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서하면 자유하리라
- 날 짜 : 21년 3월 22일 월
- 찬 송 : 462장
- 성 경 : 누가복음 17:1~4
- 요 절 :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4)
복수를 미덕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자식이 부모의 원수를 갚기 위해, 신하가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 한평생 칼을 갈고 무술을 익혀 땅 끝까지라도 찾아가서 원수 갚는 것이 효도이고 무사도였습니다. 원수를 갚은 뒤 고인의 무덤에 가서 “원수를 다 갚았으니 이제 편히 잠드소서.” 하며 절하는 것이 도리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십자가의 사랑은 의롭게 하는 사랑이요, 용서하는 사랑입니다. 용서의 의미에는 증오, 비판, 복수, 비난 등을 잠시 중단하는 소극적인 의미와, 온유와 사랑을 실천하는 적극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둘 중에 적극적인 의미의 용서만이 인간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습니다.
용서받지 못한 죄인은 죄책감과 죄의식의 형벌에서 자유하지 못합니다. 용서받지 않고는 누구도 자유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는 하인 중에 도둑질을 한 자가 있으면 모두 베옷을 입혀 재웠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침에 옷이 가장 많이 구겨져 있는 사람을 범인으로 잡았다고 합니다. 죄 때문에 괴로워하며 잠을 못 이뤄 옷이 많이 구겨진 것입니다. 죄를 지은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회개하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영국의 웰링톤 제독 휘하에 상습 탈영병이 있었습니다. 제독은 탈영병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기 직전,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는 그를 위해 교육도 시키고 상담도 하고 기합도 주고 영창에도 보내고 노동도 시키는 등 해볼 수 있는 방법을 다 했다. 그런데도 그는 돌이키지 않았고 변하지 않았다. 이제 할 수 없이 사형을 선고하고자 한다.” 그러자 한 부하가 나와 말했습니다. “제독님, 이 사람에게 시도하지 않은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사람을 용서하는 은혜를 베푸는 일입니다.” 제독은 부하의 지혜로운 충고를 받아들여 탈영병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놀랍게도 용서받은 병사는 다시는 탈영하지 않고 충직한 군인이 되었습니다.
유명 설교자인 해리 에머슨 포스딕은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생쥐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집을 다 태우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그로 인해 내 마음이 어둡고 황폐해집니다. 직장 생활도, 가정도, 일상도 모두 망가집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죽어 가는 것입니다. 남을 용서하는 것은 자기를 자유롭게 하는 길인 동시에 멋진 인격의 승리라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이선균 목사 _아현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