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받고 본 보입시다
- 날 짜 : 02·13
- 찬 송 : 455장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 성 경 : 데살로니가전서 1:2~7
- 요 절 :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7)
서양미술사에는 BC 600년경 고린도에 살았던 점토 공예가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와 그의 딸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집니다. 전쟁터로 떠나는 애인을 잊고 싶지 않았던 부타데스의 딸이 등불에 비친 애인의 그림자 윤곽을 벽에 그려 남겼고, 아버지 부타데스가 그 윤곽을 본떠 점토로 젊은이의 초상을 빚었다는 것입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부타데스 부녀의 작품이 각각 회화와 점토초상의 시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독특한 이야기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본떠 간직하려는 인간 본성이 녹아 있습니다. 매력적인 대상을 그리거나 새기거나 닮아 가려는 지향성이 우리 안에 있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본능적 지향성은 신앙생활을 배우거나 전수하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교인들이 그러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칭찬합니다(3).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훌륭한 신앙을 갖게 된 것은 스스로 터득한 결과물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신앙이 ‘우리와 주를 본받은 것’이라고 말합니다(6). 여기서 ‘우리’는 바울을 비롯한 전도자들을 말하는 것이고, ‘주’는 예수님입니다. 즉 전도자들은 예수님을 본받았고,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은 그런 전도자들을 본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그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본이 되었다고 평가합니다.(7)
신앙생활은 본받아서 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을 본받고 선진들의 신앙을 본받아서 우리 역시 누군가의 본이 되어 가는 것이야말로 건강한 신앙생활이며 아름다운 전도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이어지고 그렇게 확장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본받고 소망을 따라 하고 사랑을 닮아 가는 것, 이것처럼 위대한 모방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요?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세 아들』에 한 아버지가 세 아들에게 재산을 나누어 주며 이렇게 말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쩌면 이 말이 데살로니가 교회 교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음성이고 또 오늘 우리에게도 주시는 숙제일지 모르겠습니다. “나처럼 살아가라. 그렇게 하면 행복해질 테니.”
류성렬 목사 _논현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