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의 모순
- 날 짜 : 2021년 9월 29일 수요일
- 찬 송 : 566장 사랑의 하나님 귀하신 이름은
- 성 경 : 로마서 9:14~18
- 요 절 : 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완악하게 하시느니라 (18)
이집트의 노예였던 히브리인들을 해방하시려는 하나님과, 이를 가로막으려는 이집트 왕 바로 사이의 치열한 대결을 기록한 출애굽기는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대목 중 하나입니다. 완악한 바로 왕이 술수와 거짓으로 맞설 때마다 더 강력한 재앙을 이집트에 내리시는 하나님의 이적이 열 차례 반복됩니다. 자연스럽게 이해하자면, 이집트에 차례로 발생하는 재앙은 이집트 왕 바로의 완악함에 대한 하나님의 응징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반적 이해를 뒤집는 구절들이 성서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드셨다’는 언급이 온당한 이해에 혼란을 일으킵니다(18, 출 7:3, 9:12, 10:20, 11:10). 정말로 하나님이 바로 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셨다면, 완악함의 책임을 바로 왕에게 물을 수 없지 않습니까? 더 나아가 누군가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고, 그 완악함을 이유로 그를 벌하시는 하나님이라면, 과연 그분은 선하십니까?
모순(矛盾)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방패라도 뚫을 수 있는 창(矛)과 모든 창을 막아낼 수 있는 방패(盾)라는 의미인데, 서로 양립할 수 없는 두 주장을 가리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는 불의가 없다는 주장과(14)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라는 주장은(18) 모순처럼 들립니다.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이 완악해지도록 교사(敎唆)하셨다면, 하나님은 불의하다는 혐의를 피하실 수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기독교의 구원이란 주님이 인간의 죄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인간의 잘못과 혐의를 자신에게 전가(轉嫁)하신 일이었습니다. 이런 이해를 바탕으로,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만들었다’는 말씀은, 바로의 완악함의 혐의를 주님 자신의 탓으로 전가하심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바로의 완악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크신 이름과 능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는(17), 바로를 위한 변명도 이를 뒷받침합니다.
불의하지 않으신 주님이 불의해지시는 모순은, 전적으로 그분의 자비하심 때문입니다. 자비하신 주님은 완악한 바로 왕마저 불쌍히 여기시고, ‘바로를 완악하게 한 것은 나다’라는 말씀으로 긍휼을 베푸십니다. 주님의 사랑이 감당치 못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요? 어떤 잘못인들, 그분의 긍휼로 덮이지 않을 것이 있을까요? 우리는 다 그 자비 안에 있습니다.
정명성 목사 _팔미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