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마귀는 자유하고 엉겅퀴는 예쁘다
- 날 짜 : 07·14(주일) 성령강림 후 제5주
- 찬 송 : 541장 꽃이 피는 봄날에만
- 성 경 : 누가복음 12:22~34
- 요 절 :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24)
오늘 우리는 누가복음에 나오는 ‘하늘의 새와 들의 꽃처럼 살아라’ 하시는 말씀의 의미와, 그렇게 살기 위해 ‘하나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을 받아 마음에 앉히려고 합니다.
마태복음(6:25~34)에서는 하늘의 ‘새’라고 표현하는데, 누가복음에서는 ‘까마귀’라고 기록합니다. 까마귀는 우리만이 아니라 당시 팔레스틴 사람들도 부정한 날짐승으로 여겼습니다.
그러면 누가복음은 왜 새를 까마귀로 기록했을까요? 그것은 이 비유를 통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를 전하려는 의도로, 즉 ‘까마귀까지 먹여 살리지 않느냐’라는 의미의 표현입니다. 누가는 이 비유를 어리석은 부자의 예화 뒤에 배열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새와 들의 꽃’ 비유는 바로 앞의 비유에 나오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에 대한 대척점입니다.
누가복음은 그냥 새가 아니라 ‘까마귀’라고 했습니다. 들의 꽃도 그냥 꽃이 아니라 ‘엉겅퀴’를 가리킵니다(『신약성서-새로운 삶의 희망을 전하다』, 박경미, 72쪽). 이렇게 까마귀나 엉겅퀴는 참으로 하잘것없는, 오늘 있기는 하나 내일 사라진다고 해도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것들입니다. 누구도 좋아하지 않고 쓸모없다고 여기는 짐승이고 꽃입니다. 자신들의 형편이 까마귀와 엉겅퀴 같다고 여기며 살아가는 갈릴리 농민들에게 예수님은 “봐라! 저 못난 것들도 내가 먹이고 입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가 비록 비참한 처지라고는 하나 어찌 저들만 못할까!” 하시는 것입니다.
이 비유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하늘의 까마귀를 보고 들의 엉겅퀴를 보면서 하나님이 만드신 창조세계에 대한 눈을 가지고 피조세계를 경영하라는 것입니다. 더 크고 근원적인 세계에 근거해 살아가라는 요구입니다. ‘하늘의 까마귀를 보고 들의 엉겅퀴를 보라’는 말씀은 까마귀와 엉겅퀴가 대지에 뿌리박고 살듯 너희는 하늘에 뿌리박고 건강한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태초의 창조세계에서처럼 상호관계 속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돌봄으로 생존하고 번성하는 질서를 회복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되도록 인간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책무를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일’입니다.
허태수 목사 _성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