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 날 짜 : 2024년 4월 8일 월요일
- 찬 송 :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 성 경 : 사도행전 9:1~9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5)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사울의 열심은 유난했습니다. 바리새파의 적자를 자청하며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무리를 소탕하려는 그의 살기와 위협은 시퍼런 칼날 같았습니다. 대제사장에게까지 찾아가 공식 문서를 받아내고, 다메섹에 가서 직접 소탕 작전을 벌이려는 그의 열심을 누구도 막을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증오심과 적의로 가득 찬 사울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이 말씀을 들으면서도 죽었던 예수가 다시 살아났으리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못하는 그를 주님은 한마디로 거꾸러뜨리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그 강력하고 강렬한 만남 이후 사울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됩니다. 박해자요 가해자였던 사울에서 핍박받는 복음 전도자 바울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사람은 고쳐 쓰지 못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의 이치는 그럴지 몰라도 성도의 믿음은 이와는 다릅니다. 예수님 안에서라면 모든 사람은 바뀔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면 누구라도 변합니다.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주님은 아무리 극악한 반대자, 강퍅한 핍박자라도 변화시키십니다. 주님을 만나면 새사람이 됩니다.
훗날 바울은 아그립바왕 앞에서 이날의 경험을 간증합니다. 그리고 그 생생한 체험의 현장에서 들려주셨던 주님의 말씀을 증언합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 가시채란 수레나 마차를 끄는 가축이 뒷발질하지 못하도록 뾰족하게 박아 놓은 가시를 말합니다. 만약 소나 말이 뒷발질을 한다면 그 고통은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올 뿐입니다. 이는 당시 사울의 잘못된 열심이 바로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꼴이라는 사실을 비유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러고 보면 예수님을 박해하는 자는 사울만이 아닙니다. 여전히 자기 뜻을 세우기에만 열심인 우리의 교만한 모습에서 가시채를 뒷발질하는 박해자 사울이 보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반드시 주님을 만나야 하고, 주님 안에서 새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정진교 목사 _마산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