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4-02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 날 짜  : 04월 02일 금
  • 찬  송 : 311장 내 너를 위하여
  • 성  경 : 마가복음 15 : 16~32
  • 요  절 :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32)

오래전에 ‘종합선물세트’라는 것이 있었습니다. 큰 상자 안에 다양한 종류의 과자들이 가득 들어 있어서 그것을 선물 받은 어린이들은 매우 기뻐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읽다 보니 종합선물세트가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종합선물세트의 긍정적 의미가 아닌 ‘조롱선물세트’라는 부정적 의미로 생각났습니다.

 

그 선물세트의 내용물을 한번 봅시다. 십자가형이 확정되자 로마 병사들은 대관식을 흉내 내며 예수님을 희롱하고 괴롭혔습니다.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만들어 씌우고 갈대로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고, 조롱의 의미로 절을 한 뒤 다시 옷을 벗겼습니다. 이미 채찍에 맞아 기력이 다한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곧 해골의 곳이라는 곳에 올랐고,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 달려 고통스러워하는 예수님을 향해서도 모욕했고,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까지 조롱했습니다. 심지어 좌우 십자가에 같이 못 박힌 두 강도도 예수님을 업신여겼습니다. 정말 완벽한 조롱선물세트입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예수님의 모욕, 조롱, 핍박, 고난을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고난주간이 돌아오면 각자 나름대로 사순절을 보내며 금식도 하고 예수님의 희생과 고난을 묵상하며 경건하게 보내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해서 오신 분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며 예수님이 당하신 끔찍한 고통을 당연시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으니까,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니까 당연히 그랬어야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이 아니면 예수님은 결코 그런 일을 당하실 이유가 없습니다. 이 모든 과정은 사랑이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 엄청난 사랑을 받았음을 우리는 세상에 어떻게 알릴 수 있습니까? 그것을 증명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태도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즉 용서하며 사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일곱 번 용서하면 되겠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다른 이들을 얼마나 용서하며 살고 있습니까? 세상에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나 같은 죄인도 예수님의 사랑으로 용서받지 않았습니까?

오늘 내가 예수님의 사랑을 묵상하며 용서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기도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을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우리를 용서하소서. 예수님의 그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고 실천하는 사람이 되길 소망합니다. 나만 용서받기 원하는 이기적인 삶에서 나 역시 용서하는 삶으로 변화되는 이 주간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공성훈 목사 _불꽃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