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박마리아(朴瑪利亞, 1906. 3. 26~1960. 4.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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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2006-07-0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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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
여성운동가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가난한 농부의 외딸로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하였으며 정춘수의 주선으로 전도사가 된 어머니 고의대(高義大)를 따라 개성에 이주해 살았다. 13세에 보통학교를 졸업한 박마리아는, 1919년 남감리회의 대표적 여학교인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에 진학해 1923년에 졸업하였다. 1924년 이화여자전문학교 영문과에 입학, 1928년 영문과를 수석으로 졸업하였다. 졸업 후 호수돈여자고등보통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나 이화여자전문학교 교장이었던 아펜젤러(A.R. Appenzeller)의 추천으로 미국 유학 길에 올랐다. 1929년 마운티홀리대학, 1932년 테네시 주 스카릿대학을 졸업하였고, 같은 해 피바디(Peabody)사범대학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32년 귀국하여 같은 해 9월부터 1935년 11월까지 이화여자전문학교에서 수신(修身)과 영어를 가르쳤다. 1935년 정치가 이기붕(李起鵬)과 결혼한 후 학교를 사임했고, YWCA 총무로 활동하였다. 박마리아의 활동은 YWCA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일제 시기인 1934년부터 1940년 8월까지 YWCA 서기, 1940년 8월부터 1941년까지 연합위원을 지냈고, 해방 후 1947년부터 1952년까지 서기, 1952년부터 1960년까지 회장으로 활동하였다.

박마리아는 해방 이후 1945년 10월, YWCA 문화부장을 맡는 한편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로 취임하였다. 1952년 4월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학장에 취임하였고, 같은 해 식민지 시절부터 몸담아온 YWCA의 회장이 되었다. 1954년 당대 최고의 조직력을 갖는 대한부인회 전국대회에서 최고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1956년 이화여대 부총장이 되었고, 같은 해 모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기도 했다.

해방 후부터 남편 이기붕의 정계 진출에 조력해 온 박마리아는 1959년 7월 대한부인회 전국대회에서 자유당의 정ㆍ부통령 후보인 이승만과 이기붕을 전면 지지한다는 결의를 채택하고, 1960년 3월 15일 선거에 여성단체를 이용하는 등 부정선거 압력을 강력히 행사하였다. 대대적인 부정선거 결과 이기붕이 제5대 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4.19학생의거로 박마리아는 이대 부총장 사임 및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였다. 장남 이강석이 두 자루의 권총으로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그리고 동생인 이강욱을 차례로 쏘고 자신 역시 자살함으로 가족 모두가 서대문 경무대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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