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산님에둣으로 노래하겠습니다
- 날 짜 : 2024년 8월 14일 수요일
- 찬 송 :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 성 경 : 시편 80:8~15 만군의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돌아오소서 하늘에서 굽어보시고 이 포도나무를 돌보소서 (14)
이스라엘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세 나무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감람나무, 포도나무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 포도나무를 가져와 이스라엘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가져다 심은 포도나무입니다(8). ‘하나님의 백향목(10)’ 같았던 그 나무가 이제 들짐승의 먹이가 되어버렸습니다.
시편 기자는 왜 굳이 포도나무로 이스라엘의 상황을 말하고 있을까요? 어떤 나무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수명이 보통 천 년을 넘는 감람나무로는 이스라엘의 현재 모습을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의 마지막 계절을 상징하는(마 24:32~33) 무화과나무로도 지금의 상태를 말할 수 없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주님의 재림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포도나무로 다시 손길이 필요한 이스라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돌보심을 간절히 구하는 시편 기자는 그 마음을 담아 자신의 시에 ‘소산님에둣’이라는 곡조를 붙입니다. 시편에는 ‘표제’라는 것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시편을 읽을 때 표제에 제시된 곡조에 맞춰 읽습니다. 이스라엘의 이런 곡조를 모르는 우리는 시편을 곡조 없이 글로만 읽지만, 그들은 표제를 보고 그 곡조에 따라 노래합니다. 예수님의 죽음을 미리 노래한 시편 22편은 ‘아얠렛샤할에 맞춘 노래’입니다. 아얠렛샤할, 즉 ‘새벽(아침)의 사슴’이라는 곡조에 담긴 슬픔을 담아내 부르면 그 시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을 생생하고 절절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시편 80편의 표제인 ‘소산님에둣’이란 ‘언약의 백합화’입니다. ‘언약’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이스라엘의 수많은 배신과 부족함에도 여전히 당신의 백성으로 붙들겠다는 하나님의 강렬한 의지를 담은 약속입니다. 다시 주님의 돌보심을 받아야 하는 이스라엘(14)을 위해 시편 기자는 소산님에둣의 곡조를 가져와 노래합니다. ‘주님,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다시 생각해 주십시오. 주님, 망가진 포도나무, 이스라엘을 돌보아 주십시오. 다시 기회를 주시면 우리도 그 언약의 자리에 있겠습니다(시 80:18~19).’ 이것이 우리의 기도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강연희 목사 _감리교선교사훈련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