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9-28

말씀을 들음과 말씀의 역사

  • 날 짜  :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 찬  송 : 520장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 성  경 : 전도서 7:5~6
  • 요  절 :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우매한 자들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나으니라 (5)

성경 말씀은 거룩한 글 ‘그라페(눅 24:27)’, 말씀의 본질인 ‘로고스(요 1:1)’, 역사하시는 말씀인 ‘레마(롬 10:17)’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말씀을 믿음으로써 말씀이신 그리스도와 만날 수 있고, 말씀을 들음으로써 말씀이 역사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즉 말씀의 역사란 바로 들음의 역사이므로, 어떻게 듣느냐가 관건입니다.

상처받은 사람은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이가 있을 때 치료됩니다. 듣는 것이 관계를 연결하는 고리이기 때문입니다. 내담자 중심 심리치료의 대가 칼 로저스는 상대방의 사연을 평가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들어 주기만 해도 문제의 반이 해결된다고 했습니다. 말하는 중에 상한 감정이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있기에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이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듣기’입니다. 들음이 성숙이요, 심령 치유도 들음에서 출발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에게는 말하는 능력보다 듣는 능력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듣기만 하고 행동을 취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9)’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소리가 아니라 그 내용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 들은 후에는 필요한 행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진정한 들음은 피상적 소리만이 아니라 그 내용을 파악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를 정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지혜로운 사람과 우매한 사람을 결정짓는 것은 그가 책망을 어떻게 듣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의 책망을 듣는 것이, 어리석은 사람의 노래를 듣는 것보다 더 낫다. 어리석은 사람의 웃음소리는 가마솥 밑에서 가시나무 타는 소리와 같다. 이 또한 헛되다(5~6, 새번역).” 책망을 듣기 싫어하고 내 귀에 달콤한 아첨만 듣기 좋아하는 이는 가마솥 밑에서 타는 가시나무처럼 인생에게 실속과 유익이 없이 다만 헛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듣는다고 다 같은 들음이 아닙니다. 어떻게 듣느냐에 따라서 말씀의 역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어떤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우매한 사람이 됩니다. 이것을 기억하여 복잡다단한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말씀의 역사를 누리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말씀으로 들어 말씀의 역사를 누리는 진정한 지혜자입니까?

기도

우리를 항상 지키고 돌아보시는 주님, 세상 사람들처럼 책망을 듣기 싫어하고 아첨의 말만 듣기 좋아하는 우매자가 되지 않게 하옵소서. 주의 자녀로서 말씀을 말씀으로 들어 삶의 현장에서 진정한 말씀의 역사를 누리는 지혜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한성수 목사 _진주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