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22

상관있습니다

  • 날 짜  : 2022년 12월 22일 목요일
  • 찬  송 : 327장  주님 주실 화평
  • 성  경 : 요한복음 19:25~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6)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말씀하신 가상칠언 중 세 번째는, 가장 사랑하는 제자에게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부양해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것은 주님의 태도입니다. 간곡한 부탁이 아닙니다. 막무가내로 떠맡깁니다. “예수께서는 자기 어머니와 그 곁에 서 있는 사랑하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어머니,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하고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제자에게는 ‘자,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때부터 그 제자는 그를 자기 집으로 모셨다(26~27, 새번역).” 당혹스럽긴 하지만 죽음을 눈앞에 둔 사람이기에 가능한 말투가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종교를 뜻하는 영어 단어 릴리전(religion)은 ‘묶다’, ‘잇다’를 뜻하는 라틴어(Religio)에서 파생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나, 하나님과 이웃, 또한 이웃들 사이에 다리를 놓으며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긴 말입니다. 바울서신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엡 2:14).” 마태복음의 말씀도 기억해 봅시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건 “네가 무슨 상관인데?”라는 말입니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창 4:9).”라는 가인의 냉기 어린 반문이 떠오릅니다. 소통하기를 거부하는 말, 분리 장벽을 높이 쌓는 말입니다. 타자와 유대감이나 친밀감을 나눌 수 없는, 타인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이 지옥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드러난 주님의 사역은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을 한 공동체로 엮는 일입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다하는 존재로 살아가도록 말입니다. 주님은 각자도생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을 의지하며 살도록 부르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그렇게 시작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타인은 지옥이 아닙니다. 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내 주신 형제와 자매요 이웃입니다. 그렇게 믿을 때, 분열된 세상이 조금씩 치유됩니다.

홀로 고립되었다는 느낌에 사무칠 때 어떻게 이겨냅니까?

 

은혜로우신 하나님, 주님은 우리를 홀로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고 믿지만 때로는 그 믿음이 흔들리기도 합니다.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우리를 단단히 묶어 주소서. 우리를 평화의 마중물로 사용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민호 목사 _ 지음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