을 단호히 거부하고 저항해야 합니다. 그렇게 오늘도 종교개혁의 정신을 이어나갑시다.

세상 속에서 교회 구성원으로서 의롭게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의인을 사랑하고 악인을 미워하시는 정의의 하나님, 우리와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악인이 의인을 에워싸듯 느껴질 때 절망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듯 의로움으로 참된 믿음을 지켜내게 하옵소서. 온전한 신앙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진호 목사 _ 이천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