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9-11

내 이름을 안즉

  • 날  짜 : 2024년 9월 11일 수요일
  • 찬  송 : 313장 내 임금 예수 내 주여
  • 성  경 : 시편 91:14~16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 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 (14)

사랑을 노래한 시 중 절창이라 여기는 것이 있습니다. 김남조 시인의 연작시 『사랑초서』입니다. 빈 가지를 모두 떨군 겨울나무처럼, 감정과 언어의 군더더기를 버려 최소한의 것으로 빛나는 시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한 구절은 이렇습니다. “누군가 네 영혼을 부르면/ 나도 대답해/ 소름끼치며 처음아는/ 영혼의 동맹.” 누군가가 너의 영혼을 부르자 마치 나를 부른 듯 나도 모르게 대답을 합니다. 그 순간 화들짝 놀라며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시인은 그것을 ‘영혼의 동맹’이라 부릅니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온전한 하나라는 사실 앞에 소름이 끼칠 정도이니 감히 그 사랑의 깊이를 헤아리기가 어렵습니다.

시편 91편의 중심 단어는 ‘너’입니다. 고난 중에서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먼저 경험한 ‘내(2)’가,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너’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축복합니다. 지금 ‘너’를 괴롭히는 고난은 한둘이 아닙니다. 새사냥꾼의 올무와 심한 전염병(3), 밤에 찾아오는 공포와 낮에 날아드는 화살(5), 어두울 때 퍼지는 전염병과 밝을 때 닥쳐오는 재앙(6), 천 명이 왼쪽에서 만 명이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는 재앙(7) 등입니다. ‘심한 전염병’에서 ‘심하다’는 ‘부수다’라는 뜻입니다. 먼저 경험한 고난 속의 은혜가 있기에, 몸과 마음을 다 부술 것 같은 고난에 빠진 ‘너’의 고통을 공감하며 위로하는 모습이아름답고 소중합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은 하나님의 뜻이었을까요, 시인은 마침내 예언자적 신탁의 형식으로 주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14). ”고난을 당하는 자가 참으로 명심하며 붙잡아야 할 말씀을 들려줍니다.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주님을 열망하며 집중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지식의 차원이 아닙니다. ‘안다’는 말은 ‘부부가 동침하다’라는 뜻으로, 경험을 통한 전인격적인 신뢰를 말합니다. 고난의 한복판에서 주님께 집중할 때 주님은 우리를 건지십니다. 너와 나의 경계가 사라진 영혼의 동맹처럼 우리가 주님을 알 때, 주님은 우리를 높이십니다. 주님은 주님을 알고 주님을 사랑하는 자를 결코 고난 속에 방치하지 않으십니다.

나는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을 습관처럼 하면서도 우리의 사랑은 가벼웠습니다. 하나님을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신뢰는 부족했습니다. 지식을 넘어 주님을 제대로 알고 싶습니다. 입술의 고백을 지나 주님을 충분히 사랑하고 싶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한희철 목사 _정릉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