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5-27

사람을 바라보는 눈

  • 날 짜  :  05·27(월요일)
  • 찬  송 :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 성  경 :  요한복음 9:1~12
  • 요  절 :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7)

한 노숙자가 실험을 했습니다. 처음엔 정장 차림으로, 그 다음엔 허름한 옷차림으로 행인들에게 돈을 구걸한 것입니다. 실험을 하기 전 그는 당연히 불쌍하게 보이는 것이 더 많은 동정심을 유발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정장 차림으로 구걸했을 때에는 짧은 시간에 적은 돈이나마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 같은 처지의 노숙자까지도 돈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허름한 차림으로 나서자 모두 외면하고 지나쳐 버렸습니다. ‘동정심’을 베푸는 일에서조차 사람들은 타인의 외모를 기준으로 하는 것입니다.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에 나오는 시각장애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자들은 본인이든 부모든 누군가 죄를 지었기에 태어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연한 죗값이라고 본 것입니다. 또한 주변 사람들은 그가 예수님께 고침을 받은 후 정말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 의심하며 논쟁을 했습니다. 그리고 본문 이후를 보면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이 일을 안식일에 하셨다는 이유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 맞느냐며 서로 싸웠습니다. 심지어 그의 부모는 출교가 무서워 예수님이 아들을 고쳐 주셨다는 말을 제대로 하지도 못합니다.
제자들이나 이웃 사람들, 바리새인들, 심지어 부모까지도 이 시각장애인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귀한 존재로 보지 못하고, 그저 앞을 보지 못하는 그의 겉모습만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리기보다는 그에게서 죄를 찾고, 기적의 유무를 논하고, 율법을 범했느냐를 따지고, 출교를 걱정하는 모습만 보인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릅니다. 앞 못 보는 그의 외모를 보지 않고, 그를 존귀한 영혼으로 바라보셨습니다. 그래서 불쌍히 여기며 치료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타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봅니까? 겉모습으로 평가하고 판단하지는 않습니까? 외모로 사람을 평가하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내면을 가꾸기보다는 외모에 더 많은 신경을 쓰고 투자를 합니다. 이러한 외모지상주의가 우리를 더욱 피폐하게 만듭니다. 사람의 외모가 아닌 중심을 볼 줄 아는 사람, 내면이 아름다운 사람이 그리운 세상입니다.

다른 사람을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그의 중심을 보며 다가가고 있습니까?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신 하나님,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는 잘못을 더 이상 저지르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주님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 모든 사람을 존귀하게 여기고 그의 아픔과 슬픔을 헤아리며 위로의 손을 펼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이재은 목사 _초운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