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 눈의 들보를 보고 있나요
- 날 짜 : 21년 6월 10일 목요일
- 찬 송 : 420장 너 성결키 위해
- 성 경 : 누가복음 6:37~42
- 요 절 :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1)
오늘 본문은 ‘티와 들보’의 비유로, 함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사실 이 교훈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실상은 외면한 채 남을 쉽게 비난하고 정죄하는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 외에 그 누구도 심판자의 위치에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 그리고 내가 상대방보다 오히려 더 큰 결점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처지에서 남을 비판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입니다(42).
그런데 그럼에도 우리 삶에서 비판이나 험담이 그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의 비행을 합리화하고자 남 탓을 하기도 하고, 내재된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얼마든지 손쉽게 할 수 있기에 기회만 생기면 남 이야기를 합니다. 요즘에는 인터넷 상에서의 악성 댓글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소통하는 공간에 온통 인신공격성 비난과 욕설이 가득합니다. 익명성 뒤에 숨어서 도를 넘은 폭력을 휘두르는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악성 댓글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들까지 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남의 눈에 있는 티를 탓하기 전에 먼저 내 눈에 있는 들보부터 빼라고 하셨습니다. 심판하고 정죄하기 전에, 그래서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르기 전에 자신을 먼저 살펴보라는 말씀입니다. 근거 없는 비난과 험담은 간접적인 살인 행위입니다. 내 입이라고 해서 함부로 비판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날선 비난이 아닌 격려가 필요한 세상입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될까요? 첫째, 타인의 과실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쉽사리 비판하지 못합니다. 둘째, 타인의 선행과 장점을 발견하고 격려하기에 힘씁니다. 그러면 모두가 칭찬의 대상으로 바뀔 것입니다. 셋째, 평소 예수님의 마음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세상 모두가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품고서 사람들을 대하면 험담할 일이 없습니다. 죄인을 불러 구원하는 데 기독교의 존재 의미가 있음을 명심하여 타인의 결점과 결핍을 헤아리는 우리가 되도록 노력합시다.
송상면 목사 _성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