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28강 D. 율법이 폐할 수 없는 약속[3:15-18]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3-03-21 11:34
조회
89

※ 연재되는 필자의 주석책 「갈라디아서․에베소서」


율법이 인간을 의롭게 하는 대신에 오히려 인간에게 저주가 된다고 한 바울은, 여기서는 율법이 약속을 폐할 수 없다는 것을 사람의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다. 【15】[형제들아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

[사람의 예대로](카타 안토로푸, κατὰ ἄνθρώπου)는 바울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으로(롬 3:5, 4:19, 고전 3:3, 9:8, 15:32, 갈 1:11, 벧전 4:6), “인간의 삶을 예를 들어”(W. Hendriksen), “인간의 실제적 사실에 관심을 돌이킴으로써”(R. C. H. Lenski), “일상생활의 습관에서 예를 들어”(C. R. Erdman), “시민들의 거래와 계약에 관해서”(F. J. Dake), “인간 사회의 풍속을 따라”(박윤선), “일반적인 상식에 따라”(이상근) 등의 뜻이다.

결국 바울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판단하거나 행하는 것과 같은 상식적인 인간의 표준에 따라 말하고 있는 것이다(E. H. Perowne).

그 내용에 대해 바울은, [사람의 언약이라도 정한 후에는 아무나 폐하거나 더하거나 하지 못하느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언약]은 디아테켄(διαθήκην)으로서 ‘증거’, ‘약속’, ‘유언’, ‘계약’, ‘언약’ 등의 뜻이며, 이 본문에서는 어느 뜻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나 ‘언약’으로 이해하는 것이 제일 적합하다.❶

인간들 사이에 일단 언약이 정해지면, 제삼자는 물론 “당사자들도 그 언약을 폐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J. A. Bengel, E. D. Burton). 따라서 바울의 취지는 사람들 사이에 정해진 언약이 그토록 확고해서 폐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고 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야 말할 것도 없이 확고부동한 것이 아니겠는가 함이다.

바울은 언급한 약속들에 대해, 【16】[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약속들]은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너의 의거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일경으로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7-8. 참조: 창 12:7, 13:15, 15:7, 18, 24:7)와,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라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라”(창 22:17-18. 참조: 창 17:2)는 말씀을 지시하는 것이다.

이 약속들의 내용은 본래 물질적인 의미로서의 땅과 유업이며(W. T. Dayton), 자손의 번성이었다. 그런데 바울은 약속의 문자적 의미로부터 보다 더 심오한 의미인 영적 의미를 이해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약속들의 문자적 의미대로 아브라함의 육적 자손은 번성했고,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받았다”(W. Hendriksen, J. Dow). 그러나 바울은 그 보다 더 귀한 복인 칭의와 천국의 유업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사실은 바울이 하나님의 약속의 대상에 대해,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라고 하는 표현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黑崎幸吉은 “자손(스페르마티, σπέρματι)은 구약 성경에서는 항상 단수로 쓰이면서 복수의 뜻도 나타내는 글자다(히브리어: zerah. 단 한번 복수형<삼상 8:15>이 사용됐지만 뜻이 다르다). 그 때문에, 바울은 문법의 오류에서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지만 그렇지는 않다.

바울은 성령께서 특히 이러한 단수 명사(집합 명사도 될 수 있다.)를 택하신 데 특별한 뜻이 있는 점을 발견한 것이다.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축복이 만민에게 미치고,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에 대한 언약이 그리스도 및 그의 몸인 기독자에게 주어진 것을 발견하고 나서 비로소 [자손]이라는 말을 쓰게 된 뜻을 발견한 것이다.”❷

윤성범 박사는 “하나님의 약속이 단순히 혈육의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에게도 적용될 것이면, 이 약속은 단순한 수적인 단수나 복수의 문제가 아니라 신령한 의미의 유일성과 일회성을 지향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역사 가운데 있으면서도 역사의 제약을 받지 않으며 모든 역사를 휘뚜루 규정할 수 있는 일회성은 그리스도의 사실 밖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17】[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 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고 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과 율법에 대한 유대인들의 주장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점에 대해 루터(M. Luther)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주신 것으로 만족하지 못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사백삼십 년 후에] 율법을 공포하셨다. 그분의 약속이 의롭게 할 수 없는 것으로서 널리 퍼졌기 때문에, 그분은 보다 더 좋은 것인 율법을 추가하셨다. 따라서 더욱 가치 있는 계승자인 율법을 소홀히 하는 자들이 아니라, 행하는 자들이 약속을 통해 의롭게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약속에 이어 주어진 율법이 약속을 폐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율법이 유대인에게는 중대한 의의를 갖고 있지만, 그러나 바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언약(16절)은 이미 정해졌고, 그 약속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기 때문에, 430년 후에 선포된 율법이 이 약속을 폐기하거나 헛되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율법이 약속을 폐기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처럼 후회하실 일을 행하시지 않는다는 점(M. Henry)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은혜로운 언약이 형편이나 거기 따르는 어떤 요구 조건 때문에 변할 이치가 없다는 점(C. R. Erdman)과 만일 아브라함에게 하신 하나님의 약속이 헛된 것이 된다면 하나님은 거짓말쟁이요 수다쟁이가 되고 만다는 점(M. Luther)을 들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해, 믿음에 근거한 축복과 의를 그 내용으로 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불변하신 그분의 속성 때문에 영원한 효력을 갖는 것이다. 물론, “이 언약의 구체적인 실현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성취된 것이다”(윤성범).

[사백삼십 년]이라는 연대는 출애굽기 12:40의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 삼십 년이라”(70인역)라고 한 말씀에 의한 것이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는 이 연대를 아브라함이 언약을 받은 때부터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때까지의 기간으로 간주하고 있다. 창세기 15:13과 사도행전 7:6, 그리고 히브리어 성경의 출애굽기 12:40에서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후, 야곱이 애굽에 이주하기까지 연대를 계산에 넣지 않고 애굽에 거주한 햇수만을 400년이라고 하고 있다.

요세푸스가 400년과 430년이란 두 가지 기록을 하여 자가 당착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 이 두 전설이 있었던 것 같다.❸

“사실상 유대인들은 연대의 정확성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다”(J. B. Lightfoot). 바울의 의도 역시 연대의 정확성을 말하기보다는 “율법이 언약이 있기 전에 있던 것이 아님을 강조하는 것이다”(C. R. Erdman).

끝으로, 바울은 율법과 약속을 대조하여, 【18】[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유업]은 클레로노미아(κληρονομία)이며, ‘영적 소유’(H. Huxtable), ‘천국 기업’(박윤선), ‘칭의, 구원’(W. Hendriksen), '축복과 유업 곧 사죄, 의, 구원, 영원한 생명’(M. Luther)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스탐(R. T. Stamm)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유업은 물질적인 것과 영적인 것이며, 현세와 내세에 대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관련해서, 율법과 약속의 상반된 원리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약속 또는 언약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은혜에 의한 것이고, 율법은 이를 행하는 공적에 의한 것이다(이상근). 따라서 “‘율법은 이것을 행하라’라고 하며, ‘약속은 이것을 받아들여라’라고 하는 것이다”(M. Luther). 만일 율법을 행함으로써 유업을 얻는다면, 이미 그 유업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은혜로운 약속과는 관계없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바울은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롬 4:14)라고 하였다.

결국 바울은 유업이 율법에 근거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약속이 아니라 율법을 행한 대가로서 유업이 주어진다면, 이미 그 유업은 은혜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은혜란, 한 마디로 말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혹은 그분을 통해서 인간에게 주시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바울은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3:15-18의 고찰 결과에 의하면, 바울은 사람들 사이에 일단 언약이 확정되면, 제삼자는 물론 당사자들도 그 언약을 폐기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인간의 표준에 비추어서 하나님의 약속의 절대적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언약은 아브라함과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을 믿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므로, 430년 후에 선포된 율법이 그 약속을 폐기하거나 변경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없는 또 다른 이유는, 하나님께서 영원불변하신 사랑의 속성을 지니셨기 때문이다.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주신 유업을 받아들이는 방법과 관련하여, 율법과 약속의 상반된 원리를 드러내 주고 있다. 즉, 율법을 행함으로 유업을 얻는다면, 그 유업은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은혜로운 약속과는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바울에 의하면 유업은 하나님께서 약속에 의해 주신 은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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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해당 성구가 있으므로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J. Calvin, O. F. Blackwelder, J. B. Lightfoot, E. D. Burton, W. Sanday, 黑崎幸吉,
2) 참조: J. Calvin, M. Henry, J. Wesley, W. Barclay, E. Huxtable, R. T. Stamm, E. F. Harrison, W. Hendriksen, E. H. Perowne, J. Dow.
3) 참조: 黑崎幸吉,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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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갈라디아서, 에베소서(서울: 글벗사, 2002, 2판 2쇄), pp. 145-150.

필자의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및 역서 :
# 신약 주석(마~계, 1-15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우린 신유의 도구/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설교집 36권/ 기타 다수
# 번역서 : 예수의 비유(W. Barclay 著)/ 야고보서(A. Barnes 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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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03-21 11:36

    필자의 주석책에는 각주로 되었고, 주석되는 성경의 구절과 용어는 고딕으로 구분했는데, 이 인텨넷 화면에는
    그대로 표시되지 않으므로 각주를 미주로 바꿨고, 고딕을 부호 [ ]로 바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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