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앞 거룩한 고민
- 날 짜 : 2024년 3월 29일 금요일
- 찬 송 : 147장 거기 너 있었는가
- 성 경 : 누가복음 23:44~56 그가 빌라도에게 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여 이를 내려 세마포로 싸고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바위에 판 무덤에 넣어두니 (52~5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였지만 당국자들이 두려운 나머지 이를 숨기고 살았습니다(요 19:38). 어떤 면에서 보면 비겁한 제자였습니다. 그러던 그가 결정적인 순간에 큰 용기를 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지시자 빌라도 총독에게 나아가 시신을 넘겨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열두 제자마저 몸 사리느라 나서지 않던 상황이었음을 생각하면 보통 어려운 결심이 아닙니다. 짐작건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몇 시간 동안 피가 마르는 고민을 했음이 분명합니다.
십자가를 정직하게 마주한 사람이라면 이런 고민이 낯설지 않습니다. 골고다 예수의 십자가는 본질상 신앙의 양심을 자극하고 영적 파동을 일으키는 성질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들도 그렇습니다. 백부장은 십자가형 집행자 중 하나였지만, 양심의 파동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이 의인이었다고 고백합니다(47). 일단의 여인들도 자기 몸을 숨기는 대신 용기를 내어 주님 시신에 향품과 향유를 바르기로 합니다(55~56).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양심의 선한 자극을 느꼈고, 거기에 정직한 행동으로 반응했습니다. 반면, 무명의 구경꾼들은 달랐습니다. 그들 역시 예수의 십자가를 보고 내면에 흔들림을 느꼈지만 그저 가슴을 치며 혀만 끌끌 차다가 돌아설 뿐이었습니다(48).
전자레인지는 마이크로파로 음식을 데웁니다. 마이크로파가 물에 닿으면 물 분자가 진동해 마찰열이 발생하면서 따뜻해지는 원리입니다. 하지만 같은 물이라도 딱딱한 얼음은 물 분자가 진동하지 못하므로 데워지지 않습니다. 십자가가 영혼에 닿아 거룩한 고민을 일으킬 때, 아리마대 요셉처럼 고통스러운 갈등에 반응하고 결단할 것인가, 아니면 구경꾼들처럼 고개 흔들며 그냥 뒤돌아설 것인가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이제 어떻게 하겠습니까? 데워지는 물이 될 것입니까, 아니면 데워지지 않는 얼음이 될 것입니까? 내 목에 액세서리 십자가를 걸겠습니까, 아니면 예수 십자가에 내 목을 아낌없이 걸겠습니까? 오늘 성금요일에 깊고 진지하게 자문(自問)해볼 우리의 선택입니다.
류성렬 목사 _나무십자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