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사전]파울러(Fowler, Charles Henry, 1837-1908)

선교사사전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2006-07-05 01:01
조회
447
미감리교회 감독. 8월 14일 캐나다 온타리오주 버퍼드에서 출생. 1841년 미국 일리노이주로 이주하였고, 1859년 뉴욕주 리마 소재 웨슬리안대학을 졸업한 후 계속하여 1861년 개렛성서학교를 졸업하고 동 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861년 로크리버연회에 입회한 후 11년간 시카고에서 목회하며 교회 및 학교 설립을 위한 모금운동에 \"파울러 선풍\"을 일으켜 4만 달러를 모금하였다. 1872년 노스웨스턴대학 학장에 취임하여 동 대학을 굴지의 대학으로 발전시켜 놓기도 했다.
1884년 감독으로 선택되어 1884-1892년 샌프란시스코연회, 1892-189년 미네아폴리스연회, 1896-1904년 버팔로연회, 1904-1908년 뉴욕연회 등을 관리하였다. 행정력과 지도력이 남달랐던 파울러 감독은 특히 해외선교를 위해 20세기 약진운동(The Twentieth Century Forward Movement)을 벌여 2천만 달러를 모금한 후 중국에 북경 및 남경대학을 설립하였고 러시아 레닌그라드에 첫 감리교회로 세인트 페데르스부르그교회를 설립했다. 그 후 미국 남부 캘리포니아에 매클레이신학교를 설립하였으며 네브래스카 웨슬리안대학 설립도 크게 도왔다. 그는 한국 선교의 문을 여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1883년 9월 시카고에서 뉴욕으로 가는 차안에서 한국 보빙사절단 민영익 일행을 만난 가우처 목사가 같은 해 11월 6일자로 미국 감리교회의 선교본부 파울러 감독에게 2천 달러를 보내면서 한국 선교를 제의하자, 파울러 감독은 즉시 해외선교위원회를 소집하고 한국 선교를 결의한 후 도쿄 매클레이 박사에게 한국 선교답사를 명령하였고, 일본 감리교 선교관리자로 있던 매클레이 박사는 1884년 6월 24일 한국을 방문한 후 고종으로부터 교육과 의료사업의 윤허를 얻어냈던 것이다. 그에 따라 파울러 감독은 1885년 한국의 첫 선교사로 떠나는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박사에게 목사 안수를 주어 한국으로 출발시켰고, 아펜제러 일행이 도쿄에 도착하자 파울러 감독은 그 해 5월 31일자로 한국선교 관리자 매클레이 박사, 부관리자 아펜젤러 목사, 회계 스크랜턴 박사를 임명하여 한국선교회를 조직해 주었다. 그 후 파울러 감독은 1888년 9월 20일 직접 한국을 방문하여 자신이 시작하게 한 한국의 선교상황을 시찰하고 돌아갔다. 감리교뿐만 아니라 한국 기독교 선교의 문을 여는데 주역으로 활동한 파울러 감독의 공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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