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사전]홀(Rosetta Sherwood Hall, 1865. 9. 19~1951. 4. 5)

인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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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7-05 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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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감리회 여선교사. 한국명 허을(許乙)

미국 뉴욕 주 설리반 카운티에 있는 리버티(Liberty)에서 아버지 셔우드(R. Sherwood)와 어머니(P.G. Sherwood)의 딸로 태어남. 그의 아버지는 농장을 경영하였다. 그곳에 있는 체이스넛리지학교와 뉴욕의 오스웨고 주립학교를 졸업하고 교사자격증을 얻어 1년간 체이스넛리지학교에서 교직생활을 하였다. 이런 평범한 교사생활에 만족할 수 없었는데, 이곳을 방문한 미감리회 토번(J.M. Thoburn) 감독과 그의 부인이자 의사인 챈들러(K. Chandler)의 인도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의료선교라는 강연에 감동을 받아 의료선교사가 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1886년 펜실베이니아 여자의과대학에 입학하여 1889년 졸업하였다. 졸업 후 감리교 여성 자선의 집(The Methodist Deaconess Home)에 지원하여 뉴욕 빈민가에서 의료선교사업을 하면서 그의 남편이 될 홀을 만나게 된다. 둘은 1889년 8월 약혼을 하였고 함께 의료선교사로 활동할 것을 약속하였다. 로제타는 처음에 중국 의료선교사로 가려 했으나 하워드의 후임으로 한국에 나오게 되었다. 그 무렵 하워드(M. Howard)에 의해 한국에서 시작된(1887) 여성전문병원 \"보구여관\"이 하워드의 건강 악화로 1889년 귀국한 이후 중단 상태에 있자 한국의 선교사들이 미국 선교부에 여의사 파송을 급히 요청하였기 때문이다.

1890년 8월 22일 고향 리버티를 떠나 한국으로 향했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배로 떠나 18일 만에 요코하마에 와서 고베, 나가사키를 거쳐 10월 10일 부산에 도착하였다. 당시의 광경을 고향의 가족에게 쓴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나는 한동안 제2의 고향이 될 이곳을 자세히 살펴보았습니다. 언덕과 산들은 구불구불하고 가파르며 바위가 많고 거의 불모지와 같았습니다. 부산은 일인거주지였습니다. ……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하얀 옷을 입고 있어서 마치 그림과도 같습니다.\" 다시 부산을 출발하여 10월 13일 제물포에 상륙하였고 이튿날 서울에 도착하였다. 정동에 있는 스크랜턴의 집에 짐을 풀고 얼마 후 이화학당 근처의 한옥으로 숙소를 옮겼다. 보구여관에서 진료활동을 시작하여 첫날 4명의 환자를 시작으로 열 달 동안 2천 명 이상을 치료하였다. 한말 셔우드가 보여준 의료기술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맹장수술을 할 때는 세인들이 깜짝 놀랐다. 환자들이 죽음 일보 직전에서 기적적으로 건강을 얻고 기쁨을 참지 못하는 모습이 많았다.

보구여관에서 일하면서 셔우드는 한국 의료계의 귀중하고도 획기적인 사업을 두 가지 시작하였다. 첫째는 간호원 양성이고, 둘째는 여자의학반의 창설이다. 이 두 가지는 한국 여성의료의 기초를 놓은 중요한 사업이었다. 보구여관 구석방에서 간호원 지망생들을 모아 교육을 시작하였는데 후에 한국인 최초의 의학박사가 된 박에스더가 첫 학생이었다.

약혼자 홀이 1891년 12월에 한국으로 오고 1892년 6월 결혼하였다. 홀이 평양지역 개척 선교사로 임명을 받아 신혼 초에 둘은 헤어져 살아야 했다. 1894년 남편이 평양에 병원을 설립하자 그녀도 평양으로 갔다. 그러나 같은 해 청일전쟁이 일어나 평양은 청일양국 군대의 혈전장이 되어 수많은 사상자들이 나왔다. 로제타는 남편과 함께 부상자를 치료하는 일에 헌신적으로 활약하였다. 남편은 평양으로 귀환하여 밀려드는 부상자와 환자를 돌보는 데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다가 그만 과로가 겹쳐 당시 유행하던 전염병 말라리아에 감염되어 쓰러져서, 서울로 이송되었다가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남편이 죽은 후 그 해 12월 두 살 난 아들을 데리고 본국에 돌아갔다가 남편의 유업을 잇기 위해 1897년 11월 다시 한국에 왔다. 귀국하기 전 로제타는 남편의 유산과 친지들의 부의금을 모아 한국에 보냈고, 결국 1897년 1월에는 홀의 유업을 기리는 홀기념병원(또는 紀忽病院)이 평양에 건립되었다. 폴웰(E. Follwell) 박사가 이를 인수 경영하였다. 이 병원은 개원한 지 일년도 안 되어 3천 명이 넘는 환자가 진료를 받았다. 다시 한국에 온 로제타는 서울의 보구여관을 맡아 보다가 1898년 5월 평양으로 파송받아 평양에서 여자병원인 광혜여원(廣惠女院)을 설립하였고 부녀자와 아동을 위한 의료사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병원사업을 위해 헌신하는 동안 또 한번의 비극을 맞이하는데 한국에서 낳아 기른 딸 마가렛이 감기에 걸려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녀는 딸의 시체를 김창식 목사의 등에 업혀서 평양서 양화진까지 걸어서 데려다 묻혔다고 한다.

처녀 때 본국에서 맹인용 점자사용법(New York Point)을 배운 적이 있는 그녀는 평양에서 의료사업을 할 때 오씨라는 보조원의 어린 딸인 봉래가 앞을 보지 못하므로 점자를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청일전쟁 후 본국에 가 있는 동안 뉴욕의 맹인연구소를 방문하여 점자법을 좀더 세밀히 연구하였다. 이때 연구한 점자법이란 뉴욕 포인트 시스템(New York Point System)에다 한글을 적용하여 한국인 맹인들이 쓸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국에 있는 동안 그것을 위해 몰두했었다. 1897년 광혜여원 방 하나를 내어 자신이 고안한 점자사용법을 이용하여 봉래에게 본격적으로 가르쳤다. 이것이 한국에서 최초로 실시한 맹인교육이었다. 봉래를 시작으로 지방에서 데려온 학생들을 모아 마가렛병동에서 본격적인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이것이 평양맹아학교가 되었다. 1908년까지 하다가 그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어 다음해부터 맹인 전문가인 록웰 씨에게 인계하였다.

한편 그녀는 병원에서만 환자를 돌보지 않고 기회만 있으면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산골민을 위해 지방순행을 하였다. 안주, 운산, 의주, 때로는 청천강을 건너 운산 저쪽의 깊은 산골짜기까지 안 다닌 곳이 없었다. 말에다 각종 의약품과 치료 후에 줄 복음서 및 실용품 등을 싣고 벨을 울리면서 여행하였다. 마을마다 대환영을 받았으며 오는 환자들을 친절히 치료해 주고 약을 주고 싸매 주었다. 밤에는 동리 사람들을 주막에 모아놓고 복음을 전하였으며 노블 선교사와 동행하였다. 1906년 광혜여원이 화재로 전소되었으나 2년 후 새 건물을 마련하였다. 1917년 서울로 자리를 옮겨 보구여관의 후신인 동대문부인병원(현 이대부속병원) 의사 겸 약제사로 활약하였고 1920년경부터 여자의학반을 조직하여 한국인 여자의사 양성을 시작하였다. 이 의학반은 1928년 경성여자의학교로 인가를 받아 정규 의학교육기관으로 발전하였고 이것이 후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의 모체가 되었다. 1922년 9월 환갑을 맞아 내외빈과 신자가 아닌 사람들까지 참석한 한국식 잔치가 한국인들의 극진한 배려로 베풀어졌다. 환갑을 맞이하여 많은 기념사가 있었는데 가장 아끼지 않은 찬사는 불행한 맹인을 위한 교육과 여성 의학교육이었다. 마지막에 장내를 눈물로 감격시킨 선물은 그녀의 은혜를 잊지 못한 맹인 여성이 그녀가 가르쳐준 뜨개질로 손수 한복을 짜서 드린 것이다. 이 여성은 그녀가 학교를 세울 때 거기서 배운 학생이었다.

그녀는 이후 경성의학전문학교를 관장하며 아들의 해주 구세병원 및 해주 구세요양원을 지원하는 데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1933년 구세요양원 내에 그녀의 이름을 딴 로제타기념예배당이 건립되었다. 1935년 건강이 쇠하여져서 선교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하였으며 귀국 후 1943년 은퇴하고 뉴저지에 있는 안식관에 들어가 말년을 조용히 보내다가 1951년 4월 5일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유해는 화장되어 남편이 묻혀 있는 양화진 외국인묘지에 묻혔다. 그녀가 쓴 남편의 전기 The Life of Rev. William James Hall(1897)은 초기 한국 교회의 선교 상황 및 구한말 국내정세를 알려주는 귀중한 사료로 평가되고 있다.

-논문:\"위생의복론\", 〈예수교신보〉, 1907. 11. 13~11. 27;\"기초적 위생\", 〈기독신보〉, 1916. 7. 26~8. 22.

-저서:The Life of Rev. William James Hall, 1897(노병선 역, 《賀樂醫員史蹟》, 1897;현종서 역, 《닥터 윌리암 제임스 홀》, 도서출판 에이멘,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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