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0∼1880년대 새로운 사상과 종교를 갈망하는 한국인들은 선교사들이 내한하기 이전부터 만주와 일본에서 기독교 복음을 접하고 성서를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이들이 해외에서 출판한 한글 성서들은 매서인을 통해 국내에 들여와 읽혔고 그 결과 많은 세례 지원자들이 나왔다. 1744년 영국에서 존 웨슬리 목사에 의해 첫 감리교회 연회가 시작된 이후 미국으로 선교사를 파송하였는데 미국의 감리교회는 1784년 연회에서 공식적으로 독립하였고, 이러한 상황에서 1883년 9월 미감리회 볼티모어 연회 소속인 가우처(John F. Goucher) 목사는 신사유람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 중이던 민영익을 만난 후 한국 선교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우처 목사는 미감리회 국외선교부에 한국 선교 착수를 촉구하였고 일본 주재 미감리회 선교사 매클레이(Robert S. Maclay) 로 하여금 한국 선교 가능성을 모색하도록 하였다. 중국과 일본에서 감리회선교를 개척했던 매클레이는 1884년 6월 24일 내한해서 ‘학교와 병원 사업을 해도 좋다’는 고종의 윤허를 받았다.
이에 미감리회 국외선교부는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 부부와 스크랜턴(William B. Scranton) 부부, 국외여선교부는 스크랜턴 대부인(Mary F. Scranton)을 초대하여 한국 선교사로 임명하였고, 이들 중 아펜젤러 부부가 제일 먼저 1885년 4월 5일 부활주일에 내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