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1-18

새로운 인간관계의 틀

  • 날  짜 : 2023년 11월 18일 토요일
  • 찬  송 : 216장  성자의 귀한 몸
  • 성  경 : 로마서 12:14~21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말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 (14~15)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교회는 박해 아래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는 피해를 보고 어떤 성도는 죽기까지 했을 테니, 로마 황제를 비롯해 로마에 대한 감정이 결코 좋을 리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정서와 상반되게 오늘 본문은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고 합니다.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14).” 이게 어떻게 가능합니까? 나를 박해하는 사람을,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축복합니까? 내 편이 아닌 그 사람을 위해 하늘의 복을 빌라니 이게 가당키나 합니까? 아무리 생각해도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반면 15절 말씀은 상대적으로 쉬운 명령으로 보입니다.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15).” 즐거운 사람과 같이 즐거워하고, 슬퍼서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는 말씀은 지극히 인간적인 감정만으로도 가능한 일이기에 쉬운 일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즐거워할 때함께 즐거워하려면 그 사람과 같은 편이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는 사람과 같이 울려면 우는 사람과 같은 편이어야 합니다. 내 편일 경우에는 즐거워할 때 같이 즐거워하고 울 때 같이 울 수 있지만, 내 편이 아니라면 그것은 어렵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관계의 범위(틀)입니다. 내가 어디까지를 인간관계의 틀로 두느냐에 따라 상대방과함께 울 수도, 함께 즐거워할 수도 있습니다.

성숙한 사람일수록 인간관계의 틀이 넓습니다. 그리고 누구보다 그 틀이 넓은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우리만을 위해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뿐 아니라, 인류 전체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분의 인간관계의 틀은 하늘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내 편과 남의 편을 손쉽게나누는 좁디좁은 틀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만약 인간관계의 틀이 좁다면 얼마나 늘려야 할까요? 가족까지 혹은 친인척까지, 아니면 어디까지늘려야 할까요? 어디까지 같은 편이 되어 같이 울고 같이 즐거워해야 할까요?

오늘 성경은 그 범위를 명확하게 짚어 줍니다. 바로 ‘모든 사람’입니다. “할 수 있거든 모든 사람과화평하라(18).” 오늘 말씀대로 모든 사람과 함께 즐거워하는 참다운 신앙인이 됩시다.

내 인간관계의 틀은 어떻습니까?

하나님, 사람을 내 편과 남의 편으로 구분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내 편과만 즐거움을 나누려고 했습니다. 이런우리를 용서해 주옵소서. 그리고 이제는 예수님처럼 모든 사람을 품고 그들과 화평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제자가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최재훈 목사 _ 나들목은혜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