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3-17

신앙에 중립지대는 없다

  • 날 짜  :  03·17(주일) 사순절 제2주
  • 찬  송 :  535장 주 예수 대문 밖에
  • 성  경 :  요한계시록 3:14~22
  • 요  절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5)

우리는 이 땅을 사는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분명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이 문제로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일곱 교회 중 책망만 들었던 교회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상업과 금융, 의학이 발달한 도시로 지진이 나도 자체적으로 도시를 복구할 만큼 물질적 풍요함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물 사정은 좋지 않아 멀리 떨어진 히에라볼리의 온천수를 수로를 통해 공급받았습니다. 그렇게 수로를 통해 흘러온 물은 차지도 뜨겁지도 않은, 그냥 마시면 구토가 날 정도로 미지근한 물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환경의 영향인지 교인들의 신앙도 늘 미온적이고, 분명한 고백과 헌신이 없는 상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평가는 무엇입니까? 신앙이 차지도 뜨겁지도 않고 미지근한 이들을 토해 버리시겠다고 합니다. 이는 차가운 것도 괜찮다는 말이 아닙니다. 뜨거운 신앙이 되어야 하며, 신앙에 중립지대는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바르게 회복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나 자신의 신앙을 정확히 점검해야 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풍족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어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믿음을 진단하는 기준이 중요합니다. 주님은 세상의 가치와 조건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인 상태, 즉 마음의 중심을 보십니다. 우리가 믿음 안에 있는지 스스로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 줄을 알지 못하면 버림받은 자입니다(고후 13:5). 자기만족에 빠지면 열정은 식어 버리고 무관심한 자가 됩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미지근한 사랑이 아니라 생명을 다한 뜨거운 사랑이었음을 기억하십시오.
둘째로, 뜨거운 신앙을 위해서는 회복을 위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본문 18절에서 불로 연단한 금은 ‘고난과 연단을 통해 훈련된 적극적인 믿음’입니다. 흰 옷을 사서 입으라는 것은 정결함과 거룩함을 지키기 위한 ‘희생과 헌신’입니다.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라는 것은 세상 가치관이 아닌 영적인 눈으로 삶을 보고 바르게 판단하고 분별하는 ‘지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향하여 우리 모두 다시 돌이켜 바른 신앙을 회복해야겠습니다.

날마다 성숙을 향해 나아가는, 지정의(知情意)가 균형 잡힌 신앙입니까?

하나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난하고 눈이 멀어 벌거벗은 미지근한 신앙이었습니다. 이 시간 회복을 위한 세 가지 대가를 지불하고 뜨거운 신앙의 열정을 회복하게 하소서. 그래서 주님께 칭찬받는 신앙으로 거듭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조세영 목사 _금성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