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여는 위대한 감리교회 선언문
한반도에 복음의 씨앗이 뿌려진 이래 116년의 역사를 이어오는 동안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여러 다른 믿음의 형제 교회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하여 사명을 다해오고 있다. 구원의 복음 선포와 더불어 교육사업, 사회사업, 의료선교등을 주도한 초기 선교사들의 공헌과 함께 자신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민족신학을 주장한 전덕기 목사, 우리의 문화를 틀로 삼아 토착화 신학의 토대를 마련한 최병헌 목사, 영성의 의미를 새롭게 되살리면서 성령운동에 앞장 선 이용도 목사, 그리고 현대신학을 소개한 정경옥 목사등의 노고와 활약은 한국감리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 이어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3.1 독립운동의 33인 대표중 감리교회 대표가 7명이었다는 사실이나 1930년 자치교회가 된 이래 세계 최초로 여자목사안수제도를 도입한 것이나 1970년대 들어 사회 민주화운동에 앞장서고 1980년대부터는 민족의 평화통일운동의 한 축을 담당한 것등도 한국 감리교회의 자랑스러운 전통이 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러한 전통을 토대로 새 세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시대로 구현하기 위한 비젼을 제시해야하는 사명감을 인식한다. 그런데 새로운 세기는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이념아래 장미빛 미래의 희망을 가능하게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 경쟁, 개인주의의 심화가 도래할 것이며 설상가상으로 환경위기, 식량위기는 회피할 수 없는 현실로 직면할 것이다. 이러한 시대인식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뜻이 실현된 인류사회가 천국임을 믿으면서” 우리는 과거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여 새 세기를 하나님의 나라가 충만하게 확장되는 카이로스의 시대로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바이다.
하나. 신앙 전통에 대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 1: 17)”라는 바울의 ‘이신칭의’ 사상이 루터의 가슴에 불붙어 기독교와 세계의 역사를 바꾸어 놓았다면 존 웨슬리를 감동시켜 영국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교회를 창조하였다. 우리는 ‘이신칭의’ 사상이 시대는 변할지라도 결코 변할 수 없는 영원불변한 기독교 신앙의 본질임을 믿는다. 이에 우리는 존 웨슬리를 변화시켜 오늘의 감리교회를 태동시킨 신앙전통위에 굳게 서서 변하지 않는 복음의 진리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선교적 사명을 다할 것이다.
둘. 시국 상황에 대하여
오늘의 우리 사회의 현실은 총체적 위기라 할 수 있다. 가까스로 위기를 벗어난 경제는 또 다시 붕괴위기에 직면하였으며 각종 집단들의 투쟁과 요구는 이미 일상사가 되어 버릴만큼 사회 전반이 절망의 나락속에서 헤메이고 있다. 수 많은 실업자가 양산되고 부익부빈익빈 현상은 심화되며 그로 말미암아 사회안정과 평화를 파괴하는 각종 범죄는 날이 갈수록 급증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사회전반에 걸친 도덕적 해이는 가정, 사회 가릴 것 없이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차적 책임을 져야할 정치인들은 여전히 정쟁만 일삼아 국민적 실망과 좌절감을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이에 우리는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평등 구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민족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비젼을 제시하지 못한 데 대하여 정치지도자들, 각 분야의 지도자들에게 그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더 나아가 사회적 안정과 국민적 통합의 구현을 위하여 솔선수범하며 국민적 신뢰와 명예와 충성심을 보여주는 지도자들이 될 것을 촉구하는 바이다. 아울러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우리의 조국이 국민 통합의 지혜를 바탕으로 하나되어 이 위기를 극복해나가며 미래시대, 세계화시대에 선진국가로 일어설 수 있도록 교회적 사명과 충성을 다할 것이다.
셋. 민족의 평화와 통일에 대하여
한민족의 평화와 통일은 세 세기에는 반드시 성취되어야할 우리 민족의 최대 과제이다. 분단 50여년이 가져온 폐해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서 사탄적 활동으로 7천만 민족을 괴롭혀왔다. 그러나 지난 해 남북 정상의 만남과 공동 선언을 계기로 평화와 통일운동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이러한 때 그 동안 통일운동의 한 축을 담당해 온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새로운 민족적 도전을 인식하고 남북화해의 물결을 가로막는 것이라면 무엇이거나 과감히 제거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특히 한반도의 평화는 동북아 평화 더나아가 세계평화의 초석이 된다는 막중한 사명감을 인식하면서 국내적, 국제적 에큐메니컬 연대에도 게을리하지 말아야한다.
이에 우리는 남과 북의 7천만 국민은 ‘한 민족 한 동포’임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되며 서로의 화해와 신뢰를 구축하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방법을 다 할 것이다. 특히 남과 북의 신뢰구축에 걸림돌이 될 뿐만 아니라 경제 발전에도 장애가 되는 군비경쟁을 단호히 반대하며 이산가족교류의 활성화, 경제적 교류협력을 통하여 서로의 마음을 열고 상호간에 삶의 질을 향상시키며 궁극적으로 한민족 한국가를 구현하는 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
넷. 교회 과제에 대하여
교회는 복음선포라는 고유의 사명이외에도 사회를 선도하고 민족의 미래를 예언하는 사명을 수행해야한다는 것을 한시도 잊어서는 안된다. 더욱이 불확실성을 특징으로하는 새 세기를 이끌 수 있는 통전적 선교정책을 펴나가야한다. 지난 역사동안 기독교대한감리회가 5천교회, 7천교역자, 150만 신도로 성장하기까지 베푸신 하나님의 은총은 미래에도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이 단순히 양적 성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질적 성숙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가 내재해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에 우리는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의 일치성, 교회와 사회의 불가분리성, 개체국가와 세계공동체의 유대성등을 기초로하여 참된 인간성의 회복, 과학기술의 인간화, 생태학적 위기의 극복, 통일국가 완성, 그리고 평화의 세계공동체 확립을 위한 정책을 수립하여 선교적 총력을 기울일 것이다.
다섯. 교인의 사명에 대하여
오늘 우리 사회의 각종 병폐는 치유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하다. 집단 이기주의, 지역갈등, 정파간 정쟁, 세대간 갈등, 도덕적, 윤리적 해이에 더하여 종교간의 갈등도 국민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부정과 부패로 인한 국민적 박탈감과 좌절감은 이미 그 도를 넘어버렸으며 지도자들의 권위는 내팽개쳐진지 오래다. 사회적 정직성의 결여는 상호간의 신뢰를 거두어가버렸으며 국가적 존폐위기로 이어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해있는 지경이다.
이러한 때 세상의 소금과 빛의 사명을 다해야하는 우리는 국민 개인의 의식과 생활을 바르게 인도해야할 사명과 행동의 모범이 되었는지 자성한다.
이에 우리는 국가 지도자들이 정직성과 충성심을 회복하고 국민 개개인이 상호간의 신뢰를 회복하며 도덕과 윤리의식을 계발하고 정치적 자유, 경제적 평등, 사회적 복지를 누림으로써 모두가 함께 사는 상생공동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성결한 생활과 절제된 삶, 지혜와 용기의 삶을 실천함으로써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할 것이다.
이상과 같은 다짐과 결의가 새로운 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실천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는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다지며 새 세기의 빛을 비추신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신앙적 열정에 크신 은총과 인도하심을 아끼지 않으시리라 확신하는 바이다.
2001년 1월 4일
21세기를 여는 위대한 감리교회 선언대회 참가자 일동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과 한국 감리교회의 과거·현재·미래
박종천 교수(감신대)
1. 들어가는 말
‘주의 크신 구원’의 사역에 동참해 온 한국 감리교회는 새 천년대와 선교 2세기를 감격 속에서 맞이하고 있다. 주후 1천년대 기독교의 지중해 시대와 주후 2천년대 기독교의 대서양 시대를 넘어 주후 3천년대 기독교의 태평양 시대가 열리고 있다. 18세기에 싹이 터서 19세기에 꽃을 피웠던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영국 감리교회, 19세기에 초석을 놓고 20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미국 감리교회를 뒤이어, 20세기에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한 한국 감리교회는 21세기 세계 선교의 선두에 설 차례가 된 것이다.
이 때는 실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이 인간의 시간과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카이로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신 것이다.”(롬 8:29) 하나님은 전혀 우리의 공로 없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역사를 변혁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신다. 웨슬리의 회심과 소명으로 ‘웨슬리 이전과 이후의 영국’의 역사가 구분되었다고 어느 영국의 역사가가 평했듯이, 오늘 한국 감리교회의 임원들로 부르심받은 여러분들로 인하여 한국과 세계의 역사가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후일의 사가들이 평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빛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평가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 요지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째, 존 웨슬리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과 전통의 요체를 설명하고,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적 유산과 전통을 평가한다.
둘째, 한국 감리교회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신학적, 선교적 위기를 진단하고 이 시대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소명을 밝힌다.
셋째, ‘위대한 감리교회’를 위한 감리교회 임원들의 비전과 전략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Ⅰ. 존 웨슬리와 한국 감리교회의 전통
1. “해 아래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기독교의 시작부터 해오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을 지키시리라는 것을 마땅히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희가 가장 큰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까지 나를 알라 하지 아니하시고(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는 어리석음에 해당되는 세상의 지혜이기에) 도리어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from the least to the greatest) 나를 알라'(히 8:11) 할 것이니 그것은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 2:29)”
이 말씀은 1783년 웨슬리가 80세가 되던 해에 출간한 설교 “복음의 전면적 확산”(The General Spread of the Gospel)에서 한 것이다. 이 설교는 삼십 대 중반의 젊은 시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심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에 부르심을 받아 50여 성상을 죽도록 충성했던 전도자가 지난 세월을 회고하면서 시작한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성 클럽을 통해 작은 누룩과 같이 구원의 진리가 퍼져나가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뉴욕과 미국의 여러 지역에까지 이르게 된 것을 모든 씨보다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란 후에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된 것에 비유한다.(마 13:31∼32) 일찍이 종교개혁자 루터는 종교의 부흥이 한 세대 이상을 지속하지 못한다고 했으나,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감리교 운동을 50여 년 간 지속해 오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광스러운 사역을 그치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자신의 부흥 운동은 단지 ‘훨씬 더 위대한 사역의 시작 – 말일의 영광의 새벽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이 유럽 전역과 더 나아가서 소아시아, 그리고 끝내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외진 곳까지 도달하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 말세지말에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대한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빌어 말한다:”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from the least to the greatest) 다 나를 앎이니라.”(렘 31:34)
2.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는 가장 위대한 자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비천한 자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은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도 잘 입증된다. 초기 미감리교 선교사들인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모자(母子)가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았던 민중 계층을 위해 교육, 의료, 전도라는 하나님의 선교 사업을 벌여나간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886년에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 학당과 스크랜턴 부인이 세운 이화 학당은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철폐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만인의 평등함을 실천하는 신교육의 모태가 되었으며, 스크랜턴이 1886년에 설립한 정동병원(시병원)과 애오개(아현)의 시약소를 위시하여 상동 약국과 남대문 병원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 봉사와 전도 사업의 중심지였으며, 1887년 정동에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인 벧엘 예배당을 위시하여 상동 교회, 제물포 교회 등은 복음 전파와 함께 강력한 조직 교회를 키워 나가는 발단이 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올해로 꼭 백년 전이 되는 1901년에 한국교회 최초의 한국인 목사 둘(김창식, 김기범)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 중에 김창식 목사는 선교사의 고용원으로 들어갔던 민중 계층 출신으로 전도사 시절 평양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에 평안도 관찰사에 의해 투옥당하고 모진 구타와 핍박을 순교자의 믿음으로 이겨냄으로써 ‘한국의 바울’이라고 불렸다. 선교사의 요리사, 사환, 유모, 수위 등 막일꾼들 외에도 어학교사, 번역인 등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 지도자로 부름받은 이들도 있었다. 최병헌 목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초기 한국 감리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선교사들과 한국인 목회자들을 도와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평신도 사역자들이다. 특히 성경 보따리를 지고 삼천리를 누비며 전도한 권서들과 지역의 바닥에서 불철주야 전도에 몰입했던 전도부인들이야말로 가장 작은 자들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산 증인들이었다.
이렇게 하여 성장한 한국 감리교회는 일제하에서 이 민족이 국권을 잃고 신음할 때 겨레의 십자가를 지고 신앙부흥운동과 민족독립 및 사회계몽운동에 전력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존 웨슬리가 역설하고 실천했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한국 감리교회적 실현이라 하겠다.
3. 웨슬리의 위대한 구원 신학의 요체
“물음 3. 감리교도라 불리는 설교자들을 일으켜 세우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합당한 경륜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어떤 새로운 종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특히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함입니다.”(1744년 연회록)
웨슬리는 1738년 6월 11일 옥스퍼드 대학교의 성 마리아 교회에서 “믿음에 의한 구원”(본문 엡 2:8)이라는 설교를 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위대한 구원'(great salv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때 위대한 구원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주지하는 대로 웨슬리는 이 설교를 하기 약 보름 전쯤인 1738년 5월 24일 저녁에 저 유명한 올더스게이트의 회심 체험을 했던 것이다. 그 때 웨슬리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면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죄인을 용납하심에 대한 확증을 얻고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위대한 구원을 가져오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었다. 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인간의 성실성을 통해 윤리적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업적주의나 율법주의와 달리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는 데 특징이 있다. 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성경과 교리에 대한 지적인 이해나 승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께 대한 순전하고 과감한 신뢰이다. 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나 예언자로 존경하고 따르는 수준을 뛰어 넘어 십자가의 대속의 필연성과 부활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리킨다.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한 구원'(salvation by grace through faith)이라는 종교개혁의 신앙의 기치를 들고 감리교 부흥운동이 출범하자 마자 부딪힌 문제가 루터교 모라비안 계열의 율법무용론자들의 정적주의(quietism)였다. 웨슬리는 칭의, 곧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납하시는 것은 위대한 구원의 기초(foundation)라고 보았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은 회개라는 대문을 통과하여 칭의라는 현관을 거쳐 성화라는 방 안으로 들어가는 데서 완성된다. 위대한 구원을 가져오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faith working by love)(갈 5:6)이다.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확증은 온 세상과 인류를 갱신하시려는 하나님 자신의 위대한 구원의 경륜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칭의를 이룬 다음부터 시작하는 성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위대한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웨슬리가 말하는 새로운 창조로서의 위대한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회복으로서의 칭의만이 아니라, 그 회복된 관계를 세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으로서의 성화에 대한 해석에서 나타나는 비전이다. 칭의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용납하심은 성화, 곧 만물을 완전하게 하는 것으로서의 소명과 부르심을 포함할 만큼 흘러 넘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수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 안에 그것을 반사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반사하고 나누는 것은 그것에 참여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왜 웨슬리가 “당신의 믿음은 사랑의 에너지에 의해 가득 차 있는가?”라고 묻는 이유이다. 전적인 성화 곧 완전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롬 5:5) 됨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우리들이 거듭나서 흠이 없게 하시고/주의 크신 구원받아 온전하게 하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크신 사랑 감격하여 경배하게 하소서”(찰스 웨슬리)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위한 웨슬리의 영적 투쟁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 감리교 운동의 안팎에서 ‘제한적 구속'(particular redemption)을 주장하는 칼빈주의자들 및 예정론자들과의 대결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의 법령에 의해 제한된 구속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반대하여, 웨슬리는 ‘보편적 구속’ (universal redemption)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헀다:”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웨슬리는 보편적 구속의 은총을 ‘만인을 위한, 만인 안에 값없이 주시는 은혜'(free grace for and in all)라고 불렀다. 웨슬리의 보편적 구속론은 혹자들이 곡해하는 의미의 ‘만인구원론’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없이 누구나 세상의 종말에 이르러 구원을 얻게 된다는 고대 교부 오리겐이나 현대 신학자 바르트의 주장은 웨슬리나 감리교회의 신학적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웨슬리의 보편적 구속론은 강한 선교적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으로서 새로운 창조를 소망하는 믿음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회심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사회적 성화와 온 우주를 갱신하는 새로운 창조를 포괄한다. 영혼의 구원에 있어서 선행적 은혜, 칭의, 그리고 성화가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구원의 질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갱신함으로 전 창조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안에 포함된다.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 성화를, 또는 하나님의 형상의 갱신과 우주의 새로운 창조를 양자택일적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구원의 비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웨슬리 이해에 있어서 흔히 주장되어지듯이, 웨슬리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에 실패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어 회심한 것이라는 것 때문에 웨슬리의 조지아 선교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단견이다. 말년의 웨슬리는 감리교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또다시 세계선교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비전을 품게 되었다. 웨슬리가 본 서구교회의 선교의 실패 원인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열매가 없다는 데 있었다. 토착민들에 대한 온갖 횡포와 살상을 자행하는 ‘마귀 기독교인'(DevilChristian)들 때문에 선교의 문이 막힌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의 성공은 오직 성서적 성결을 회복한 ‘천사-기독교인'(Angel-Christian)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웨슬리는 주장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웨슬리가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평생을 두고 일관성있게 펼쳐온 것이었다. 그것은 감리교운동이 또 하나의 종파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과 특히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위대한’ 감리교회의 이념이었다. 노구를 이끌고 여전히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비전과 열정에 사로잡힌 채 웨슬리가 새로운 창조와 보편적 구속에 대한 소망을 설파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모든 편견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지면을 새롭게 하시고 있습니다.(시 104:30) 그리고 우리는 소망의 확고부동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사역을 주 예수의 날까지 지속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때까지, 그리고 죄와 불행, 연약함과 죽음을 종식시키고 ‘보편적인 성결과 행복'(universal holiness and happiness)을 다시 이룰 때까지, 그리하여 지상의 모든 거민들이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도록 할 때까지 하나님의 영의 복된 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복과 영광과 지혜와 영화와 권능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영영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1783년 4월 22일 더블린)
Ⅱ. 한국 감리교회의 위기와 소명
1. 신학적 위기
오늘 한국 감리교회가 당면한 위기는 단순히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의 위기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모든 것과 교회적 존재와 삶의 바탕이 되는 신학의 위기에서 초래된 것이다.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빛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성찰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다. 물론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적 위기는 한국교회와 더 나아가 세계교회의 신학적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주지하는 대로 현대 기독교의 신학은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보수 신학과 에큐메니즘을 추구하는 진보 신학간의 상극적 대결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 한국 감리교회의 훌륭한 신학적 전통 중의 하나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근본주의에 떨어지지 않고 진보 신학과 에큐메니컬 연대를 추구해 왔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것을 ‘복음적 자유주의’라고 명명하나, 그것은 가당치 않은 것이며 도리어 존 웨슬리 신학의 유산에 근거한 통전적 신학에 기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91년과 1992년 사이에 벌어졌던 일로, 일부 진보 신학자들(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주장한 변선환 학장과 포스트모던 신학을 주장한 홍정수 교수)의 출교까지 초래한 감리교단의 신학 논쟁과 교회 재판의 과정은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 문제를 더 첨예화했으나 아직 까지도 이렇다 할 신학적 정립과 방향 제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도리어 감리교 신학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과 대화마저도 기피의 대상이 되어 신학의 공백 상태와 신학 부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다시 교단의 신학 교육의 위기로 이어지면서 차세대 교단의 지도자 양성과 지도력 형성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 감리교 신학은 존 웨슬리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에 입각하여 한 편으로 복음주의 신학을 배타적 근본주의로 전락시키거나 다른 편으로는 진보적 에큐메니컬 신학을 과도한 자유주의 신학으로 오도하는 양극단을 넘어 복음주의적이고 에큐메니컬한 신학의 방향으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이미 1930년에 교리적 선언 제정시에 근본주의 5원칙(성신 잉태, 십자가 속죄와 부활, 승천과 최후의 심판)을 삽입하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동식 교수는 이것을 “곧 자유주의 신학노선을 천명한 결의였다”라고 평하고 있다. 믈론 유교수가 이해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란 “복음의 진리를 시대와 문화의 변천에 따라 항상 새롭게 재조명하여 새롭게 파악함으로써 복음선교에 봉사하는 신학”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1990년대에 등장한 과도한 자유주의 노선과는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문제는 과연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을 자유주의적이라 하겠는가라는 것이다. 근본주의와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말보다는 진보 신학 또는 에큐메니컬 신학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감리교 신학은 교단 내의 일부 근본주의 세력의 도전으로 복음주의 개신교 신학이 빠지기 쉬운 신학적 오류인 구원론의 협소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구원을 영혼의 구원으로 축소시키는 개신교 복음주의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에큐메니컬 신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구원을 칭의와 회심에 국한시키지 않고 성화와 완전의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 그리고 우주의 새로운 창조로 보게 한다. 또한 감리교회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진보적 에큐메니컬 신학 노선에서 출현한 종교다원주의 신학과 포스트모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의 능력을 믿는 복음적 신앙의 초점을 잃고 과도한 자유주의에 빠져 구원론의 기초를 유실하게 하지 않았는가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국감리교회가 지향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복음주의와 진보주의,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의 엉거주춤한 신학적 중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한국 감리교회 신학으로 하여금 진정한 기독교 신학, 진정한 감리교 신학, 그리고 진정한 한국적 신학이 되게 하는 신학을 말하는 것이다.
2. 목회의 위기
현재 한국 감리교회는 4천 7백 교회, 150만 성도, 7천 교역자를 자랑하는 대 교단으로 성장해 있다. 이러한 교회의 급성장은 하나님의 은총과 교역자들과 성도들의 복음에 대한 뜨거운 헌신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러 교회 성장이 둔화되고 교회의 공신력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감리교회의 목회적 위기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를 들 수 있다. 부흥회를 위시하여 교회의 각종 집회를 통하거나, 대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기타 다양한 선교 단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복음적 회심과 구원의 신앙의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성장이 둔화되고 사회적 공신력이 추락하는 것은 현대의 세속화하고 다원화된 세계 속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 기성의 목회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성도의 신앙생활이 단순히 교회 생활로 오인되어 실제로 시민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금과 빛의 역할과는 동떨어져 있다. 세속 사회에서 생활 신앙인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상실한 결과 교회생활에만 충실하면 기복 신앙과 현실도피도 눈감아주는 목회의 관행이 ‘마귀적 기독교인’을 양산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데는 근본적으로 교역자의 교회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는 점에서 목회적 위기는 교역자들의 ‘교직주의'(clericalism)에도 원인이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외형적 교회 성장 위주에 치중한 목회를 한 결과 교역자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과 정직성이 무너지고 거짓과 위선이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역자를 제사장으로, 교회를 성전으로, 새벽기도회를 새벽 제단으로, 헌금을 제물로 신성화하고, 목사의 축복권과 저주권의 강화, 강단의 성역화, 직분의 계층화를 통해 비성서적이고 반개신교적인 교권주의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세기 천년을 통해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황 중심의 계층 체제로 경직되어 교회의 본질을 상실했을 때,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거행되는 성도들의 교제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만인사제직을 통한 바른 목회를 정립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와 한국 감리교회는 또다시 교직주의와 교권주의에 빠지어 교회 안팎에서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지탄받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교역자들은 섬김과 헌신을 위한 성직과 감독직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파벌과 지역, 그리고 학연과 금권을 동원한 교단 정치를 통해 도덕적 부패와 영적 혼미를 초래하는 죄악을 저질러 왔다. 나아가 민족을 갱신하고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을 전파해야 할 교회가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자체 유지에 투입하는 데 급급할 뿐 아니라, 일부 교회가 교역자 개인의 ‘기독교 왕국화’를 추진하듯이 시행하는 교회의 후임자 결정 과정이 시민 사회의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오늘 한국 감리교회의 목회적 위기 상황은 18세기 영국 성공회의 위기를 방불하게 한다. 웨슬리의 감리교운동이 이루었던 교회 갱신의 모습을 깊이 연구하여, 한국 감리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천사적 기독교인’을 양육하는 근본적인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다.
3. 선교의 위기
선교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으로서 인간, 사회, 우주의 새로운 창조에 교회가 부르심받고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생명의 총체적 위협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된 오늘의 생명파괴의 현실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선교는 맘몬과 죽음의 세력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데 선명하지 못해 왔다. 도리어 한국 감리교회는 한국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 민족, 민중의 고난과 함께 한 소중한 선교 유산을 지녔으면서도, 오늘에 와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탐욕에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적 부름에 바르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고, 교회의 확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 외양적 영광을 추구하며 동시에 영적, 도덕적 교만마저 보이고 있다. 특별히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살상 무기로 가장 중무장했을 뿐 아니라 동서문명과 다종교 전통이 충돌하고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위치하면서도 폭력 극복과 평화(shalom)의 실현을 위해 한국 감리교회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을 바르게 선포하고 겸허하게 이웃과 나누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감리교회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생명을 하나님의 한 집안으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을 파괴하는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날로 성숙해져 가는 한국의 시민사회의 삶의 세계 속으로 자신을 낮추어 진입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교회와 지역사회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감리교단과 한국 사회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조직과 제도상의 문제와 직결된다.
1974년 제 12회 감리교 총회에서 총리원측과 갱신측의 분열 이후 1978년에 이르러 양측이 다시 합동하는 과정에서 다원화 감독제와 더불어 개체교회 중심화가 도입되었다. 그것은 다원화 감독제 이전의 중앙집권적 단일 감독제 하의 총리원과 교단이 파벌과 이권관계에 따라 심하게 남용되고 부패하였기에 취해진 고육지책일 뿐이었다. 다원화 감독제로 인해 1978년 이후 한국 감리교회는 감리교회의 본래적 고유성인 ‘연관적 체계'(connectionalism)를 완전히 상실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 한국 감리교회가 개체교회화함으로써 개체교회의 성장에는 크게 기여했을 지는 모르나, 연회나 교단 본부와 개체교회와의 긴밀한 연관성을 통해 교단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선교의 활성화는 그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도리어 학연으로 인한 교단내의 정치 갈등, 신학생과 교회의 수급 문제, 목회자 최저 생계비와 지도력 개발 문제, 개교회의 부정직한 부담금 납부 문제, 여성 목회자 차별 및 여성과 청년의 교단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배제 문제, 대형 교회가 야기한 사회적 물의 등과 같은 고질적 문제로 인하여 한국 감리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공신력을 상실하고 손가락질을 받기에 이르렀다. 116년의 영광스러운 역사적 유산을 이어받고 있으면서도 한국 감리교회는 아직도 ‘신앙’과 ‘제도’ 사이를 구체적으로 이어주는 연관적 체계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연관적 체계성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교단 본부의 기구의 불필요한 비대화는 목회와 선교의 현장에 투입된 이들을 섬기기보다는 그들로부터 관료적으로 분리된 채로 인적, 물적, 정보적, 지식적 자원을 전 교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본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Ⅲ. 위대한 감리교회를 위한 비전과 전략
1. 신학교육의 혁신
감리교회의 백년지대계를 좌우하는 것은 신학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교육은 존 웨슬리의 유산을 이어받아 신학도의 영성과 품격의 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건훈련, 성서와 기독교 및 동서고금의 고전을 위시하여 최근의 학문에 대한 비판적 연구, 그리고 목회와 선교에 필요한 교회와 실천 분야의 이해와 실습을 골고루 갖추어야 한다. 오늘날 신학대학교의 교육은 전문 교역자 양성을 위한 지도력 개발과 비판적 학문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이에 맞서서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과 거룩한 신앙인격의 형성을 위주로 하는 방향이 긴장하고 갈등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과 갈등은 교회와 신학교육기관 사이의 불편하고 비생산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신학대학교에서 학문연마만이 아니라 신학도의 신앙적 품격형성을 신학교육의 중심과제로 삼고 이를 전 교육과정에 반영할 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신학도들의 신앙적 품격형성은 대학에 종사하는 모든 교수들과 실습 교육에 참여하는 목회자 및 현장 지도자들의 몫이다. 특별히 영성 형성의 과정에서 신학대학교의 교수들은 ‘무엇을'(what) 가르치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how) 가르치는가도 중요하다. 신학대학교의 교수는 자신을 학자만이 아니라 신학도들의 신앙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기독교 목회자로도 보아야 한다. 이것은 교수가 교회의 전통, 회중의 삶, 목회의 사역을 가르칠 때 취해야 할 기본 자세가 되어야 한다.
현재 감리교단 산하의 신학교육기관들은 거의 대부분 학생의 등록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해마다 등록금 인상문제로 학내 분규가 일어나고 있다. 감리교단이 재단임에도 불구하고 감신대를 위시하여 협성대, 목원대는 모두 일반 사립대학교가 안고 있는 교직원 노조와 학교당국과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 모든 것은 1968년 2이후 한국 감리교회가 미국 감리교회로부터 행정적, 재정적 자립을 위해 독립하여 신학교 원조가 중단되면서 야기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신학교육기관들은 교역자 수급과 상관없이 신입생을 선발하거나 과를 신설하고 심지어는 종합대학교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이제 한국 감리교회도 성장했고 감리회 본부와 연회본부도 교회 부담금으로 운영된다면 마땅히 신학대학교도 교단의 지원에 의해 운영될 때가 되었다. 이렇게 될 때 명실상부하게 교단 신학교육기관이 되어서 바람직한 전인적, 통전적 신학교육에 일로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감리교단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는 교역자들의 학연으로 인한 파벌 형성과 교단 내 각종 정치적 대립과 분란은 세 신학대학교의 대학원 과정을 점차로 통합해 나감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세 신학대학교는 한국 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각자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할 것을 서약하고, 대학원 운영과 교육과정을 일정 기간의 연구와 준비기간을 거쳐 교류하고 종당에는 통합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을 새롭게 출범하는 ‘감리교 신학대학원'(가칭)의 교육이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통합된 감리교 신학대학원은 대학원생 전원을 교단 장학생으로 우대하고, 교단본부의 교역자 수급의 계획에 발맞추어 개체교회, 지방회, 연회라는 연계 조직을 통해 신학생을 추천하고 후원하며 나아가 교역자로서 훈련하고 안수받을 수 있는 임지와 환경을 제공하는 데 협력하도록 한다. 나아가 통합 감리교 신학대학원에는 한국 감리교 신학을 수립하고 발전시키며, 실천 목회와 다양한 선교 분야의 연구를 통해 교단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 신학연구기관들이 재정적으로 교단의 지원을 받고 제도적으로 교단과 교회와 연관을 맺어 활성화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통합 감리교 신학대학원은 통일 시대와 세계 선교 시대에 부응하여 새로운 선교지의 신학교의 설립과 운영, 그리고 신학교육의 방안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데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교역 패러다임의 전환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과 회중 전체 사이의 만남이 예배, 교육, 친교, 선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건에서 드러난다. 웨슬리는 성공회의 교직주의의 경직성을 버리고 회중이 하나님과 감격적인 만남을 이룸에 있어서 공동 예배, 성례전, 성경연구, 기도, 금식, 심방 등과 같은 ‘은혜의 제도적 수단'(the instituted means of grace)만이 아니라 속회, 신도반, 애찬식, 철야 기도 등과 같은 ‘은혜의 가변적 수단'(the prudential means of grace)을 중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웨슬리가 전통적 제도 교회의 목회 방식을 교직주의로부터 탈피하여 하나님과 회중간의 감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섬기는 것으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은혜의 제도적 수단만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감리교회에게 고유한 은혜의 가변적 수단도 동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전 회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섬기는 역할이 한국 감리교회의 교역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주일에 드리는 공동 예배는 전 회중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다. 공동 예배는 성인들만이 아니라 회중의 전 연령층이 참여하는 공동의 하늘나라 축제가 되어야 한다. 공동 예배시의 말씀의 선포는 전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결단하게 하는 행위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회중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선교의 담당자들이 되게 한다. 성례전의 거행은 회중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거듭나고 성화되며, 세상에서 섬기는 삶을 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하는 예전이 되도록 한다.
현재 한국 감리교회의 취약점 중의 하나는 성인들은 설교에만 의존하고 어린이, 청소년층은 교육만 시킨다는 점이다. 성인들을 위한 교회학교 교육은 주일만이 아니라 수요기도회시에도 성인들의 신앙 훈련과 제자화를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성인 교회교육은 주로 성경공부에 치중해 왔으나, 앞으로는 웨슬리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에 입각한 감리교 교리와 전통에 대한 공부와 병행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안에서 그리고 그를 위하여 선행적 은혜, 회개, 칭의, 성화,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온 우주의 새로운 창조의 전 과정과 일치하게 되는지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은 목회의 성격 자체를 교육적이 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성인들을 위한 감리교인 훈련과 교육은 교회력을 따라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각종 수련회나 특별집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예배와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동참하는 회중으로 부름받고 훈련받은 이들은 교제와 선교를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이루게 된다. 기존의 속회 운영은 날로 다원화하고 복잡화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이미 형식화되어 거의 소생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현실에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세속 속에서 살아가는 성인 남녀들이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지구 전역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각종 동호회나 시민운동 단체에 참여하는 것에 착안하여, 교회가 지역과 시민사회의 삶에 ‘토착화'(뿌리를 내리는 작업)함으로써 회중 각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은총의 가변적 수단’으로서의 소공동체들을 형성하도록 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교역자는 이러한 자발적 소공동체를 교회 구조에 편입시키고 통제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존 교회의 내부 조직과는 달리 보다 느슨한 형태로 운영되도로 유도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섬김의 지도력을 발휘하게 훈련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선교를 회중의 삶 한 가운데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웨슬리의 속회가 ‘교회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였다면 한국 감리교회의 새로운 자발적 소공동체는 교회밖의 작은 교회로서 지역과 시민 사회와 소통하고 섬기는 ‘通교회'(inter-chuch)가 되어야 한다.
3. 교단의 개혁
최고정책결정자인 감독들과 감리사들이 선출될 때마다 한국 감리교회는 교단의 개혁과 교회의 갱신을 내세웠다. 그것은 그만큼 최고정책결정자의 비전이 교단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전만 가지고는 개혁을 할 수 없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전략과 조직 그리고 조직원들의 훈련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웨슬리 전통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실현해 내는 치밀한 조직과 전략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전은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에 의해 어떠한 모습으로 제시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개교회의 차원을 넘어서 지방회와 연회 그리고 총회의 차원에서 전 감리교도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예언자적 상상력과 사도적 실천이어야 한다. 그것은 주변의 4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분단된 채 남아있는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남북한과 주변 4대 강국이 치열한 군비 경쟁에 돌입하지 않고 도리어 평화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한반도와 주변국들의 시민들이 연대할 수 있도록 한국 감리교회는 에큐메니컬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로 거듭남으로써 한국 감리교회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화의 현상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종교, 문화, 인종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늘의 세계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집단과 이익단체들이 근본주의적으로 자신의 주장과 이익을 추구할 경우 폭력과 전쟁 그리고 공동의 파멸이 전 지구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더 절실한 선교적 요청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오늘의 시민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과정에 개방적인 자세와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참여함으로써, 기독교가 반시민사회적이고 반민주적이고 배타주의적이며 근본주의적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쇄신해야 할 것이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교단 개혁의 전략은 교단 본부의 조직에서부터 적용되어야 한다. 교단 본부는 물론이고 각 연회 본부와 교단의 각종 선교회와 나아가 지방회를 책임지는 임원들과 간사들은 전 감리교회와 감리교 회중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자세로 임하여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단의 최고정책결정자인 감독회장과 감독들의 비전이 실무선에서 전략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도록 교단의 각종 조직을 구축하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교단의 모든 정책 결정의 과정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 그리고 각종 ‘노 하우'(know how)가 교단의 물샐틈 없는 공유 시스템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교단의 각 기구들 사이는 물론이고 연회와 연회간에 지방회와 지방회간에 ‘인트라 네트'(intra-net)의 구축이 시급하다. 그렇지 못할 때, 제아무리 최고 지도자의 개혁 비전이 출중하다 할 지라도 교단 조직의 구성원들은 감독 임기 초반에만 제스처를 취할 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관료적 관행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한국 감리교회 본부의 인트라 네트의 구축을 통해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면, 그것에 멈추지 말고 교단의 지도자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교육시킴으로써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임원과 간사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또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교단의 발전과 개혁에 기여한 구성원들의 업적을 치하하고 포상함으로써 교단이라는 집단을 위해 일하는 것이 개인의 성취로 인지되게 해야 한다. 감리교 인트라 네트 구축은 한국 감리교회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전을 온 세계에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략적 연관적 체계를 창조적으로 회복하는 데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나가는 말
위대한 감리교회의 건설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전을 가지고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모든 감리교도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새 출발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존 웨슬리 목사의 말씀처럼 ‘가장 위대한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게 ‘이르는 세상의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위대한 자에게’ 이르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를 때 성공할 수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최고 지도자들이 가장 작은 자로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낮추고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바로 설 때에 이 시대 교회와 세계에서 영적 권위와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주여! 주의 크신 구원을 한국 감리교회와 여기 모인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옵소서!
위대한 감리교회 건설은 올바른 성서관으로부터
김득중 총장(감신대)
1. 들어가는 말
우리 감리교회가 위대한 감리교회를 향해 용트림을 하고 있다. 이런 몸짓의 배후에는 분명히 우리가 지금까지는 너무나도 초라한 감리교회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自省의 기분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우리 감리교회가 지금까지 위대한 모습, 당당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채 초라하고 왜소한 모습을 해온 주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것은 한국 기독교 전체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곧 교회가 사회로부터 존경과 인정받지 못한 데서 오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한국 교회와 우리 감리교회가 그처럼 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인정받고 존경받지 못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아마도 도덕성의 상실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감리교회의 입장에서 보자면 우리 스스로 감리교의 위대한 신학적 유산을 등한시하면서 우리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자신감을 분명히 갖지 못한 때문일 수도 있다. 도덕성 상실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그리고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 부족은 어떤 것인지를 알아보면서 우리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을 올바로 찾는 가운데서 그리고 특히 올바른 성서관을 확립하는 데서부터 우리 감리교의 위대성과 자랑스러움을 바로 잡아나갈 수 있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2. 추한 교회, 추한 기독교인(Ugly Church and Ugly Christian)
무엇보다도 먼저 오늘날 우리 교회는, 우리 감리교회나 다른 개신교회를 막론하고, 사회 속에서 도덕성을 상실함으로써 스스로 사회 속에서의 영향력을 잃어버린 채 왜소하고 초라한 모습을 지탱해가고 있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기로 하자. 여러 해 전에 옷 로비사건이 온통 시중의 화제가 된 바 있다. 청문회에 나온 네 여인 중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가가 관심의 초점이 되기도 했다. 교회와 기도원을 열심히 찾아다닌다는 사람들이 온 국민들 앞에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들리기도 했다. 기독교인에게는 네 권의 서로 다른 성경이 있나보다고 빈정대는 소리도 있었다. 네 사람이 모두 성경에 손을 올려놓고 진실만을 말하겠다고 선서했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기독교가 세상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이전에는 MBC TV의 2580의 연이은 교회와 성직자들의 고발 프로그램을 통해서도 교회가 세상 앞에 얼굴을 들기가 창피하게 되기도 했었다. 최근까지도 언론 매체들은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정적인 면들을 문제삼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세상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불신당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사실 너무 부끄러운 일들이 교회 안에서, 그리고 기독교인들 가운데서 많이 일어나고 있지 않은가? 크리스천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서울 시내 어떤 감리교회 안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교회를 잘 봉사하는 장로님이 IMF 시대의 찬바람이 몰아치던 때에 사업이 쓰러지는 위기를 당하게 되었다. 담임 목사님이 교회 사택 이외에 별도로 단독 주택을 갖고 있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장로님이 어느 날 목사님을 찾아와 사정사정을 했다. 사업이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돈이 필요한데, 어떻게든 돌려줄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목사님의 개인 주택을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 돈으로 사업을 구하면 곧 바로 해결해 드리겠다고 간청을 했다. 교회에서 누구나가 다 믿음이 좋은 분이라고 잘 아는 장로님이고, 교회 봉사에 늘 앞장을 서는 장로님의 부탁이었다. 목사님의 생각에는 장로님을 돕는 것이 곧 교회를 돕는 것이라는 생각에 그렇게 하자고 했단다. 집을 담보로 은행에서 1억 5천만 원을 대출받아서 장로님의 사업을 살렸다. 다행히 사업이 살아날 수 있었다. 그런데 1년이고 2년이 지나가도 장로님으로부터 돈 이야기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마침 장로님이 목사님 내외와 마주 앉을 때가 생겨서 목사님이 힘들게 돈 이야기를 꺼냈다. 이제 사업이 정상화된지도 한참되었으니 돈을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장로님은 안색 하나 변함없이 무슨 돈이냐고 시침을 뗐다. 언제 그랬느냐는 것이었다. 믿는 장로님이었기에 그냥 아무런 문서 작성없이 돈을 넘겨준 것이 문제였다. 아는 사람은 목사님 내외와 장로님 뿐이었다. 장로님이 시침을 떼는 바람에 목사님은 돈을 받을 수 없게 되었고, 사모님은 장로님의 그런 말에 충격을 받아서 쓰러졌고 곧바로 병원으로 실려갔다. 여기까지가 내가 들은 이야기의 전부였다. 사모님의 건강이 그 후 어떠한지, 장로님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아직 듣지 못했다.
물론 이런 일이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만 있는 일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어느 시골 큰 강물이 흐르는 근처의 작은 마을에 조그만 장로 교회가 하나 있었다. 그 교회에 부임한 목사님은 교인들이 순박하고 착하고, 교회 생활도 잘하고 십일조 헌금도 잘 내는 것에 만족하면서 열심히 교인들의 신앙 생활 지도에 힘썼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목사님은 자기 교회 교인들 가운데 상당수가 부정한 생활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을 옆을 흐르는 큰 강물은 상류의 밀림 지대로부터 하류의 나무 제제소까지 통나무를 날라주는 통로였다. 그런데 그 마을 교인들 중 상당수가 밤에 몰래 강에 나가 떠내려가는 통나무를 끌어내서 그것을 잘라 팔거나 또는 그것으로 널판으로 만들어 여러 가지 목재로 이용하면서 돈을 벌고 있었다. 이 목사님은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교인들의 상당수가 관련된 이런 일을 지적하고 못하도록 막아야하기 때문이었다.
목사님은 오랜 기도 끝에 드디어 다음 주일날 설교를 통해서 교인들을 깨우치려고 하였다. 그날 설교 제목은 “도적질하지 말라”였다. 십계명에 나오는 계명을 가지고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이 도적질하는 것을 원치 않을 뿐만 아니라 도적질하는 사람에게는 축복 대신 심판이 있을 것이라는 주제로 설교를 하였다. 예배가 끝나고 교인들은 교회 문앞에 서있는 목사와 악수를 하면서 오늘 설교에 은혜를 많이 받았다고 인사를 하였고, 어떤 교인들은 “도적질하지 말라”는 계명만 가지고 설교하시지 말고 매주 십계명을 가지고 하나씩 설교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기까지 하였다. 목사님은 그렇게 말하는 교인들에게 “여러분들은 오늘 제 설교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라고 조용히 말했다. 그리고 목사님은 그 다음 주일에도 똑같은 본문을 가지고 또다시 거의 똑같은 설교를 하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설교 제목을 좀 더 분명하게 밝혔다:”떠내려오는 남의 통나무를 도적질하지 말라.” 설교를 끝내고 목사가 돌아가는 교인들과 악수하려고 교회 문 앞에 나가 서 있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인들은 정문으로가 아니라 뒷문을 통해서 교회를 빠져나갔다. 그리고는 며칠 후 교인들이 전체 회의를 소집했고, 그 회의에서는 다른 목사님을 담임 목사로 모시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그 목사님은 그 교회를 떠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물론 이것이 다는 아닐 것이다. 이런 추한 기독교인의 실례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신앙 생활을 하는 크리스천들 가운데서, 더군다나 믿음이 좋다는 교인들 가운데 이런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믿음 따로, 생활 따로인 사람들이다. 교회 생활과 사회 생활이 서로 다른 사람들이다. 교회에서는 믿음이 좋은 거룩한 사람들이면서도, 사회에 나가서는 믿지 않는 이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들을 가리켜 이중 인격자라고도 말하기도 한다. 위선자란 말을 듣기도 한다. 현대판 바리새인들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 안에 이런 종류의 크리스천들이 많은 가운데서 아무리 위대한 기독교, 위대한 감리교를 외쳤다 한들 그것은 오히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말 것이다. 도대체 왜 교회 안에 이런 크리스천들이 많은가? 왜 크리스천 가운데는 믿음대로 사는, 그래서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도덕적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그렇게도 많지 않은가? 위대한 기독교, 위대한 감리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그 이유를 무엇인지를 알고 고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가 도덕성을 상실한 실제적인 이유 가운데는 분명히 이런 이유도 있을 것이다. 진실된 마음으로 진지하게 신앙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형식적으로만 믿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일 수도 있다. 이름만 걸어놓고, 형식적으로만, 외양상으로만 크리스천 행세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교양을 위해서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다. 일주일에 하루, 주일날만 교인 행세하는 사람들이다. 교회 안에서만 교인이고, 교회를 떠나서는 교인의 옷을 벗어버리고 사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크리스천이 아니라 이름만의, 명목상의 크리스천일 뿐이다. 크리스천 행세만 하는 사람들이다.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서 크리스천으로, 신앙인으로, 교인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크리스천이 아니라 크리스천이란 배역을 맡은 배우에 지나지 않는다. 성경에서도 우리는 이런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예수 당시에도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형식적인, 이름뿐인 신앙인들이 많이 있었다. 바리새인들이 곧 그런 사람들이었다. 성경에선 그런 사람들을 외식하는 자라고 했다. 그런데 “외식하는 자들”이란 헬라어 단어는 본래 “연극 배우”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사람들은 참다운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란 이름의 연극을 하는 사람들, 신앙 생활이란 이름 아래 일종의 연극 배우 역할을 하는 사람들에 지나지 않는다. 관객을 의식하며 연극하는 배우들과,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고 교회 생활이나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무엇이 다른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진실되고 신앙생활 혹은 교회 생활을 하는 사람들보다 오히려 사람들, 곧 목사나 다른 교인들을 의식하면서 교회 생활을 하며 신앙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런 사람들이 바로 외식하는 자들이 아닌가? 그런 사람들이 바로 기독교인이란 이름의 연극 배우들이 아니고 무엇인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교회 안에는 이런 신앙인들, 이런 크리스천이 얼마나 많은가? 바리새인들에 대한 예수의 비판은 곧 오늘 우리 한국 교회 크리스천들에 대한 비판이 아닌가? 그래서 한국 교회가 외형적으로는 많은 成長을 이룩했으면서도, 內的으로나 質的으로 제대로 成熟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국 교회가 너무 교회의 외적인 변화만 추구했지 교인의 내적이며 인격적인 변화는 간과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에게서 神學과 倫理가 분리되고 믿음과 행동이 하나가 되지 못하는 기형적 증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중인격자와 위선자들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너무 일방적인 판단일 수도 있겠지만, 개신교 신학의 문제점 때문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성서학자의 입장에서 말한다면 무엇보다도 올바른 성서관을 확립하지 못한 데 그 이유가 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개신교 신학의 문제점과 특히 성서관의 문제점을 살펴보는 가운데 앞으로 우리가 지향해야할 올바른 신학, 위대한 신앙인의 모습을 추구해보고자 한다.
3. 잘못된 개신교 信仰義認 전통을 넘어서
교인들이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도덕성을 잃어버리고 신뢰를 상실한 가장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신학적인 데서 찾아볼 수도 있다고 생각된다. 신학적인 관점에서 볼 때 개신교 신학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인간보다는 하나님, 도덕과 윤리보다는 믿음과 은총이 더 중요시되어왔다. 그로 인해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 가운데서 道德과 倫理, 善行과 行爲가 무의식적으로나마 그리고 부분적으로나마 輕視 혹은 度外視되는 경향이 나타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개신교 신학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는 한국 교회가 바로 이런 경향에 무비판적으로 몰입되어 신앙 생활에서 윤리와 도덕을 충분히 강조하지 못했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일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한국 교회가 당면하고 있는 문제의 뿌리 가운데 하나는 부분적으로 한국 교회가 뿌리박고 있는 종교 개혁 신앙 전통에 있다고 보여진다.
종교 개혁 전통의 주요한 신학적 특징은 분명히 “오직 믿음으로만!”(sola fide), 혹은 “오직 은총으로만”(sola gratia)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루터의 종교 개혁은 카톨릭 교회의 행위를 통한 義認(justification by works) 사상을 배격하고 믿음으로 말미암은 義認(justification by faith) 사상을 강조하였다. 인간은 그의 행위, 그의 善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하나님 앞에 의롭다함을 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같은 종교 개혁 전통에 속한 우리 감리교회도 이 교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웨슬리도 그러했다.
그러나 비록 웨슬리가 루터나 칼빈과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받아들이기는 했으나 그는 다른 종교 개혁자들과 달리 義認化, 곧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해주는 것에만 관심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아가 우리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 되는 義人化에 관심하고 있다. 이것은 곧 웨슬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 덧입히기”(imputation of righteousness extra nos)만을 말하고 있지 않고 더 나아가 “의를 심어주기”(impartation of righteouness in nobis)를 강조하고 있음을 뜻한다.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인정받은 후에 계속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고, 완전에 이르러야 하고, 거룩함을 이루는 일이 중요함을 강조하였다. 웨슬리에 의하면 信仰義認은 상대적인 변화, 곧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회복일 뿐이다. 곧 하나님의 원수에서 하나님의 친구로 바뀌는 것뿐이다. 그리고 신앙의인은 외적인 변화일 뿐이다. 곧 여전히 속은 죄인이지만 하나님이 그냥 의인으로 간주해 준다는 것뿐이다. 웨슬리는 기독교인이 이 단계에만 머물러서는 안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다음 다시 거듭나는 단계로, 그리고 거듭나서 완전과 성화를 이루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님과의 외면적인 관계만 회복되는 것으로 만족할 때, 기독교인이란 이름에만 만족하지 실제로 기독교적 인격의 변화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그래서 겉과 속이 다른 상태가 되어버리는 잘못이 생긴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적인 관계 회복과 개선에 이어 내면적인 성품까지 변화되고 개선되어야 한다는 것이 웨슬리의 주장이다.
결국 웨슬리는 칭의 교리를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이 교리의 문제점을 알고 그것을 넘어서려고 하는 것이었다. 바로 이점에서 웨슬리는 종교 개혁 전통과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고, 바로 이점에서 다른 개신교의 신학과 다른 웨슬리의 신학, 아니 우리 감리교회의 독특한 신학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감리교회로서는 다른 종교 개혁자들이 강조했던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칭의” 교리에 만족하거나 머물러서는 안된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된다. 말틴 루터에서 비롯된 종교 개혁 신학 전통의 “신앙 지상주의” 혹은 “바울 지상주의”의 문제점에 대한 지적과 반발은 실제로 교회사에서도 곧바로 나타났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우리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의 신학이었고, 또 재세례파의 신학이었다. 이처럼 존 웨슬리(John Wesley)는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만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의 책임과 윤리적 삶을 도외시하는 行爲 無用論에 대해 강하게 반발했다. 웨슬리에게 있어서 “믿음”은 윤리적 믿음이며, 윤리적 믿음에 대한 이런 강조가 믿음과 행위의 종합에 대한 강조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향이 義認보다는 聖化와 完全 사상이 더 강조되는 데로 발전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만을 교리적으로 강조하는 종교 개혁 전통의 관념적 신앙에 반대하여,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약 2:17, 26)고 강조했던 성서, 곧 야고보서와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지 않고서는 결단코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마 7:21)고 가르쳤던 성서, 곧 마태복음의 정신을 되살리려고 했던 노력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다.
결국 웨슬리는 종교 개혁자들(루터와 칼빈)의 信仰義認化와 카톨릭 교회의 聖化를 종합함으로써 각각의 약점과 한계를 극복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점에서 웨슬리는 종교 개혁의 신앙(義認化)과 로마 카톨릭의 선행(聖化)을 종합하였고, 또한 로마서와 야고보서를 종합하였으며, 결국 웨슬리야말로 신약성서를 부분적으로가 아니라 통전적으로 올바로 이해하고 받아들인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 감리교회의 신학적 특징이고, 이것이 개신교 신앙의 약점을 넘어서는 그리고 보완하는 위대한 점이다. 이점에서 우리는 감리교의 웨슬리 신학에 대한 자부심을 가져도 좋다. 만약에 한국 교회가 신앙 생활 가운데서 웨슬리의 이런 신학적 강조에 따라 거듭남과 성화,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완전을 추구했다면, 한국 크리스천들은 외면적으로 크리스천이 되었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내면적으로 생활의 변화까지 추구함으로써 영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많이 달라진 모습을 보였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의롭다고 보아주는 것에만 만족하지 않고 인간의 편에서 거듭나서 완전해지려고 노력하는 일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며 살려는 의지를 통해서 어느 정도 변화된 삶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도덕적인 수준에서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나았을 것이다. 그리고 겉만 기독교인이고 속은 변하지 않는, 겉과 속이 다른, 그래서 이중적인 인격자의 모습으로 비추어지는 일은 적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기독교인의 도덕성이 확립됨으로써 기독교의 사회적 역할과 공로도 더욱 지대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잘못된 개신교의 聖書觀을 넘어서
루터와 개신교의 신학을 신앙제일주의라고 말한다면 웨슬리의 신학은 행동제일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차이는 루터와 웨슬리의 성서관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루터는 기독교인의 신앙 생활에서 오직 믿음만이 중요하고 행함은 중요치 않은 것처럼 생각하는 信仰 제일主義 혹은 信仰 至上主義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에 자연히 성서관에서도 아주 중요한 잘못을 범하게 되었다. 즉 루터는 신약성서 중에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義認을 강조하는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을 중요시하면서 바울서신 제일주의로 나갔고, 그러는 가운데서 “행함으로 의롭다함을 얻는 것이지 믿음으로만 아니라”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무익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하면서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야고보서에 대해서는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혹평해버렸다.
이 같은 루터의 신앙 제일주의는 자연히 신약성서 저자들 중 특히 바울만을 절대화하는 경향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루터에게 있어서 문제점은 신약 정경 가운데서 바울 이외의 저자들의 문서를 너무나도 쉽게 無視하거나 輕視하는 경향을 보인 점이다. “정경 중의 정경”(the canon in the canon)을 인정하는 잘못된 성서관을 드러냈던 것이다. 루터가 중세기 카톨릭 교회에서 성서보다 교회 전통이 더 중요시되는 것에 반대하여, “오직 성서”란 구호를 외치면서 교회 전통의 권위보다 성서의 권위를 더 우위에 놓는 공헌을 세우기도 했지만, 그러나 루터는 신약성서 중에서 오직 바울의 문서들, 예를 들어 로마서와 갈라디아서만을 중요시하는 잘못을 범했다. 그래서 루터에게 있어서 “오직 성서”란 말은 “오직 바울”이란 말 이외의 다른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루터 성서관의 근본적인 잘못이었다. 우리의 신약 성경 가운데는 바울의 문서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마태복음이나 또한 야고보서와 같은 것들도 있다는 사실을 루터는 쉽게 看過했고 또 無視해버렸다.
결과적으로 행함과 윤리를 중요시하는 문서들을 경시 혹은 도외시하면서, 믿음과 은총만을 중요시하는 문서들, 즉 주로 바울의 문서들만을 일방적으로 중요시함으로서 루터는 그리고 그 이후 개신교 신학 전통은 기독교 신앙의 절대적 “기준”(“canon”)이 되고 있는 신약성경의 신앙을 전체적으로 올바로 대변하지 못하는 오류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한다면 성경에 대한 편식이 문제였고, 성서에 대한 부분적인 인정이 문제였다. 성경을 아주 읽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성경을 읽되 편식하는 식으로 일부만 중요시하고 일부만 읽는 것도 더 문제인 셈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우리 감리교회도 무의식중에 개신교 중에서도 루터교식, 혹은 장로교식 신앙생활에 너무 젖어버려 성서 중에서 도덕적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야고보서와 같은 문서들을 루터처럼 “지푸라기”처럼 소홀히 하는 경향을 보였고, 그것이 은연중에 비도적적인 기독교인들을 양산해내는 결과를 만들어내게 되었다. 왜냐하면 율법의 행위를 배격하면서 “오직 믿음”(또는 “오직 은총”)만을 강조하는 이런 개신교 신앙 경향은 은연중에 또는 서서히 反 律法主義(antinomianism)와 연결되게 되었으며, 나중에는 율법 폐기론 혹은 도덕 무용론의 형태로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하나님의 율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의 중요성을 결코 과소평가할 수 있는 일이고, 따라서 도덕무용론이나 율법폐기론을 그대로 수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연히 초대 기독교에서조차도 일찍이 바울의 교훈에 반대하여 율법의 엄격한 준수와 도덕적인 선행을 중요시하며 강조하는 문서들이 곧바로 기록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이런 문서들은 주로 유대 기독교회의 산물들로 알려지고 있으며, 신약 성경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야고보서와 마태복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 야고보서의 反 바울주의:
신약성서 문서들 가운데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義認”을 강조하는 바울의 문서들과는 대조적으로 “행함으로 말미암은 義認”을 강조하는 대표적인 문서가 아고보서라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분명히 야고보서에서는 “믿음”에 대한 강조보다는 오히려 “행함”에 대한 강조가 더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물론 야고보서에서 가장 대표적인 본문은 야고보서 2장 1426절이다. 여기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약 2:14,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7,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cf. 2:26)
약 2:24,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cf. 2:21)
야고보서의 이런 주장들은 분명히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은 것은 아니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갈라디아서나 로마서의 강조점과는 아주 대조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먼저 야고보와 바울 간의 분명한 차이와 모순에 대해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울이 율법의 행함을 배격하면서 믿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비해서 야고보는 분명히 바울이 정죄하고 있는 율법의 행함을 강조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무익한 것이라”고 말한다. 야고보가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신학적 관점, 곧 바울과는 다른 신학적 관점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면 신약성서 안에서 이토록 다른 주장과 강조점이 나타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울의 서신이 신약성서 문서들 중 가장 초기에 기록된 문서들이란 점을 인정한다면 분명히 야고보서는 갈라디아서나 로마서 이후에 기록된 문서임에 틀림없을 것이며, 또한 바울의 문서 혹은 그의 교훈에 대한 반응 혹은 반발로 기록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른 말로 한다면 야고보서는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바울의 교훈으로 인해 야기된 잘못된 신앙 풍조, 곧 반율법주의, 반도덕주의에 대한 반발로 기록되었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2) 마태복음의 反 바울주의:
바울이 신약성서에서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을 강조하는 순수한 은총의 신학(a theology of pure grace)을 옹호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라면 마태는 신약성서에서 행함의 신학(a theology of deeds), 아마도 행함이나 공로의 의(a rightousness of works)를 옹호하는 대표적인 사람이다. 이점에서 마태도 분명히 야고보와 마찬가지로 신약성서 안에서는 신학적으로 바울과 대립되는 인물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만을 강조하면서 율법의 행함을 정죄하고 있다(갈 3:10, “율법을 행함으로 살려는 사람은 다 저주 아래 있습니다”). 바울이 이처럼 율법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유를 다음과 같은 바울의 주장에서 잘 찾아볼 수 있다:”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느니라”(롬 10:4); “여러분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 있다”(롬 6:14). 율법이 믿는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의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율법은 약속된 후손인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만 필요한 것이며(갈3:19), 그래서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갈 3:24)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태는 바울과 달리 예수께서 오신 것이 율법을 폐하기 위한 것, 끝장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완성하기 위함이기(마 5:17) 때문에 무릇 믿는 사람들은 율법의 일점 일획까지라도 다 이루어야 한다고 강조한다(마 5:18). 이런 말씀들은 분명히 너무나 일방적으로 바울이 “오직 믿음”과 “오직 은총”을 강조하면서 행함을 경시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이 계명들 중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지극히 작은 자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마 5:19)는 말씀은 직접적으로 바울을 공격하는 구절로 자주 해석되기도 했다. 초대 교회 안에서 율법의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분명히 바울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지극히 작은 자”란 표현 자체가 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문구라는 지적도 제기되었다. 그 문구가 고전 15:9에서 바울이 자신을 가리켜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the least of the apostles)라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바울”이란 이름 자체가 “지극히 작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 않은가? 바로 이런 점에서 신약성서 문서들 가운데서는 야고보서가 상당한 정도로 마태복음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다. 야고보도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한다면 전체를 범한 것이 된다”(약 2:10)고 말함으로써 율법 전체의 모든 조항을 다 지켜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으며, 또한 “율법에 의해서 장차 심판을 받을 것”(약 2:12)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마태는 산상 설교 가운데서, 특히 그 결론 부분에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예수의 말씀을 소개함으로써 하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 천국에 들어가는 절대 조건이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그리고 특히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예수를 주님이라고 즉 “주여”라고 말할 수 있다는 바울의 증언을 염두에 둔다면(고전 12:3), 마태는 도리어 믿음이 있고 성령을 받아서 예수를 가리켜 “주여 주여”라고 고백한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마 7:21도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바울의 교훈을 경계하기 위한 말씀으로 이해될 수 있는 말씀이다.
마태복음에만 나오는 예수의 마지막 설교인 최후 심판 비유도 마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 비유가 행함을, 또는 선행을 구원의 절대 조건으로 강조하고 있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비유는 특히 마지막 심판 때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 축복받을 자와 저주받을 자들이 어떤 기준에 의해서 구별되는가를 가르치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교훈이 되고 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는 바울의 교훈에서처럼 “믿음”의 여부에 의해 구원이나 멸망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지극히 작은 사람 하나를 위해 무엇을 “행했는지” 또는 “행하지 않았는지”에 따라 구원이나 멸망이 결정되는 것으로 강조되고 있다. 바울에 의하면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또는 “오직 은총으로” 구원을 받는다. 그러나 마치 야고보가 “행함으로이지 믿음만으로 되는 것은 아니다”(약 2:24)라고 말한 것처럼 마태도 “행함”으로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며, “행하지 않음”으로 어두운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심판자는 멸망받는 사람들에 대한 악행(the sins of commission)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없이 오히려 그들이 행하지 않은 일(the sins of omission) 때문에 저주하고 정죄하였다. 이것은 야고보가 “선을 행할 줄 알면서도 행치 않는 것이 죄니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야고보나 마태나 모두 “행하지 않은 죄”를 오히려 범법죄보다 더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바로 야고보나 마태가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는 바울의 교훈에 반발하여 기독교인의 “행함”을 강조하는 데서 나온 것으로 보여진다.
결국 마태복음 안에 나타나는 이런 여러 본문 증거들은 마태가 그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이미 교회 안에 나타나고 있는 바울의 영향력들, 곧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면서 실제로 아무런 믿음의 열매나 행함을 보이지 않는, 그리고 더 나아가 “행함”과 “선행”을 배격하는 그런 경향에 대해 반대하며 공격하기 위한 의도를 갖고 있었다는 점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태복음 안에 바울 사상에 대한 반대가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마태와 바울의 차이는 분명하다. 마태의 경우 의는 인간의 성취해야할 윤리적인 자질이며 생활 방법인데 반해서 바울의 경우는 의가 하나님의 구원 행동이다. 다시 말해서 바울의 경우 의는 하나님의 은사인데 반해서 마태의 경우에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요구이다. 바울의 경우 의는 법정적인 선언적인 용어인데 반해서 마태의 경우에는 윤리적인, 실제적인 용어이다. 이점에서 바울이 보다 하나님 중심적이라면 마태는 보다 인간 중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둘 다 성서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또한 달리 말한다면 바울과 마태의 차이가 곧 루터와 웨슬리의 차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우리는 먼저 우리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canon)이 되는 신약 성경 중에는 바울의 문서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즉 믿음과 은총을 강조하는 문서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이외에 그리고 그런 문서들과 나란히 마태복음과 야고보서와 같은 문서들, 곧 율법의 행함과 도덕적 선행을 강조하는 문서들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성경 가운데 포함된 27권의 문서들은 그것이 바울의 것이건 야고보의 것이건 간에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서의 동등한 권위를 갖는 문서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더구나 나중에 초대교회가 수많은 거룩한 문서들 중에서 27권을 정경으로 확정지을 때, 오직 믿음을 강조하는 바울의 서신들 이외에 마태복음과 야고보서를 포함시켰다는 것이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종교 개혁 이후에 마치 루터와 칼빈의 오직 믿음에 대한 강조에 반대해서, 아니 그것을 보충해서 웨슬리가 행함과 완전과 성화를 강조했듯이 이미 초대교회 안에서도, 그리고 정경화 과정에서도 바울의 문서들에 반대해서, 아니 그것을 보충해서 마태복음과 야고보서 등을 정경으로 확정지었다. 그런고로 신약성서 신앙의 최종 형태는 우리 감리교, 웨슬리 신학의 정신에 더 가깝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 감리교 신학이 다른 개신교 신학과 분명히 다른 점이고, 다른 개신교 신학의 문제점을 보완한 훨씬 더 성서적이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감리교 신학에 대한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신학, 이런 성서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가지고 그리스도인 양육에 있어서 성화와 완전을 이루려는 영적인 노력에 더 힘을 써야 할 것이다. 그럴 때 우리 감리교인들은 다른 어떤 개신교인들보다 더 훌륭한 교인들이 될 것이고, 다른 어떤 개신교회들보다 훨씬 앞서 가는 교회, 더 위대한 교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5. 나가는 말
개신교 신학에서는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을 강조하는 가운데 분명히 인간의 자기 책임을 소홀히 하는 잘못을 범했다. 예정론, 하나님의 절대 주권 등을 운운하면서 모든 것을 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으로, 따라서 인간의 노력, 선행, 도덕을 이야기하면 곧바로 人本主義로 매도되기도 했다. 인간의 선행과 도덕이 무시될 수밖에 없는 이유가, 그리고 잘 믿는다고 하면서도 생활 속에서는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 웨슬리 신학에서는 구원에 있어서의 인간의 자유 의지와 책임을 중요시했으며, 완전과 성화를 향한 인간의 노력을 중요시했다. 바로 여기에 도덕과 윤리의 중요성이 드러나고 있고, 교회가 그리고 교인들이 세상과 사회 속에서 도덕적으로 인정과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또한 다른 개신교들에서는 주로 수직적인 관심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었다.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하나님, 하나님의 절대 주권 등이 강조되었다. 그러나 우리 감리교회에서는 수직적인 관심 이외에 수평적인 관심을 강조하면서 사회에 대한 책임과 봉사를 강조했다. 영국이 산업사회화 되어가는 과정에서 웨슬리가 노동현장을 파고들어 노동자들을 위해서 위해 복음을 전도하며 그들의 권익을 위해 노력했던 것이 우리 감리교회의 사회 봉사에 대한 아름다운 전통이 되어오기도 했다. 우리 나라에서도 독립 운동 33인 중 7인이 감신을 졸업한 감리교인이었고, 농촌 운동의 선구자였던 최용신 여사가 우리 감리교인이란 사실이 이점을 잘 증거해주고 있다. 이런 훌륭한 신학 사상과 신앙 전통 속에 서있는 우리 감리교회가 이제야 말로 신학적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랑스런 감리교인 본연의 모습을 사회 속에 구현하여 훌륭한 감리교인, 위대한 감리교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종교철학자로 알려지고 있는 Sabatier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나는 무엇보다도 종교인이 된 것을 감사한다. 그것은 유한하고 상대적 존재인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나가면서 종교와 신앙을 갖고 산다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훨씬 더 인간답게 사는 길이며, 또 인간성을 더욱 더 풍부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는 종교인 중에서도 기독교인이 된 것을 감사한다. 그것은 많은 종교들 중에서도 기독교가 다른 어떤 종교의 경우보다 훨씬 더 인간성을 풍부하게 해주고, 인간으로 하여금 보다 더 인간적으로 살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는 기독교 중에서도 개신교 교인이 된 것을 감사한다. 개신교에서 나는 인간으로서 보다 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살 수 있으며, 인간성을 보다 만족스럽게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가 개신교 학자로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던 것에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다. 그런데 나는 감리교인으로서 거기에 한마디를 더 첨가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나는 개신교 중에서도 감리교인이 된 것을 감사한다. 감리교에서 나는 기독교 신앙과 개신교 신앙을 보다 더 온전하게 경험하면서 크리스천으로서 보다 만족스럽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 감리교인들의 자랑스런 고백과 감사의 내용이 될 수 있어야 할 것이고 앞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런 고백에 참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감리교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박봉배(전 감신대, 목원대 총장)
1. 들어가는 말
‘주의 크신 구원’의 사역에 동참해 온 한국 감리교회는 새 천년대와 선교 2세기를 감격 속에서 맞이하고 있다. 주후 1천년대 기독교의 지중해 시대와 주후 2천년대 기독교의 대서양 시대를 넘어 주후 3천년대 기독교의 태평양 시대가 열리고 있다. 18세기에 싹이 터서 19세기에 꽃을 피웠던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영국 감리교회, 19세기에 초석을 놓고 20세기에 전성기를 이루었던 미국 감리교회를 뒤이어, 20세기에 괄목한 만한 성장을 한 한국 감리교회는 21세기 세계 선교의 선두에 설 차례가 된 것이다.
이 때는 실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영원한 선택이 인간의 시간과 역사 속에서 실현되는 카이로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때는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신 것이다.”(롬 8:29) 하나님은 전혀 우리의 공로 없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성령을 통하여 역사를 변혁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게 하신다. 웨슬리의 회심과 소명으로 ‘웨슬리 이전과 이후의 영국’의 역사가 구분되었다고 어느 영국의 역사가가 평했듯이, 오늘 한국 감리교회의 임원들로 부르심받은 여러분들로 인하여 한국과 세계의 역사가 획기적으로 변화되었다고 후일의 사가들이 평할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빛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평가하며, 미래를 준비하기 위하여 다음 세 가지 요지로 말씀드리고자 한다.
첫째, 존 웨슬리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과 전통의 요체를 설명하고,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적 유산과 전통을 평가한다.
둘째, 한국 감리교회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신학적, 선교적 위기를 진단하고 이 시대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소명을 밝힌다.
셋째, ‘위대한 감리교회’를 위한 감리교회 임원들의 비전과 전략이 어떠해야 할 것인가를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Ⅰ. 존 웨슬리와 한국 감리교회의 전통
1. “해 아래 모든 나라에서 하나님께서 기독교의 시작부터 해오셨던 것과 똑같은 방식을 지키시리라는 것을 마땅히 믿을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저희가 가장 큰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까지 나를 알라 하지 아니하시고(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는 어리석음에 해당되는 세상의 지혜이기에) 도리어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from the least to the greatest) 나를 알라'(히 8:11) 할 것이니 그것은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 말미암기 때문입니다.'(롬 2:29)”
이 말씀은 1783년 웨슬리가 80세가 되던 해에 출간한 설교 “복음의 전면적 확산”(The General Spread of the Gospel)에서 한 것이다. 이 설교는 삼십 대 중반의 젊은 시절에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심하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에 부르심을 받아 50여 성상을 죽도록 충성했던 전도자가 지난 세월을 회고하면서 시작한다. 웨슬리는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신성 클럽을 통해 작은 누룩과 같이 구원의 진리가 퍼져나가 영국과 아일랜드, 그리고 뉴욕과 미국의 여러 지역에까지 이르게 된 것을 모든 씨보다 작은 겨자씨 한 알이 자란 후에 큰 나무가 되고 공중의 새들이 깃들게 된 것에 비유한다.(마 13:31∼32) 일찍이 종교개혁자 루터는 종교의 부흥이 한 세대 이상을 지속하지 못한다고 했으나, 웨슬리는 하나님께서 감리교 운동을 50여 년 간 지속해 오셨을 뿐 아니라 앞으로도 영광스러운 사역을 그치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자신의 부흥 운동은 단지 ‘훨씬 더 위대한 사역의 시작 – 말일의 영광의 새벽일 뿐이다’고 주장한다. 이어서 웨슬리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이 유럽 전역과 더 나아가서 소아시아, 그리고 끝내는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외진 곳까지 도달하게 될 것을 예상하면서 말세지말에 이스라엘을 회복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 경륜에 대한 예언자 예레미야의 예언을 빌어 말한다:”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큰 자까지'(from the least to the greatest) 다 나를 앎이니라.”(렘 31:34)
2.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역사는 가장 위대한 자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비천한 자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은 한국 감리교회의 역사와 전통에서도 잘 입증된다. 초기 미감리교 선교사들인 아펜젤러와 스크랜턴 모자(母子)가 가난하고 병들고 천대받았던 민중 계층을 위해 교육, 의료, 전도라는 하나님의 선교 사업을 벌여나간 것은 잘 알려져 있다. 1886년에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 학당과 스크랜턴 부인이 세운 이화 학당은 반상과 남녀의 차별을 철폐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만인의 평등함을 실천하는 신교육의 모태가 되었으며, 스크랜턴이 1886년에 설립한 정동병원(시병원)과 애오개(아현)의 시약소를 위시하여 상동 약국과 남대문 병원은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의료 봉사와 전도 사업의 중심지였으며, 1887년 정동에 세워진 최초의 감리교회인 벧엘 예배당을 위시하여 상동 교회, 제물포 교회 등은 복음 전파와 함께 강력한 조직 교회를 키워 나가는 발단이 되었다. 특기할 만한 것은 올해로 꼭 백년 전이 되는 1901년에 한국교회 최초의 한국인 목사 둘(김창식, 김기범)이 탄생한 것이다. 이들 중에 김창식 목사는 선교사의 고용원으로 들어갔던 민중 계층 출신으로 전도사 시절 평양 지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에 평안도 관찰사에 의해 투옥당하고 모진 구타와 핍박을 순교자의 믿음으로 이겨냄으로써 ‘한국의 바울’이라고 불렸다. 선교사의 요리사, 사환, 유모, 수위 등 막일꾼들 외에도 어학교사, 번역인 등에서도 복음을 받아들이고 교회 지도자로 부름받은 이들도 있었다. 최병헌 목사가 그 대표적인 인물이다. 초기 한국 감리교회의 성장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선교사들과 한국인 목회자들을 도와 이름없이 빛도 없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평신도 사역자들이다. 특히 성경 보따리를 지고 삼천리를 누비며 전도한 권서들과 지역의 바닥에서 불철주야 전도에 몰입했던 전도부인들이야말로 가장 작은 자들로부터 시작되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산 증인들이었다.
이렇게 하여 성장한 한국 감리교회는 일제하에서 이 민족이 국권을 잃고 신음할 때 겨레의 십자가를 지고 신앙부흥운동과 민족독립 및 사회계몽운동에 전력할 수 있었다. 이것은 존 웨슬리가 역설하고 실천했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사역의 한국 감리교회적 실현이라 하겠다.
3. 웨슬리의 위대한 구원 신학의 요체
“물음 3. 감리교도라 불리는 설교자들을 일으켜 세우심에 있어서 하나님의 합당한 경륜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답. 어떤 새로운 종파를 세우려는 것이 아니라, 민족과 특히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함입니다.”(1744년 연회록)
웨슬리는 1738년 6월 11일 옥스퍼드 대학교의 성 마리아 교회에서 “믿음에 의한 구원”(본문 엡 2:8)이라는 설교를 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위대한 구원'(great salvation)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때 위대한 구원의 의미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의해 값없이 주시는 구원의 은혜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주지하는 대로 웨슬리는 이 설교를 하기 약 보름 전쯤인 1738년 5월 24일 저녁에 저 유명한 올더스게이트의 회심 체험을 했던 것이다. 그 때 웨슬리는 루터의 로마서 강해 서문을 낭독하는 것을 들으면서 오직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이 죄인을 용납하심에 대한 확증을 얻고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졌다고 고백했다. 따라서 웨슬리에게 위대한 구원을 가져오는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의 능력을 믿는 신앙이었다. 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인간의 성실성을 통해 윤리적 행위로 구원을 얻으려는 업적주의나 율법주의와 달리 전적으로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다는 데 특징이 있다. 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성경과 교리에 대한 지적인 이해나 승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하나님께 대한 순전하고 과감한 신뢰이다. 이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자나 예언자로 존경하고 따르는 수준을 뛰어 넘어 십자가의 대속의 필연성과 부활의 능력에 대한 확고한 신앙을 가리킨다.
‘은혜에 의한 믿음을 통한 구원'(salvation by grace through faith)이라는 종교개혁의 신앙의 기치를 들고 감리교 부흥운동이 출범하자 마자 부딪힌 문제가 루터교 모라비안 계열의 율법무용론자들의 정적주의(quietism)였다. 웨슬리는 칭의, 곧 그리스도의 은혜에 의하여 하나님께서 죄인을 용납하시는 것은 위대한 구원의 기초(foundation)라고 보았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은 회개라는 대문을 통과하여 칭의라는 현관을 거쳐 성화라는 방 안으로 들어가는 데서 완성된다. 위대한 구원을 가져오는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faith working by love)(갈 5:6)이다. 우리가 의롭다 여김을 받는 것과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에 대한 확증은 온 세상과 인류를 갱신하시려는 하나님 자신의 위대한 구원의 경륜을 위해 주어지는 것이다. 칭의를 이룬 다음부터 시작하는 성화의 과정에서 우리가 생각하고,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위대한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된다. 웨슬리가 말하는 새로운 창조로서의 위대한 구원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회복으로서의 칭의만이 아니라, 그 회복된 관계를 세계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가는 것으로서의 성화에 대한 해석에서 나타나는 비전이다. 칭의에서 주어진 하나님의 용납하심은 성화, 곧 만물을 완전하게 하는 것으로서의 소명과 부르심을 포함할 만큼 흘러 넘친다.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우리는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을 수용하는 것만이 아니라, 세계 안에 그것을 반사하라는 부르심을 받는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을 반사하고 나누는 것은 그것에 참여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왜 웨슬리가 “당신의 믿음은 사랑의 에너지에 의해 가득 차 있는가?”라고 묻는 이유이다. 전적인 성화 곧 완전을 지향하는 그리스도인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롬 5:5) 됨을 고백하는 사람이다.
“우리들이 거듭나서 흠이 없게 하시고/주의 크신 구원받아 온전하게 하소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천국까지 이르러/크신 사랑 감격하여 경배하게 하소서”(찰스 웨슬리)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위한 웨슬리의 영적 투쟁은 그의 말년에 이르러 감리교 운동의 안팎에서 ‘제한적 구속'(particular redemption)을 주장하는 칼빈주의자들 및 예정론자들과의 대결에서 절정에 도달했다.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의 법령에 의해 제한된 구속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에 반대하여, 웨슬리는 ‘보편적 구속’ (universal redemption)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이야말로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역설헀다:”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웨슬리는 보편적 구속의 은총을 ‘만인을 위한, 만인 안에 값없이 주시는 은혜'(free grace for and in all)라고 불렀다. 웨슬리의 보편적 구속론은 혹자들이 곡해하는 의미의 ‘만인구원론’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구원을 얻게 하는 믿음없이 누구나 세상의 종말에 이르러 구원을 얻게 된다는 고대 교부 오리겐이나 현대 신학자 바르트의 주장은 웨슬리나 감리교회의 신학적 입장이 아니다. 오히려 웨슬리의 보편적 구속론은 강한 선교적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으로서 새로운 창조를 소망하는 믿음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은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회심으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는 사회적 성화와 온 우주를 갱신하는 새로운 창조를 포괄한다. 영혼의 구원에 있어서 선행적 은혜, 칭의, 그리고 성화가 필수적이지만, 이러한 구원의 질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갱신함으로 전 창조를 새롭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 안에 포함된다. 개인의 구원과 사회적 성화를, 또는 하나님의 형상의 갱신과 우주의 새로운 창조를 양자택일적으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구원의 비전을 포기하는 것이다.
웨슬리 이해에 있어서 흔히 주장되어지듯이, 웨슬리가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위한 선교에 실패한 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얻게 되어 회심한 것이라는 것 때문에 웨슬리의 조지아 선교를 실패로 규정하는 것은 단견이다. 말년의 웨슬리는 감리교 운동이 확산됨에 따라 또다시 세계선교에 대한 강렬한 열망과 비전을 품게 되었다. 웨슬리가 본 서구교회의 선교의 실패 원인은 그리스도인다운 삶의 열매가 없다는 데 있었다. 토착민들에 대한 온갖 횡포와 살상을 자행하는 ‘마귀 기독교인'(DevilChristian)들 때문에 선교의 문이 막힌다고 본 것이다. 그렇다면 선교의 성공은 오직 성서적 성결을 회복한 ‘천사-기독교인'(Angel-Christian)들에 의해서만 가능하다고 웨슬리는 주장했다. 사실 이러한 주장은 웨슬리가 감리교 운동을 시작한 이후로 평생을 두고 일관성있게 펼쳐온 것이었다. 그것은 감리교운동이 또 하나의 종파를 만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민족과 특히 교회를 개혁하고 성서적 성결을 온 땅에 전파하기 위한 것이라는 ‘위대한’ 감리교회의 이념이었다. 노구를 이끌고 여전히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비전과 열정에 사로잡힌 채 웨슬리가 새로운 창조와 보편적 구속에 대한 소망을 설파한 말씀은 다음과 같다.
“모든 편견없는 사람들은 그들의 눈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지면을 새롭게 하시고 있습니다.(시 104:30) 그리고 우리는 소망의 확고부동한 이유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사역을 주 예수의 날까지 지속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실 때까지, 그리고 죄와 불행, 연약함과 죽음을 종식시키고 ‘보편적인 성결과 행복'(universal holiness and happiness)을 다시 이룰 때까지, 그리하여 지상의 모든 거민들이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함께 찬양하도록 할 때까지 하나님의 영의 복된 사역을 중단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전능하신 주 하나님이 다스리시네! 복과 영광과 지혜와 영화와 권능과 능력이 우리 하나님께 영영토록 함께 있을지어다!'” (1783년 4월 22일 더블린)
Ⅱ. 한국 감리교회의 위기와 소명
1. 신학적 위기
오늘 한국 감리교회가 당면한 위기는 단순히 목회와 선교에 있어서의 위기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이 모든 것과 교회적 존재와 삶의 바탕이 되는 신학의 위기에서 초래된 것이다.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의 위기에 대한 진단과 처방,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빛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성찰하기 위한 출발점일 수 있다. 물론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적 위기는 한국교회와 더 나아가 세계교회의 신학적 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주지하는 대로 현대 기독교의 신학은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보수 신학과 에큐메니즘을 추구하는 진보 신학간의 상극적 대결에 의해 양분되어 있다. 한국 감리교회의 훌륭한 신학적 전통 중의 하나는 복음주의를 표방하면서도 근본주의에 떨어지지 않고 진보 신학과 에큐메니컬 연대를 추구해 왔다는 점이다. 혹자는 이것을 ‘복음적 자유주의’라고 명명하나, 그것은 가당치 않은 것이며 도리어 존 웨슬리 신학의 유산에 근거한 통전적 신학에 기인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1991년과 1992년 사이에 벌어졌던 일로, 일부 진보 신학자들(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주장한 변선환 학장과 포스트모던 신학을 주장한 홍정수 교수)의 출교까지 초래한 감리교단의 신학 논쟁과 교회 재판의 과정은 감리교 신학의 정체성 문제를 더 첨예화했으나 아직 까지도 이렇다 할 신학적 정립과 방향 제시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도리어 감리교 신학에 대한 건설적인 토론과 대화마저도 기피의 대상이 되어 신학의 공백 상태와 신학 부재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는 다시 교단의 신학 교육의 위기로 이어지면서 차세대 교단의 지도자 양성과 지도력 형성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한국 감리교 신학은 존 웨슬리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에 입각하여 한 편으로 복음주의 신학을 배타적 근본주의로 전락시키거나 다른 편으로는 진보적 에큐메니컬 신학을 과도한 자유주의 신학으로 오도하는 양극단을 넘어 복음주의적이고 에큐메니컬한 신학의 방향으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이미 1930년에 교리적 선언 제정시에 근본주의 5원칙(성신 잉태, 십자가 속죄와 부활, 승천과 최후의 심판)을 삽입하라는 주장이 있었으나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동식 교수는 이것을 “곧 자유주의 신학노선을 천명한 결의였다”라고 평하고 있다. 믈론 유교수가 이해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란 “복음의 진리를 시대와 문화의 변천에 따라 항상 새롭게 재조명하여 새롭게 파악함으로써 복음선교에 봉사하는 신학”을 가리킨다는 점에서 1990년대에 등장한 과도한 자유주의 노선과는 다르다. 그러나 여전히 남은 문제는 과연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을 자유주의적이라 하겠는가라는 것이다. 근본주의와 극단적으로 대결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라는 말보다는 진보 신학 또는 에큐메니컬 신학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한국 감리교 신학은 교단 내의 일부 근본주의 세력의 도전으로 복음주의 개신교 신학이 빠지기 쉬운 신학적 오류인 구원론의 협소화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감리교회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구원을 영혼의 구원으로 축소시키는 개신교 복음주의 신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진정한 에큐메니컬 신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구원을 칭의와 회심에 국한시키지 않고 성화와 완전의 관점에서 개인과 사회 그리고 우주의 새로운 창조로 보게 한다. 또한 감리교회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진보적 에큐메니컬 신학 노선에서 출현한 종교다원주의 신학과 포스트모던 신학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부활의 능력을 믿는 복음적 신앙의 초점을 잃고 과도한 자유주의에 빠져 구원론의 기초를 유실하게 하지 않았는가를 비판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한국감리교회가 지향할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은 복음주의와 진보주의, 자유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의 엉거주춤한 신학적 중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 한국 감리교회 신학으로 하여금 진정한 기독교 신학, 진정한 감리교 신학, 그리고 진정한 한국적 신학이 되게 하는 신학을 말하는 것이다.
2. 목회의 위기
현재 한국 감리교회는 4천 7백 교회, 150만 성도, 7천 교역자를 자랑하는 대 교단으로 성장해 있다. 이러한 교회의 급성장은 하나님의 은총과 교역자들과 성도들의 복음에 대한 뜨거운 헌신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괄목할 만한 성장에도 불구하고 오늘날에 이르러 교회 성장이 둔화되고 교회의 공신력은 날로 추락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감리교회의 목회적 위기는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생활의 불일치를 들 수 있다. 부흥회를 위시하여 교회의 각종 집회를 통하거나, 대학생과 청소년을 위한 기타 다양한 선교 단체를 통하여 지속적으로 복음적 회심과 구원의 신앙의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벌여왔음에도 불구하고 교회 성장이 둔화되고 사회적 공신력이 추락하는 것은 현대의 세속화하고 다원화된 세계 속에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 기성의 목회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성도의 신앙생활이 단순히 교회 생활로 오인되어 실제로 시민사회 속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소금과 빛의 역할과는 동떨어져 있다. 세속 사회에서 생활 신앙인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상실한 결과 교회생활에만 충실하면 기복 신앙과 현실도피도 눈감아주는 목회의 관행이 ‘마귀적 기독교인’을 양산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데는 근본적으로 교역자의 교회의 본질에 대한 몰이해 때문이라는 점에서 목회적 위기는 교역자들의 ‘교직주의'(clericalism)에도 원인이 있다. 그동안 대부분의 교역자들은 외형적 교회 성장 위주에 치중한 목회를 한 결과 교역자의 가장 기본적인 상식과 정직성이 무너지고 거짓과 위선이 신앙의 이름으로 포장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교역자를 제사장으로, 교회를 성전으로, 새벽기도회를 새벽 제단으로, 헌금을 제물로 신성화하고, 목사의 축복권과 저주권의 강화, 강단의 성역화, 직분의 계층화를 통해 비성서적이고 반개신교적인 교권주의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세기 천년을 통해 로마 가톨릭 교회가 교황 중심의 계층 체제로 경직되어 교회의 본질을 상실했을 때, 종교개혁자들을 통해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전이 바르게 거행되는 성도들의 교제의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만인사제직을 통한 바른 목회를 정립했던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개신교회와 한국 감리교회는 또다시 교직주의와 교권주의에 빠지어 교회 안팎에서 개혁해야 할 대상으로 지탄받은 지 이미 오래 되었다. 교역자들은 섬김과 헌신을 위한 성직과 감독직을 근본적으로 잘못 이해하고 파벌과 지역, 그리고 학연과 금권을 동원한 교단 정치를 통해 도덕적 부패와 영적 혼미를 초래하는 죄악을 저질러 왔다. 나아가 민족을 갱신하고 온 땅에 성서적 성결을 전파해야 할 교회가 교회 재정의 대부분을 자체 유지에 투입하는 데 급급할 뿐 아니라, 일부 교회가 교역자 개인의 ‘기독교 왕국화’를 추진하듯이 시행하는 교회의 후임자 결정 과정이 시민 사회의 지탄을 받기에 이르렀다. 오늘 한국 감리교회의 목회적 위기 상황은 18세기 영국 성공회의 위기를 방불하게 한다. 웨슬리의 감리교운동이 이루었던 교회 갱신의 모습을 깊이 연구하여, 한국 감리교회가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고 ‘천사적 기독교인’을 양육하는 근본적인 목회 패러다임의 전환을 시도해야 할 때다.
3. 선교의 위기
선교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으로서 인간, 사회, 우주의 새로운 창조에 교회가 부르심받고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생명의 총체적 위협이 전 지구적으로 확산되고 심화된 오늘의 생명파괴의 현실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선교는 맘몬과 죽음의 세력을 거부하고 하나님과 생명의 길을 선택하는 데 선명하지 못해 왔다. 도리어 한국 감리교회는 한국의 수난의 역사 속에서 민족, 민중의 고난과 함께 한 소중한 선교 유산을 지녔으면서도, 오늘에 와서 영적인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탐욕에 포로가 되어 하나님의 역사적 부름에 바르게 응답하지 못하고 있고, 교회의 확장을 최고의 목표로 삼아 외양적 영광을 추구하며 동시에 영적, 도덕적 교만마저 보이고 있다. 특별히 전 세계적으로 대규모 살상 무기로 가장 중무장했을 뿐 아니라 동서문명과 다종교 전통이 충돌하고 있는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에 위치하면서도 폭력 극복과 평화(shalom)의 실현을 위해 한국 감리교회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종말론적 소망을 바르게 선포하고 겸허하게 이웃과 나누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한국 감리교회가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생명을 하나님의 한 집안으로 받아들이고 생명의 수여자이신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따라, 생명을 파괴하는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 날로 성숙해져 가는 한국의 시민사회의 삶의 세계 속으로 자신을 낮추어 진입하는 데 실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개교회와 지역사회 차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감리교단과 한국 사회 차원의 문제라는 점에서 한국 감리교회의 조직과 제도상의 문제와 직결된다.
1974년 제 12회 감리교 총회에서 총리원측과 갱신측의 분열 이후 1978년에 이르러 양측이 다시 합동하는 과정에서 다원화 감독제와 더불어 개체교회 중심화가 도입되었다. 그것은 다원화 감독제 이전의 중앙집권적 단일 감독제 하의 총리원과 교단이 파벌과 이권관계에 따라 심하게 남용되고 부패하였기에 취해진 고육지책일 뿐이었다. 다원화 감독제로 인해 1978년 이후 한국 감리교회는 감리교회의 본래적 고유성인 ‘연관적 체계'(connectionalism)를 완전히 상실하는 데 이르게 되었다. 한국 감리교회가 개체교회화함으로써 개체교회의 성장에는 크게 기여했을 지는 모르나, 연회나 교단 본부와 개체교회와의 긴밀한 연관성을 통해 교단적으로 서로 협력하는 선교의 활성화는 그 맥이 끊어지고 말았다. 도리어 학연으로 인한 교단내의 정치 갈등, 신학생과 교회의 수급 문제, 목회자 최저 생계비와 지도력 개발 문제, 개교회의 부정직한 부담금 납부 문제, 여성 목회자 차별 및 여성과 청년의 교단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배제 문제, 대형 교회가 야기한 사회적 물의 등과 같은 고질적 문제로 인하여 한국 감리교회는 교회 안팎에서 공신력을 상실하고 손가락질을 받기에 이르렀다. 116년의 영광스러운 역사적 유산을 이어받고 있으면서도 한국 감리교회는 아직도 ‘신앙’과 ‘제도’ 사이를 구체적으로 이어주는 연관적 체계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연관적 체계성이 무력화된 상태에서 교단 본부의 기구의 불필요한 비대화는 목회와 선교의 현장에 투입된 이들을 섬기기보다는 그들로부터 관료적으로 분리된 채로 인적, 물적, 정보적, 지식적 자원을 전 교단적으로 공유하기 위한 본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지 못하고 있다.
Ⅲ. 위대한 감리교회를 위한 비전과 전략
1. 신학교육의 혁신
감리교회의 백년지대계를 좌우하는 것은 신학교육이라 할 수 있다. 한국 감리교회의 신학교육은 존 웨슬리의 유산을 이어받아 신학도의 영성과 품격의 형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경건훈련, 성서와 기독교 및 동서고금의 고전을 위시하여 최근의 학문에 대한 비판적 연구, 그리고 목회와 선교에 필요한 교회와 실천 분야의 이해와 실습을 골고루 갖추어야 한다. 오늘날 신학대학교의 교육은 전문 교역자 양성을 위한 지도력 개발과 비판적 학문훈련을 중심으로 하는 방향과 이에 맞서서 하나님께 대한 경건한 신앙과 거룩한 신앙인격의 형성을 위주로 하는 방향이 긴장하고 갈등하고 있다. 이러한 긴장과 갈등은 교회와 신학교육기관 사이의 불편하고 비생산적인 관계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신학대학교에서 학문연마만이 아니라 신학도의 신앙적 품격형성을 신학교육의 중심과제로 삼고 이를 전 교육과정에 반영할 때 극복될 수 있을 것이다. 신학도들의 신앙적 품격형성은 대학에 종사하는 모든 교수들과 실습 교육에 참여하는 목회자 및 현장 지도자들의 몫이다. 특별히 영성 형성의 과정에서 신학대학교의 교수들은 ‘무엇을'(what) 가르치는가만이 아니라 ‘어떻게'(how) 가르치는가도 중요하다. 신학대학교의 교수는 자신을 학자만이 아니라 신학도들의 신앙인격에 영향을 미치는 기독교 목회자로도 보아야 한다. 이것은 교수가 교회의 전통, 회중의 삶, 목회의 사역을 가르칠 때 취해야 할 기본 자세가 되어야 한다.
현재 감리교단 산하의 신학교육기관들은 거의 대부분 학생의 등록금에 의해 운영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해마다 등록금 인상문제로 학내 분규가 일어나고 있다. 감리교단이 재단임에도 불구하고 감신대를 위시하여 협성대, 목원대는 모두 일반 사립대학교가 안고 있는 교직원 노조와 학교당국과의 문제로 인해 어려움을 안고 있다. 이 모든 것은 1968년 2이후 한국 감리교회가 미국 감리교회로부터 행정적, 재정적 자립을 위해 독립하여 신학교 원조가 중단되면서 야기된 것이다. 이에 따라 신학교육기관들은 교역자 수급과 상관없이 신입생을 선발하거나 과를 신설하고 심지어는 종합대학교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이제 한국 감리교회도 성장했고 감리회 본부와 연회본부도 교회 부담금으로 운영된다면 마땅히 신학대학교도 교단의 지원에 의해 운영될 때가 되었다. 이렇게 될 때 명실상부하게 교단 신학교육기관이 되어서 바람직한 전인적, 통전적 신학교육에 일로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감리교단의 심각한 문제가 되어 있는 교역자들의 학연으로 인한 파벌 형성과 교단 내 각종 정치적 대립과 분란은 세 신학대학교의 대학원 과정을 점차로 통합해 나감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 세 신학대학교는 한국 감리교회의 미래를 위해 각자의 기득권을 과감하게 포기할 것을 서약하고, 대학원 운영과 교육과정을 일정 기간의 연구와 준비기간을 거쳐 교류하고 종당에는 통합함에 있어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을 새롭게 출범하는 ‘감리교 신학대학원'(가칭)의 교육이념으로 삼을 것을 제안한다. 이렇게 통합된 감리교 신학대학원은 대학원생 전원을 교단 장학생으로 우대하고, 교단본부의 교역자 수급의 계획에 발맞추어 개체교회, 지방회, 연회라는 연계 조직을 통해 신학생을 추천하고 후원하며 나아가 교역자로서 훈련하고 안수받을 수 있는 임지와 환경을 제공하는 데 협력하도록 한다. 나아가 통합 감리교 신학대학원에는 한국 감리교 신학을 수립하고 발전시키며, 실천 목회와 다양한 선교 분야의 연구를 통해 교단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전문 신학연구기관들이 재정적으로 교단의 지원을 받고 제도적으로 교단과 교회와 연관을 맺어 활성화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통합 감리교 신학대학원은 통일 시대와 세계 선교 시대에 부응하여 새로운 선교지의 신학교의 설립과 운영, 그리고 신학교육의 방안을 주도면밀하게 준비하는 데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교역 패러다임의 전환
교회의 본질은 하나님과 회중 전체 사이의 만남이 예배, 교육, 친교, 선교를 통해 이루어지는 사건에서 드러난다. 웨슬리는 성공회의 교직주의의 경직성을 버리고 회중이 하나님과 감격적인 만남을 이룸에 있어서 공동 예배, 성례전, 성경연구, 기도, 금식, 심방 등과 같은 ‘은혜의 제도적 수단'(the instituted means of grace)만이 아니라 속회, 신도반, 애찬식, 철야 기도 등과 같은 ‘은혜의 가변적 수단'(the prudential means of grace)을 중시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웨슬리가 전통적 제도 교회의 목회 방식을 교직주의로부터 탈피하여 하나님과 회중간의 감격적인 만남이 이루어지도록 섬기는 것으로 변경했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웨슬리는 은혜의 제도적 수단만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으며 감리교회에게 고유한 은혜의 가변적 수단도 동원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전 회중이 참여할 수 있도록 섬기는 역할이 한국 감리교회의 교역 패러다임이어야 한다.
주일에 드리는 공동 예배는 전 회중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시간이다. 공동 예배는 성인들만이 아니라 회중의 전 연령층이 참여하는 공동의 하늘나라 축제가 되어야 한다. 공동 예배시의 말씀의 선포는 전 회중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도록 초청하고 결단하게 하는 행위이어야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회중은 세계 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선교의 담당자들이 되게 한다. 성례전의 거행은 회중 각자가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함으로 거듭나고 성화되며, 세상에서 섬기는 삶을 살도록 고무하고 격려하는 예전이 되도록 한다.
현재 한국 감리교회의 취약점 중의 하나는 성인들은 설교에만 의존하고 어린이, 청소년층은 교육만 시킨다는 점이다. 성인들을 위한 교회학교 교육은 주일만이 아니라 수요기도회시에도 성인들의 신앙 훈련과 제자화를 위해 이루어져야 한다. 성인 교회교육은 주로 성경공부에 치중해 왔으나, 앞으로는 웨슬리의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신학에 입각한 감리교 교리와 전통에 대한 공부와 병행해야 할 것이다.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사역이 어떻게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 안에서 그리고 그를 위하여 선행적 은혜, 회개, 칭의, 성화,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완전과 온 우주의 새로운 창조의 전 과정과 일치하게 되는지를 체계적으로 교육하는 일은 목회의 성격 자체를 교육적이 되게 할 것이다. 이러한 성인들을 위한 감리교인 훈련과 교육은 교회력을 따라 장기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고, 각종 수련회나 특별집회를 통해서도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예배와 교육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동참하는 회중으로 부름받고 훈련받은 이들은 교제와 선교를 통해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이루게 된다. 기존의 속회 운영은 날로 다원화하고 복잡화하는 정보화 사회에서 이미 형식화되어 거의 소생 불가능해졌다. 이러한 현실에서 앞으로 필요한 것은 세속 속에서 살아가는 성인 남녀들이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지구 전역과 인터넷으로 연결된 각종 동호회나 시민운동 단체에 참여하는 것에 착안하여, 교회가 지역과 시민사회의 삶에 ‘토착화'(뿌리를 내리는 작업)함으로써 회중 각자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새로운 형태의 ‘은총의 가변적 수단’으로서의 소공동체들을 형성하도록 하는 일이다. 처음부터 교역자는 이러한 자발적 소공동체를 교회 구조에 편입시키고 통제하려고 할 것이 아니라, 기존 교회의 내부 조직과는 달리 보다 느슨한 형태로 운영되도로 유도하고 교인들로 하여금 섬김의 지도력을 발휘하게 훈련함으로써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선교를 회중의 삶 한 가운데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면 좋을 것이다. 웨슬리의 속회가 ‘교회안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였다면 한국 감리교회의 새로운 자발적 소공동체는 교회밖의 작은 교회로서 지역과 시민 사회와 소통하고 섬기는 ‘通교회'(inter-chuch)가 되어야 한다.
3. 교단의 개혁
최고정책결정자인 감독들과 감리사들이 선출될 때마다 한국 감리교회는 교단의 개혁과 교회의 갱신을 내세웠다. 그것은 그만큼 최고정책결정자의 비전이 교단의 명운을 좌우할 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전만 가지고는 개혁을 할 수 없으며 그것을 뒷받침하는 구체적인 전략과 조직 그리고 조직원들의 훈련과 실천이 있어야 한다. 웨슬리 전통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실현해 내는 치밀한 조직과 전략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면 먼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전은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에 의해 어떠한 모습으로 제시되어야 하는가? 그것은 개교회의 차원을 넘어서 지방회와 연회 그리고 총회의 차원에서 전 감리교도들이 공유할 수 있는 이 시대의 예언자적 상상력과 사도적 실천이어야 한다. 그것은 주변의 4대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여전히 분단된 채 남아있는 한반도에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단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남북한과 주변 4대 강국이 치열한 군비 경쟁에 돌입하지 않고 도리어 평화와 정의의 실현을 위해 한반도와 주변국들의 시민들이 연대할 수 있도록 한국 감리교회는 에큐메니컬 네트워크를 활성화하고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야 한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로 거듭남으로써 한국 감리교회는 한반도만이 아니라 세계화의 현상을 통해 만나게 되는 다양한 종교, 문화, 인종의 배경을 가진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복음을 전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은 오늘의 세계화된 사회에서 다양한 종교집단과 이익단체들이 근본주의적으로 자신의 주장과 이익을 추구할 경우 폭력과 전쟁 그리고 공동의 파멸이 전 지구적으로 가능하기 때문에 더 절실한 선교적 요청이다. 한국 감리교회는 오늘의 시민사회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과정에 개방적인 자세와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참여함으로써, 기독교가 반시민사회적이고 반민주적이고 배타주의적이며 근본주의적이라는 낡은 이미지를 쇄신해야 할 것이다.
화해와 평화를 위해 일하는 교회로 거듭나기 위해서 필요한 교단 개혁의 전략은 교단 본부의 조직에서부터 적용되어야 한다. 교단 본부는 물론이고 각 연회 본부와 교단의 각종 선교회와 나아가 지방회를 책임지는 임원들과 간사들은 전 감리교회와 감리교 회중 위에 군림하는 것이 아니라 섬김의 자세로 임하여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 그리하여 교단의 최고정책결정자인 감독회장과 감독들의 비전이 실무선에서 전략적으로 구체화될 수 있도록 교단의 각종 조직을 구축하고 모든 정보와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 교단의 모든 정책 결정의 과정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 그리고 각종 ‘노 하우'(know how)가 교단의 물샐틈 없는 공유 시스템으로 흘러들 수 있도록 교단의 각 기구들 사이는 물론이고 연회와 연회간에 지방회와 지방회간에 ‘인트라 네트'(intra-net)의 구축이 시급하다. 그렇지 못할 때, 제아무리 최고 지도자의 개혁 비전이 출중하다 할 지라도 교단 조직의 구성원들은 감독 임기 초반에만 제스처를 취할 뿐 시간이 지남에 따라 다시 관료적 관행으로 되돌아가기 마련이다. 한국 감리교회 본부의 인트라 네트의 구축을 통해 정보와 지식이 공유되면, 그것에 멈추지 말고 교단의 지도자들은 조직의 구성원들을 지속적으로 훈련하고 교육시킴으로써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임원과 간사로 성장하게 해야 한다. 또한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하여 교단의 발전과 개혁에 기여한 구성원들의 업적을 치하하고 포상함으로써 교단이라는 집단을 위해 일하는 것이 개인의 성취로 인지되게 해야 한다. 감리교 인트라 네트 구축은 한국 감리교회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전을 온 세계에 실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전략적 연관적 체계를 창조적으로 회복하는 데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나가는 말
위대한 감리교회의 건설은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비전을 가지고 오늘의 한국 감리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모든 감리교도가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새 출발할 때 가능하다. 그것은 존 웨슬리 목사의 말씀처럼 ‘가장 위대한 자로부터 가장 작은 자에게 ‘이르는 세상의 방식으로서가 아니라 ‘가장 작은 자로부터 가장 위대한 자에게’ 이르는 하나님의 방식을 따를 때 성공할 수 있다.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최고 지도자들이 가장 작은 자로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낮추고 섬기는 자의 모습으로 바로 설 때에 이 시대 교회와 세계에서 영적 권위와 지도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오, 주여! 주의 크신 구원을 한국 감리교회와 여기 모인 우리를 통하여 이루시옵소서!
위대한 감리교회 건설을 위한 감리회 임원대회
결 의 문
기독교 대한감리회 임원대회(2001. 4. 2-4, 경주) 참가자 일동은 21세기 위대한 감리교회 건설이 하나님을 향한 겸손한 회개와 존 웨슬리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기초 위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고백하면서 이를 구체적으로 실천해나가기 위해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1. 우리는 영적이며 도덕적인 능력을 회복하고 민족과 세계를 향한 선교적 사명을 다함으로써 감리교회의 지속적인 부흥과 성장을 위해 힘쓴다.
1. 우리는 목회 지도자 양성, 차세대 지도력 개발, 성숙한 교인 훈련을 이루기 위한 교육적 사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한다.
1. 우리는 “위대한 감리교회 선언문”의 주제들 (곧, 신앙전통계승, 시대인식, 평화통일, 교회와 교인의 사명)이 구현되어 나가도록 평신도 활동에 최선을 다한다.
1. 우리는 감리교회 내의 신앙양심과 지도력 회복을 위해 부담금의 공정한 납부와 투명한 운영이 중요한 요소임을 인식하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적극 힘쓴다.
1. 우리는 위대한 감리교회 건설운동의 핵심이 참된 나눔과 섬김의 실천에 있다고 믿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방안으로 소외된 자를 돌아보며 사회를 섬기는 운동과 남북 나눔 운동을 적극 추진한다.
우리는 이상의 내용들을 실현함으로써 위대한 감리교회 건설 운동이 전 감리교회로 확산되도록 지방과 연회 차원의 대회를 적극 실시하며 나아가 6월의 중앙대회에 적극 동참할 것을 결의한다.
2001. 4. 4.
위대한 감리교회 건설 감리교 임원대회 참가자 일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