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03년 7월 7일 ~ 8일
- 장소 : 일영연수원
시간/일자 | 7/7(월) | 7/8(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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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6:30~7:00 | 아침기도회 | |
7:00~8:00 | 아침식사 | |
8:00~10:20 | 분과토의 A분과 / 감리교회의 선교와 교회성장 B분과 / 감리교회의 교육의 미래 (신학교육, 교회교육, 목회자 연장교육) C분과 / 감리교회의 조직과 의회제도 D분과 / 감리교회의 역사관과 사회의식 E분과 / 감리교회의 에큐메니칼 의식과 리더쉽 F분과 / 감리교회의 사회봉사와 평신도 역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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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0~10:40 | 휴식시간 | |
10:40~12:00 | 종합토의 사회 : 권오서 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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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12:00~1:00 | 폐회예배 | |
1:00~ | 등록, 방배정(2시까지) | 점심 식사 |
2:00~3:00 | 개회예배 | |
3:00~5:30 | 패널토의 사회: 고수철 감독 주제강연: 김한옥 목사 응답 : 목회자, 신학자, 청년, 여성, 사회복지, 타교단 패널토의 응답 목회자 : 김고광 목사 신학자 : 김흥수 교수 청년 : 연상준 부총무 여성 : 강남순 교수 사회복지 : 조규환 장로 타교단 : 류태선 총무 | |
5:30~7:00 | 저녁 식사 | |
7:00~9:30 | 그룹토의 (10개 그룹별) |
개회예배
개회 예배
전주 / 반주자
예배로 부름 / 다함께
찬송 / 찬송가 31장 영광의 왕께
기도 / 최정필
성경봉독 / 사60:1~3 / 사회자
설교 / “일어나 빛을 발하는 감리교회” / 김진호 감독회장
찬송 / 찬송가 258장 물 건너 생명줄 던지어라
알림 / 집례자
축도 / 장기천 감독
후주 / 반주자
아침기도회
아침기도회
사회: 엄마리 총무
전주 / 반주자
예배로부름 / 다함께
찬송 / 찬송가 23장 만 입이 내게 있으면
1. 만 입이 내게 있으면 그 입다가지고 내 구주 주신 은총을 늘 찬송하겠네
2. 내 은혜로신 하나님 날 도와주시고 그 크신 영광 널리펴 다 알게하소서
3. 내 주의 귀한 이름이 날 위로하시고 이 귀에 음악 같으니 참 희락 되도다
4. 내 죄의 권세 깨뜨려 그 결박푸시고 이 추한 맘을 피로써 곧 정케하셨네 아멘
기도 / 이대교
성경 봉독 / 고전 10:31-33 / 사회자
설교 / “앞서가는 감리교회” / 이종현 감독
찬송 / 찬송가 370장 어둔 밤 쉬되리니
1.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지켜서 찬 이슬 맺힐 때에 즉시 일어나
해돋는 아침부터 힘써서 일하라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2.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지켜서 일할 때 일하면서 놀지 말아라
낮에는 골몰하나 쉴때도 오겠네 일할 수 없는 밤이 속히 오리라
3. 어둔 밤 쉬 되리니 네 직분지켜서 지는 해 비낀 볕에 힘써 일하고
그 빛이 다하여서 어둡게 되어도 할 수만 있는 대로 힘써 일하라
알림 / 집례자
축도 / 이종현 감독
후주 / 반주자
폐회예배
감리교회 발전을 위한 폐회예배
집례 : 김 영주 총무
◎ 과거에 대한 감사와 고백 ◎
전주 / 주악
✷ 입례송 / 찬송가 13장 / 다 함 께
(예배위원 입장)
1.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하나님 주앞에서 우리마음 피어나는 꽃같아
죄와슬픔 사라지고 의심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주 밝은빛을 주시네
2. 땅과하늘 만물들이 주의솜씨 빛내고 별과천사 노랫소리 끊임없이 드높아
물과숲과 산과골짝 들판이나 바다나 모든만물 주의사랑 기뻐찬양 하여라
3. 우리주는 사랑이요 빛과 진리이니시 삶이기쁜 샘이되어 바다처럼 넘치네
아버지의 사랑안에 우리모두 형제니 서로서로 사랑하게 도와주시옵소서
4. 새벽별의 노래따라 힘찬찬송 부르니 주의사랑 줄이되어 한맘되게 하시네
노래하며 행진하여 싸움에서 이기고 승전가를 높이불러 주께영광 돌리세 아-멘.
✷ 예배로 부름과 기원 / 집례자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그 영광을 열방중에, 그 기이한 행적을 만민중에 선포할지어다. (대상16:23~24)”
찬송과 영광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능력의 하나님, 저희에게 귀중한 시간을 허락하여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시간 감리교회의 발전을 위하여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우리는 이틀동안 과거를 돌아보며 감사와 고백이 있게 하시고, 오늘 선포되는 말씀에 응답하여 변화되게 하시고, 발전된 미래를 발견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자리에 성령님께서 임재하셔서 저희로 하여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게 하옵소서. 모든 영광을 주께 드리오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
✷ 경배찬송 / 찬송가 36장 / 다함께
1. 주 예수 이름 높이어 다 찬양하여라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찬양
금면류관을 드려서 만유의 주찬양
2. 주 예수 당한 고난을 못 잊을 죄인아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찬양
네 귀한 보배 바쳐서 만유의 주찬양
3. 이 지구위에 거하는 온지파 족속들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찬양
그 크신 위엄 높여서 만유의 주찬양
4. 주 믿는 성도 다함께 주 앞에 엎드려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찬양
무궁한 노래 불러서 만유의 주찬양 아-멘.
✷ 죄를 고백하는 기도 / 다함께
사랑의 하나님, 이 땅에 복음을 보내시어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저희를 구원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감리교회를 세우시고 빛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그러나 때로는 감사의 마음과 저희에게 주신 사명을 뒤로하고 시기와 욕심에 사로잡혀 다투고 분열되었던 잘못을 고백합니다.
용서의 하나님, 죄를 고백하는 저희들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제부터는 사랑과 용서의 주님을 따르는 빛의 자녀답게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는데 총력을 기울이게 하옵소서. 날로 새로워지고 성장해감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감리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신앙고백 / 감리교회 신앙고백 / 다함께
1. 우리는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며 주관하시는 거룩하시고 자비하시며 오직 한 분이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습니다.
2. 우리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부활승천 하심으로 대속자가 되시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3. 우리는 우리와 함께 계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완전하게 하시며 위안과 힘이 되시는 성령을 믿습니다.
4. 우리는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구원에 이르는 도리와 신앙생활의 충분한 표준이 됨을 믿습니다.
5.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믿음을 통해 죄사함을 받아 거룩해지며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동참하도록 부름받음을 믿습니다.
6. 우리는 예배와 친교, 교육과 봉사, 전도와 선교를 위해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믿습니다.
7. 우리는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함으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을 나누고 평화의 세계를 이루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형제됨을 믿습니다.
8.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과 심판, 몸의 부활과 영생 그리고 의의 최후승리와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믿습니다.
오늘의 기도 / 한준길 장로(남선교회전국연합회장)
기도응답송 / 주악
◎ 현재 선포되는 말씀과 응답 ◎
✷ 성경봉독 / 행 3:1-10 / 황성희 총무(여선교회전국연합회 총무)
✷ 특별찬양 / 헤즈키아 연주단(화정제일교회)
✷ 설교 / “일어나 걸으라” / 배정길 감독
성만찬
집례: 김진호 감독회장 / 보좌: 배정길 감독, 고수철 감독, 이종현 감독, 권오서 감독
성만찬으로 초대 / 집례자
그리스도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그 뜻에 따라 살기를 결심하는 여러분들을 이 거룩한 식탁에 초대합니다. 주님을 향하여 마음을 높이 드시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성만찬 제정사 / 집례자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시던 밤,
떡을 손에 가지사 사례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해 내어주는 나의 몸이니 먹을때마다 나를 기억하여라.”
또 잔을 가져 사례하시고, 제자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해 흘린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 마실때마다 나를 기념하여라.”
성령임재의 기원 / 집례자
거룩하신 하나님,
이 곳에 준비한 거룩한 식탁에 성령께서 임하셔서 성별하여 주옵소서.
또한 이 떡과 포도주로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게 하시고, 이를 먹고 마심으로
그리스도의 새로운 몸을 입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받게 하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의 기도 / 다함께
성만찬에참여 / 질서있게 앞으로 나와 떡과 잔을 나눈다 / 다함께
성만찬 후 감사기도 / 다함께
저희를 구원하시려고 생명을 내어 주신 하나님, 이 거룩한 신비에 감사합니다.
성령의 능력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 하나님나라가 이 땅위에 이루어질 때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으로 살게 하옵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미래를 향하여 세상속으로 ◎
✷ 찬송 / 찬송가 259장 / 다함께
1.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2. 선한 역사위하여 힘을 내라 주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3. 주님 부탁하신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과바다 건너가 힘을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4. 동서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후렴)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 파송의 말씀 / 집례자
집례자 : 그리스도 예수님의 일꾼인 여러분!
전도와 봉사를 위해 세상으로 나아가십시오.
회 중 : 아멘, 주님, 우리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 축도 / 김종문 감독
✷ 후주 / 예배위원 퇴장 / 반주자
✚ 위 예배문은 홍보출판국 발행 ‘새예배서’의 예배순서를 근거로 감리교회의 과거 ․ 현재 ․ 미래를 조명하여 봄으로써 결단하는 예배가 될 수 있도록 구성한 공동예배문으로 최인철 목사(경기연회 간사)가 작성하였습니다.
주제강연 / 감리교회, 올무에서 벗어나기 / 김한옥 목사(용두동교회)
주제강연
감리교회, 올무에서 벗어나기
김한옥 목사 (용두동교회)
시작하는 말
오늘 우리 신앙인은 여러 가지 의미에서 불안감과 위기감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있다.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미로에서 방황하며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한계성을 경험하고 있는 현실 때문이다. 경제가 성장하다가 멈추고 통일의 열망이 달아오르다가 식기 시작하듯 교회성장도 멈춰버렸다. 교회성장을 유난히 강조하던 한국교회로서는 크게 낙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모두가 교회의 미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긴 한숨을 쉬게 된다. 서구의 교회처럼 우리 교회의 미래도 결국은 없는 것인가? 교회의 미래를 위해서 계획한 일들이 아무런 열매도 없이, 그리고 그 계획의 벽이 힘없이 무너지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교회의 미래를 논할 수 있는가?
사실 교회의 미래는 인간이 계획한 일의 성취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주시고(Vision) 맡겨주신(Will) 일들을 약속으로 받아 성취하는 일에 의해서 결정된다. 하나님이 보여주신 교회의 모습과 기능과 역할은 시대의 변화에 관계없이 유지되는 것이었다(Contemporary). 그런데 이러한 모습들이 세속적인 요인들에 의해서 오염되고 변질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오염과 변질에서 본래의 교회로 회복시키는 것이 교회의 미래를 여는 길이다.
1. 극복해야 할 오염들
1) 교회의 정체성 문제
교회가 사회로 부터 받은 비판적인 공격 때문에 정체성에 상처를 입고 흔들리기 쉽다.
교회가 사회 속에 있는 하나의 기구(Organization) 임에는 틀림없지만 그래도 다른 기구나 조직에 비해서 전혀 다른 설립 목적과 기능을 가진 것이 사실이다. 교회는 하나님을 향한 신적(神的)인 기능과 사회를 향한 사회적 기능이 있다. 그런데 사회가 신적기능에 관심 갖지 않는다고 해서 교회마저 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노릇인데 오늘 교회의 현실은 이런 부분에 있어서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2) 지도력(Leadership)문제
이 시대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게 거론되는 것은 리더십 문제다
그래서 지도력 개발이라든가 지도자 훈련 같은 분야가 특별히 강조되고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우리 감리교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결국은 지도자의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새신자가 아니라 교회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문제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들이다.
조직의 설립목적에 따라 그 조직의 지도자의 역할이나 자격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교회지도자와 사회지도자는 자격기준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사회에서 지도자의 자격과 능력에 대한 분류가 합리적으로 되어있다고 볼 수 없다. 문제는 교회지도자에게 사회 지도자의 자격기준을 적용하고 요구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지도자 자신도 사회지도력과 방법론으로 교회를 지도한다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우리의 지도자로서 예수 그리스도는 당시 사회의 지도자들과 반대되는 자기 인식을 가지고 그 일을 선구자적으로 실천하셨다.
3) 전문성 문제(Amateurism과 Professionalism)
사회의 부조리는 불합리한 자리매김에서 비롯된다. 즉 전문성을 요구하는 자리에 비전문가가 앉아 있는 경우다. 예를 들면 과거 군사 정권 때 군 출신 장성들이 정부의 요직에 앉아 그 일을 수행했던 일들이다. 그것은 자연히 비능률과 비효율이라는 부작용을 가져왔다.
오늘의 사회는 세분화되고 전문화된 것이 특징이다. 그래서 사회의 모든 조직이나 기구들은 이 전문성의 원칙을 잘 지킨다. 그런데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구분이 잘 안되고 혼돈을 일으키고 있는 유일한 기구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교회이다. ‘배우면서 일하는’시대는 지났다. 준비된 전문가가 일을 맡아 해야 한다. 비전문가에 의해서 중요한 일이 결정되고 이끌어 진다면 그의 미래는 비극적이다. 마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2. 감리교 선교
1) 선교의 단순한 의미
교회의 기능과 역할 가운데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신앙의 개념과 해석에 대한 단순화작업이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인 ‘구원 얻음’이 단순하지 않으면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지는데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비록 준비 과정은 복잡할지라도 실천과정은 아주 단순해야 한다. 선교의 중심핵은 하나님의 복음이고 이 복음은 종적(Vertical)으로 움직이는 성장과 횡적으로(Horizontal) 움직이는 확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교회 성장과 복음 확장이라는 목적을 가지고 역사하는 교회의 일이며 하나님의 일이다.
지금 우리는 교회의 성장이 멈추었다는 위기감을 가지고 있다. 수적 증가가 멈추고 어떤 경우는 오히려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교회성장을 확장의 관점으로 보면 복음과 하나님 나라는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의 키도 그렇고 모든 식물의 키도 자라는데 한계가 있다. 논에서 자라는 벼도 그렇다. 떨어진 씨앗이 처음에는 싹이 되어 자라다가 그것이 이삭만큼 자란 후에는 열매를 맺고 그 열매가 익으면 추수한다 (마가4:26-29).
이제 이삭은 그 키가 더 이상 자라지 않지만 그 열매는 종자 씨앗이 되어 다음해 다른 논에서 다시 성장을 시작한다. 한국 교회의 성장이 멈추었는가? 이제는 열매가 되어 다른 논에서 또 다른 성장을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성장의 연속성이며 그것이 복음의 확장이며 해외선교(다른 논에 뿌린 씨)다. 민들레 씨앗도 그 자리에서 다시 짝을 틔우지 않고 어디론가 멀리 날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이 경우 좋은 씨앗을 준비하는 일이 필요하다. 선교의 내용으로서의 신앙훈련과 선교사의 철저한 훈련이 필요하다.
2) 선교의 분야
- 하나님나라 확장으로서의 이방세계(교회 밖)
- 하나님나라 모형으로서의 교회기능 및 목적 회복
- 하나님나라의 사회 침투로서의 복지사업
- 하나님나라 원동력으로서의 성령역사
3) 선교분야에 의한 교회의 특성화
교회에게 모든 분야의 선교가 필요하겠지만 보다 높은 효과를 위해서는 특수 분야에 대한 전문화와 집중화 작업이 필요하다.
3. 교육
1) 신학교육
신학교육이 신학을 목적으로 삼고 온 학생에게 실시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의 성적순에 의해서 선정된 학생에게 수동적으로 실시되는 교육이라는 모순을 극복하는 일이 중요하다. 교회를 위한 신학이 아니고 신학을 위한 신학인 겨우는 존재의 이미가 약해진다. 그러므로 교회를 위한 신학이 되기 위해서는 교단과 보다 긴밀한 관계형성이 필요하다(운영이나 학사전반에 걸쳐서). 오늘의 상황으로 볼 때 이론신학(Theoretical)보다 실천신학(Practical)이 더 보강되어야 한다. 동시에 교육과 목회의 바람직한 만남과 교류가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해야할 신학교육의 목적은 목회자로 하여금 자기만의 독특한 관점(Perspective)을 가질 수 있는 건설적이며 창조적인 맞춤형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다. 동일한 틀에 넣어 만들어내는 대량생산적인 교육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2) 교회교육
가. 교육현장
- 가정 – 신앙교육을 어려서부터 교회에만 전담시키는 잘못된 생각은 고쳐야 한다. 유대인은 12세까지는 가정에서 교육시켰다.
- 교회 – 교회교육에서는 특별히 실천교육을 강조할 것이다.
그리고 교회론이 교회교육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 사회 –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 될 곳으로서의 사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 질 곳. 우리의 삶이 있는 곳으로서의 사회와 교회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갖도록 한다.
나. 교회교육투자
- 일반학교 시설은 가정만 못하고 교회학교 시설은 예배당만 못하다.
- 그런 상황에서 교육의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교인들의 유산을 교회 교육에 투자하기’운동을 일으킬 만한다.
3) 목회자 교육
목회자의 고유기능.전문기능 중에 하나가 예배를 연출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예배 신학에 대한 철저하고 심도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
예배의 새로운 형태의 개발이 필요하다. 제3의 교회, 제3의 세계, 제3의 예배 형태 등이 연구의 과제이다.
4. 기구 및 조직
1) 문제점
ㆍ 다단계 의회제도 – 업무. 기능의 중복
ㆍ 시간.재정.인력 낭비하는 제도
ㆍ 영성이 결핍되기 쉬운 구조
ㆍ 내부 지향성의 구조
ㆍ 지도자 양성이 불가능한 구조
2) 제안
ㆍ3의회제도(당회 – 지방회 – 총회)
ㆍ감독제도 개선
ㆍ선거제도 개선
ㆍ평신도와 목회자의 긴장구조. 갈등구조. 대결구조를 극복하는 길
5. 에큐메니칼 지도력
감리교회의 강점은 신학의 다양성과 실천적 신앙에 있다.
그러므로 다양성이 핵심인 에큐메니칼 운동에 아주 적합한 감리교회다.
그러나 현실은 이 운동에 있어서 매우 낙후되어 있다. 자신에게 합당한 위상을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학자와 목회자와 젊은이를 대상으로 해서 의도적인 지도자 양성이 필요하다.
맺는말
세상을 판단해야 할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판단 받고 선구자적 역할을 해야 할 교회가 세상보다 뒤쳐진 현실에 대한 칙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며 옳은 일 앞에서 용기를 가지며 감리교회 앞에서 책임을 찾아 감당해야 한다.
발제에 대한 응답 - 목회자의 입장에서 / 김고광 목사(수표교 교회)
응 답/ 목회자
발제에 대한 응답 – 목회자의 입장에서
김 고광 목사(수표교 교회)
들어가는 말:
한국 감리회의 오늘은 어제의 산물이다. 오늘의 감리회 문제는 어제에 그 고리를 걸고 있다. 우리는 어제의 유산을 자랑하는 전통주의에 빠져 오늘에 안주하여서도 안될뿐더러 오늘이 문제라 하여 내일을 위한 희망을 접어도 안 된다. 그러기에 내일의 발전을 위한 그림은 우리의 시작을 바로 알고 오늘에서부터 새로 시작하여야 한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은 서로를 비춰주는 거울놀이의 시/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런 입장에서 목회자로서 오늘 감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헤쳐나가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는 점들을 나누려고 한다.
1. 감리회의 정체성을 회복하여야 한다
한마디로 오늘 한국 감리회는 그 근본적인 정체성을 잃어가는 형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은 오늘 감리회 신학과 목회철학 그리고 제도에 이르기까지 오늘의 감리회는 이 운동을 시작할 때의 웨슬리와 그 신학과 목회, 제도와 꿈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기에 처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거기서 찾은 정체성에 근거해서 내일을 위하여 오늘 새로 시작하듯이 나가야 한다. 아무리 한국 감리회가 미국 감리회의 선교에 의하여 시작되어 그 영향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한국의 감리회는 미국 감리회의 지교회가 아닌 이상 우리의 정체성을 웨슬리에게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다.
웨슬리의 교회사적인 자리 매김은 종교개혁의 완성자로서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는 이러한 웨슬리의 교회사적인 자리 매김을 제대로 해 오지 못했다. 그리하여 웨슬리의 신학은 신학적 논의의 주류에 서지 못했고 웨슬리의 성령운동은 교회와 사회의 개혁운동이라는 특색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 웨슬리는 영국교회와 사회를 넘어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인 과정을 이끌어 그 정점에 도달하게 하였다. 이런 차원에서 감리회의 신학과 제도는 그 본래적인 의미와 위치를 되찾는 정체성 회복이 시급하다.
오늘 한국 감리회의 문제는 그 근본에 있어서는 지도자들의 문제이다. 여기서 오늘 감리회의 모든 문제들이 파생되어 나오고 있다. 오늘 감리회 목회자들은 웨슬리에게서 지도자로서의 정체성을 찾지 않고 있다. 대신에 소위 말하는 목회에 성공한 지도자, 교회 정치에 승리한 지도자에 빠져서 웨슬리의 신학이 있는 지도자와 목회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 감리회는 웨슬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빈 껍데기 감리교인과 교회가 되어버린 감이다. 웨슬리는 영국 성공회의 성직자 상을 바꾸어 목회자로서 전도하고 실천하는 지도자상을 이루었고 그 힘으로 교인들과 교회를 새롭게 하고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렇게 하고서도 그는 그 어떤 지위와 칭호도 추구하지 않았고 오직 그리스도의 교회가 내일을 위한 구원의 선교사역을 제대로 감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오늘에 충실하며 내일을 위한 통찰력을 가지고 성화의 길을 걸었다고 할 수 있다. 웨슬리는 분명히 신학을 가지고 신학이 있는 목회를 하였다. 이것이 감리회의 정체성을 요체이다. 이런 웨슬리의 신학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목회의 틀이 무엇인지는 신학자들의 과제로 남아있고 감리회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 웨슬리의 정체성을 언제나 새롭게 오늘에 적용하고 내일의 교회를 위한 통찰력을 가지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사명이 있다. 이것이 감리회의 목회지도자들이 언제나 추구해야할 정체성이요 사명이다.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감리회는 그 목회의 내용에 있어서나 제도에 있어서 웨슬리가 걱정한 빈 껍데기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형편이다. 우리는 한국적인 상황이 웨슬리의 그것과 다르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한국 감리회의 오늘의 주소는 웨슬리적인 정체성을 유지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하기 어렵다. 감리회의 정체성과 지도자의 모습을 웨슬리에게로 돌아가 다시 확인하고 그것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2. 신학교육과 수급정책이 새로워져야 한다
지도자의 문제, 특히 목회자의 문제는 소명 받은 사람들을 받아 가르치는 신학교와 그들을 기르는 교회의 문제이다. 신학교와 교회의 괴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직도 여기 대한 좋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신학교는 교회를, 교회는 신학교가 문제라고 하지만 어떻게 이 문제를 풀어나갈 수 있느냐 하는 면에서는 발전적인 모색이 별로 없다. 감리교 신학교육은 웨슬리의 신학과 그 교회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하여야 한다. 신학교는 단순히 시대의 신학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인격형성과 지도자로서의 자기훈련을 하도록 하고 그 위에 기본적인 신학적 학습을 해 나가도록 해야 한다. 신학교육은 교회와 시대가 필요하고 요청하는 지도자를 양성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감리회의 세 신학교의 교육의 교육내용을 살펴보면 이런 목적에 얼마나 부합한 지 의문이 된다. 신학교육의 내용은 종전의 세분화된 분야로 나누어 장벽이 높고 다른 분야와 inter-discipline적인 교육이 드물다. 지도자로서의 전인적인 통찰력과 신학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하는 기본적인 신학교육과 목회현장에서 필요한 실천적인 학습에 얼마나 효과적인 교육을 받고 있는지 문제이다.
그러면서 양산되는 졸업생들의 문제를 외면하다시피 하고 있다. 이 수급의 문제를 학교가 하기 어렵다면 연회가 새로운 자격/과정의 개선책을 도입하여 필요한 수급을 조절해서 감리회 목회자들의 질과 양을 지켜나가야 한다. 교역자 수급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교회의 문제이다. 이로 인하여 생기는 목회현장에서의 지도자로서의 목회자의 입장을 지키지 못하고 교회로 나가기 위해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오늘의 현상들을 개인의 문제로 탓하기 전에 신학교와 교단이 이를 시정해 나가야 한다.
한가지는 신학교가 학생 수를 줄이고 교단이 학생들을 장학금으로 양성해 나가야 한다. 그렇지 못한다면 연회의 자격과정에서 필요한 교역자만큼 안수를 주는 엄격한 제도가 실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소위 말하는 교회세습은 제도적으로 어는 정도 정리되어야 한다. 그래야 젊은 목회자들이 희망을 가지고 감리회에 헌신을 할 것이다. 이것도 저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오늘의 현실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좋은 지도자들을 놓치고 교회의 내일은 밝지 못할 것이다. 이것을 빨리 해소하는 제도적인 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3. 교단의 새로운 풍토와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오늘의 감리회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감리교단을 떠나는 것이 나을 것이라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이것은 오늘의 교회와 목회의 풍토가 얼마나 심각한 위기에 와 있는가를 말해주고 있다.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라고 할 수 없는 오늘의 감리회의 풍토요 우리 전체의 문제요 교단의 문제이다.
아래와 같이 시급한 제도적인 문제와 개선을 모색해 본다.
(가) 최저생계비 지급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개척교회를 위한 정책이나 미자립 교회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
교회개척이 지금과 같이 개 교회와 목회자 개인의 일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신도시가 들어서고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는 사회에 대한 연구와 개척지에 대한 선택과 구입과 장소선정등과 같은 일들은 교단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연회가 일을 하는 기구라고 하지만 이런 일을 할만한 인적전문가와 물적인 뒷받침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개척교회, 특히 도시화되는 지역에서의 개척교회는 더 이상 개인과 개체교회에만 의존할 수 없는 형편에 와 있다.
그리고 미자립 교회 중에서 자립할 수 있는 교회와 특성상 미자립으로 있을 수밖에 없는 교회를 객관적으로 조사하여 그 실태를 정확히 파악하여야 한다. 그리고 모든 미자립 교회의 교역자들에 대한 최저생계비를 지급하는 일을 최우선적으로 실행하여야 한다.
이를 위한 재정은 부담금 제도 개선에서 다루어서 늘리고 자립교회들이 선교비를 교단으로 모아서 지급하는 방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어디까지나 정직이 근본적으로 확립되어야 한다. 부담금을 내는 교회도, 제도를 운영하는 교단도 정직하게 변해야 한다.
그리고 미자립교회 교역자의 가족, 연령, 목회연한, 지역환경 등등을 객관적이고도 세밀하게 조사하는데도 정직이 필수적이다. 나아가 교단이 이를 집행하는 일에도 정직성이 첫째요 투명성이 그 뒤를 따라야 한다. 최저생계비도 책임지지 않으면서도 감독제도를 유지한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맞지 않는 제도이다. 감리회 교역자들이 어디서 목회하든지 최저생활에 대한 염려를 벗어날 수 있어야 목회자로서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살려나갈 수 있다.
(나) 부담금의 제도적인 개선이 필수적이다
지금과 같이 교단의 재정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모든 감리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제대로 모르고 일부 관계된 이들만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부담금개선을 꾀하기 어렵고 최저생계비를 위한 정책을 호소할 수 없다. 여기에 대한 제도적인 개선이 있어야 한다. 그 중에 하나가 부담금을 지금과 같이 결산의 몇%로 정하는 것을 탈피하여야 한다. 대신에 재정이 필요한 모든 항목들을 나열하고 각 항목에 몇%의 부담금이 배정되도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건비, 사업비, 선교비, 신학교육비, 최저생계비, 사회봉사비, 은급비 등등에 몇%의 부담금이 필요한지 산출하여 이에 근거하여 교회가 내는 부담금이 어디에 쓰여지는가를 명확히 법으로 정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항목을 변경하여 자의적으로 운영되는 교단의 재정실태를 탈피하여야 할 수 있다.
그리고 앞서 지적했듯이 지금 개체교회들이 지급하는 미자립교회 지원과 선교사지원비 같은 항목도 어떤 모양으로든지 교단으로 모아져서 정직하고 투명하고 책임적으로 운영되도록 제도적 개선이 있어야 한다. 이런 재정운용에 관해서는 전문가를 고용하거나 전문기관에 위탁하여 운용하도록 하고 교단의 위원회는 감시 역활을 하도록 하는 것도 개선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부담금제도가 개선되어서 교회와 교단의 재정운영이 누가 보든지 투명하고 정직하게 확립되도록 하면 지금보다 더 많은 부담금을 내더라도 교회들이 정직하게 따를 수 있을 것이다.
(다) 은급비 운영개선이 필요하다
은급제도는 감리회가 자랑하는 앞선 제도였다. 그러나 지금은 늦게 시작한 다른 교단에 비해서 그 내용의 충실과 운영의 계획에 있어서 뒤떨어져 있다. 그것은 감리회의 은급비 부담이 적어서도 아니고 은퇴자들이 갑자기 늘어서도 아니다. 이런 모든 것은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추이를 연구하면 이미 오래 전에 이런 저런 문제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재정운영에 있어서 가장 전문성을 요하는 이 일을 가장 비전문적인 목회자들이 책임자로 운영하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은급을 관장하는 위원회는 지금처럼 기금운용에서는 물러서고 전문기관에 위탁하여 운영하는 제도적 개선과 아니면 재정전문가를 계약하여 책임적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개선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 은급비 부담을 늘리고 지급을 줄이는 식의 방법은 언제까지나 미봉책이 될 수밖에 없다. 외부 전문기관에 위탁운영이나 전문가를 책임자로 안치는 제도적 개선 이후에 문제점을 보완하여 나가도록 하여야 한다.
(라) 목회자 연급제도가 개선되어야 한다.
감리회 목회자들의 연급제도는 평신도지도자들과 더불어 교회 지도층의 노령화를 가져왔다. 준회원으로 과정 중에 있는 동안에는 연급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정회원이 되면 연급제도를 폐지하는 것이 옳다. 그래서 교회의 모든 기관과 회의에 연급 순이 아닌 여러 가지 기준에 의하여 형성. 운영되도록 함으로 교회지도자들의 위화감과 계급성을 조성하는 것을 타파하고 종교개혁의 완성자로서의 웨슬리적인 통찰과 지도, 교회와 교단 운영의 유연성과 창조성을 이루어 감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다.
4. 감독제도와 선거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오늘의 감리회가 내일에 희망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이 감독제도 및 선거제도의 개선이다. 물론 본부 기관과 기타 감독제도에 관한 여러가지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지금의 감독제도와 선거에서 오는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근본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지금과 같은 감독과 그 선거제도 안에서는 본부 기관과 그 인사문제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인 흥정이나 막후교섭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을 개선하기 어렵다. 그러므로 우리가 감리회의 내일을 위한 발전을 진정으로 바라고 기도한다면 현재의 감독제도와 선거가 이번 입법총회에서 가장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가) 감리회의 정치는 과연 감독정치인가?
교회의 감독/주교직은 성서적으로 중요한 직책이다. 그러나 교회가 발전하면서 이 감독/주교직에 대한 해석과 제도채택에서 다양한 입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다. 감독/주교제도를 사용하는 교회의 입장에서 볼 때 감독/주교직은 온 교회의 성직자들과 교인들은 물론 사회에서도 존경받아야 마땅한 직책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 감리회의 감독직에 대한 현실은 너무나 동떨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감독/주교제도를 실시하는 교회에는 두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는 감독/주교가 교구 안의 성직자들의 인사권을 가져야 한다. 둘째는 교구 안의 성직자들의 생활비를 책임지는 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 오늘의 한국 감리회는 이 두 가지 전제 중에 어느 하나도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주교제도가 감리교회 정치제도라고 주장하지만 역사적으로 옳지 않다. 웨슬리는 마지막까지 감독/주교직을 원하지도 않았고 그런 제도를 인정하지도 않았다. 감독제도는 웨슬리의 뜻을 거슬려 미국에서 에즈베리의 주관으로 시작한 제도이다. 그러므로 감리회의 정치는 감독제도라는 것은 성립할 수 없는 것이다. 다만 이것은 미국 감리회에서 시작하여 여러 나라에서 시행하고 있을 뿐이다. 감리회의 감독제도의 성립이 역사적으로 이러할 찐데 우리도 이제는 이 제도에 관하여 신학적으로 역사적으로 다시 생각할 시점에 와 있다.
(나) 감독선거 제도개선은 참으로 시급하다
현실적으로 감독제도를 사용해 오고 있는 한국 감리회는 위에 든 신학적, 역사적 사정을 알더라도 이 제도를 폐지할 수 없다면 이 제도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그 선거제도를 개선하여 지금과 같은 금전이 난무하는 폐단은 막아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선거제도로는 한국 감리회의 내일을 결코 밝다고 할 수 없다. 감독선거법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수 차례에 걸쳐서 시도되었으나 번번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 이유는 어디까지나 정치적이요 선거에서 오는 금전관계와 논공행상에 따른 이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오늘 감리회의 문제의 근원이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러므로 감독선거제도 개선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필수적인 것이다.
그리하여 올해에는 8개 연회에서 감독선거를 제비뽑기로 하자는 건의안이 통과되었다.
그리고 이 제비뽑기 안을 단일안으로 만들어 장정개정위원회에 제출했다. 이번 제비뽑기안은 선거와 제비뽑기를 절충한 개선책이다. 제비뽑기에 대하여 반대하는 쪽은 회원들의 투표권이 제한을 받고 자질검증이 어렵고 민주적인 절차가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대신에 지금의 선거제도를 강화하여 부정선거를 없애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 나온 단일안은 이런 지적들을 수용하면서 제비뽑기를 가미하는 제도이다.
이 단일안을 간단히 말하면 다음과 같다.
연회원들이 각기 4명의 감독후보를 투표로 선출한다. 감독후보를 종다수로 분별하고 그 중 최다득점자 순으로 5명을 감독후보로 세운다. 그리고 준비한 비밀 투표함에서 본인들이 제비를 뽑아 감독을 선정한다. 만약 5명중 1명이 후보사퇴를 하면 차점자를 채우는 방법으로 5명이 제비뽑기로 한다. 이 때에 연회감독 선출은 모든 연회가 동시에 하고 시간 여유가 없도록 운영한다. 이렇게 선정된 연회 감독들은 총회가 속개될 때에 동시에 발표된다. 그리고 그 중에서 감독회장후보로 나서는 감독들에게는 소견 발표시간이 주어진다. 다음에 총회원들이 비밀투표를 하여 과반수로 감독회장을 선출한다. 과반수가 넘는 후보가 나오지 않았을 시에는 최고득점자 2인을 놓고 종다수로 선출한다. 이와 같은 감독선거 개선안은 민주적인 원칙 아래 회원들의 투표권을 최대한으로 살리고 후보검증을 하고 제비뽑기로 함으로 지금과 같은 잘못된 선거 픙토를 바로잡자는 것이다.
(다) 장정개정위원회 개선도 필요하다
현금의 감리회 장정개선제도는 근본적으로 장정개정위원회에 많은 권한을 실어주고 있다. 이런 제도의 장점은 효율성에 있다. 그러나 문제도 있다. 그것은 장개위가 전체 여론을 수렴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올해에 8개의 연회에서 제비뽑기 건의안이 통과되어 그 단일안을 만들어 장개위에 제출된 상태이다. 그러나 현금의 사정으로 보면 장개위원들 중에는 공공연히 제비뽑기안을 반대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물론 장개위 개개인들의 의견 발표와 찬반에 대하여서는 개인적인 자유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연회에서 파송하는 장개위 위원들은 연회가 올린 건의안을 따르는 것이 순리이다. 왜냐하면 장개위 위원들이 연회의 파송을 받은 이상 그 연회가 건의하는 안건들이 채택되도록 하는 것이 연회 파송의 근본 취지를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장개위는 위원 개개인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파송한 연회의 의견을 대변하는 것이 먼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현금 장개위 위원들은 8개 연회가 통과하여 올린 건의안을 우선 채택되도록 하여야 한다.
이뿐 아니라 장개위는 상시적으로 운용하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감리회 전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야 한다. 장개위가 이런 기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면 장정개정위원회 조직과 운영을 개선하는 것이 전체 감리회의 의견수렴과 그 채택을 통하여 보다 합리적이고 공동체적인 교단발전을 위해서 필요하다.
나가는 말: 세계와 교회를 조망하는 사도적 지도자로서의 목회자
물론 오늘 감리회의 문제는 제도만의 문제는 결코 아니다.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의 문제이다. 그러므로 목회 지도자 양성과 그 과정에 대하여 개선책이 필요하다. 동시에 제도 개선이 함께 따라야 한다. 지금으로 보아서 지도자 양성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제도개선은 법안이 통과되는 대로 당장 실현할 수 있다.
오늘 감리회는 긴 시간을 기다려 지도자를 개선하여 오늘의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에는 너무나 급박한 오늘의 우리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우선 제도개선부터라도 서둘러야 한다. 그 중에서도 감독선거개선이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감독은 감리회를 대표하는 지도자들이요 이 지도자들이 어떻게 선출되는가 하는 것이 이 지도자에 대한 존경과 지도력이 인정받게 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선거풍토에서는 감독에 대한 이런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럼으로 차선이라고 하더라도 감독선거개선이 절실한 것이다. 이것이 감리회 전체의 정직성을 회복하고 이것이 성립되어야 감독의 도덕적 권위가 실현되고 이 도덕적 권위가 확립되어야 감독들의 지도력이 제대로 발휘될 것이다. 이것이 제대로 발전되어야 다른 여러 분야들의 개선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감리회의 지도자들, 특히 목회 지도자는 세계와 교회를 조망하는 사도적인 지도자이어야 한다. 세계와 교회를 조망하기 위해서는 초월이 필요하다. 그리고 오늘에서 내일을 보는 높은 초월이 필요하다. 자신을 초월하기 위해서는 목회철학이 정립되어야 하고 내일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이해를 초월하여야 한다. 웨슬리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을 초월하여 세계와 교회를 조망하는 사도적인 지도자로 살았다. 감리회의 지도자상은 여기에 있다. 감리회 발전을 위해서는 그 지도자들이 이런 지도자들이 되어야 한다.
이제 감리회 발전을 위한 토론회가 시작되고 있다. 이것이 토론의 시작만이 아니라 발전의 시작이 되기를 염원한다. 물론 이러한 감리회의 진정한 발전은 하나님의 뜻과 그 손길 안에서 이루어 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발전을 위하여 우리 나름대로 개선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길이다.
발제에 대한 응답 - 사회복지 / 조규환 장로(은평교회)
응 답/ 사회복지
감리교회와 사회복지
조 규환 장로(은평교회)
서언
감리교회가 새롭게 발전하기 위한 토론회에 토론자로 참여하게 해주신 것에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맡은 부분은 교회에서 바라보는 사회복지에 대한 부분입니다. 여기서는 감리교 교단의 사회복지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감리교는 교육분야, 여성분야, 사회복지 분야 등 다양한 부분에서 영향을 끼쳐왔습니다. 그중에서 사회복지는 80여 년 전부터 감리교 선교사들과 감리교인들에 의해 이 땅에 버려진 아이들, 소외된 여성들, 빈곤과 무지로 무시당하고 상처받고 눌린 자들을 위해 시작되었습니다. 서울을 비롯하여 부산, 대전, 인천, 공주, 원주 등에 사회관 및 병원을 설립하여 한국 사회복지의 선구자 역할을 하였으며, 특별히 사회관 사업은 우리사회에 빛과 소금의 역사와 전통을 가진 감리교 사회복지 사업이었습니다. 그러나 현재는 한국의 타교파(장로교, 성결교 등)와 타종교(가톨릭, 불교 등)에 비해 뒤쳐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1. 교회와 사회복지
한국교회는 20세기 중반에 들어서 교회의 사회봉사적 책임을 인식하기 시작하여 대부분의 지역사회 교회가 사회복지 사업을 진행하였습니다. 20세기 후반 한국교회를 휩쓸었던 교회성장 제일주의 운동이 서서히 수그러들면서 교회가 지역사회봉사의 중심이 되어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신학이 대두되었고, 또 사회 전체적으로 먹고 사는 문제에서 벗어나 삶의 질을 고민하게 되면서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습니다. 그에 따라 많은 교회들이 지역사회의 어린이, 노인, 부녀자, 청소년, 장애인, 빈곤 가정, 소년 소녀가장 세대 등 각양각색의 사회복지 사업을 전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대형교회 중 일부는 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여 대대적인 복지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가장 모범적이고, 대표적인 교회로는 영락교회를 들 수 있는 데 이 교회는 경로원, 요양원, 재가노인영락보건원, 모자원, 재활원, 어린이집 등 다양한 사회복지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주교회의 산하에 사회복지위원회(1975년 설립)를 구성하여 15개 교구에 사회복지국을 두고 있으며, 12개 교구에는 사회복지 전담 사무국을 설치하여 전담 실무자와 전담 사제를 배치하여 전국적으로 사회복지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타 종교인 불교의 경우, 대한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을 1995년 설립하여 다양한 사회복지 사업을 벌이고 있습니다. 이외에 많은 종교단체에서 전국규모의 사회복지 사업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적 이론과 실천기술에 대한 도움이 필요했고, 교회가 사회복지 효과성에 대한 선교적, 그리고 사회복지적 평가 필요성도 생기게 되었습니다. 많은 교단의 지도자들이 사회복지와 선교에 대한 정책을 논하기 시작했고, 일부 종교 지도자들은 선두에서 교단의 모든 자원과 인력을 총동원하여 사회복지 사업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2. 감리교 사회사업의 다섯가지 방향성
감리교회에서 사회사업에 접근하는 원칙으로 토론자 다음 다섯가지의 방향성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호소, 둘째, 사회경제 체제의 교육적 영향, 셋째, 정의의 이름으로 우리 현 사회의 부정 부패에 대한 도전, 넷째, 사회사업에의 직접 참여, 다섯째, 교회가 북한의 사회복지개선에 기여해야한다는 것으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 고통받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과 호소
현존하는 악에 의해 유발된 많은 고통을 해소하기 위해 기독교적인 정신과 양심으로는 무시할 수 없는 동정심에 호소해야 합니다. 21세기를 맞이한 지금 우리 사회는 과거와는 달리 많은 사회문제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경제성장에 따른 소득격차, 도덕적 해이로 인한 사회혼란 등 다양한 사회문제로 인해 실업이 발생하고, 범죄가 양산되고 젊은이들은 도덕적으로 문란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결손가정, 소년소녀가장, 노숙자, 부랑인, 독거노인들이 생겨나고 단순히 국가의 능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현실에 이르렀습니다. 고통받는 사람에 대한 동정과 호소는 바로 기독교적인 정신과 양심 즉 선한 사마리아인으로 행동하라는 주님의 말씀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2) 사회경제 체제의 교육적 영향력
교육은 학교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가정과 사회 모든 분야에서 사람들은 배우고 학습합니다. 다시말해서 어떤 사회경제체제인가에 따라서 그 사회체제에 사는 사람들은 거기에 맞추어지게 됩니다. 돈이 최고인 물질지상주의가 최고의 가치가 되는 우리사회는 그자체로 교육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교회는 두가지 역할을 해야합니다. 하나는 사회경제체제가 갖고 있는 문제와 가치에 대해 도전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교회는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가 기독교의 청빈의 이념과 같이 성장한 것처럼 경제체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통해 세상의 소금이 되는 역할을 해야합니다. 다음으로 교회는 세속적 가치에 물들어 있는 신자들에게 기독인으로서의 특성을 길러주어야 합니다. 다양한 나눔의 실천은 교단차원에서나 개 교회차원에서나 적극 권장되어야 합니다. 나눔의 기쁨을 향유하게 하는 교육적 효과는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3) 정의의 이름으로 현사회에서 교회가 해야하는 역할
현재의 사회는 정치, 문화, 사회, 도덕의 측면에서 불의한 사회라는 도전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부의 분배나 권력의 분배가 과연 정의롭고 온당하게 되고 있는지를 질문해보면 그 답은 자명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모든 이는 평등하다는 기독교의 정신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더더욱 중요한 정신적 가치로 부각되고 있습니다. 세상의 불의는 세상의 불의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 대한, 교회의 소명에 대한 근본적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의 양심으로 세속적인 사회를 정화시키는 소금으로써의 역할을 다하고 있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제기되는 모든 도전을 외면할 수 없습니다. 그 도전에 마땅히 응해 그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몸바쳐야 합니다. 경제와 사회 질서에 대한 수많은 문제의 고발이 지닌 도덕적 요구 때문에 교회는 “개입”해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기독교 자신의 소명을 배신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4) 교회가 사회복지에 직접 참여해야한다.
감리교 교단은 타교단에 비해 사회관 사업을 제외하고는 그 활동이 대단히 미약합니다. 타교단은 재단, 사회복지국등에 20-30명의 직원들이 전국적으로 직접, 간접으로 대대적으로 활동하고 있으나, 감리교 복지재단은 직원들의 활동이 재단관리에 국한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우리사회는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장애인도 더 많이 생겨나고, 결손가정도 많아지는 등 교회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점점 더 많아 질 것입니다. 교단 차원의 사회복지 사업의 강화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손길에 교회의 손길이 맞다을 수 있도록 확장되고 체계화되어야 할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 감리교단의 역할을 시간이 갈수록 더 요구되리라 믿습니다. 감리교단의 사회복지 활동은 과거의 전통을 살려 확대되고 활성화되어야 합니다.
5) 북한의 사회복지와 교회
현재나 통일후나 북한의 사회복지는 민간단체와 교회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수백조의 통일비용 중에서 사회복지에 대한 부분은 우선순위에 밀릴 수밖에 없을 것이며, 따라서 민간단체와 교회가 북한사회의 사회복지영역에서 담당해야할 역할은 클 것입니다. 북한주민들에게 현재 시급한 것이 의식주입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당장 필요한 것은 말씀보다 고통을 들어주고 그 고통을 덜어주는 활동일 것입니다. 말씀을 전하는 다양한 선교활동은 굶주리고 헐벗은 이들에게 기초적인 삶을 보장할 수 있는 다양한 구호활동과 함께 할 때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우리도 힘들었던 과거를 생각해보면 이는 당연한 것임을 알수 있습니다. 현재의 구호활동에 교회가 중심이 된다면 통일후 북한 선교는 자연스럽게 진행될 수 있을 것입니다.
<첨언> 노무현 참여정부의 사회복지정책
* 참여복지는 모든 국민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관된 보건 ․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역할을 강화하고, 이용자인 국민의 참여를 확대함으로써 사회통합을 도모하는 참여정부의 복지이념
* 국민의 기본적인 생활보장, 저소득층의 자립지원이라는 국민의 정부의 ‘생산적 복지’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면서, 다음 세 가지 측면의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
(1) 복지의 보편성
– 저소득층 위주의 복지에서 모든 국민의 대상으로 복지의 폭 확대
– 소득 보장위주에서 의료 ․ 보육 ․ 주거 ․ 환경 ․ 문화 등 의식주 전반의 생활권 보장으로 범위 확대
(2) 복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강화
– 복지는 1차적으로 국가의 책임이며, 외교 ․ 안보 등과 함께 국가가 당연히 공급해야 하는 인프라이자 공공재
==> 국민 건강권, 기초적인 생활보장, 주거 등 국민의 기본적인 삶의 유지에 필요한 부분에 대한 국가의 역할 확대
(3) 국민의 참여
– 정책형성 과정에 주체로서 참여하며 서비스의 선택 ․ 제공 및 평가 과정에 이용자(권리자)로서 참여
– 자원봉사, 기부활성화 등을 통한 적극적 복지문화 형성
– 모든 사회복지 시설의 민영화(비영리 법인, 종교단체등)
* 참여 복지 시각에서 보는 복지 경제, 분배와 성장의 관계
– 이원적 대립구도가 아니라, 복지의 증진을 통해 경제가 성장하고 경제성장을 통해 복지가 증진되는 선순환의 구조
발제에 대한 응답 - 교회사가의 입장에서 / 김흥수 교수(목원대학교)
응 답/ 신학자
감리교 발전을 위한 토론회: 교회사가의 입장에서
김흥수 교수(목원대학교)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공을 거두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공 속에서 교회에는 개혁이나 갱신을 필요로 하는 면도 누적되어 왔으며, 감리교회도 이것을 바로잡기 위한 배전의 노력을 요청 받고 있다. 감리교의 발전을 이야기하자면, 한국 기독교인들 그리고 감리교인들 스스로 무엇을 교회 개혁의 과제로 삼아왔는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한국 교회에서의 교회갱신 움직임은 1920년대 후반부터 나타났으나 그것이 활발했던 것은 일제의 지배에서 해방된 1940년대 중반 이후였다. 이 시기의 교회개혁 운동은 일제시기에 손상된 교회제도를 재건하는 운동이면서도 훼절된 신앙을 회개하는 영적 쇄신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일제 지배하에서 한국교회를 훼손시킨 주체는 교회 자체라기보다는 일본 제국주의자들이었지만, 교회 지도자들은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에 응했으며, 일제에 부역하고 일제의 침략전쟁을 성전(聖戰)으로 미화하기도 했다. 그러므로 새로 출발하는 교회에게는 공개적인 회개가 필요하였다. 그러나 교회 지도자들은 공개적으로 회개하거나 그런 용의를 가지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 주지 못했다. 이 시기에 감리교회에서도 교회 재건운동이 전개되었지만, 그 내용이란 주로 일제 말기에 붕괴된 교회조직의 재건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나마 재건파와 복흥파의 내분으로 교회의 혼란은 가중되었다. 감리교는 미션스쿨에서의 종교교육을 통제하려는 1915년의 ‘개정 사립학교 규칙’이나 1920년대 이후의 종교단체법 제정 같은 일제의 종교간섭에 적극적으로 저항하지 못했고 신사참배 요구에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일제의 종교간섭에 대한 감리교의 저항력은 다른 교파의 교회들보다 훨씬 더 빈약했으나 해방후 그것을 야기시킨 감리교의 신앙과 신학 그리고 교회제도를 검토하는 작업은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그것을 수모로 여기는 감리교도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일제시기에 훼손된 신앙과 신학 그리고 교회제도를 복구하기도 전에 한국교회는 전쟁의 참화에 시달렸다. 전쟁은 민족 구성원의 1/6에 달하는 인명의 손상뿐만 아니라 재산을 파괴하고 사회질서와 전통적 문화체계를 해체시켰다. 전쟁은 사회심리에도 영향을 미쳐 공포심리와 불안은 물론 불신과 적대감, 경직된 사회심리 구조를 형성시켜 주었다. 전쟁으로 인한 사회적 위기 속에서 교회에서는 이상한 모양의 신앙양태와 성서해석이 널리 퍼졌으며 교회제도는 거듭해서 분열되었다. 교회의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도 곱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1950년대 후반부터 교회에서 ‘교회갱신’이나 ‘교회혁신’을 주장하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타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50년대 후반의 교회갱신에 대한 논의에서는 교회 내의 분쟁과 분열, 현실을 무시하는 타계주의적 신앙, 탈선적 부흥운동 등이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었으나 4.19혁명 이후에는 정치권력과의 밀착을 반성하는 내용이 덧붙여졌다. 이승만 정부의 등장 이후 교회는 권위주의적인 이승만 정부의 국가 운영을 거의 절대적으로 지지했을 뿐만 아니라 3.15 부정선거에 대한 규탄 열기가 전국적으로 고조된 시점에서도 감리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를 대변하는 위치에 있던 정동교회에서는 ‘정·부통령 당선 및 이대통령 생신 축하예배’를 계획하고 있었다. 이런 일들로 교회의 공신력 상실이 극도에 달하고 있을 때 한 교계신문은 그 예로 “교단의 사분오열로 일어난 피투성이의 강단 싸움, 법정소송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며, 구제 보따리를 둘러싼 추문, 딸라의 농락과 굴종으로 일어나는 비열한 교권 싸움, 타락한 성직자의 부정부패 정권에 참여, 자숙을 모르는 친일파와 모리배의 교권 장악 등등”을 들었다.
교회의 이런 사정은 교회 갱신 논의를 확산시킬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 후반까지 교회에서 있있던 갱신 논의는 대체로 교역자의 문제와 신앙형태를 갱신의 과제로 지적하였다. 교역자의 문제에서는 교역자의 질, 자격, 인격, 지도력 등이, 신앙형태의 문제에서는 현실세계를 등한시하는 타계주의, 부흥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극도의 열광주의, 그리고 교권주의 및 교파주의 같은 요소들이 갱신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갱신의 주요한 과제는 두 가지로 압축되어 논의되었다. 하나는 교회와 사회의 문제였고 다른 하나는 신앙양태에 대한 문제였다. 교회와 사회 문제에 대해서 함석헌은 “한국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1971)라는 글에서 1945년 이후 교회의 사회적 행동을 “참혹한 전쟁을 겪으면서도 민족적 회개의 운동도, 깊은 역사 파악의 노력도 보여준 것이 없었으며 전쟁이 지난 후도 새 건설의 설계도를 내는 것도 없다. 자유당 10년에 반항 하나 한 것이 없기 때문에 4. 19라는 역사적 운동에 아무 참여를 못했고, 5. 16에 대해서도 정당한 책망하나 못했다. 한일회담 때는 첨에는 상당히 강한 투쟁을 했으나 오래 가지 못했고, 명분 없는 월남전에 대해서는 사실상 찬성을 한 셈이니 이제 와서 무슨 소감이 있는가, 없는가?”라는 말로써 묘사하였다.
함석헌의 혹독한 비판은 1971년에 나온 것이지만, 교회의 혁신운동은 이미 1960년대부터 싹트고 있었다. 평신도 운동이나 토착화론, 교회와 사회 관계에 대한 관심의 증대는 모두 교회혁신을 외치는 하나의 신호였다. 토착화론이 주체적인 신앙을 가지려는 교회-문화 관계에 대한 논의라면 교회의 사회참여에 대한 논의는 교회가 사회에 대해 더 깊은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것이었다. 1970년대의 교회는 지난날의 교회 행태에 대한 반성과 함께 사회변동 운동에 나섰다. 민주화 운동, 인권운동, 산업선교, 민중의 고난을 초래하는 잘못된 사회구조에 대한 관심은 ‘1973년 한국 그리스도인 선언’과 민중신학의 창출로 나타났다. 1960년대 후반 이후 교회는 분열 현상이 어느 정도 진정 단계에 들어서자 전도운동에 나섰다. 이런 점들에서 보면, 1970년대의 교회는 한국 교회사에서 가장 개혁적이고 복음적인 시기를 보낸 셈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의 교회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70년대 이후 한국교회의 신앙체계 중 가장 우려할 만한 현상으로 지적된 것은 기복신앙의 문제였다. 일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사회변혁에 대한 교회의 참여를 요청하고 있을 때, 다수의 기독교인들은 혼란스러운 사회에서 위로와 축복의 메시지를 더 선호하였다. 1970년대 중반까지는 주로 부귀영화와 건강 같은 세속적인 동기를 충족시키려는 욕망이 종교의 의례나 교리와 연결되어 기복적 신앙체계를 형성했는데, 기독교 신앙의 핵심적인 주제인 신론, 기독론, 성령론 등에까지 기복적인 의미가 덧붙여지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위에서 우리는 1945년 이후 한국교회사에 등장한 교회갱신의 과제를 간추려 살펴보았다. 감리교회 발전과 관련하여 크게 두가지 문제를 말해 보겠다. 첫째, 교회와 사회 또는 교회와 국가 관계의 영역에서 말하자면, 의료나 교육사업을 통한 감리교회의 사회봉사와 애국 항일운동은 자랑스러운 선교전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것은 1935년 이전의 일이다. 반성하고 따져보아야 할 점도 있다. 무엇보다도 교회-국가 관계에서 일제시기 이후 감리교인들이 경험한 것으로 국가의 종교간섭에 대한 감리교회의 무기력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일제치하에서 감리교회는 국가의 종교간섭으로부터 자신의 신앙과 신학 그리고 종교활동을 지키고 보호하려는 노력을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였다. 이 점은 장로교회와 비교하면 금방 드러난다. 이것은 당시 감리교회 지도부의 친일성, 중앙집권적인 의회제도와도 연관된 것이지만, 신학과도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이야기 되고 있다. 한국 감리교회는 ‘신학적 자유주의’로 해서 하나님의 초월, 절대적 주권신앙이 강조되지 않고 쉽게 국가의 종교간섭에 굴복하는 경향을 보여왔다고 지적받고 있다.
두 번째 문제는 감리교회의 한국문화와의 관계이다. 감리교회는 일찍부터 우리나라의 종교 및 전통전통에 관심을 가진 최병헌 목사 같은 선구자들이 있었다. 1930년 기독교조선감리회를 조직할 때 내세운 모토 중의 하나도 ‘조선적 교회’였다. 조선적이라는 말은 “고금을 통하여 전래한 바를 감사한 마을으로 받아서 예배나 치리에나 규칙에 잘 이용하되 조선문화와 풍습에 조화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우리나라의 역사적 문화적 맥락에서 기독교를 수용하고자 했던 시도들이었다. 1960년대에도 감리교회에서는 잠시 기독교 복음을 서구의 문화전통에 의해서보다는 한국의 문화전통 속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이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서 급속한 경제성장 정책과 권위주의적인 정치체제로 해서 생기는 부작용들이 교회들의 더 큰 관심사로 등장하면서 한국인의 사유와 세계관이 들어있는 한국문화에 대한 논의는 다시 관심사로부터 밀려났다. 이처럼 한국교회사에서 20세기는 국가 및 개인의 급박한 생존위기 속에서 교회와 국가 또는 교회와 사회의 영역이 강조되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한국기독교에서 민족문제는 늘 중요한 과제였으며, 민족 수난의 현장에서 그 고통을 함께 나눈 감리교회의 진로는 충분히 민족적이다. 그러나 20세기의 한국기독교는 선교활동이 ‘정치’ 영역에 국한되어 있었고 그래서 기독교가 지닌 문화적 외래성을 극복하지 못했다. 21세기의 감리교회는 전통을 이어받아 동양사상 및 우리의 국가적 지역적 문화과제와 씨름하는 일에 더 매진할 때 주체성을 지닌 한국적 감리교회로 발전해 갈 것이다.
발제에 대한 응답 - 청년의 입장에서 / 연상준 부총무(청년회전국연합회)
응 답/ 청년
감리교회, 올무에서 벗어나기
연상준 부총무(청년회전국연합회)
Ⅰ. 극복해야할 세속적인 오염
□ 세상을 향해 맑은 물을 생산해냈었던 교회의 모습이 오히려 구원의 방주로 전락해가고 있다. 최근 한국교회는 일반 기업처럼 아직도 양적 성장을 추구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며. 실제로 교회의 대형화는 마치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말씀으로 모이고, 사랑으로 흩어지던 초기 복음의 신앙공동체의 모습이 점점 모이는 교회로 만 전락해 져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본다.
교회가 목회자중심의 목회를 지향하며 목회자 리더쉽에 좌우되어지고있고 일부 대형교회에서는 그것이 교단이 추구하는 정책이나 성향과 관계없이 목회자가 생각하는 방향과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다. 교회의 주역은 목회자만이 아니고 평신도도 있다 또한 감리교회는 평신도 교회로 거듭나야 한다. 감리교회의 전통은 평신도 운동에 있다. 교회가 세속의 오염을 극복하고 세상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기 위해 평신도들의 자각과 목회자들의 노력이 있어야 한다.
요즘 일부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세습 이라는 형태로 교회가 되물림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감리교의 미래는 생각하기 어려울 것이다. 뜻있고 젊은 목회자를 키워내지 못한다면 교회의 미래가 암울하기만 할 것이다.
Ⅱ. 감리교 선교
성장 : 300만 신도운동
□ 전도는 믿는 이들의 사명이다. 크리스챤으로 마땅히 해야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70~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교회의 성장도 괄목하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내용에 비해 양적 성장에 치우친 측면이 있다. 또한 교회의 모습이 분열되고 정치적 입장 속에서 진보와 보수로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다. 90년대 거품 경제가 걷히고 민주화의 성숙과 시민사회의 성장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세상 속에서의 교회는 외면당하고 구시대적 산물인양 취급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바로 교회의 위기가 왔다. 이것은 교회가 양적 성장과 함께 질적 성숙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라 생각된다. 교회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역사의 굴곡과 함께 한 교회의 모습 속에서 세상을 앞서가서 길을 제시했던 교회가 지금은 제대로 앞을 보고있지 못하는 위기의 상황이다. 이번 300만 운동을 1회성 행사로 끝내지 않기 위해서는 교회 내부의 각성을 통한 질적 성숙을 담보해야 한다. 300만 전도운동은 교회 이미지 개선 운동도 함께 병행하여야 한다.
비기독인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의 교회의 모습을 긍정적이고 이웃의(민중의) 아픔에 동참하고 교회의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교회의 문호를 과감히 개방하고 지역사회에서 교회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선교사문제에 있어서도 개인적 및 각 지역별로 원칙없는 선교사 파송은 자제하고 교단 차원의 전문적인 선교사 양성 기관을 조직하여 선교사로서 제역활을 다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감리교단 차원의 지원이 있어야 한다. 재정 지원에 있어 개체교회의 지원과 그 지원을 받기 위한 개인적 노력이 크다. 그리고 한 곳에 집중된 선교사 파송이 아닌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폭넓은 선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Ⅲ. 교육
□ 오랜 동안 교회 안에서의 교육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르치는 것에 치우쳐, 정작 ‘예수의 정신(말씀)’에는 소홀히 하지는 않았는지 자문해 본다. 오늘날 감리교회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알리는 교육에 치우쳐 ‘정신’을 폭넓게 이해시키는 것에 오히려 소홀히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감리교회의 교육은 “너희는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라” 라는 말씀을 단지 문자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것뿐만 아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흩어져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으로 폭넓게 교육시키지 못한 것에서 지금의 교육의 문제점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서로용서하고, 서로사랑하고, 감사하고, 나눠라” 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우리끼리’로 변질되어지고 있지는 않은가?
‘우리끼리’에만 힘을 쏟는 교회교육에서 초대 교회의 말씀으로 모이고 사랑으로 흩어지는 교회는 찾기 힘들어질 것이다. 나아가 이러한 상황들이 신앙과 생활의 통일을 가져오지 못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교회학교에서 중. 고등부까지 많은 교육을 하지만 청년으로 성장하면서부터는 점점 교회에서 멀어지게 된다. 이것은 곧 교회가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는 현상황(다양성, 사회문제등.)에서 청년들이 피부로 접하고있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해석해낼 수 있는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라 하겠다.
이를 위해 교단차원의 배려와 지원 필요하다. 다행히 이번 8월에 있을 “감리교청년지도력훈련캠프”가 좋은 예로 남을 것 같다. 교단 교육국에서 주최하고 청년회전국연합회가 주관하는 형식으로 시작되었으나 프로그램 내용 면에서도 지금까지의 수련회와 다른 기독청년의 고민이 들어있는 프로그램으로 좋은 방향을 일으키리라 생각한다.
Ⅳ. 기구 및 조직
□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고 21세기는 다양성의 시기라고도 한다. 변화하는 세계와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보다 나은 성장을 모색해야하는 과제를 교회는 안고 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현 기구와 조직은 후퇴하는 경향이 있다고 본다.
현재 총회의 총대 구성이 연급으로 구성되어 있어 감리교회 전체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어렵다. 또한
선교정책 수립과 대안 제시에 있어 현장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의견이나 선교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며 문제점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총대의 구성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으며 각 선교기관 대표들이 직능대표 명목으로 총대로 선출되는 방법을 포함되어야 한다. 특히 여성과 청년대표가 포함되어야 한다. 여성은 교회의 구성 비율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청년들은 차기 교회의 일꾼으로 성장하여 미래를 짊어질 주체들이다. 이들이 총회대표로 선출되지 못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물론 전에 비해 실행부 위원이나 언권위원의 자격이 있는 것은 전과 달리 나아진 점이긴 하나 좀 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엔 부족하다.
감독선출제도와 관련하여, 어찌되었던 지금보다는 좀더 개선되어져야 한다. 감독은 정치나 권위주의의 상징이 아닌 명예와 헌신의 대명사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2년 임기로서는 일을 일관되게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 임기의 보장과 함께 전임제가 실시되어야 하고 감독선거제도도 현행 ‘투표제‘는 각종 유언비어의 난무와 금권 선거로 얼룩져 있고 교회의 규모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 ’제비뽑기’제가 공공연히 거론되는데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는 없지만 일단 현행제도의 대안으로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다. 공정하고 깨끗한 감독선거제도가 되려면 총회대표는 물론 감리교인 전체가 성숙해져야 할 것이다.
Ⅴ. 에큐메니칼 지도력
□ 청년회 전국연합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 한국기독청년협의회와 연대하며 타교단과 많은 교류를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연대의 틀을 인원동원이 아닌 에큐메니칼 지도력을 키워내는 곳에 상당부분 힘을 쏟고 있다. 에큐메니칼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조직하여 지속적이고 지도력을 향상을 위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청년회전국연합회에서 지난 몇 년간 일본에 한국기독청년협의회를통해 인턴을 파견하여 일본 기독교의 모습과 사회시설을 폭넓게 경험하고 돌아와 교회 일치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타교단 청년들과 연대하여 평화운동, 생명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다른 교단에 비해 감리교회 차원의 에큐메니칼 신앙 운동이나 활동이 적고, 결합력이 낮다고 판단된다. 특히 에큐메니칼 지도자양성에 있어서는 많은 부분 개인적으로 또는 청년회 자체적으로 결합해왔다. 목회자 그룹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많이 이루어져 왔다. 이제는 교단 차원의 에큐메니칼 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현재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가지며 진행해야 한다.
위에 언급했던 선교사 교육 문제와 관련하여 에큐메니칼 인력개발도 있어야 한다. 나아가 세계 교회의 한 주역으로 성장하고 역할 함으로 한국 교회의 위상을 높이도록 준비하여야 한다. 이것은 분열상을 치유하는 초석이 될 것이다.
Ⅵ. 마치며
□ 항상 약자의 모습으로 청년을 바라보는 것에서 또는 패기와 투기에 찬 모습에서의 거부감까지 청년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했다. 사회 문제에 참여하며 교회의 일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받을 때도 있다. 과연 어떠한 것이 교회의 일이란 말인가? 바꿔 말해 어떤 것이 주님의 일인가? 어느 쪽도 다르지 않다. 장소가 아닌 내용에 문제일 것이다.
청년회는 지금까지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청년예수의 정신으로 복음이 사라져 가는 곳에서 복음의 전도자가 될 것이고, 썩어 가는 세상을 향해서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백하며 나아갈 것이다. 감리교회를 사랑하고 이웃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청년들이 될 것이다.
발제에 대한 응답 - 여성의 입장에서 / 강남순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응 답/ 여성
한국 감리교 발전을 위한 제언–여성의 관점에서
강남순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I. 문제제기: 왜 여성의 관점이 요청되는가
“감리교의 과거, 현재, 미래“라는 주제하에 열리는 ‘감리교 발전을 위한 토론회‘의 패널토의에서 분류된 분야를 보면 ’목회자,‘ ’신학자,‘ ’청년,‘ ’여성’이라는 특정한 그룹의 사람들을 분류하여 놓았다. 목회자와 신학자가 역할과 직업에 의한 구분이라면, ‘청년‘은 나이에 따른 구분이고, ’여성‘은 생물학적 구분이다. 따라서 다른 범주들은 가변적인 것인데 반해, ’여성‘ 이라는 분류만이 생내적인 불가변의 범주이다. 불가변의 절대적 범주인 ’여성‘은 그 상응하는 분류인 ’남성‘과는 달리 언제나 ’특수한 범주‘로 분류되고 있다.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물음이 가능해 진다: ’남성‘이라는 범주는 없는데, 왜 ’여성‘이라는 범주는 있는 것인가. 너무나 기본적인 자명한 듯한 이 물음은 사실상 인류의 역사를 근원적으로 재조명하게 한 역사적 사건들과 그에 따른 새로운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8세기 이후 우선 서구에서 본격적으로 제기된 성차별(sexism)의 문제는 인간의 제반문제와 관련되어 인류의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나이와 상관없이 여성들은 언제나 남성들에 의존된 삶을 사는 존재로 간주하고 ‘항구적 미성년자’로 보았던 인식체계에 근원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면서 ‘여성운동’(women’s movement)은 이론과 운동의 차원에서 확산되기 시작하였는데, 성차별은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뿌리 깊으면서 가장 널리 확산되어 있는 차별이라는 점에서, 그리고 다른 차별들이 주로 공적 영역에서 경험되는 것인데 비해, 성차별은 공적 영역은 물론 한 개인들의 사적 영역에서도 경험되는 차별이라는 점에서 그 독특성을 지닌다. 성차별주의는 남성우월주의와 그것을 지속시키고 강화시키는 이데올로기를 말한다. 성차별주의는 생물학적 차이에 근거하여 형성된 남성과 여성의 차이성을 문화사회적으로 고정관념화(stereotyping)하여 여성을 열등한 존재로, 그리고 남성을 우월한 존재로 차별화하고 구분화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성차별주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직접적으로 또는 간접적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성차별주의는 여성을 지도적 위치와 역할에서 끊임없이 배제시켜왔으며, 동일한 일을 하는 남성보다 적은 임금을 받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게 하였다. 성차별주의는 인류의 오랜 역사를 걸쳐서 개인적인 차원, 사회적 차원, 문화적 차원, 정치경제적 차원, 종교적 차원등 사회문화 조직의 총체적인 부분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성차별은 사적영역인 가정, 그리고 공적 영역인 회사, 학교, 교회는 물론 사회의 크고 작은 다양한 영역들에 걸쳐서 경험되고 있으며, 또한 가장 가난한 사람들서부터 대통령 부인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계층이나 교육정도에 상관없이 경험되는 차별이라는 점에서 다른 종류의 차별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독특성을 지닌다. 또한 ‘청년’이나 ‘민중’의 분류속에 포함된 사람들이 나이가 들거나 또는 부르조아적 삶의 양태를 취득함으로서 언제나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있는 반면, ‘여성’의 범주는 항구적이며 생내적이라는 점에서 또한 그 분석과 논의가 다른 차별보다 휠씬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볼 때, ‘남성’이라는 범주는 없는데 왜 ‘여성’이라는 범주는 있는가 라는 물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면, 그러한 분류는 인류의 역사의 ‘주류’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그룹의 사람들은 ‘남성’이 아닌 ‘여성’이기 때문이라는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맞물린다. 예를 들어서 정부에 ‘남성부’는 없지만 ‘여성부’는 있다든가, 또는 남녀공학대학에 ‘남학생회‘는 없지만 ’여학생회‘가 있는 이유는 대학의 주류는 이미 남성들이기 때문에 굳이 그들의 권리와 정책결정을 위하여 별도의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으나. 여성들은 주류에서 배제된 ’주변부‘에 있는 이들이기 때문에 별도의 관심과 정책이 요청된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국감리교회의 발전을 위한 토론에서 필연적으로 논의되어야 할 주제가 ’성차별의 문제‘라는 점은 너무나 자명하다. 그런데 과연 ’성차별이 무엇인가‘라는 것은 가장 자명한 듯 하면서 사실상 너무나 복합적인 문제여서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이 성차별을 주도적으로 실행하는 사람이나 그 성차별의 피해자 자신들도 ’성차별‘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가정, 교회, 사회에서 다양한 양태의 성차별이 의식/무의식적으로 매우 활발하게 행하여지고 있다. ’성차별이 무엇인가‘는 한 개인은 물론 한 그룹의 인식의 성숙도와 차별에의 예민성에 따라서 규정되는 매우 복잡한 문제여서, 사실상 상식적 이해로 성차별의 정체를 포괄적으로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극복하는 대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식의 교육이 요청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관점‘에서 어떤 특정한 주제를 조명한다는 것은 사실상 생물학적 범주로서의 ‘여성‘(female/ feminine)의 눈이라기보다, 성차별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하고 난 후의 ’여성‘ (feminist)의 눈으로 그 문제를 접근하고 분석하라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성차별의 불의성에 대하여 인식하게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차별은 노골적인 여성비하의 언사를 통해서는 물론이고 신학적 차별, 제도적 차별, 심리적 차별, 해석학적 차별, 사회경제적 차별등 중층적 차별의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 패널토의에서 나는 이러한 성차별의 포괄적인 이해를 가지고 감리교발전을 위하여 요청되는 문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II. 한국감리교회의 발전을 위한 근원적인 토대–양성평등화의 실현
한 개인이나 집단 또는 사회의 성숙도를 측정하는 다양한 기준들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기준들의 하나는 바로 사물을 인식하는 폭이 얼마나 넓은가 하는 인식의 성숙도라고 볼 수 있다. ‘발전’이란 용어가 양적 성장과 질적 성숙을 모두 아우르는 의미로 사용된다면, 한국기독교인의 70%를 이루고 있는 여성들에게 가해지는 성차별에 대한 인식을 하지 않고서 진정한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나는 한국감리교회가 포괄적 의미의 ‘발전’을 지향한다면 다수인 여성들이 배제되고 소외되는 성차별에 대한 예민성을 기르는 것이 가장 시급한 과제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예민성을 가지고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에서 남성과 여성의 ‘양성평등’을 실현해 가기 위한 과제를 모색하고 그 과제를 실현해 나가는 것이 감리교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는 데에 필수적인 것이라고 보여진다.
양성평등화를 이루어 나가는 데에는 커다랗게 두 가지 차원의 변혁이 수행되어야 한다. 첫째는 객관적인 차원의 변혁이며, 둘째는 주관적 차원의 변혁이다. 이 두 차원의 변혁을 위하여 反성차별주의적 사고를 하는 여성들과 남성들은 오랫동안 다양한 방식으로 투쟁하여 왔으며, 그 투쟁의 결과로 많은 개혁이 이루어져 왔다. 예를 들어서 참정권을 부여받지 못해 왔던 여성들에게 참정권이 주어졌으며, 목사안수를 받기 시작하였으며, 남성들에게만 열리던 공교육의 문이 여성들에게도 열리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법적이고 객관적인 차원의 양성평등화가 현실속에서의 구체적인 양성평등화로 곧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즉, 법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평등이 보장되었다고 해서 현실속에서도 여성과 남성의 평등이 바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동일한 직업을 가지고 일하는 여성과 남성은 그 능력과 기능에서 동일해도 여전히 남성보다 여성은 훨씬 적은 임금을 받고 있으며, 목사안수의 가능성이 법적으로는 여성과 남성에게 동일하게 주어진다 해도, 실질적으로 여성들이 목사안수를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은 훨씬 어렵게 되어 있다. 세계에서 요구되는 노동의 60%를 여성들이 수행하고 있지만, 재산의 90%를 남성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이 현재 세계적인 현실이다. 또한 교육의 문이 모두에게 열려있다고 하지만, 대학원이나 박사원과 같은 고등교육으로 올라 갈수록 남성과 여성의 비율은 심한 불균형을 이룬다. 이러한 문제는 여러 가지 요인들로 분석될 수 있겠으나,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법적인 평등의 보장은 그 법적 평등을 실현하고자 하는 평등적 의식과 가치관의 지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객관적 차원의 변혁뿐 아니라, 우리의 의식과 가치체계를 구성하는 주관적 차원의 변혁이 동시적으로 수행되지 않으면 진정한 양성평등화를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기 때문에 인류의 역사를 보면 제도적 개혁이 일어 난 후, 객관적으로는 다양한 조건의 사람들 사이에 평등이 이루어진 것 같아도, 그러한 제도적/객관적 평등의 보장이 구체적인 실천의 영역에서의 실질적 평등으로 자동적으로 연결되지는 않았다. 객관적 조건들이란 빙산의 일각 같아서 눈에 보이는 문제들을 평등화하는 역할을 하지만, 그러한 불평등적 조건들을 뒷받침하던 가치관이나 의식구조의 변화가 동반되지 않을 때, 눈에 보이는 빙산보다 더 깊이에 자리잡고 있는 차별적 의식이나 가치관은 진정한 실질적 평등을 구가하기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객관적 차원의 변화는 진정한 변혁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세계를 보는 관점, 사람을 보는 관점, 가치기준등을 형성하는데에 성차별적 의식을 극복하고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의식과 가치기준을 기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평등의식과 가치체계를 기르기 위한 교육은 첫째,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에서 이루어 져야 하며, 둘째, 다양한 양태의 목회자교육에서 행하여져야 한다. 그리고 셋째, 다양한 교회교육의 현장에서 교사교육이나 교육 교재와 프로그램등을 통하여 평등교육이 행하여 져야 한다. 분명히 기억해야 할 것은 ‘모든 개혁은 상호의존적이다’라는 사실이다. 어느 한쪽의 개혁은 다른 차원의 개혁과 상호의존적 관계에 있으며 어느 한 차원의 개혁이 한 집단이나 사회의 개혁을 이루는데에 있어서 ‘충분조건’이 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필요조건’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A. 객관적 차원의 변혁
1. 성차별적 제도의 변혁
감리교내의 성차별적 제도들은 다양하게 지적되어 왔으며 일부부 수정되어 오기도 하였다. 예를 들어서 1972년에 삽입된 “담임자로 결혼한 여자 목사는 담임을 계속할 수 없으나, 기관에서는 계속 시무할 수 있다” (당시 교리장정 7장 교역자 90단 10조 18번)라는 조항은 1989년에야 비로소 철폐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성차별적 조항들이 수정된 이후에도 다양한 양태로 성차별적 제도를 한국감리교회는 수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서 1989년 이후 부부 목사중 여성목사에게 파송, 안수, 은급에 대한 성차별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여전도사들의 은급문제나 기획의원, 지방회, 연회등에서의 회원권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1931년부터 여성목사안수제도를 허용함으로서 타교단에 비해 현저하게 선구자적 역할을 한 한국감리교회가 2002년 252명의 여자 목사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1995년에 비로소 여목사안수제도가 통과되었지만 이미 300명이 넘는 여자목사를 가지고 있는 예장통합교회와 비교하여 볼 때, 교회의 크기를 고려한다 해도 한국감리교회가 초기의 성평등 실현에 있어서의 선구자적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무엇이 성평등실현에 있어서 한국감리교회를 후퇴하게 하는가에 대한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분석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하리라 생각된다. 교회성장제일주의와 지도력에서의 권력에 대한 집착은 한국감리교회가 정의, 평등, 평화라는 복음의 보편적 가치에 무관심하고 교인의 수와 헌금액수, 그리고 권력나눔에만 집착하게 함으로서 예수의 복음의 내용에 철저히 적대적인 교회로 타락하게 한다. 새로운 한국감리교회로 거듭나는 것이 한국감리교회의 발전을 지향하는데에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
2. 양성평등적 제도의 수용
성차별적 제도의 개혁이 수동적인 의미라면, 양성평등적 제도의 수용은 보다 적극적인 의미의 제도적 개선을 의미한다. 70%를 이루고 있는 여성들이 감리교회의 다양한 결정기구와 과정에서 배제되어 있는 현실을 당연한 것이 아니라, 불의한 것으로 보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하기 위한 의도적 노력이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서 감신 여동문회, 여선교회전국연합회, 여교역자회 등 감리교 산하 8개 여성단체들이 모여서 결성한 “감리교여성연대”등과 같은 감리교여성단체들이 개교회의 장로 및 지방회, 연회, 총회의 모든 위원회와 의회, 감리회본부의 간사급 이상의 성원을 구성함에 있어 여성 을 반드시 30%이상 할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요구는 양성평등적 제도를 마련하기 위한 기초작업에 불과하다. 사실은 30%가 아니라 최소한 50%가 여성으로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장 기본적인 요구들도 한국 감리교안에서 아직 수용되고 있지 못하다. 이제 감리교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감리교도의 다수인 여성들의 소리가 진지하게 수용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성차별적 제도와 규정의 폐지와 동시에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양성평등적 제도를 수용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시급한 과제라고 생각된다.
B. 주관적 차원의 변혁: 성차별적 의식과 가치관의 변혁을 위하여
신학과 목회현장은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다. 양성평등적 신학교육을 통해서 양성평등적 의식을 지닌 목회자가 가능하며, 또한 그러한 목회자가 목회를 하는 교회에서 양성평등이 실현될 수 있다. 교회에서는 다양한 교재와 프로그램을 통하여 하나님이 지으신 남성과 여성이 그 어떤 이유로도 불평등하게 차별받아서는 안된다는 분명한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교회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교육들을 통하여 성차별적 의식과 가치체계가 변화되어 보다 정의롭고 평등한 의식이 배양될 수 있으며, 이러한 의식배양을 통하여 한국감리교회가 보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교회로서의 성숙성을 이루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신학교육, 목회자교육, 교회교육등에서의 평등교육이란 크게 “양적 평등”과 “질적 평등”의 차원에서 조명되어야 한다. 양적 평등이란 커리큘럼구성이나 교수, 목회자, 교회학교 교사 등에서 남성과 여성의 수가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질적 평등이란 커리큘럼과 교육과정에서 양성평등을 고취시킬 수 있는 커리큘럼 구성을 말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감리교회의 다양한 교육현장을 들여다 볼 때에 세계적 조류가 된 이러한 양성평등적 교육으로부터 참으로 멀리 있다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1. 신학교육
교수진의 양성평등화와 커리큘럼 구성에 있어서 평등주의적 관점을 심화시키는 커리큘럼의 강화가 요청된다. 신학대학 교수진들 구성이 남성과 여성교수들의 불균형은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킨다. 우선 신학생의 30%가량을 이룰 정도로 점차로 증가하고 있는 여자신학생들에게 역할모델로서의 여성교수의 부재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뿐 만 아니라, 남자신학생들에게도 편향적 역할모델을 제시함으로서 결과적으로 남자신학생이나 여자신학생들에게 성차별적 교육을 자동적으로 시키는 셈이 된다. 여성교수진의 가시성(visibility)은 직.간접적으로 아주 중요한 교육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서 남성교수중심의 신학교육이 될 때에 신학교육과정과 내용에서 성차별주의가 비판받거나 수정될 통로가 차단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다른 분야에서는 세계적 동향을 수용하면서 양성평등교육을 위한 커리큘럼 구성이나 교수진 구성에서는 세계적 추세를 반영하고 있지 못한 것이 현재 감리교 신학대학교들의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된다. 세계교회협의회나 세계적으로 유수한 신학대학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러한 양성평등의 문제를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수용하였으며 결과적으로 스태프 구성이나 교수진 구성, 그리고 프로그램개발과 신학교육 커리큘럼 구성에 반영하여서 양성평등의 의미가 적극적으로 실천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감리교회의 진정한 발전을 이루기 위하여 신학교육의 전반적인 재구성과 변혁이 무엇보다도 요청된다고 할 수 있다.
2. 목회자 교육
목회자 연장교육이나 목회자 연수교육과정에서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가치체계에 대한 교육을 시킬 수 있는 과정과 커리큘럼 마련하고, 포괄적 의미의 에큐메니칼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교육과정이 마련되어야 한다. 에큐메니칼 정신은 ‘교회의 일치‘(unity of church), ’교회들의 일치‘ (unity of churches), 그리고 ’인류의 일치‘ (unity of humanity)의 세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가는 시대에 따라서 점점 그 내용이 확장되어 왔다. 특히 이러한 다양한 ’일치(unity)‘의 문제를 조명하는데 있어서 양성평등의 관점을 가지고 접근하는 것은 일치의 문제를 아주 새롭게 재조명하게 하고 이제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차원을 드러나게 한다는 점에서 현대 에큐메니칼 운동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간주되고 있다. 이러한 에큐메니칼 정신이 목회자들에게 끊임없이 재교육되어야 함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세계는 변하고 있고 새로운 시대적 가치관과 요구가 있는데 목회자를 훈련하는 교육과정은 과거의 반복일 뿐 거의 바뀌고 있지 않다는 것은 시간과 인력의 낭비일 뿐 아니라 한국감리교회를 시대에 뒤떨어지는 교회를 만들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육이 마련되어야 신학과 신앙 그리고 실천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상호균형을 이루는 목회자의 리더쉽이 길러질 수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이 여성과 남성은 “평등하지만 다르다”(equal but different)라는 주장을 하며 그 주장을 반박할 근거를 찾기 어려워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하에 역사속에서 여성들은 공적 활동이 철저히 제한되었고, 남성들은 가정과 사회에서 모든 지도력과 결정권을 독점하여 왔다. 여성과 남성의 생물학적 ‘차이’가 사회정치적, 종교적 영역에서의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 근거는 전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평등주의의 이름으로 여성에 대한 성차별이 개인적으로나 제도적으로 여전히 행하여지고 있는 것을 수정할 수 있는 것이다. 목회자들의 교육이 이러한 성차별에 대한 의식을 재구성할 수 있도록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교인의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여성들의 힘으로 한국감리교회는 그 발전을 이루어 왔다. 그 여성들의 의식을 깨우치고, 또한 남성들의 의식을 깨우쳐서 보다 성숙한 크리스쳔으로 키우는 것은 한국교회와 같이 목회자중심의 교회에서는 더더욱 중요하다. 생물학적으로 여성이라고 해서 자동적으로 성차별에 대하여 의식하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여성들 스스로 가부장제적 가체를 내면화함으로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가부장적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그러한 성차별주의적 가치관과 의식을 교회에서 수정받을 수 있는 성서연구와 설교, 그리고 교회행정을 통하여 비로소 예수의 평등사상이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목회자가 매우 중요한 위치에 서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들을 지속적으로 재교육하는 문제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새삼 부언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3. 교회 교육
교회교육은 평등주의적 의식을 고취시킬 수 있는 교사교육이 이루어져야 하고 이러한 교재가 새롭게 개발되어야 한다. 교회학교 교사훈련을 통해서 우선적으로 교사들의 성차별적 의식이 극복되고 성평등 의식과 가치관이 고취되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교육프로그램이 재조정되어야 한다. 양성평등의 과제는 교회뿐 아니라 현대사회가 중요하게 관심하는 시대적인 과제이기도 하다. 올바르고 적절한 교사교육을 통하여 교사들의 평등의식이 분명해지고, 그들이 쓰는 교회교육 교재가 양성평등적 역할모델과 성서해석을 바탕으로 구성되어야 비로소 교회교육이 균형잡힌 교육을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다. 교사들의 의식이 성차별적이거나, 또는 교재 자체가 성차별적 가치관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올바르고 균형잡힌 교회교육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교회교육이 잘못되었을 때에 한국 감리교회의 모습 역시 불균형을 이루는 결과로 이어지게 되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III. 예수의 평등주의를 실천하는 성숙한 한국감리교회를 향하여
한국 감리교회의 발전을 이루기 위하여는 양적 성장도 매우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질적 성숙을 이루는 것이 요청된다. 질적 성숙을 이루기 위하여 우리는 가장 근원적인 물음들로 되돌아가서 ‘교회 본연의 모습이 무엇인가,’ ‘무엇이 감리교를 감리교로 만드는가’ 또는 다양한 변화를 경험하고 새로운 시대적 요구들이 증가하고 있는 이 현대사회에서 ‘교회의 사명과 과제는 무엇인가‘ 와 같은 근원적인 물음들을 진지하게 재조명함으로서 우리의 인식세계를 확장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때 감리교회는 시대적 요구에 성실히 응답하는 살아있는 종교로서의 역할을 다 하지 못할 것이며, 그 생명력을 상실할 것이다. 현상유지적 종교, 수적 성장에만 관심하는 종교는 시대적 사명과 요청에 무관심함으로서 살아있는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종교로서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교회가 무엇인가라는 교회의 정체성의 문제는 ‘예수운동으로서의 교회‘와 ’제도화된 교회‘가 가지는 거리에 대하여 조명해야 하며, 동시에 381년 콘스탄틴회의에 의하여 니케아신조에 첨부된 것으로서 교회의 특성을 규정한 바, 하나(one)되며, 거룩하고(holy), 보편적이며(catholic), 사도적(apostolic)이라는 내용에 대한 철저한 재개념화와 시대적 재조명이 요청된다. 또한 감리교성에 대한 의미규정은 어떤 차원에서 접근하는가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감리교를 감리교로 만드는 ’감리교성’이 있다면 어떠한 변화와 도전에도 열려있는 ‘개방성‘과 개신교의 원리인 끊임없이 개혁하는 ‘개혁성‘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개신교회와는 달리 감리교는 18세기 혁명의 완성의 시기에 태동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웨슬리는 그 신학에 있어서 연역적이기 보자는 매우 귀납적인 특성을 지니면서, 아주 구체적인 개혁과 실천에 관심하였다. 사변속에만 갖힌 신학이 그 실천적 힘을 발휘하기는 어려우며 구체적인 현실에서 복음을 확산화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웨슬리는 루터나 칼빈보다 휠씬 다양한 의미의 개혁적 사고를 하였다는 점에서 감리교의 특성과 정체성이 조명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문제에 있어서도 다른 종교개혁자들보다 휠씬 선구자적 의식을 가졌던 웨슬리 전통이 현대 한국감리교회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것은 진정한 발전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삶을 따르는 이들을 ‘크리스쳔’이라고 간결하게 규정한다면, 예수야 말로 진정한 ‘페미니스트’였다고 말하는 남성성서학자인 레오날드 스위들러(Leonard Swidler)1)의 외침에 한국감리교회가 이제 진지하게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한쪽으로는 예수의 복음전파를 외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성(sex)에 근거하여 여성들을 끊임없이 차별함으로서 예수의 복음에 거스르는 한국 감리교회가 되는 것이다. 한국감리교회의 진정한 성숙과 발전이 여성과 남성의 다차원적 평등을 실현하지 않고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1) Leonard Swidler, “Jesus was a Feminist,” Catholic World (January 1971): 177-83. 스위들러교수는 이 논문에서 예수가 어떻게 페미니스트였는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성서적 근거를 가지고 분석하고 있어서 커다란 호응을 받았다. 강력한 남성우월주의의 유대사회속에서 예수가 보여준 것은 철저하게 여성들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평등성에 대한 의식이라는 점을 근거로 스위들러교수는 예수를 아주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라고 결론내리면서, 예수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은 예수의 이러한 페미니즘도 따라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발제에 대한 응답 - 타교단의 입장에서 / 류태선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부 총무)
응 답/ 타교단
한국교회의 위기와 감리교회에 대한 기대
류태선 목사(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부 총무)
1. 인사
감리회 발전을 위한 귀한 토론회에 참여하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며, 이번 토론회를 통해 감리회의 발전, 더 나아가 위기에 처한 한국교회가 새로워지고 활력을 되찾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2. 발제 내용에 대한 응답
– 내용이 제목 중심으로 제시되어 있어, 응답을 하는 데에 한계가 있음
– 인간의 계획보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비젼과 맡겨 주신 일을 약속으로 받고 성취하는 일을 강조한 데에 공감
– 아울러 세속적인 요소가 신앙과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음에 대한 지적에 공감.
– 발제내용은 감리교회의 정책 전반에 대한 광범위한 언급이므로, 전체적으로 응답하기 어려움. 그러므로 이하에서는 본인이 특별히 관심을 갖고 있고, 우리가 함께 생각할 만하다고 생각되는 점을 몇 가지만 강조해서 말씀드리고자 함.
가. 한국교회에 대한 긴박한 위기의식의 공유가 가장 선행되어야 함.
– 경건과 영성의 약화 – 자기조절 능력의 상실
– 도덕적 불감증 – 시대변화에 대한 둔감한 반응
– 문화적 단절과 고립 –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기
바로 이런 것들이 발제자의 표현 ‘올무’에 해당한다고 봄.
지금 이대로의 모습대로라면, 한국 교회는 10년 후부터는 급격한 쇠퇴를 경험할 것으로 우려됨.
나. 한국교회가 올무에서 벗어나려면,
-교회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 두려운 자세로 다시 서는 경건과 영성의 회복이 최우선. (교회지도자 선거, 인선 관행 문제, 세습문제 등등의 구체적인 문제를 포함하여)
-성장 정책의 재정립 : 성장 정체의 원인 분석과 걸림돌 제거
즉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 회복을 통한 생명력 있는 성장정책 필요
(영적 지도력과 신뢰 상실, 교회의 분열과 양극화, 맘모스교회와 영세 미자립교회의 공존, 대사회적인 나눔과 섬김의 기여도, 문화적 고립과 단절 문제 등등)
–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의 적극적 대응
(정보화, 주5일근무제, 통일준비시대, 세계화시대 등등)
– 새로운 교회 일치 운동의 적극적 추진 필요.
(일치운동은 회피할 수 없는 성서적인 근거에 입각 엡 4:1-6)
새로운 일치운동은 과거의 보수, 진보 등의 틀을 넘어서서,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성령의 인도하심 따라,
스스로의 부족을 자인하는 겸손과 서로를 용납하는 관용과 대화의 정신으로 진정한 ‘다양성 속의 일치’를 모색해야 함.)
다. 감리교회에 대한 기대
– 뜨거운 영성과 경건의 전통 강화
– 적극적인 사회봉사의 전통 계승 발전
– 문화신학에 강한 특성을 살려, 한국전통문화, 대중문화, 타종교 등과의 성숙한 관계 정립에 선도적 역할 기대
– 새로운 교회일치 운동에의 적극적인 기여
3. 맺는 말
귀한 정책 협의회를 계기로, 기독교대한감리회가 더욱 발전하는 계기가 되고, 더 나아가 한국 교회를 갱신하고 크게 연합하는 데에도 밑거름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귀한 자리에 불러주셔서 한국교회의 미래를 위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패널토의
사회: 고수철 감독
사회자 : 여러분이 많은 기도를 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줄 압니다. 감독회장님이 감독들에게 순종하라고 하셔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도 이해하시고 많은 분들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다는 마음을 가지시면 되겠습니다. 먼저 ‘감리교회, 올무에서 벗어나기’라는 제목을 가지고 김한옥 목사님이 20분 간 강의를 하시는데 18분이 되면 종을 치겠습니다. 2분간 마무리를 준비해 주세요.
김한옥 목사: 객관적으로 교회를 보고 분석하여 건전한 비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보통 이런 발제를 목회자가 아닌 분들이 해왔는데, 이번에 목회자를 발제자로 선정한 것은 ‘네 자신을 반성하라’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솔직히 위기를 느낍니다. 그것은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사회 안에서 느끼는 위기의식도 있지만 그것보다 감리교 목회자로서 기독교 안에서 느끼는 위기 의식입니다. 지금까지 우리 감리교회 목회를 해오면서 느낀 것은 다른 교단에서 속된 말로 실컷 갖고 놀다가 아주 재미가 없어 내버린 장난감을 이제서야 우리는 소중한 것으로 알고 그것을 주어서 즐기려고 하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고 있습니다.
압구정에 있는 어떤 유명한 장로교회 목사님과 절반은 사적인 자리, 절반은 공적인 자리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장로교회와 더불어 같은 때에 한국에 상륙했는데, 그분 말씀입니다. “어느 크리스마스 때 감리교와 장로교가 형제로서 같이 크리스마스선물을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런데 감리교회에서 우리에게 속회제도라는 것을 선물로 주었다. 그것으로 우리는 재미를 많이 보았다. 그런데 우리 장로교회는 감리교회에게 어떤 선물을 주었다”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그건 내가 얘기 못하겠다 그러나 그 선물 가지고 재미 못 봤을 것이다.” 하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사실 우리가 장로교에서 집사제도를 선물로 받았는데, 그걸로 재미를 못 본 것 같지도 않은데 말입니다.
제가 놀라운 얘기를 들은 것은 지금 예장에서 50여년 전에 멤버쉽 자격을 박탈한 김재준 목사를 복권시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김재준 목사님을 복권한다는 것은 기장과 예장이 어떤 의미에서 정신적으로 하나가 된다는 얘기입니다. 장로교회가 수없이 많은 파가 있는데 그 전부가 다 지금 에큐메니칼 연합일치를 위해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것을 다 일치한다고 생각해 볼 때 감리교회는 지금 뭐하고 있는 것이냐? 그래서 제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 사회 안에서 어떤 위기의식을 느끼기 보다는 창피스럽습니다.
기독교 안에서 감리교 목사로서의 느끼는 위기가 더 많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한국에 있는 기독교회가 성장에 목표를 두고 성장이 계획대로 잘 되어 왔기 때문에 성장에 온전한 가치를 두고 목표를 삼고 지금까지 일 해왔습니다. 교회 성장이 멈추었을 때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대안은 생각지 않았습니다. 왜? 한국교회 성장이 멈출 일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왔기 때문입니다. 10년 전만해도 “행여라도 한국 교회가 성장이 멈출 때를 대비해서 대안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하면 “저 믿음 없는 것” 그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목회자가 방황하고 있습니다. 왜? 어떤 목회 계획을 세워야 하는 것인지, 지금 어디에 목회가치를 두어야 하는지 혼동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교회관이 지금까지 잘못되었다는 말이고 거기에 덧붙여 지금까지 잘했든 못했든 성장해 왔는데, 그 성장 속에는 상당 부분 사회적인 오염이 성장을 가능하도록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사회적인 오염 요소들이 우리 교회를 어쩌면 망칠지도 모르는 그러한 요소로 변화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몇 가지 극복해야 할 오염들을 목회자에서 들어보겠습니다. 우선 교회 정체성이 문제입니다.
사회적으로 보면 일반 사회 안에서 교회역시 하나의 기구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설립목적과 추진방향이 다른 기구와 다르지 않습니까.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교회를 분석하고 비판할 때에 일반 사회인들이 교회를 향하여 하는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잣대와 안목을 가지고 우리 스스로도 자책을 하고 자학하면서 교회를 분석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것들이 상당 부분 오염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분명히 교회 안에는 하나님을 향한 신적 규명과 이웃을 향한 인간적인 기능이 있을 터인데 한쪽부분은 이 사회의 공격으로 말미암아 약화되고 있는데, 우리 자신도 그것을 얘기하는 것조차 부끄러워할 만큼 균형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도자 문제에 대해 잠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근대 사회에서 무슨 경영이라든가 사회발전을 위해서 지도자 문제가 지금 굉장한 이슈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지도력, 리더쉽, 지도자가 가져야 할 태도 몇 가지 몇 가지 등 심지어 예수마저도 우리의 지도자로서 말하고 있습니다. 리더쉽에 대해서 교회도 관심을 가질 밖에 없습니다. 일반 사회 지도자와 교회 지도자를 볼 때 그들에 대한 그 자격의 기준이 같을 것인가? 전혀 다른 것이지요. 그렇지만 우리 교회 안에서 모든 지도력을 평가할 때는 사회지도력에 대한 평가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 때문에 오늘날 한국교회는 많은 상처를 입고 있으며 또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솔직히 기독교 지도자는 영성과 전문성을 겸해야합니다. 하지만 이 영성이라는 문제가 일반 사회의 공격 때문에 밀려버려 우리역시 거의 그것을 말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다음은 전문성 문제입니다. 일반 사회에서는 전문성과 비전문성, 소위 아마츄어와 프로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서 이것을 섞어 놓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 어느 분야에 아마츄어와 프로가 섞여서 공유하면서 일하는 데가 있습니까? 그런데 유일하게 기독교만은 아마츄어와 프로의 구분이 없습니다. 늘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신학 문제를 가지고 목회자와 신학자가 토론하면 목회자가 이기지 신학자가 이기지 못합니다. 목회학을 가지고 평신도와 목회자가 토론하면 평신도가 이기지 목회자가 이기지 못합니다. 아마츄어와 프로가 완전히 혼동되어서 등용되고 쓰여지고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것 역시 오늘 우리 교회 안의 위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선교에 대한 의미를 단순화시키면 좋겠습니다. 쉽게 말하면 선교는 ‘구원받음’입니다. 구원받음이 복잡하면 누가 구원받겠습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내는 절차가 복잡하다면 누가 살아나겠습니까? 건져내기 위한 절차와 준비과정은 복잡하더라도 그 작업만큼은 단순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너무 복잡한 절차를 가지고 아주 비효율적인 선교 활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제 교회성장은 멈추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교회성장에 대해 말해야 한다면 어떻게 말할 것인가? 저는 마가복음 4장에 있는 말씀처럼 처음에 씨를 심으면 그것이 처음에는 작고 어린 싹이 나오고 그것이 이삭이 되고 이삭이 자라 열매를 맺습니다. 그러면 추수하면 되는 것이지요. 열매 맺을 때까지 자라면 더 이상 자라지 않습니다. 한국교회가 외국에서 선교해서 성장하면 그것이 한국교회가 성장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내 교회가 포화 상태가 되었을 때 내 교회가 다른 어떤 지역에 씨를 심어서 그곳에서 성장하면 그것이 내 교회 성장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로 확대했으면 좋겠다는 그런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선교 분야에 대해서는 지금 300만총력전도운동 참 귀중한 일입니다.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 나라 모형으로서의 오늘 우리 교회의 기능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이 사회에 침투하는 하나의 전초기지로의 복지사업, 어떻게 말하면 하나님 나라 연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요. 교회가 오늘 이 시대 이 사회를 순화시키는 기능으로써, 거칠어진 이 사회를 좀 순화시키는 기능으로써 사회복지사업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원동력으로서의 성령의 역사를 지금까지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한사람이 모자랐죠? 그 때 그 제자를 뽑는데, 성령 받기 전에 그 제자를 뽑았습니다. 뽑고 난 뒤 성령이 역사했습니다. 그 뒤에 뭐했습니까? 전도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결여된 한사람의 지도자를 뽑는 것은 성령을 안 받고도 됩니다. 그러나 전도하고 복음증거하고 선교하는 것은 성령을 안 받고는 안됩니다. 우리는 지금 성령 받기 이전에 지도자 선출할 수 있는 문제를 가지고 얼마나 오랫동안 씨름을 하고, 얼마나 많은 진통을 겪고 있는 것입니까? 성령 받은 공동체가 그것 때문에 시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초대교회가 성장했던 것은 성령공동체로서 선교를 했기 때문입니다. 선교분야에 대해서 각 교회가 1교회, 1기능 방향으로 추진했으면 좋겠습니다.
교육문제, 과거에는 신학이 목회를 소위 말하면 도미네이트 했다고 말하지요. 폐해가 많았지만 지금은 어떻습니까? 목회가 신학을 도미네이트하고 있습니다. 똑같은 폐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도 요원한 것이 신학문제로 일어나는 논쟁 등 부끄러운 현실을 볼 때 이것을 빨리 조정하거나 극복하지 않으면 안될 것입니다. 그리고 신학에서 이론적인 것 보다 실제적인 실천신학을 보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목회자를 생산할 때 똑같은 관점을 가진 목회자를 대량생산하는 그런 제작이 아니라 하나의 작품으로 한사람 한사람이 자기의 독특한 소위 퍼스펙티브를 가지고 목회를 하고 신학을 보고 사회를 볼 수 있는 그런 사람으로 창조적인 교육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절대적으로 비효율적입니다. 같은 일에 중복이 많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5개의 의회제도를 3개로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5개의 의회제도가 가지는 감리교 특성을 우리는 다 잊어버리고, 내버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태여 왜 다섯 개입니까? 3개로 고쳐도 되지 않을까하는 것이 제 의견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지도자를 양성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현재 감리교회 감독은 2년제 입니다. 2년 임기의 감독이면 지도자라고 말해야 합니까? 지도자가 아니라고 말해야 합니까? 천주교에서는 한번 추기경이 되고 주교가 되면 영원히 추기경, 주교입니다. 한번 주교면 영원히 주교입니다. 장로교는 총회장 제도입니다. 총회장은 임기가 1년 밖에 안됩니다. 그래서 제가 볼 때 장로교는 일찌감치 1년 임기의 총회장을 지도자라고 말하지 않는 것 같아요. 그 대신 함경직 목사 같은 분을 지도자로 만든다 이 말입니다. 감리교가 그런 지도자를 배출하려면 제가 볼 때는 30년 내지 50년이 지난 뒤에야 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감리교에 인물이 없어서 그런게 아니고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2년 임기의 감독을 하신 분들이 명실공히 우리 한국감리교회 지도자가 되겠는가 하는 겁니다. 지도자 훈련을 받기도 전에 그만두어야 하는 제도를 가지고는 감리교회 지도자는 양성이 안됩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이것을 가지고 붙잡고 있어야 합니까? 직무유기지요. 이것을 빨리 고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감독제도 개선입니다. 감독은 성직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직 안에는 order하고 office직이 있는데 말하자면, 감독은 order입니다. 감리사나 재정부장은 office입니다. 지금 오늘 감독회장이 여기 계십니다. 구역회하려면 감리사님이 그 교회에 와서 구역회를 해야 합니다. 어떻게 감독이 당회장이 됩니까? 감독은 감독이지요. 그 말은 뭔고하니 명칭은 성직이지만 실질적으로 office라는 직책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순을 언제까지 가지고 갈 것입니까? 빨리 고쳐야지요. 그래서 감독을 4년 중임제나 전임제로 해서 우리도 명실공히 지도자를 키워보자는 말입니다.
결론을 말씀드립니다. 감리교는 신학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교회입니다. 그렇다면 에큐메니칼에 있어서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점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감리교입니다. 의회제도를 고치고 총대 선출 방법을 고쳐야 합니다.
부끄러운 말씀을 드립니다. 제는 3년 후에 은퇴합니다. 그런데 저희 지방에서 이번 입법 총대를 뽑는데 제가 어려서 총대가 못됩니다. 연령 수로 뽑는데도 제가 안 된다면 우리 감리교가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제 반성 겸 부끄러운 얘기를, 치부를 드러내는 그런 심정으로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사회자 : 우리 다시 공식적인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제 김고광 목사님이 발제해 주시겠습니다. 김한옥 목사님은 5분 초과했습니다. 시작해서 5분 초과했는데 김고광 목사님은 10분 간인데 잘해주시리라 생각하고 우리 박수 한번 쳐주시기 바랍니다.
김고광 목사 : 저는 목회자 입장에서 오늘 무엇이 가장 시급한 문제일까? 거기에 국한해서 준비를 했습니다. 감리교회에 신학은 고사하고 목회, 철학 그리고 제도는 있지만 그 제도에 따른 바른 행정이 있는가? 그렇게 물어보면 우리 오늘 감리교회가 얼마나 그 정체성에서 벗어나 있느냐는 것을 피부로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찾는다 하는 문제는 감리교회의 뿌리가 되는 웨슬리에게로 돌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웨슬리에게 돌아가서 우리의 문제 또 목회 현실의 문제 그런 것들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리가 웨슬리에게서 보는 목회자로서의 지도자상이나 또 웨슬리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인 목회자상 보다는 오히려 성공한 목회자, 성공한 교회 지도자, 교회정치에서 승리한 지도자. 그런 것이 오늘날 감리교의 목회자들에게 하나의 전형이 되고 목표가 되어 버린 것 같아서 웨슬리의 그것과는 너무도 많은 거리를 가지고 있다고 느낍니다. 오늘 한국감리교회는 웨슬리가 우려했던 것처럼 빈껍데기 감리교인과 감리교회가 되어버리지 않는가, 그런 위기의식을 가지면서 정체성의 문제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두번째 신학교육과 수급정책이 새로워져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신학교는 교회를, 교회는 신학교를 서로 문제라고 하는 이야기를 우리는 오랫동안 되풀이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정작 발전적인 모색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 신학교육이 웨슬리 신학과 교회 정체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교역자의 수급상태가 정말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지경에 와 있습니다. 이것은 어떤 개인의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또 단순히 신학교의 문제로만 돌릴 수 없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 세습의 문제라든가 지금의 형식적인 자격과정 심사위원회의 모습이라든지 그런 것들이 획기적으로 바뀌어져야 하지 않을까, 문제제기를 해봅니다.
세 번째는 교단의 새로운 풍토와 제도개선이 시급합니다. 오늘 우리 감리교회는 젊은 목회자들에게 내일의 희망을 주지 못하고 심지어 ‘교단을 떠나는 것이 자기들의 장래에 나을 것’이라고 하는 말들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제도 개선이 시급한 것 중 제가 몇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최저생계비 지급제도가 확립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척교회를 위한 정책이나 미자립교회를 위한 대책이 시급하다고 이야기합니다. 교회 개척이 지금과 같이 개인에게 맡겨져 있거나 목회자 개인의 일처럼 또 개척교회가 여력이 있어서 세우는 정도로 그쳐서는 안될 줄압니다.
미자립교회를 개인의 문제로만 보아서는 안될 줄 압니다.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에게 최저 생계비를 지급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어떤 의미에서는 개척교회의 성장은 멈추어졌다하더라도 우리가 뿌리는 또 다른 곳에서 씨앗이 성장함으로 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그 풍토가 되리라고 봅니다.
최저생계비 지급제도에는 본인의 정직성 또 지방, 연회, 본부에서 재정을 운영하는 분들의 투명성과 정직성이 필요하겠지만 이 최저생계비 문제를 제도적으로 연구할 단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실천할 수 있는가 하는 실천적인 방안을 강구해야 될 때라고 생각합니다. 최저생계비 문제, 연회 부담금 제도 문제와 함께 이것은 우리가 개선해 나가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교단의 재정이 어떻게 집행되는지를 모든 감리교인들과 목회자들이 제대로 모르고 있습니다. 보고되고 있는 숫자의 수치를 보아서는 전혀 알 길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부담금 개선을 꾀하고 최저생계비를 위한 정책을 호소한다는 것은 실현성이 없어 보입니다. 여기 부담금 제도의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할 줄 압니다. 지금과 같이 결산이 몇%, 예산% 그런식이 아니라 이것은 미국감리교에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의 예입니다만 우리 연회라든지 본부에서 필요로 하고 있는 인건비, 사업비, 선교비 등의 모든 항목에 대해서 몇%을 예산안에 배정해서 쓴다라고 항목을 세분화하고 그 항목에 따라서 부담금 배당이 달라질 수 있는 그런 제도개선이 필요합니다.
또 본부 재단의 재정운영에 대해서도 전문가를 고용해서 전문적인 재정운영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은급비 문제도 지금 은급재단에서 심각하게 대처하고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감리교회가 앞선 교회라고 자랑했지만 지금은 얼마나 뒤떨어져 있는지 잘 알고 있지 않습니까. 감리교회 은급비 부담이 적어서도 아니고 목회자들이 갑자기 늘어서도 아닙니다. 은급사업에 대한 모든 것을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사회변화의 추이를 연구하면서 오래 전에 예측하고 대비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전문성을 요하는 재정운영에 가장 비전문적인 목회자들이 책임자로 운영하는 것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은급비를 전문기관에 위촉하든지 전문가를 고용해서라도 이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감독제도 개선은 시급한 문제 중의 하나입니다. 감리교의 정치가 과연 감독정치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도 물어야할 줄로 압니다. 역사적으로 보아서 웨슬리는 감독제도를 반대했고, 또 역사적으로 보아서 감독제도나 주교제를 사용하고 있는 그런 교회는 두 가지 전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 주교나 감독이 자기 교구에 있는 성직자들의 인사권과 파송권을 가지는 것이고 둘째는 자기 교구 안에 있는 성직자들의 최저생계비를 책임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요소가 구성되지 않으면 진정한 의미의 감독제도는 성립될 수 없습니다.
우리 한국감리교회는 처음부터 이 두 가지를 충실하게 갖추어 놓고 감독제도가 시작된 것이 아니고 미국 감독제도가 들어와서 시작되었는데, 지금 이 두 가지를 하나도 못하면서 감독제도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한번 근본적으로 짚어보아야 할 문제입니다.
다음은 장정개정위원회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의 감리교회 장정을 개선하는데 는 어떤 의미에서 장정개정위원회가 전권을 행사하다시피 하고 있습니다. 그 구성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 알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이 장정 개정위원회가 교회 전체의견을 반영하지 못한다고 하면 장정개정위원회 구성 자체를 개정할 수 있는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지 우리 감리교회 목회자로서 내일에 대한 희망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발제를 마치겠습니다.
사회자 : 수고 많으셨습니다. 2분 초과했지만 아주 양호합니다. 박수 한번 부탁합니다. 한 분 더 하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겠습니다. 조규환 장로님께서 ‘감리교회와 사회복지’ 란 주제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규환 장로: 감리교회의 사회복지 문제를 중심으로 해서 타 교단과 비교해 가면서 감리교회의 사회복지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감리교회의 선교사가 들어오면서부터 팔 구십여년 전에 사회복지관을 설립해서 우리 땅에서 소외되고 어려움 당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 온 것이 우리 감리교회 사회복지 기관입니다.
한국전쟁이 나면서 미국감리교회 구세위원(MCOR)이라는 것이 우리 선교부에 들어와서 이 1978년도까지 일하다가 철수했습니다. MCOR이 있을 때는 우리 감리교에 사회국이 있었습니다. MCOR의 지원을 받다가 MCOR이 철수 하니까 사회국도 곧 없어졌어요. 그런데 MCOR이 가지고 있던 수십억의 재산으로 전국의 우리 사회복지 시설에 많은 시설을 지원해 주었습니다. MCOR에서 양돈, 토끼 등 농가 지원사업도 굉장히 많이 했지만 MCOR이 철수하면서 다 없어져 버렸습니다. 선교사들이 손떼고 난 다음에는 거의 무방비 상태가 되어버린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우리 감리교회도 엄청나게 성장했다는 것을 우리가 다 아는 바입니다. 그 반면에 우리가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얼마나 할 수 있나 한번쯤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토론을 제안 받고 인터넷에 들어가 몇 교단에서 관련 자료를 뽑아보았더니 불교 경우에는 1995년도에 설립한 복지재단 내 사회복지 직원만 몇 십명 되고, 사회복지에 속한 직원이 몇 백명이나 됩니다. 우리 천사원에서 7-80년대 구로 사회복지관을 인수해서 위탁 운영하다가 반납을 했더니 1995년도 조계종이 위탁받았어요. 그리고 종로에 있는 노인복지관도 불교 사회복지 재단에서 맡았어요. 그리고 불교는 어디에든 다 참여합니다. 청소년 수련관, 어린이집 할 것 없이 뭐든지 사회복지시설은 조계종에서 다 맡고 아니면 자기네 사찰에서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줍니다. 요새 우리가 위탁하는 시설 들이 자부담한다고는 하지만 자부담하는 곳이 없어요. 거의 국가보조로 운영합니다. 앞으로 좀 적극적으로 어느 교회에서 사회복지 시설 위탁 운영 등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참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노무현 정부도 사회복지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국가에서는 복지 시설들을 민영화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전부 불교나 천주교에서 맡아 할 것 같으면 앞으로 우리 감리교회는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대로 갈 것 같으면 정부에서 노인복지관 장애인복지관을 각 군에서 하나씩 만들 겁니다. 그것을 다 지어서 100% 국가가 지원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이제 다 만들어져서 운영자가 정해지고 난 다음에는 할래야 할 수도 없구요. 또 우리가 기술이 없고 전문가가 없으면 하고 싶어도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감리교회는 사회복지에 대한 전문가를 빨리 양성해야 합니다.
제가 작년에 일본에 갔더니요, 동경에 도에서 자기네 돈으로 300억엔 우리 돈으로 3000억원 들여서 땅을 사서 사회복지 시설을 지어서 그것을 위탁시설에 법인까지 넘겨주었어요. 그래서 그것을 물어봤습니다. 어떻게 위탁시설에다 법재산까지 다 주냐? 그랬더니 사회복지법인은 국가가 관리하지만 운영은 민간이 더 잘 관리한다는 거예요. 우리도 얼마 안 있어 그렇게 되리라고 봅니다. 정부가 앞으로 자꾸 준비해서 위탁 운영권을 민간인에게 주니 우리 민간인은 기술과 전문성만 있으면 얼마든지 시설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어느 교단, 어느 교파 못지않게 사회복지를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복지관이 얼마나 잘합니까? 전국에서 우리 사회복지관이 제일 잘 하고 있습니다. 저희 천사원만 해도 직원이 30명이 됩니다. 정부의 돈을 받지 않는 직원입니다. 출판부, 연구소, 수익사업부, 후원개발실, 그리고 우리 재단실, 정부에서 월급주지 않는 사람이 30명이 되요. 개인천사원인 우리 천사원도 그런데, 감리회 재단에는 한 15명쯤 정도의 전문가를 데리고 있어야지요. 그러기 때문에 앞으로 우리 목사님들과 감독님이 마음만 먹을 것 같으면 우리 감리교도 얼마든지 사회복지 발전에 앞장서서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대단히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다시 박수해 주세요. 이 시간에는 감리교 청년연합회 연상준 부총무가 발제 해주시겠습니다.
연상준 부총무: 김한옥 목사님의 ‘감리교회 올무에서 벗어나기’ 발제를 듣고 나름대로 저희 청년회에서 응답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응답을 적어보았습니다.
첫 번째로 극복해야 할 세속적인 오염에 대해서, 세상을 향해 맑은 물을 생산해 내었던 교회의 모습이 오히려 본래의 역할을 상실해 가고 있음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최근 한국교회는 일반 기업처럼 아직도 양적성장을 추구하는데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이며, 실제로 교회의 대형화는 마치 유행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모이고 사랑으로 흩어지던 초기 복음의 신앙공동체의 모습이 점점 모이는 교회로만 전락해져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봅니다.
교회가 목회자 중심의 목회를 지향하며 목회자의 리더쉽에 좌지우지 되고 있고 일부 대형교회에서는 그것이 교단이 추구하는 정책이나 성향에 관계없이 목회자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 있습니다. 교회의 주역은 목회자 뿐 아니라 평신도에게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는 평신도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회의 전통은 평신도운동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세속의 위험을 극복하고 세상의 안식처가 되기 위해 평신도의 자각과 목회자의 노력이 절실히 필요한 때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일부 몇몇 교회를 중심으로 교회세습이라는 형태의 교회 대물림이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문제를 극복해 내지 못한다면, 감리교의 미래는 상당히 어려울 것입니다. 또 뜻있고 젊은 목회자를 키워낼 수 없는 구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 공동체가 사회의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처럼 기업화 되어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두 번째는 감리교 선교에 대한 부분인데요. 전도는 믿는 이들의 사명입니다. 크리스챤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3백만총력전도운동은 좋은 시도라고 생각합니다. 70-80년대 경제성장과 함께 교회의 성장도 괄목할만 하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런 내용에 비해 양적성장에 치우친 측면이 있습니다. 또한 교회의 모습이 분열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90년대 거품 경제가 걷히고 민주화의 성숙과 시민사회의 성장 그리고 새로운 세대의 등장으로 세상 속에서 교회는 외면 당하고 구시대적 산물인양 취급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로 교회의 위기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교회가 양적성장과 함께 질적성숙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교회 주변의 이웃들과 함께 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한국 역사의 굴곡과 함께 한 교회의 모습 속에서 세상을 앞서가서 길을 제시했던 교회가 지금은 제대로 앞을 보고 있지 못하는 위기의 상황입니다. 이번 300만총력전도운동을 통해서 감리교회가 다시 새로운 도약의 길을 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이 일회성 운동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앞에서도 말했던 것처럼 교회 내부의 각성을 통한 질적 성숙을 담보해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300만총력전도운동은 교회 이미지 개선 운동과 함께 해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비기독교인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를 주었던 교회의 모습을 긍정적이고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며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교회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또 교회의 문호를 과감히 개방하고 지역사회에서 교회의 역할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상당히 이슈가 되어 있는 ‘감자탕 교회’라고 교회에서는 교회 재정의 절반 이상을 집이 없는 독거노인들이라든가 이런 분들을 대상으로 집을 무료로 지어주기도 하고 그들이 기독교 신자이건 아니건 그 지역에 사는 사람에게 그런 식으로 베풀고 있답니다.
세 번째는 교육입니다. 오랜 동안 교회 안에서의 교육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르치는 것에 치우쳐서 정작 ‘예수의 정신’과 말씀에는 소홀히 하지 않았는지 자문해 봅니다. 오늘날 감리교회가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예수의 이름’을 알리는 교육에 치우쳐 ‘정신’을 폭넓게 이해시키는 것에 오히려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단적인 예로 “너희는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어라”는 말씀을 단지 문자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흩어져 예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말씀으로 폭넓게 교육시키고 인지시키지 못한다면 그렇지 못한 곳에 지금의 가장 큰 교육의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서로 용서하고, 서로 사랑하고, 감사하고, 나누라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끼리’로 변질되어 가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그런 곳에 힘을 쏟는 교회교육이 초대교회의 말씀으로 모이고, 사랑으로 흩어지던 그런 교회의 모습은 찾기 힘들 것입니다. 나아가서 이러한 상황들이 신앙과 생활의 통일을 가져오지 못하는 문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교회학교 같은 경우 주일학교에 가장 어린이가 많고, 중등부 그 다음 고등부로 갈수록 점점 수가 줄다가 청년회에 가서는 거의 절반 이상으로 뚝 떨어집니다. 그것은 실제로 자기가 삶으로 살고 있는 세상 속에서 과연 자기가 지금까지 받아온 교회 교육이 어떤 성과를 나타내고 있지 못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자기 삶과의 이질감, 교회 교육을 통해서 이것을 어떻게 풀어내야 될지 하는 이런 포괄적인 개념으로서의 교회 교육으로 다가오지 않는다면 어려움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는 현상황에서, 다양성과 여러 가지 사회문제들이 대두되고 있는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피부로 접하고 있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낼 수 있는 교회 교육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이를 위해 교단차원에서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감리교 청년연합회에서 교육국이 주최하고 청년회 전국연합회가 주관하는 형식으로 감리교 청년 지도력 훈련캠프를 8월에 개최합니다. 프로그램 내용면에서도 지금까지의 수련회와는 다른, 기독교 감리교 청년으로서 고민할 수 있는 내용으로 많이 채워져 있습니다. 이 기회를 통해서 각 교회 청년들, 지도력을 가지고 있는 청년들을 청년지도력 훈련캠프에 많이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기구 및 조직에 대해서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 21세기는 다양성의 시기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변화하는 세계와 다양해지고 복잡해진 현대 사회에 적응하고 보다 나은 성장을 모색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의 현 기구와 조직은 후퇴하는 경향이 있다고 봅니다. 현재 총회의 총대 구성이 연급으로 구성되어 있어 감리교회 전체 의견을 반영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또한 선교정책 수립과 대안 제시에 있어 현장에서 실제로 움직이고 있는 이견이나 선교단체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며, 이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총대의 구성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으며 총대는 각 선교기관 대표들이 직능대표 명목으로 선출되는 방법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여성과 청년대표가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성은 교회의 구성 비율면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청년의 경우도 CCA이나 WCC같은 경우를 보면 청년, 여성, 목회자가 공동의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세계기구로 나갈수록 청년은 총대권도 있고 공동의장도 돌아가면서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마지막으로 감독선출제도와 관련하여 말씀드리겠는데요. 감독은 정치나 권위주의의 상징이 아니라 명예와 헌신의 대명사가 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년 임기로는 이를 일관되게 추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임기의 보장과 함께 전임제가 실시되어야 하고 감독선거 제도도 현행 투표제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는 제비뽑기가 근본적인 대안으로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행 제도의 대안으로는 긍정적으로 검토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봅니다.
마지막으로 에큐메니칼 지도력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청년회 전국연합회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산하 한국기독교청년협의회와 연대하며 타교단과 많은 교류를 해오고 있습니다. 실제로 저희 청년연합회는 청년선교단체로서 기독교장로교 청년연합회 그리고 EYCK와 연대하고 있습니다. 그동안은 어떤 개교단 차원에서는 할 수 없었던 것을 연합으로 해서 인력을 통원하는 등 양적으로 나갔었지만 이제는 지도력을 훈련하는 쪽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에큐메니칼 지도력을 생산하는데 있어서 청년단체로서는 버거운 부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감리교 청년연합회에서도 EYCK를 통해서 일본에 1년 8개월 동안 지도력 훈련을 위해 인턴으로 파견, 훈련시켰습니다. 또한 실제로 청년연합회의 예산안 부분을 비롯 교단적인 차원에서 지원이 요청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약자의 모습으로 청년을 바라보는 것에서 패기와 투기에 찬 모습, 청년에 대한 거부감에 이르기까지 청년회를 바라보는 시각은 참으로 다양합니다. 사회 문제에 참여하며 교회의 일을 소홀히 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는 여기서 질문을 하나 하겠습니다. 물론 교회 일에 청년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과연 어떠한 것이 교회 일입니까. 청년회는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러하겠지만 청년예수의 정신으로 복음이 사라져 가는 곳에서 복음의 전도자가 될 것이고 썩어가는 세상을 향해서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할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임을 고백하며 나아갈 것입니다. 감리교회를 사랑하고 이웃들의 아픔에 동참하는 청년들이 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 수고하셨습니다. 한 5분 정도 지났지만 아주 잘 했습니다. 박수한번 더 쳐주시기 바랍니다. 이 시간에는 우리 김흥수 교수님이 신학자 입장에서 발제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김흥수 교수: 저희 감리교회가 한국에 소개 된지 120년 되었습니다. 1945년을 기점으로 해서 대충 60씩 반으로 나눌 수 있는데 60년 이전이나 또 지난 1980년대까지 한국감리교역사를 해석할 수 있는 큰 틀 중의 하나가 교회와 국가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식민지 하에 있었고, 해방 이후에도 불안정한 정치 체제 아래에서 교회와 국가문제 때문에 지난 80년대까지 교회가 많은 관심을 가져야만 했습니다. 이것과 관련해서 교회 정치성 문제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일제시기에는 항일 민족운동을 해야되는 것이 당연했고 그래서 그 교회와 국가관계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그리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 뒤로 해방 이후에는 남쪽 정부의 관계를 따로 설정해야 했고 또 북한과의 관계도 생각해야 되었고 또 한국교회가 차츰 미국에 의존하게 되면서 미국과 한국교회와의 관계들을 숙고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근데 문제는 일제 때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저희가 애국적인 교회의 모습을 갖추었고 또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 분명했으니까 문제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해방 이후의 국가와 교회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북한과는 전쟁을 겪었기 때문에 반북적이고 반공적인 태도를 교회가 견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난 80년대 이후로 우리 교회가 북과 관련을 맺고 통일을 같이 얘기하는 그런 상황인데도 여전히 한국전쟁 시기에 북한에 대한 이미지와 감정을 가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아마도 이것이 특히 우리 감리교회가 통일선교에 관심을 두고 또 그것을 진척 시키려면 북한과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인가 하는 점을 분명히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통일과 화해의 시대에 여전히 50년 전에 반공과 반북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면 이것이 어떻게 될 것인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하나는 미국과의 관계인데 미국과의 관계도 뭐 누구나 이야기하지만 친미적인 태도를 한국교회 전체가 보여주고 있는데, 원인을 분석해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전쟁 이후에 남쪽교회가 북한에 대한 공포감을 많이 갖게 되었고 또 전쟁시기에는 생존이 문제가 되었으니까 생존 자체를 미국의 구호활동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또 북한에 대한 공포감을 미국 군사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차츰 차츰 강화되면서 지금은 소위 하나님에게 의지하기보다 미국에 의지하는 쪽으로 갈 정도로 미국에 대한 태도가 의존적입니다. 이것도 장차 앞으로 선교와 우리의 정체성과 관련하여 문제가 된다고 합니다.
북한에서는 끊임없이 해방 이후에 미국에 대한 적대적인 태도 즉 반미태도가 분명했는데, 이는 남쪽 교회와 반대가 되죠. 그 다음에 남쪽 사회에서 젊은들이 사이에서 반미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데, 특히 젊은이들 가운데서 이런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데 우리 감리교회가 미국에 대한 전통적인 기존의 태도만 고수할 때 이 젊은이들을 교회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선교적인 차원에서도 미국과의 관계를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찌 되었든 그것은 우리가 논의를 하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교회와 국가관계에서 제가 걱정하는 것은 일제 시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일제의 종교간섭에 대해서 우리 감리교는 대단히 무기력하게 반응을 보이고 저항할 줄 몰랐습니다.
45년 동안 일제 식민지 하에서 일제히 종교 간섭을 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신사참배입니다. 또 하나는 1939년에 제정이 되었지만 1929년부터 몇 차례 종교단체법을 개정해서 종교활동을 효과적으로 통제하려고 시도했습니다. 신사참배에 대해서도 감리교는 저항한 적이 없습니다. 또 종교를 통제하려는 종교단체법 제정에 대해서 우리 감리교회는 무슨 위원회를 구성한다거나 하는 조직적인 반대를 한 적이 없습니다. 장로교와는 전혀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1915년에 일제가 자꾸 기독교 미션스쿨에서 민족애가 강화되고 길러지니까 그것을 통제하기 위해서 사립학교법을 개정했습니다. 개정해서 미션스쿨에서 성경도 못 가르치고 예배도 드리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그렇게 한 학교에는 고등보통학교라는 허가를 해 주었습니다. 미션스쿨을 많이 갖고 있던 장로교와 감리교는 이 문제를 가지고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 장로교는 전부 ‘우리가 성경을 가르치지 못하고 예배를 드릴 수 없다면 교육을 포기 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을 취했는데, 감리교회는 일제의 종교간섭에 대해 고민하기는 했지만 일제의 요구에 순응해서 성경을 안 가르치고 예배를 드리지 않는 쪽을 택하고 제일 먼저 배재학교부터 고등보통학교 인가를 받았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신사참배도 그렇고 또 이런 다른 여러 가지 경우를 볼 때마다 감리교의 신앙과 신학을 지키려고 하는 강인한 의지가 유감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없었다는 것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이렇게 종교를 통제하는 정권이 들어선다면 우리 감리교는 제가 보기에는 제일 먼저 국가교회가 될 가능성이 많습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지키고 그리고 그것을 전하려는 자세를 교회와 신학교에서 좀 강화 시켜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전통하에서 한국감리교 안에서는 절대 주기철 목사님 같은 사람이 나올 수 없다는 것을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 45년 이후에 감리교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60년대 진행된 토착화 신학운동입니다. 21세기에는 다시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 즉 옛 문화든 오늘날 문화든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질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지난 20세기 100년 동안은 원체 생존문제가 급했고, 정치적 상황이 열악했으며 또 경제적으로 어려웠기 때문에 당장 교회와 사회, 교회와 국가 문제에 교회가 몰두할 수 없었다면 이제 정치적 압박과 탄압으로부터 벗어난 상황이 되었기에 한국인의 전통적인 사고방식이라든지 사유체계 또는 한국인들의 사상 그리고 요즘 젊은이들의 선호하는 것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파악하려면 정치보다는 문화 및 문화과제 쪽으로 교회와 목회자들이 관심을 돌려서 한국인들을 좀 더 그쪽 측면에서 이해하려고 해야 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100년이 좀 넘은 한국교회가 주체적인 감리교회가 되고 그야말로 1930년대에 한국 감리교회가 창설되면서 모토로 내세웠던 조선적 기독교, 조선 문화와 조선풍습에 조화되는 기독교라는 문제에 좀 더 많이 관심을 갖게 되어야만 한국적인 감리교회가 주체적인 감리교회가 될 것 같은 전망을 해봅니다. 우리 전통에 이런 강한 전통이 있고, 또 지금도 이쪽 분야에 계신 분들이 많이 계시니까 이 점에 대해서는 그리 어려움이 없으리라 봅니다. 신학교육은 강박사님이 말씀해 주시겠지만 한가지만 말씀드리면 신학교육에 여러 문제가 있지만 큰 문제 중의 하나는 신학생들의 학습능력이 굉장히 떨어졌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130명을 뽑고 있는데 그 중 50명은 도저히 대학에서 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입니다. 과연 이 학생들이 앞으로 현장에 나가서 교회에서 지도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이것은 대단히 위험스런 상황입니다. 이것을 고려하셔서 신학교에 우수한 학생들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앞으로 감리교회의 지도력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사회자 : 비교적 정확한 시간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시간에는 여성 입장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강남순 교수님 발제의 시간을 갖겠습니다. 박수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강남순 : 아마 여러분들이 느끼셨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6명의 발제자들이 나오셨는데, 유독 여성이라는 범주가 다른 범주보다는 다르다는 것을 느끼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신학자라든지 또 목회자 같은 경우는 역할이나 기능에 따라 분류되었고 청년은 나이에 따라 분류가 되어서 어떤 의미에서 보면은 굉장히 가변적인 범주입니다. 근데 여성만은 생물학적인 범주죠. 전 신학자이지만 여성으로서 여기에 나와 있습니다. 뭐 저야 결코 청년의 범주에 들어 갈 수는 없지만 아마 청년으로 나오신 분들도 한참이 지나면 청년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데 여성이라는 범주는 저에게 뗄 수 없는, 평생 따라 다니는 범주입니다. 그렇다면 왜 남성은 없는데 왜 여성이라는 범주가 이 속에 들어갔을까? 저는 여성이라는 범주에 들어가 있는 사람으로서 여성의 관점으로 감리교발전을 위해서 제안을 한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를 생각했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여성이라는 생물학적인 범주로서의 여성이 아니라 사실은 성차별에 대한 인식을 하는 사람으로서의 제언을 하라는 요청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릴 것에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성차별에 대한 인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한옥 목사님께서 그 아마츄어니즘과 프로페셔널리즘을 말씀해 주셨는데 이 성차별주의 만큼 왜곡되어 이해되는 것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굉장히 전문적인 인식이 필요한 것이 성차별주의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한다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요소가 있다면 정의의 실현입니다. 그런데 이 정의라는 것을 그냥 정의라고 할 때 소위 젠더 저스티스라고 하는 용어가 새롭게 등장했는데, 새로운 그 정의는 관심 갖지 않아 왔습니다. 그래서 성별 정의, 남성과 여성간의 불평등한 구조를 바로 잡는 젠더 저스티스 문제가 하나님 나라 실현에 중요한 것입니다. 사실 선교라고 하는 것도 어떤 개념으로 우리가 이야기해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포괄적 논의가 필요합니다만 이 여성의 관점으로 문제를 들여다보기 시작한다는 것은 모든 것을 재개념화 하고 모든 개념들의 근원적인 문제제기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저와 같이 여성 문제에 관심하는 사람들이 비판적인 사람으로 보이는 이유 중의 하나는 실제로 별로 안그런데요 기존에 있는 개념들에 대해서 퀘스쳔 마크를 붙여요. 목사님들이 에큐메니칼 지도력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셨는데 소위 여성의 관점에서 볼 때 기존의 지도력의 개념이 무엇이 문제인가? 몇 가지 간략하게 보면 기존의 지도력에 대한 이해는 위계주의적입니다. 지도력을 남성 중심적으로 또 지배하는 힘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새로운 지도력의 개념은 굉장히 수평적인 것이여야 하고,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서빙하는 것, 치유하는 지도력이 되어야 합니다. 여성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보게 될 때에는 여성들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복음이 드러내고자 하는 정말 하나님 나라를 실천하는 모든 요소들을 아주 예민하게 드러나보이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도 ‘기독교 안에서 여성운동은 성령운동이다’ 그렇게 제가 감히 말씀을 드리고 무슨 질문을 하셔도 저는 왜 성령운동인지를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변혁의 요소로 생각하는 것은 이 객관적 제도만 변해가지고는 실제적 변혁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1931년에 한국처음으로 여성들에게 목사안수를 주었습니다. 그런데 2002년 통계를 보면은 우리 감리교회 여성 목사가 252명이예요. 예수교 장로교는 아무리 교회의 세가 크지만 1995년도에 여자목사 안수제도가 통과되어 지금 몇 년 밖에 안되었지만 300명이 넘습니다. 왜 제도적으로는 감리교회가 선구자적인 역할을 했는데, 실질적으로 왜 그렇게 작은 수의 여성지도자들이 나오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저는 주관적인 변혁의 차원이 수반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보다 통전적인 변혁이 이루지기 위해서는 주관적 차원의 변혁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 주관적 차원의 변화를 저는 세 가지 차원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신학교육에서는 두 가지 요소가 중요한데 신학교육의 커리큘럼 구성과 교수진의 구성입니다. 제가 발제에 아주 간략하게 썼는데 발제를 보시면 핵심이 무언가 여러분이 아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평등의 구조를 양적 평등, 질적 평등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목회자 (연장)교육에서도 저는 신학이나 목회자라는 것이 끊임없이 연결고리가 되어 있기 때문에 따로 보지 않습니다. 교회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신학교육이 발전해야 하고 신학교육이 발전해야 또 교회가 발전합니다. 그래서 신학교육이 올바로 서야 올바른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사실 커리큘럼을 봤더니 오래전에 계속되었던 커리큘럼이 목회자 교육과정이라든지 연장교육에서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데, 이것은 여러 가지로 감리교회를 낙후한 교회로 교단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자 교육에서도 새로운 연장교육제도가 도입되면서 또 목회자 과정을 위한 교육도 커리큘럼도 재구성해서 이 성별차별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필수적으로 넣고 동시에 현대사회에서 목회자에게 요구하는 다양한 물음들에 준비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들을 목회자 교육에서도 반영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경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다음에 교회교육에서는 두 가지 차원의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데, 하나는 교회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들에 대한 훈련이고, 또 다른 하나는 교재 개발입니다. 교사들이 다양하게 성차별적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은 많은 연구들에 의해서 발견되었습니다. 교사들이 쓰는 형용사라든지 여자 어휘와 남자에게 다르게 쓰는 형용사들, 다르게 쓰는 기대치들 이런 것들이 사실은 질적 평등 불평등을 야기하고 있습니다. 교재교육도 마찬가지입니다. 양성 평등을 드러낼 수 있는 역할모델도 성서해석을 할 수 있는 교재가 필요하고 그것을 가르칠 수 있는 교사들에 대한 교육도 새롭게 재정비되어야 합니다.
그 다음에 마지막으로 오늘 감리교 발전을 위한 토론회인데 여러분들은 이 발전이라고 하는 것에 대해서 어떤 표상을 가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처음 준비위원회가 모일 때도 저는 진정한 발전이라고 하는 것이 양적성장과 성숙을 다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생각하면서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우리는 근원적인 문제에 끊임없이 재점검하는 것을 우리 감리교회 안의 하나의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감리교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우리가 폭넓게 논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개방성과 개혁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김고광 목사님께서도 지적해 주셨지만 감리교는 어떤 의미에서는 종교개혁의 완성을 이야기하는 교단이기도 하고 또 혁명의 완성기인 18세기에 태동된 것이 감리교입니다. 그래서 어떤 다른 교단보다도 훨씬 사회 개혁적이었고, 개방적이었습니다. 저는 이 감리교를 감리교로 만드는 것은 바로 이런 문제라고 생각하고 이런 면에서 아주 포괄적으로 감리교 발전을 위해서 이런 차별의 문제를 보다 복합적으로 규정할 수 있는 감리교가 되기를 바랍니다.
저가 발제에서 마지막에 인용할 사람이 있는데. 남성 신약성서 신학자 리오날드 쉬이들러라는 미국의 유명한 신약성서 신학자입니다. 그는 70년대에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JUSES WAS A FAMINIST)’ 라는 논문을 서서 아주 좋은 반응을 받았습니다. 이분은 페미니스트라는 이론을 가지고 논문을 쓰시지 않고, 아주 철저히 신약성서에 기초해서 예수께서 얼마나 페미니스트였나라고 하는 것을 이 논문에서 규정 했습니다. 저는 이 성서신학자가 마지막 결론에 크리스챤을 예수를 따르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면 모든 크리스챤들은 예수의 페미니즘도 따라야 된다라는 결론을 감리교발전을 위한 대토론에서 여성의 관점에서 제언을 하면서 결론을 내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 수고를 많이 하셨습니다. 시간이 조금 넘었지만 그래도 중요한 말씀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박수 한번 해 주십시오. 이제 마지막 패널로 대한 예수교장로회 총회 사회부 총무로 수고하고 계시는 유태선 목사님 말씀해 주시는데 박수로 힘차게 맞아 주십시오.
류태선 목사 : 저는 이 시간에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첫 번째 생각은 감리교회 뿐만이 아니라 한국교회 전체가 한국교회에 대한 절박한 위기의식을 함께 하는 것이 제일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할 때, 또 칼빈이 할 때 그리고 웨슬리가 감리교운동을 시작할 때 가졌던 것 같은 위기의식을 우리가 가져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가?
첫째, 한국 교회 경건과 영성의 약화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말하고 행동한다는 의식이 약해졌다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자기조절 능력을 상실했다는 겁니다. 아까 신학교에 대한 논의가 많이 나왔는데요. 신학교에서 예비 목회자를 과잉 양성하고 있다는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도 조절을 못하고 있습니다. 어떤 유기체든지 피드백 기능이 상실되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세 번째로 도덕적 불감증인데, 선거 문제가 많이 나왔습니다만 우리 교회 선거에 금품얘기가 끊이지 않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무감각합니다. 이것이 위기입니다. 그리고 시대 변화에 둔감합니다. 세계화 정보화 또 통일 시대 등등이 숨가쁘게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데, 거기에 대한 대비가 부족합니다. 다섯 번째로 문화적 단절과 고립입니다. 우리가 전통문화 대중문화로부터 상당히 고립이 되어서 왕따 당하는 것 같은 그런 현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불교와 천주교는 서로 분위기를 맞춰가면서 여론에 상당히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 우리가 예의 주시를 해야 합니다. 여섯번째, 에큐메니칼 운동의 위기입니다. 80년대 중반이후까지 한국교회는 한국의 모든 사회운동을 선도하고 주도해 왔는데 지금 그런 선도성과 주도성을 완전히 상실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런 여러 가지 위기의식을 우리가 공감해야 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것을 두 가지 비유로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는 배 밑창에 구멍이 뻥 뚫린 타이타닉호를 생각해 봅니다. 배 밑창에 큰 구멍이 뚫려서 이제 머잖아 침몰할 수밖에 없는데도 배가 워낙 크다 보니까 아직까지 유유하게 순항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현상을 보면서 우리가 안심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닌가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성경의 말씀처럼 소금이 맛을 잃으면 길거리에 버리워져 사람들에게 짓밟히리라고 하였는데 우리는 이미 맛을 잃어서 짓밟히고 있습니다. 언론들이 우리를 비아냥거리고 그런 모습을 우리가 당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거기에 대해서 상당히 무감각하다는 겁니다.
그러나 아직은 기회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가 여기에 대해서 긴박한 위기의식, 루터, 칼빈, 웨슬리의 위기의식을 우리가 가지면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런 점들이 맨 처음 발제해 주신 목사님께서 말씀하셨던 올무가 바로 이런 것들이 아닌가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러한 올무를 벗어나려면 우리가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지 몇 가지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째는 우리 모든 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 앞에서 두려운 자세로 다시 서는 경건과 영성의 회복이 최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거 문제가 많이 나왔지만 저희 교단 총회도 작년에 제비뽑기로 하기로 정하고 금년에 세부시행 방안을 확정하기로 했습니다. 합동은 이미 시행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것이 각 교단마다 확산되어서 교회 지도자를 뽑는데 여러 가지 불미한 이야기들이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밖에도 여러 교회의 요직을 뽑는 인선관행 문제입니다. 인선을 함에 있어서 정치가 난무한다고 합니다. 정치가 아닌 전문성과 실력을 바탕으로 적재적소에 인재를 배치하는 것이 제도화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느 교파를 막론하고 대형교회 세습문제에 대한 얘기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데, 이런 문제들을 우리가 속히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우리가 크게 관심 가져야 할 것은 성장정책의 재정립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총회는 여러 해 전에 1만교회 400만 신도운동을 했습니다. 감리교회도 지금 300만총력전도운동을 하고 있는데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뜻대로 잘되고 있지 않습니다. 무조건 400만 만들자, 300만 만들자가 아니라 왜 성장이 정체 되고 있는가 그 원인 분석과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몇 가지는 교회의 본질과 정체성회복을 통한 생명력 있는 성장정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요, 걸림돌은 바로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 지도력과 신뢰 상실문제, 그리고 교회의 분열과 양극화입니다.
또 한편에 맘모스 교회가 있는 반면에 아직도 상가 지하 영세 미자립교회가 같이 양립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천주교나 여기하고 비교해 보면 아주 대조적이거든요 천주교회 같은 경우에는 교구제도로해서 이 교회가 어느 정도 성장하면 떼어서 분구 해가지고 이 교회도, 이 교회에 새로 나가는 사람들도 부담감 없이 아주 자기 몫만 감당 할 수 있으면 나갈 수 있도록 교회 개척 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는 전부다 구멍가게 식으로 개척을 하고 있는데 새신자는 누구를 막론하고 거기에 나가기를 꺼려합니다. 왜냐하면 거기 나가면 교회 건축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요구를 당합니까? 그러니까 거기 안나가죠. 그래서 개신교 나가던 사람들이 천주교회에 나가는 경우가 많다는 통계도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교회개척 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와야만 합니다.
그 다음에 대사회적인 나눔과 섬김의 기여도 아까 말씀 드렸던 문화적 고립과 단절 문제, 이런 문제들이 바로 걸림돌입니다. 특히 평신도들이 많이 고민하는 가정의 문제라든가 그런 문제들에 대해서 우리가 깊이 있는 연구와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생각해야 될 과제는 새로운 시대적 도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일입니다. 정보화 시대, 또 주5일 근무제, 통일준비시대, 세계화 시대 이런 것에 우리가 대응해야 합니다. 정보화 문제와 관련해서는 교회학교 교육과 관련해서 볼 때 아직도 교회학교 교육이 10년전 20년 전 방식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서는 사이버 상에서 모든 일을 하고 있습니다. 초등학생, 중등학생, 고등학생 할 것 없이 그런데 우리 교회교육이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거든요. 이런 것들을 우리가 빨리 따라잡아야겠다는 점들입니다. 네 번째로 새로운 교회 일치운동의 적극적 추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저희는 이일에 감리교가 앞장서 주기를 기대합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에 주도권이라든지 이런 것에 대한 기득권 의식 이런 것을 저희 교단뿐 아니라 기왕에 NCC를 이끌어 왔던 교단들이 조금 벗어나서 좀더 대중적으로 이런 에큐메니칼 운동을 해야하지 않겠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런 말씀을 드리면서 마지막으로 감리교회에 대한 기대를 몇 가지 말씀드리면 첫째로 감리교의 전통대로 뜨거운 영성과 경건의 전통을 강화해 주셨으면 합니다. 적극적인 사회봉사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켜 주셨으면 합니다. 또 문화신학에 강한 특성을 가지고 계신 만큼 한국전통문화와 대중문화, 타 종교 등과의 관계 이런 부분에 대해서 앞장서 주셨으면 하는 기대가 있습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제가 말씀 드렸던 새로운 교회일치 운동에도 적극적으로 앞장서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끝으로 이런 귀한 토론회에 동참해서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한 염려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주심을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사회자 : 수고 많으셨습니다. 박수 부탁드립니다. 이 시간에 질문하는 데 여러분들이 많이 질문하고 답변하도록 하기 위해 자기주장을 세우실 분들은 3분 안에 해주시고요, 질문하실 분들은 1분 안에 해주시고 답변하시는 분은 3분을 초과하지 않도록 해주셔서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할 수 있도록 해주셨으면 합니다. 토의 시간은 20분으로 한정되어 있으니까 정각에 끝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여러분들이 발제에 대해 질문을 하실 분 해주시기 바랍니다.
김홍기 교수 : 좋은 발제와 패널을 해주셨다고 생각하는데, 특히 성장이 멈추었다는 발언을 해주었지만 어떻게 성장시킬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이 없는 것이 아쉽고 또한 청년 패널리스트가 질적 성숙을 같이 해야 한다고 좋은 얘기를 해주셨는데, 사실 그런 문제는 웨슬리에게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웨슬리는 성장 위주의 선교를 하지 않았습니다. 성숙위주의 선교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속회에서 나타났는데, 속회는 주입식 교육이 아니라 자기 영적 삶을 고백하는 영적 성숙의 중심이 바로 속회였고,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를 추구하다 보니까 자연히 성장이 이루어졌다고 보거든요. 그런데 한국 감리교의 위기는 속회정신을 상실하고 목사들이 전부 전도 중심의 속회를 하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영성훈련을 다시 살려야 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리고 사회복지에 대안 건의안을 말씀하셨습니다. 사회복지는 마치 교회가 돈을 가지고 하는 것, 또 일부 제도 속에서나 사회 체제 속에서만 하는 것으로 얘기를 하셨는데, 진정한 웨슬리의 사회복지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웨슬리의 사회복지운동은 사회적 성화에서 나왔습니다. 사회적 성화라는 것은 신앙제일주의만을 말하는 루터나 칼빈을 넘어선 것입니다. 김한옥 목사님께서 좋은 말씀 해주셨는데 김고광 목사님도 종교의 완성자로 웨슬리를 말씀을 해주셨지만 바로 신앙제일주의를 웨슬리에게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행함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말하면서 구원의 출발이 의롭다하심에서 시작하지만 구원의 완성이 행하는 사회실천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사회성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사회적 성화를 실천하다 보니까 사회복지 운동이 모든 감리교회 운동으로 발전했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복지는 모든 감리교회의 사회적 성화의 운동이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목사님들이 헌금만 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웨슬리는 사회복지에 쓰는 헌금이 하나님의 저축입니다.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하나님의 저축이라는 그런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 경제윤리를 한국교회 목사들이 강조할 때 진정한 사회복지가 일어난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네 수고하셨습니다. 주장만 하신 것이니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또 질문 하실분? 네 말씀하세요.
최정민 교수 : 저는 협성대학교에서 디자인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저는 현재 말씀들을 하셨던 것 중에서 세 가지만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김한옥 목사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전문성의 문제를 거론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준비된 전문가라고 하는 것은 목회자에 한정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사회에서 지칭되고 있는 다양하게 나누어진 부분에서의 전문성을 말씀하고 계신 것인지 그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좋겠구요.
그 다음 김흥수 교수님께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후반부에 말씀하신 내용 중 감리교에서 전통과 동양사상과 지역적 문화가 거론이 되어야겠다는 부분에서 전통이라는 개념과 동양사상과 지역적 문화에 대한 얘기를 간단하게 정의 해 주셨으면 도움이 되겠습니다.
그 다음에 유태선 목사님께 질문하나 드리겠습니다. 타 교단에서 보셨을 때 우리 감리교회 특성이 영성과 경건의 전통을 이어 갔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경건의 전통에 대해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개념을 설명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예 고맙습니다. 먼저 김한옥 목사님 먼저 답해 주십시요.
김한옥 목사: 예 지도자의 모습, 지도력의 문제, 제가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교회 지도자, 혹은 일반지도자의 자격에 대한 분류라든가 분석이 없이 그냥 일반적으로 통합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자가 되는데도 일반 지도자의 자격을 끌고 들어오고 그런 요건으로 지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반지도자라면 멤버쉽이 중요하지만 우리 교회 지도자라면 멤버쉽보다는 relationship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사이인 worship이지요. 그런데 멤버쉽은 무엇입니까? 펠로우쉽입니다. 근데 교회 안에 지도력이라는 것이 바로 그런 부분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분야가 있지 않습니까? 여러 분야가 있기 때문에 여럿의 전문가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건축문제에 대해서는 목사가 전문가가 아니지요? 그러면 평신도가 훨씬 더 전문가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평신도의 전문지식인 건축에 대한 소양보다는 목사의 아이디어나 의견이 이길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꾸로 말해서 목회 분야에 있어서도 목사의 의견보다 목회 비전문가의 의견이 더 압도할 때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교회 안에서만 가능한 얘기지요. 그래서 이런 전문성과 비전문성의 혼선 같은 것이 없어야겠고 그렇지만 그 대신 교회 안에서는 어떤 분야의 전문성은 누구 것이냐 그런 것은 분명하게 잘 정리되어야겠다는 그런 생각입니다.
사회자 : 1번 문제가 조금 잘 안된 것 같은데, 사회에서 바라보는 교회 문제에 대해 좀더 말씀해 주십시요.
미성명 : 사회는 사회로서의 안목을 가지고 교회를 바라보니까 그것은 우리가 일정부분은 우리가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가 그럴 수 있느냐’고 말할 때는 교회의 지도력을 의심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그 사람들이 교회 아닌 일반 사회의 지도력 잣대를 가지고 대는 것입니다. 거기에 지나치게 우리가 민감하게 반응함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교회 지도력의 참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사회자 : 예, 감사합니다. 질문은 다음에 하겠습니다. 김흥수 교수님 전통과 동양사상, 지역적인 문화에 대해 답변해 주시겠습니다.
김흥수 교수 : 제가 문화에 대해 말씀을 드린 것은 지난 100년 동안에 우리가 지나치게 정치적인 문제에 몰두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이제 앞으로는 우리가 관심 갖지 않고 배제 시켜 왔던 이 문화 영역 쪽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의도에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문화전통이라고 하는 것은 주로 이런 종교문화가 한국에 유입되고 수입되면서 한국인들이 그런 종교 전통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또 그것을 자기 역사 속에서 구현시켰는지 이런 점을 파악해야겠다는 얘기입니다. 제가 말씀드린 지역 문화는 중앙문화를 대조해서 말씀드린 것입니다. 우리가 서울문화에만 관심을 가졌고 지역 문화는 무시했는데 교회가 서 있는 자리에서 그 문화를 면밀하게 검토하고 관심을 갖지 않고는 문화적 단절이나 문화이해가 어렵다는 생각에서 말씀드렸습니다.
사회자 : 유태선 목사님께서 영성, 경건의 전통에 대해 단답으로 말씀에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유태선 : 네, 제가 아까 제 나름대로의 의미를 간단히 말씀드렸습니다만 영성과 경건이라는 것은 첫째로는 하나님 앞에서의 두려움을 회복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엄위하시는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을 하는 것이 회복되어야겠다는 것이고요. 두 번째 요소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에 있어서 뜨거움이 좀더 강화되고 회복되어야겠다는 말입니다. 감리교 전통에 이러한 전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예, 고맙습니다. 또 다른 분 질문하실 분. 예 전장로님.
전윤 장로 : 먼저 김고광 목사님께서 교육자 최저생계비 지급이 확립이 되어야 한다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지금 세 개의 감리교 신학교에 전도사 준비를 하고 있는 대학원생들이 제가 조사한 바로는M.dvi, M.th가 1100명입니다. 1년에 450명이 배출이 되는데 무조건 개척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교회는 입교인 12명이 되어야 교회입니다. 그런데 지금 입교인 12명이 안되는데도 교회 개척을 인정 해줍니다. 장정에 보면 교회를 개척할 때는 책임을 지게 되어 있습니다. 보증을 하게 되어있습니다. 교회가 보증을 서든지, 부모가 보증을 서던지 이렇게 하면은 미자립교회가 생길 이유가 없어요.
그 동안 2년 임기의 감독이 되니까 우리 감리교회에 인물이 없습니다. 과거처럼 4년 전임 일차 연임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대형교회 목사님들이 두 마리 토기를 잡으려고 합니다. 4년제 전임 일차연임을 해서 8년을 감독하면 우리 감리교회에 많은 훌륭한 인물들이 배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다음에 선거 문제도 있습니다. 제비뽑기 방안에 대해 청년대표로 나온 분도 말씀하셨는데 제비뽑기 보다는 돈을 안 쓰는 선거를 해야합니다. 왜 목사님들이 감독 나오는데 돈을 씁니까? 하나도 쓰지 마세요. 그것을 지키면 되는 겁니다. 그래야 존경받는 감독이 되지 않나 그렇게 생각 되구요. 의회제도에 대해서는 당회와 구역회를 하나로 합해서 4개 의회로 하면 좋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회자 : 김고광 목사님께 한 질문, 지금 김고광 목사님이 2분 동안 단답형으로 해 주세요.
김고광 : 수급 문제는 개체 신학교 문제나 또 개인의 문제로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신학교 졸업생들을 조절하려고 하면 그 대신에 교단이 신학교에 충분한 장학금을 지급해서 교수들이 활동할 수 있는 보장을 교단이 책임지고, 부담금 문제와 연결시켜서 해야합니다. 두 번째 최저생계비 문제도 이건 부담금 제도 개선 문제와 더불어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지금 개척 교회들이 적게는 몇 개 교회, 많게는 100교회 지원을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것이 교단으로 일원화 되어지고, 또 필요하면 더 다른 부담금을 정액을 해서라도 최저생계비 문제를 해결해야하는 방안을 찾아야 하는 것이고요. 또 입교인 12명을 개척교회 기준으로 하지만 그것은 아주 형식적이기 때문에 그것 가지고 영세 미자립교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사회자 : 예 감사합니다. 최원희 장로님.
최은영 장로 : 지금 감리교 신학대학에 신학생이 너무 많이 배출된다는 말씀 하셨는데요, 저는 복지관 관장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으로서 웨슬리 정신으로 우리가 돌아가려고 하면 사회의 가난한 자를 위한 웨슬리 정신을 뒤따라 가야하고,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필요합니다. 각 교회에서 사회복지를 담당하는 전문성을 가진 분들을 통해 지역주민을 위해 일할 때에 그것이 결국은 웨슬리 정신으로 돌아가서 감리교의 정체성을 다시 되찾는 길이 되리라고 믿습니다.
사회자 : 예, 감사합니다. 김인숙 장로님 질문하십시요.
김인숙 장로: 아까 강남순 교수님 말씀 듣고 거기에 조금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우리 감리교회가 제도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성차별이 만연되어 있습니다. 지금 당장 단상에 주제 강연하시고, 응답하시는 분들 8분 중에 여성은 한 분 밖에 안계시잖아요. 예수님은 양성 평등을 2000년 전에 몸으로 사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일대일로 인간을 창조하셨고, 또 교회의 성 비율은 70% 이상이 여성입니다. 그럼에도 오랜 세월 여성이 50%, 50% 대표가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아쉬운데로 30%라도 확보하려고 총회 때마다 시위를 하고 간식을 대접한 결과 30%가 장정에 제도적으로 마들어졌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마저도 유명무실하게 되었습니다. 남녀평등이 안 되는 관계로 교단 발전에 저해 요소가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것은 여성 전문 기구를 마련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고 우리 감리교회가 자연스럽게 발전할 수 있는 기구를 두어 주었으면 하는 제안을 합니다.
사회자 : 최감독님, 오래하지 말고 1분만 해주세요.
최세웅 감독 : 김흥수 교수님께 제가 좀 질문도 하고 제안을 하겠습니다. 아까 말씀하시는 가운데 대북에 대한 문제, 대미에 대한 문제를 말씀하셨는데, 50년 전에 3년 동안의 전쟁을 거쳤고, 또 300여만명이 사망 했습니다. 북한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은 50년 전의 감정을 갖고 다루는 것이 아닙니다. 북한의 문제는 지금 더 심각합니다. 예를 들면, 북한은 전쟁으로 죽은 숫자보다도 더 많은 사람이 현재 굶어 죽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체제나 사상에 어떤 문제가 있어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은 아닌가 아쉽습니다. 그 다음에는 통일에 대한 문제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신앙의 자유에 대한 문제입니다. 우리가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느냐 안하느냐 하는 것도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마지막으로는 북한에서 주장하는 것이 평화와 통일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평화와 통일을 위해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가? 핵문제를 말하는 것입니다. 또 그 사람들이 말하는 평화와 통일은 과연 기독교 입장에서 평화와 통일의 의미를 동의할 수 있겠는가? 기독교의 입장에서 우리가 말하는 기독교적인 평화, 기독교적인 통일하고 차이는 없는가? 그런 질문을 주장 겸 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 예 감사합니다. 서성옥 장로님, 시간이 없어서 2분만 해주십시오.
서성옥 장로님 : 김고광 목사님께 질의하겠습니다. (답변은 하지 않겠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예, 8개 연회가 제비뽑기를 건의했으니 제비뽑기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 감독선거는 제비뽑기 방법밖에 없는 것입니까. 제비뽑기를 우리 교단이 계속해야할 감독선거제도로 정착시켜야겠다는 것입니까. 여기 말씀은 다 안했지만 구체적으로 제시한 방법을 보면 일차는 투표를 해서 5명을 뽑아서 그 분들이 나와서 추점을 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꼭 추첨 방법인가? 하는 것도 하나 질문하고 싶습니다. 감리교의 대표를 제비뽑기로 선출해서 불만없이 그 분의 다스림에 순종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이 결과적으로 감리교를 발전시킬 수 있는 제도가 될 것인가 하는 것을 질문합니다.
사회자 : 예, 이제 시간이 다 되어 분과 토의 때 실컷 해 주시고, 이만 종결하겠습니다.
10 그룹토의결과: 분과토의 제목
A 분과
* 토론회가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고 각 국에 반영하여 정책화하고 실행되게 하자.
* 300만 총력 전도운동을 효율적으로 전개하고 발대식에 평신도의 참여를 높이자.
* 감독회장 임기 내가 아닌 지속적인 300만 총력 전도운동이 필요하다.
* 전도성장을 위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300만 총력 전도운동에 대한 신학적, 영적 성숙이 병행되어야 한다.
* 300만 총력 전도운동 – 현실 참여를 통해 지역선교 (ex. 문화마당, 지역봉사),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 섬김, 나눔, 교회 운영의 민주화를 통해 신세대를 견인해 냄으로써 (여성, 청년 등) 선교의 간접적인 기여를 이룬다.
* 새신자 정착을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 미자립교회 성장 방안 (부담금 바로내기, 미자립교회를 위한 헌금)
* 교역자 최저 생계비 교단 책임 (부담금 제도로 지급안 마련)
* 교회성장 관리, 개척교회 지원, 개척교회 교역자 교육, 미자립 교회 인사 문제 등 관리부서 만들어 집중 연구
* ‘쉼터’ 등에 교역자 파송하고(인정), 교역자 수급 문제 해결해야 한다.
* 300만 총력 전도운동의 필요성과 구체적 실천 의지와 소명을 주어야 한다.
* 감리교회 내에 구조조정(미자립교회 통합)이 필요하다.
* 부담금 문제, 은급비 문제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 예배의 갱신을 통해 예배의 형식, 예배복장 등을 통일하도록 하자.
* 교회 성장의 정체요인 분석하여 교회의 체계화가 필요하다.
* 사회선교 (교회시설 개방, 결혼 세미나)를 위한 대중적 프로그램 개발이 필요하다.
* 청년운동의 활성화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자.
* 신학생 수급과 연계하여 선교사 양성 정책이 필요하다.
* 오지 선교사에 대한 교단의 지원이 필요하다.
* 선교지 통합과 동향에 대한 교단적 장기 계획 수립
* 지역 선교사 관리 인원 확대(선교국)와 역할분담을 명확하게(개체교회, 지방, 연회, 선교국 등) 해야 할 필요가 있다.
* 여전도사(심방전도사) 지위 문제
* 부담금을 정직하게 내자. (부담금 투명하게, 정직하게 쓰자.)
* 교역자 수급 문제 – 오지 목회 성과급 적용, 차등 목사 안수
* 미자립 교회 자원 문제 – 분담금을 교단 차원에서 모으자.
* 최저 생계비 지급제도 확립 – 효율적인 재정확보와 분배문제 연구
* 교회 재정의 투명성을 위하여 신고가 있을 때에는 교단(연회)내에 강력한 재무감사기구를 발동시키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
* 300만 총력 전도운동은 예산의 투명성과 교회 갱신 등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B 분과
* 목회자의 자질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신학교육과 목회현장의 괴리를 해소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 신학생의 철저한 학사관리, 진급교역자의 엄격한 과정자격심사, 목회자 연장교육 강화가 필요하다.
* 신학대의 교육의 질 향상을 위해 교양과목의 활성화와 창의성 개발이 필요하다.
* 열린 신학교육 체제와 역사 이해가 필요하다.
* 역사성과 시대 조류를 통합하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 신학대학 지원금은 형평성에 맡게 차등 지급되어야 한다.
* 통합 신학대학원 설치가 필요하다.
* 1% 부담금으로 3개 신학대학 지원하여 내실 있는 목회자 양성
* 전문가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 (환경, 정보사회, 여성, 이주노동자 등)
* 학교와 일반학생들의 협조를 통해 신학생이 올바른 목회자상을 키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 신학교에서 신학생들의 실천적 영성 및 인성교육(섬김 훈련 / 주초문제)이 필요하다.
* 교회학교 성장을 위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 (성인 대비 균형유지)
* 교회학교 교육을 위한 자료의 개편(찬송가, 교육교재)과 프로그램 개발지원이 필요하다.
* 기독교적 정체성 회복을 위한 교육과 감리교 정신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교회학교의 성장부진이나 감소는 프로그램의 부재이다.
* 젊은 목회자를 통한 교육활성화와 특별 활동반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 청년회 성장방안과 발전된 청년문화를 만들어야 한다.
* 신학생 수 조절을 통해 교역자 수급을 해야 한다.
* 교역자 수급문제 – 교회와 교단의 신학교 지원 / 학생 수 감축 / 학과의 다양성과 전문성 확보
* 기관 파송자에 대한 진급과 목사안수제도를 활성화 하여 사회복지 시설이나 기관 활동을 지원하자.
* 목회자 수급조절 : 목사고시를 통한 수급조절(소극적) / 교회개척 지원정책(적극적) / 특수선교 등 영역 확대가 필요하다.
* 전문적 지도자 양성이 필요하다.
* 평신도를 위한 사회교육 교재 개발
* 감리교 정체성을 회복하는 교재 개발
* 교사의 수준, 지역 및 시대에 맞는 교재 개발
* 교단 본부 출판부에서 교재를 잘 만들고 개 교회에서는 잘 사용해야 한다. 주입식 지적인 교육에서 진일보하여 실제적인 기독교육과 가정의 신앙생활 교육, 봉사활동을 실천하는 방향으로 교재가 개편되어야 한다.
* 감리교 본부의 홈페이지에 좋은 사례 제공, 균형을 살릴 수 있도록 하자.
* 신학대학 졸업반 학생들에게 교단본부 실무자가 현장 목회에 대하여 오리엔테이션 해야 한다.
* 신학대학에서 감리교의 전통과 자부심을 가르쳐야 한다.
C 분과
* 조직과 의회 제도를 유지하고 본부는 전임 감독제 / 연회는 연회장 제도로 변경하자.
* 감독, 총무 등 선거제도의 개선을 통해 타락 선거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
* 연회와 감리회본부 차원에서 개 교회에 대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
* 감리교 자료의 제공 및 각종 프로그램의 개발을 통한 지원 및 조직이 필요하다.
* 도덕성 회복을 위한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 목회자 수급을 위한 특수 목회를 인정해야 한다.
* 지도자 및 부담임 목사의 전문화가 필요하다.
* 총대 선출은 연급이 아닌 각계 대표성을 중심으로 선출해야 한다.
* 사문화된 법의 개폐를 분명히 해야 한다.
* 비대화된 사무국을 업무와 직제에 따라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
* 장정개정위원에도 여성할당제도가 필요하다.
* 감리교회 모든 기구에 여성할당 30% 의무화가 필요하다.
* 돈 안 쓰는 감독선거제도가 필요하지만 제비뽑기는 역사적 후퇴라고 생각한다.
* 비상임 감독에게 지나친 권한과 책임 지우는 법적인 틀이 없다. 본부를 책임질 사람이 없다.
* 감독전임제가 필요하고 1차 감독 중임도 필요하다. (감독회장 4년 전임 – 1차 연임)
* 연회감독도 전임제가 필요하다.
* 감독의 성직(order)과 행정직(office) 구분 문제
* 감독, 각국 총무, 연합회장 선거제도 및 제도개선 필요
* 감독선거제도 금권선거를 막기 위해 제비뽑기는 다음 차원으로 가기 전의 징검다리 역할의 수준으로 생각한다.
* 감독선거 제도 개선 – 감독은 연회에서 뽑되, 선거인단은 연회 정회원과 그와 동수의 편신도로 정하고 평신도 구성에 여성, 청년, 장애인 및 직능별 대표를 적절히 할당하도록 한다.
* 선거법 강화를 통해 형사 고발 및 삭탈관직에 대한 구체적 법이 필요하다.
* 검증과정 (도덕성, 지도력, 비전)을 거친 감독석출 위한 검증위원회가 필요하다.
* 감독의 행정, 권위에 대한 기준이 없다.
* 은급제도는 은급의 기본정신인 복지개념을 살릴 수 있는 제도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 원로원은 공정하고 엄중한 실사를 통해서 정말 필요하고 절실한 수혜 대상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 별세 교역자 미망인을 위한 지원사업이 필요하다.
* 사회법에 저촉된 교단 내의 인물에 대해 교단법이 지켜질 수 있도록 촉구하고 징계한다.
* 총대 선출의 공정성을 위한 기득권의 자기포기가 필요하다.
* 본부가 정책 입안만 하고 연회본부가 이를 실행하는 구조는 잘못된 것이다. 본부도 필요에 따라 정책을 특별한 경우 실행할 수 있어야 한다.
* 수련목회자 제도에 대한 재심 필요하다.
* 특별 위원회 (예 : 장정개정위원회) 상임 기구화가 필요하다.
* 연회 수를 줄일 필요가 있다.
* 의회수 줄이기 (당회와 구역회를 합치는 등)
* 정책 개발과 사업시행에 관한 의회별 구분 문제
* 제도에 대한 잦은 장정개정 변경 금지
* 장정개정 시 반드시 공청회를 통한 의견수렴
* 여성 목회자 양성 제도화를 통한 여성 지도력 개발
* 여성국 혹은 평신도국 내에 여성부 설치가 필요하다. (여성의 권익증진, 차별개선 등을 위한 전문조직 필요)
* 사회 / 평신도국 분리하여 사회선교에 초점을 맞추자.
* 여성의 참여 30% 비율 지키기
* 여전도사(심방전도사) 지위 문제
* 교역자 은퇴연한 20년, 57세로 자격 완화
* 목회만 하려 말고 자격증 활용과 정년을 줄이자.
* 교회 세습은 불법임을 법제화시키자.
D 분과
* 교회학교에서 감리교 정신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 미국 감리교회의 좋은 의회제도나 여성사역에 대한 방문 프로그램의 개발이 필요하다.
* 한국적 전통과 문화를 기독교 정신에서 재해석하고 기독교 문화를 창출해야 한다.
* 감리교적 정체성이나 문화의식을 위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 감리교회의 역사자료 개발 담당자 육성 및 전문화를 위한 교육 실시하자.
* 평화 및 통일에 관한 교단적 가이드라인 제시할 필요가 있다.
* 교회와 기관 선교지에서 감리교 교리와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
* 감리교인 됨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의식구조 개편이 필요하다.
E 분과
* 목회자와 장로 사이의 의식구조의 차이를 좁힐 관계성의 회복이 필요하다.
* 감리교회의 리더십 부재 해소를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 인재양성을 위한 프로그램 장학사업이 필요하다.
* 지도자(목회자 및 평신도) 양성 문제
* 감리교 에큐메니칼 지도력 양성 시급
* NCC에서의 중심적 역할 – 인재 양성
* 사회운동에 적극적 참여
* 웨슬레 신학의 시대적 정체성을 찾아내야 한다.
* 세습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인정해주자.
* 감리교 정체성 회복 – 웨슬리 신학의 바른 이해와 교육 필요
* 교단 차원에서 문화 선교적 홍보가 체계화 되어 효과적으로 청년 선교가 활성화 되도록 해야 한다.
* 교단 차원에서 사람을 키워야 한다. 감리교회를 대표할 만한 인물을 요소마다 키워서 내놔야 한다.
F 분과
* 사회복지를 위한 각 국의 역할 분담이나 조정이 필요하다.
* 사회복지관련 과목 – 신학대학 커리큘럼
* 신학대학원에 기독교 복지학과 개설
* 여성국을 설치하지 못할 경우 평신도국 내에 여성부 설치
* 11조가 있는데 이것을 정착화 시켜 사회복지로 돌리자. 그러면 예산 확보 될 수 있다.
* 사회 복지제도가 개 교회 중심으로 진행되기보다 연합회 차원에서 힘을 모으자.
* 현재 교단본부 내에 삼분화 되어있는 사회복지 부서의 인력과 예산을 일원화 시켜, 중복정책을 피하고 사회복지를 일괄적으로 활성화 시킬 수 있는 사회복지 주무부서나 사회복지국을 만들어야 한다.
– 사회평신도국 안에 사회봉사부, 선교국 안에 사회선교부, 사무국 안에 사회복지재단의 인력과 예산을 일원화
– 또한 시대적으로 끊임없이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문제에 대하여 (ex. 목회자, 평신도의 도덕적, 성적 문제, 윤리적 타락) 신학적 연구를 통하여 윤리적 지침을 제시해 주고,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을 제도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도 사회복지국은 필요하다.
* 기관 파송자에 대한 진급과 목사안수제도를 활성화 하여 사회복지 시설이나 기관 활동을 지원하자.
*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교류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 (ex. 목회자와 평신도 대화, 친교행사, 주제토론의 장 등)
A분과 / 감리교회의 선교와 교회성장
분과보고
A분과 / 감리교회의 선교와 교회성장
1. 감리교 300만 총력 전도운동에 대하여
1) 300만 전도운동이 지속적으로 실시되도록 하자.
이 일을 위하여 선교국 내 ‘웨슬리 전도학교’가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므로 계속 활성화 시키고, 연회, 지방, 개교회에서 적극 활용하고 도움을 받도록 하자.
2) 전도운동과 함께 교회의 영적 부흥을 위한 대책을 세우자.
속회 부흥과 가정회복, 예배 회복을 위하여 힘쓰고 필요한 프로그램을 마련하자.
3) 신학교에서 전도운동을 위한 신학적 뒷받침을 마련해 주도록 요청하자.
4) 장년층 전도 뿐 아니라 어린이, 학생, 청년을 위한 전도방안을 시급히 마련하고 구체적인 프로그램을 마련하자.
5) 전도되어온 새신자를 위한 양육 프로그램과 양육 교재를 교단적으로 마련하되, 현장 교회에서 검증된 양육 교재와 새신자 관리 프로그램, 연구 결과들을 충분히 검토하여 만들어 전 교회에 보급하자.
2. 청년 부흥을 위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자.
청년 특성을 충분히 고려하여, 청년들의 호응을 받을 수 있도록 지도자를 세워주고 교회로 여린 마음으로 과감히 청년들에게 투자하자.
3. 미자립 교회 대책을 마련하자.
1) 단순히 재정 지원만 하지말고 개척교회 성정과 교역자 훈련을 위한 지원을 교단적으로 마련하자.
2) 농촌교회와 도시 미자립교회는 분리하여 지원 방안을 차별화 하자.
3) 도시 교회는 재정지원을 한정적으로 하되, 교회 성장을 위한 방안을 자립한 교회들이 지원하도록 하고 그래도 안되는 경우 구조조정을 하자.
4) 미자립교회 지원을 교단적으로 재정을 통합 관리하고, 효율적이고 투명하게 분배하는 방안을 마련하자.
4. 교역자 수급 문제, 대책 세워야 한다.
1) 교역자들의 자질과 사명감을 충분히 검증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자격이 없고 사명감 없는 이들은 교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2) 신학생들과 전도사들의 사명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집회와 영적 지원을 하자.
3) 신학교에서 목회 잘 할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분명한 책임감을 가져야 하고, 그 대책도 세워야 한다.
5. 해외 선교에 대한 정책을 바로 세워야 한다.
1) 선교사 관리를 효율적이고 분명하게 하도록 선교국에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2) 지역별 관리자를 세우자.
6. 부담금
투명하게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자.
B분과 / 감리교회의 교육의 미래
분과보고
B분과 / 감리교회의 교육의 미래
(신학교육, 교회교육, 목회자 연장교육)
1. 신학교육에 대한 토론내용
신학생 자질문제가 심각하다. 이를 위해
1) 교회차원에서는 좋은 신학생들을 많이 보내야 할 것이며
2) 교단 차원에서는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3) 제도적으로 수급문제 조절이 요청된다.
신학교와 교회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서로 마음을 열고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교회예산의 1% 이상을 학교에 지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며 교단지원금 같은 경우 사용의 투명성, 공정성을 위해 위원회가 있어야 한다. 교수들은 교회의 절기나 신학적 뒷받침을 위해 프로그램 공급, 자료공급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통합대학원 설치문제도 신중하게 검토하여 고려해 볼만하다.
2. 교회교육
프로그램 개발, 교재개발이 중요한 문제
교육국에서 의욕적으로 교재개발을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주일학교 교재, 속회공과, 성인교육, 교사교육등 특별히 속회공과 집필을 교리, 역사, 교인생활, 절기등 ‘특징’을 담아 집필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 더불어 속회 인도자교육문제도 중요한 사안을 떠올랐다.
교육국 총무 입장에서 ‘감리교의 정체성-이념, 목적’을 수립하기 위한 교재개발을 계획중임을 발표
그러나 현실적으로 교육국의 예산부족, 실행권의 상실로 인한 현실적 어려움이 있다. 마지막으로 학원선교에 대한 적극적 후원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C분과 / 감리교회의 조직과 의회제도
분과보고
C분과 / 감리교회의 조직과 의회제도
1. 의회제도
현재 의회는 5단계로 단계가 많아 비효율적이므로 축소가 요망됨
제1안) 3개의회(당회, 지방회, 총회)
제2안) 4개의회(당회, 지방회, 연회, 총회)
총회구성: 입법회의와 총회를 합하고 총대인원 축소
2. 감독제도
1) 감독회장 : 4년 전임제(중임)
2) 연회감독 : 점차적으로 4년 전임제(중임) 전환함.
3. 선거제도
1) 일시 : 총회 1개월전 선거일을 정해 연회에서 동시에 선거
2) 방법 : 연회원이 감독 직접 선거함.
4. 은급제도
1) 경상 수입 1%의 부담금을 상향 조정함
기여금 10년에 1개월분 사례비를 3년에 1회씩으로 변경
2) 전문가에 의해 은급기금 운용
3) 부담금 책정을 입교인 수에 비례하여 부과함.
4) 수익자 부담원칙의 은급제도가 도입되어야 한다.
D분과 / 감리교회의 역사관과 사회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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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분과 / 감리교회의 역사관과 사회의식
email: eyche@hanmail.net
1. 감리교 의미 퇴색되지 않았나?
▪영혼구원, 박애 정신, 영성
▪Wesley 정신이 있는가? “Wesley가 만난 하나님”을 전함으로써 실존적인 의미에서의 Wesley를 장기 성화를 통한 사회변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어린아이들에게도 이해 할 수 있는 Wesley 교육이 필요
▪한국교회에서 Wesley는 있는가? 없다면 왜 없는가에 대한 연구가 있어야 한다.
▪CD나 슬라이드 등 Wesley의 삶 전체를 전하는 자료를 토한 교육 – 교회학교 교육만이 아닌 Wesley 교육이 필요
2. 미국감리교회제도 주제
▪현재 한국교회 감리회의 비민주적 운영이 개선되어야 한다. – 계급적 운영 지양, 연회대표 선발 방식 개선
▪연회․지방회․총회 운영의 개선 – 실질적인 “현안” 중심토의가 되어야 한다.(정치적 선거 중심 탈퇴)
▪토론문화 정말 중요한 문제에 대한 토론 분위기 형성이 중요 – 젊은이들도 포함시킬 수 있어야 함. 현재의 “감리교 발전을 위한 토론회”에도 젊은이들이 없다.
▪외국감리교회 방문프로그램의 활성화 – 평신도 참여 유도
▪본부 차원의 감리교 역사 탐방 프로그램(영국, 미국) 개발 – 발달한 감리교회제도 학습 필요.
▪미국감리교회제도에 대한 비판적 수용이 필요하다: 미국 감리교회와의 대등한 관계 개선책
▪의회제도 개선
3. 한국감리교회 역사에 대한 인식이 먼저 되어야 한다.
▪한국 감리교인의 정체성 확립이 먼저 되어야 한다.
▪한국 감리교단에서의 “한국적 감리교회상”, “한국적 감리교회의 영성” 확립이 선행되어야 한다.
① 한국감리교회 신학 확립이 필요 – 한국 전통종교 사상에서 긍정적인 부분 수용하고, 부정적인 부분 지양
② 한국감리교회(신학)윤리지침이 필요 – 한국감리교회인의 정체성 확립에 필요
③ 신학, 지침, 규범으로 그칠 것이 아니라 “운동화” 해야 한다.
④ 그 다음에 한국감리교 문화가 창출될 수 있지 않은가 – 여태까지 한국감리교 문화는 없음.
▪사회성화운등으로 이어가고 “토론회”를 계속해야 한다.
4. 교회역사자료
▪교단보다 각 대학에 위임해야 한다. – 각 교회 주보도 제대로 보관되지 않음. 교단에는 전문가, 계속성이 부족. 감리교 역사 박물관 설립으로 이어져야 한다.
▪총회에 역사위원회 설치필요
5. 평화 및 통일에 대한 교단적 가이드라인 제시
▪사회 현안에 대한 견해 밝히는 신학위원회 설치(통일에 대한 것 및 사회 윤리에 관한 것)
▪서부연회를 통한 북한선교/통일사업 지속
E분과 / 감리교회의 에큐메니칼 의식과 리더쉽
분과보고
E분과 / 감리교회의 에큐메니칼 의식과 리더쉽
첫째는 우선적으로 그리고 단계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에큐메니칼 추진위원회 또는 협력위원회(가명)를 특별위원회로 구성하여 감독실 산하기구로 둔다. 이 위원회는 에큐메니칼 관련 “행정”업무에 주력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특별위의 몇가지 역할을 제시하면,
1) 전문인 발굴과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고 인력 Pool을 형성하고 수집 및 관리한다.
2) 연합기관의 실무책임자를 추천하기 위해 인재발굴 후 감독실 또는 감독으로 이뤄진 인사위원회에 추천한다.
3) 해외 에큐메니칼 기관과의 다각도의 협력관계 추진
4) 연합기관 위원파송과 사전 교육등에 관심
둘째는 에큐메니칼 교육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에큐메니칼 전문교육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는 것이다. 현재 거대한 규모의 전문기관 설립에 앞서 작은 규모의 교육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 하겠다.
1) 감리교회가 한국 연합운동과 에큐메니칼 신학형성에 어떤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는지 그리고 기여해왔는지 그 역사성을 배우는 장을 마련한다.
2) 에큐메니칼 신학과 정신을 가르치는 전문교육 프로그램이 단기적으로는 시급하고 장기적으로는 전문기관을 마련하는 일이 필요하다.
3) 에큐메니칼 아카데미를 통해 차세대 지도자들이 세계교회와를 배우는 기회제공
4) 에큐메니칼 교육기회를 다양화하고, 대상을 고려한 구체적인 커리큐럼을 제공하는 역할
5) 에큐메니칼 신학과 근본적인 정신인 “일치”를 배우는 기회마련를 마련함으로써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오해를 해소하고 바람직한 교회일치를 이뤄가도록 돕는다.
6) 한국적 상황에서의 가장 시급하고 중심된 정의와 평화의 문제를 다각도의 이해를 돕는다.
7) 에큐메니칼 교재도 시대상황을 반영하여 3년에 1회 재수정하여 출판하는 교재제작에도 관심가져야 한다.
F분과 / 감리교회의 사회봉사와 평신도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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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분과 / 감리교회의 사회봉사와 평신도 역할
1. 사회복지를 위한 각국의 역할분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
▪ 현재 교단 본부 내에 삼분화 되어 있는 사회복지 부서와 인력과 예산을 일원화 시켜, 중복정책을 피하고 사회복지를 일괄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사회복지 주무 부서를 만들어야 한다.
▪ 사회평신도국 안에 선교국의 사회선교부와 사무국의 사회복지재단의 인력과 예산을 일원화시켜 힘있는 사회복지 주무 부서를 지원해야 한다.
▪ 또한 시대적으로 끊임없이 교회 안팎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예: 목회자, 평신도의 도덕적‧성적‧윤리문제) 신학적 연구와 윤리적 지침제시,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을 제도화 해주는 부서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도 사회복지 전문 주무 부서에 인력과 예산의 더욱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2. 신학대학마다 기독교 복지학과와 커리큘럼을 만들 것에 대하여 각 신학대학에 위임사항으로 참고하도록 건의한다.
3. 제 2의 십일조를 모아 사회복지 재원으로 사용 할 수 있도록 토론하고 이를 권장한다(근거: 신26:12 이하).
4. 교단본부와 모든 교회의 예산의 1/10 이상은 사회에 환원시켜 사회복지시설지원 및 사회봉사를 위해 사용하자는 의견을 건의한다.
5. 사회평신도국 안에 평신도들의 봉사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봉사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적극 건의한다.
6. 사회복지활동이 개교회 중심으로 진행되도록 권장하고 큰 사업은 연합회 차원에서도 더욱 활성화 되도록 권장한다.
7. 지방 사회평신도부가 목회자와 평신도간에 함께 교류하고 대화 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목회자와 평신도간의 친밀한 교류를 건의한다.
8. 평신도의 역할과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하여 연수교육 및 현장교육의 필요성을 확인한다.
종합토의
사회: 권오서 감독
사회자: 감사합니다. 끝까지 남아 주셔서 감리교 발전을 위한 귀한 의견을 나누어주신 것에 감사드립니다. 지금부터 보고를 먼저 듣고, 보고 사항에 대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에 대한 질문과 보충 의견이 있으시면 의견을 개진하시면 됩니다. 한 분과에 5분 정도 발표해 주시고 그 다음에 전체적인 마무리를 하려고 합니다. 먼저 보고 되어진 분과부터 시작하겠습니다. F분과에서는 <감리교회의 사회봉사와 평신도의 역할>에 대해서 한준길 장로님이 사회를 보셨고, 이보경 목사님이 서기를 하셨습니다. 나와서 발표해 주시겠습니다.
한준길 장로: 저희 분과의 주제는 <감리교회의 사회봉사와 평신도의 역할>이었습니다. 저희 분과에는 목사님과 장로님 12분이 대표로 모여서 진지한 의논들을 했습니다.
첫번째 사회복지를 위한 각국의 역할분담에 대한 조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현재 교단 본부에서 삼분화되어 있는 사회복지부서와 인력과 예산을 일원화 시켜서 중복 정책을 피하고 사회복지를 일괄적으로 활성화시킬 수 있는 사회복지부서를 만들어야 된다는데 의견으로 모아졌습니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끊임없이 교회 안 밖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대하여 예를 들면 목회자 평신도들에 대해 도덕적, 성적 윤리적 문제들에 대해서 신학적 연구와 윤리적 지침제시, 치유와 재활 프로그램을 제도화 해주는 부서가 필요하다고 의견들을 모았습니다.
두 번째 신학대학마다 기독교 복지학과 커리큘럼을 만들 것에 대해서는 각 신학대학에서 처리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각 대학의 위임사항으로 참고하도록 의견들을 모았습니다.
세 번째 제 2의 십일조를 모아서 사회복지 재원으로 사용하자는 의견으로 신26:12 이하에 근거한 말씀에 의지해서 이를 우리 교단 차원에서 추후 시행하도록 권장해보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들이 모아졌습니다.
네 번째, 교단본부와 모든 교회의 예산의 십일조 그 이상을 사회에 환원시켜 사회복지시설지원 및 사회봉사를 위해 사용해야겠다는 의견도 나누었습니다.
다섯째, 사회평신도국 안에 평신도들의 봉사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한 봉사교육 훈련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평신도들이 직접적으로 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도록 연수 교육을 시키고 또한 우리 모두가 다 직접 사회복지 사업에 대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협력해야 된다는 의견들이 모아졌습니다.
여섯째로, 사회복지활동이 개교회 중심으로 진행되도록 권장하고 큰 사업은 연합적 차원에서 더욱 활성화 되도록 권장을 하자는 의견들이 모아졌습니다.
일곱번째는 지방 사회평신도부가 목회자와 평신도간에 함께 담론을 만들고 서로 마음을 모으고 모든 일들을 협력할 수 있도록 교류하고 대화할 수 있는 장을 만들어 목회자와 평신도간의 친밀한 협력을 다짐하자는데 의견들이 모아졌습니다. 이상과 같이 보고 드립니다.
사회자 : 예, 이 보고사항에 대해서 혹시 이해가 안되시는 분이 있으시면 질문하시면 보충 설명할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미성명 : 십일조를 사회에 환원한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제시되어야 하는데, 방법이 전혀 제시되어 있지 않는 것 같고요. 그것에 대해서 설명해 주시고 마지막에 지방 평신도총무하고 감리사와의 대회 채널을 마련했으면 하는데, 본인이 알기에는 우리 지방 같은 경우는 지방 사회평신도 총무가 감리사와 대화로 협조를 잘 하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이런 문제가 나왔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한준길 : 우선 첫 번째 질문에 대해서 답하겠습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십일조는 성서에 근거해서 이미 우리가 하나님의 것으로 드려지고 있는데, 제2의 십일조는 신명기 26장 12절이하에 보면 매 3년마다 십일조를 드리고 이제 그 십일조 외에 다시 그 십분의 9에 대한 십일조를 매 3년에 한번씩 드려서 하나님 앞에 이것은 별도의 창고에 드려서 별도로 사용되도록 한 성경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어느 회원이 제시해 주셨는데, 우리가 이러한 사회복지 사업을 할 때에 재원이 필요하다고 하는 견지에서 그러한 방법을 선택해 보는 것이 어떠냐 하는 내용이었구요.
두 번째는 감리사와 사회평신도 총무의 대화라고 하는 것은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교류하고 대화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목회자와 평신도의 대화가 막혀서 교단이 침체되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가급적 서로 대화를 통해서 풀어 가고 목회자와 평신도간의 문제점들이 생기지 않도록 사전에 좋은 분위기를 만들어 마음과 마음을 여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하는 의견이었습니다.
사회자 : 예, 여기 보고를 잘 해주셨는데, 특별히 이 보고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견해를 꼭 말씀하시고 싶은 분이 계시면 한 분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미성명 : 보고를 통해서 사회복지 기구의 일원화를 말씀 하셨는데, 사무국 안에 있는 사회 복지재단과 사회평신도국 안에 있는 부서와 선교국 안에 있는 사회선교부는 조금 다른 차원의 문제라서 그것까지 일원화시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또 하나는 교회가 갈등 구조에 들어갔을 때, 여러 가지 교회 운영 면이나 선교에 상당한 장애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것은 교단 차원에서 감독님이든지, 감독회장님이든지 갈등이 있는 교회를 조사하거나 신청을 받아 교회문제를 해결하는 그런 방법이 더 효과적이지 않은가? 그런 의견을 내 봅니다.
사회자 : 네, 됐습니다. 제한된 시간이므로 제가 진행하는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 양해를 구합니다. 우리 한준길 장로님 발표 여러분 의견이 많으실 것입니다. 이 역할 분담 조정하는 것에 대해서 견해가 많으실텐데, 이쯤해서 박수로 이 보고를 받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다음 A분과 사회를 최춘남 목사님 보셨고, 유기성 목사님이 서기를 하셨습니다. <감리교회의 선교와 교회성장>에 대해서 5분 발표를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유기성 목사: A분과 <감리교회의 선교와 교회성장>은 그룹토의에서 주어진 주제들을 중심으로 의논을 했습니다.
첫째, 감리교 300만 총력전도운동에 대해서 토의를 했습니다. 한시적으로만 할 수 있는 운동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가 있으면 행정부서에서 처리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선교국 내에 ‘웨슬리 전도학교’가 조직되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데 이것이 연회, 지방, 개교회에서 적극적 활용되고 잘 정착되었으면 하는 토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도운동과 함께 교회 내에 영적 부흥이 함께 일어나지 않으면 결실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속회 부흥과 가정회복, 예배 회복을 위하여 힘쓰고 그 일에 필요한 목회 프로그램도 적극적으로 개발해서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토의했습니다.
또 신학교에서 전도운동에 대한 신학적인 뒷받침을 분명하게 해서 이일에 대해서 혼선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장년층 전도 뿐 아니라 어린이, 학생, 청년들을 위한 전도방안이 시급히 마련되어야 할 일이기 때문에 이 일을 위한 전도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고 토의가 되었고요.
그리고 전도되어온 새신자를 양육을 위한 교재를 만드는 일을 교단에서 시급히 진행해서 지금 현재 각 교회 현장에서 검증된 양육교재와 새신자 관리 프로그램, 또 논문으로 연구 발표되어진 것들을 교단에서 충분히 종합해서 새신자들을 위한 좋은 양육 교재와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전 교회에 보급해 달라는 내용이 토의되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지금 현재 화급한 문제인 청년 부흥을 위한 특별한 대책을 마련하자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에게 호응을 받을 수 있는 청년 목회자를 세우고 그리고 열린 마음으로 청년들을 받아들이고 과감하게 청년들을 위하여 투자하자는 토의가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미자립교회 대책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지금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자립교회를 위한 재정 지원만 할 것이 아니고 근본적으로 개척교회, 미자립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방안과 또 교역자 훈련을 위한 지원을 교단에서 마련해서 실시해야 한다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농촌교회와 도시 미자립교회는 분명히 분리하여 대책을 마련해야 하고 지원 방안도 차별화해야 할 것입니다. 도시 미자립교회인 경우는 재정지원을 무한정 할 수 없으니 한정적으로 하되 도시 미자립교회가 속히 자립할 수 있는 교회성장 방안을 지원하고 또 자립한 교회들이 이 일을 위해서 책임을 지는 노력을 하고 그래도 안되는 경우는 구조적 조정을 하는 일도 검토를 해야한다고 토의했으며, 특별히 최저생계비 문제는 교단에서 재정을 통합 관리하고, 효율적으로 투명하게 분배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토의했습니다.
네번째, 교역자 수급 문제입니다. 교역자들이 신학교에서 많이 졸업을 해서 배출되어 나오는데 교역자들의 자질과 사명감을 충분히 있는지 검증 방안을 마련해서 문제가 있거나 사명감 없는 이들은 교역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 이해가 되지만 그러나 신학생들과 지금 처음 목회를 하고 있는 전도사들이 좌절감에 빠지거나 한계에 부딪히지 않도록 그들의 사명감을 불러 일으켜 줄 수 있는 대책과 그들을 위한 영적 집회와 격려가 함께 있어야 하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신학교에서 목회 잘 할 수 있는 목회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분명한 책임감을 가지고 신학생을 가르치고 그들을 목회자로 양성하는 대책도 세워야 한다는 토론이 있었습니다. 해외 선교에 대해서는 선교국에서 지역별로 관리자를 세워서 순회 방문하고 관리하고 지도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일을 위한 정책과 예산을 세워한다는 토론이 있었습니다.
부담금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의견이 있었지만 시간상으로 더 이상 의논하지 못하고 부담금을 투명하게 납부하고, 또 집행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겠다는 원칙만 제시했습니다. 이상으로 A분과는 <감리교회 선교와 교회성장>에 대해서 의논했습니다.
사회자 : 보고된 내용에 대해서 이해가 안되어 보충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질문해 주십시오. 질문이 없으시면 혹시 지금 보고 한 것 가운데 여러분들의 견해라든지 제안을 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전윤 장로 : 미자립교회 대책하고 교역자 수급문제는 한 연결고리입니다. 현재 대학원생이 1100명이며 내년에 450명이 배출됩니다. 이것은 자연발생적인 미자립교회입니다. 우리 법에는 입교인 12명이 되어야 하지만, 그것을 시행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지금 아마 감독님과 연회 총무님들이 그 연회에 교인이 하나 없는 교회가 몇 개나 되는 파악해 보셨습니까?
구조조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장 450명이 지금 전도사로 나가야 해요. 지금 그 문제를 대책을 세워야 하고요. 신학교가 이 대학원생을 줄여야 합니다. 무조건 양산을 해서는 안됩니다. 더군다나 지금 M. Div 라는 과정이 생겨서 일반 대학을 하고 신학대학원에 와서 3년 과정을 하면, 목사가 됩니다. 우리 감리교 3개 신학 대학에서도 배출하는 그 학생들을 목사로 수급을 못하는 이 마당에서 타 대학에 문호를 개방해서 물론 좋은 인재를 우리가 받아들인다는 뜻은 좋지만은 이런 대책을 앞으로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 답변을 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회자 : 이것은 답변할 성질이 것이 아닌 것으로 보는데요, 분과에서 답변할 수 있겠어요?
우리 전 장로님이 자세히 말씀하셨는데, 제가 교역자수급 목사고시위원회 일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상한 정보가 있지만 시간상 말씀은 안 드리겠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교리와 장정개정위원회에서도 심도 깊게 논의가 되고 있습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 다음으로 강남순 교수님 말씀해 주십시요.
강남순 : 저는 이제 토론회가 이번 한번이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를 하면서 하나의 제안을 드립니다. 두 가지만 말씀을 드릴 텐데요. 하나는 여기 이 분과에서 선교를 교인수 확장과 동일하게 보고 논의를 하신 것 같은데, 사실 선교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선교개념으로 훨씬 더 확장 된 개념으로 선교가 좀 논의되었으면 좋겠다는 하나의 제안을 말씀드리고요.
두 번째 제안은 신학대학에서 이제 목회 잘 하는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교육을 시켰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셨는데, 신학대학에 있는 사람으로서 우리가 또 하나 생각해 봐야 할 것은 ‘목회를 잘한다’ 것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제가 볼 때 목회를 잘 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는 교인이 20-30명밖에 안되는 시골 교회에서 평생 정주목회 하겠다는 젊고 유능한 분도 있고, 또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를 성장시킨 분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목회를 잘하는 목회자 상을 우리 감리교회에서 훨씬 더 포괄적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사회자 : 예 감사합니다.
김진호 감독회장 : 어제 패널 토의 할 때 목원대 김흥수 교수님이 ‘130명의 학생을 뽑았는데, 적어도 50명은 앞으로 감리교에 지도자가 되기가 대단히 어려운 사람들이다’는 얘기를 하셨습니다. 교수님이 말한 그런 학생들이 신학교 지원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30명의 학생들을 신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신학교와 교단이 같이 고민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여기 신학교 교수님들이 몇 분 계시고, 특별히 총장들이 여기 계셔야 하는데, 교단도 이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지만 신학교 당국도 이 문제에 대해서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대학원이나 신학교가 교육부 정책에 의해서 또 학교가 원하는 학생 숫자에 의해서만 뽑지 말고 과연 우리 교단의 교역자 수급이 어떻게 되느냐는 것을 함께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신학교 당국은 아무리 130명이 교육부에서 내려온 인원이지만 정 안되면 100명-80명을 뽑고, 나머지는 교단에 장학금을 많이 지원해 달라하는 건의를 강력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신학교 수급문제는 신학교와 교단이 같이 머리를 싸매고 해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저는 미자립교회나 신학교 수급문제를 가지고 제가 감독회장으로서 정책을 내세운 가운데 고심을 하는데, 신학교 당국도 뼈를 깎는 각오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신학교 교수님들이 키워낸 그 신학생들이나 신학대학원생들이 갈 자리가 없어 실직자가 된다든지, 이렇게 되는 것에 대해서 신학교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것에 대해서 학교 당국의 교수님이나 총장님이 이것에 대해 어떤 답변을 해주셨으면 좋겠는데 어느 분이 답변해 주시겠습니까?
김홍기 교수: 감신대 김홍기입니다. 저는 학교에서 강의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다 목사가 되라고 하지 않습니다. 소명감이 없고, 적성에 안 맞고, 인격적인 훈련이 안된 사람은 굳이 목사되지 말아라, 본인도 불행하고 교인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졸업하면 다 목사가 된다거나 수급이 문제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저희 학교 경우 재정 운영을 학생의 등록금으로 다 해결하고 있습니다. 지난번에 부담금 1%을 신학교에 헌금해 주셨는데, 그것을 제도화하셔서 지원해주실 때, 신학생의 숫자를 줄일 수가 있습니다. 그런 것을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회자 : 최춘남 목사님 어디 계시지요? 예, 목사님 지금 이거 하나만은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뭐냐하면 ‘좋은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일선교회 목회자들의 시각과 신학교의 시각이 좀 다른 것 같은데, 그 점은 분명히 하고 다음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최춘남 목사: 예, 저희들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좋은 목회자 즉 웨슬리 같은 뜨거운 그런 열정을 가지고 어디곳이나 가서 일할 수 있는 그런 목회자가 신학교에서 양성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하는 겁니다. 신학교 들어가면 믿음이 차가워 진데요, 그러니까 더 뜨거워진 그런 목회자가 됐으면 하는 그런 얘기였습니다.
사회자 : 이것이 우리 현실인데, 앞으로 목회자와 신학교 교수들간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서 공감대를 마련해 가는 것이 우리의 과제일 것이라고 봅니다. 이 보고를 맡아주신 A 분과 모두에게 박수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B분과 <감리교 교육의 미래> 사회를 김준영 목사님이 보셨고, 서기를 임수정이 보셨는데 발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김준영 목사: B분과 <감리교 교육의 미래>에 대해서 토의한 것을 말씀드리겠습니다. 9명이 목회자 연장교육은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장시간 신학교육과 교회교육에 대해 논의를 하였습니다.
먼저, 신학교육에 대한 토론내용을 말씀드립니다.
첫 번째, 조금전 A 분과에서도 언급이 되었습니다만 신학생 자질 문제가 논의가 됐습니다. 여러가지 얘기가 있었지만 일단은 교회와 신학교와의 거리를 좁히도록 힘써야겠다는 데에 의견을 모았고, 특별히 교회에서는 각 교회에서 유능한 학생들을 신학교를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권장하자 그런 말씀이었습니다. 수능성적만 최우선은 아니겠지만 고등학교 성적에서 중하위권의 학생들은 신학교에는 안 보내면 어떻겠느냐 하는 얘기들까지 나왔습니다. 어쨌건 교회에서 실력도 있고 유능한 그런 사람들을 적극 권장해서 신학교에 보낼 수 있도록 개교회 목사님들이 좀 열심히 권면하는 일들이 있어야 되겠습니다.
두 번째로 교단 차원에서 재정적으로 신학교를 후원하는 정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입니다. 방금도 얘기 하셨지만, 한시적으로 1%의 신학교 부담금을 지원했던 것을 3년하고 이제 그쳤는데, 꼭 1%가 아니더라도0.3%가 되었든 0.5%가 되었든지 간에 꼭 1%가 아니더라도 신학교에서 얘기되었던 것처럼 차등을 두어서 어떤 신학교에 매년 5억을 지원한다든가 이런 식으로 계속적으로 지원이 있었으면 좋겠으며, 이것을 제도로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세 번째, 수급문제 조절이 제도적으로 요청됩니다. 수급문제에 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지만 신학교 차원에서는 교회의 절기나 신학교 뒷받침을 위해서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자료들을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구요. 통합대학원 설치 문제가 언급이 있었지만 더 신중하게 검토하고, 교육국과 신학교 또는 교단차원에서 서로 연계해서 좀더 힘있는, 심도 깊은 의견수렴을 거쳐서 진행하면 좋겠다 하는 이야기들이 진행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교회교육에 대한 문제인데, 교회교육도 크게는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교재개발에 대한 문제였고, 두 번째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문제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이제 교재개발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는 교육국 김영주 총무가 함께 참여해 주셔서 ‘지금 교육국에서 의욕적으로 교재개발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으니까 믿어 주고 밀어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의견으로 제시되었던 것 가운데는 교회학교 교재라든가, 속회 공과라든가, 아니면 교인교육에 필요한 교재들을 좀더 다양하게 개발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입니다. 특히 속회공과 같은 것은 연도가 찍혀서 그 해 쓰고 거의 다 폐기시키다시피 하는데, 그러지 말고 주제별 공과를 만들어서 한 사이클을 가지고 속회공과를 계속하면 감리교의 전반적인 이해가 잘 되지 않겠느냐는 내용입니다.
특별히 감리교 정체성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감리교의 특징을 신학적으로 말할 수 있도록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지요. 현실적으로 교육국의 예산 부족 문제도 있고 이것은 교육국 문제이긴 합니다만 어쨌건 본부는 정책만 하고 사업은 연회, 지방차원에서 하도록 그렇게 되어 있다 보니까 좀 아쉬운 문제점이 있습니다. 교육국이 과거처럼 사업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업을 하고 정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정책도 세우고 그렇게 할 필요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이야기도 되었습니다. 또 하나 첨가하고 싶은 것은 학원선교에 대한 적극적인 후원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토론되었습니다.
사회자 : 보고에 대한 질문 있습니까? 간단히 말씀해 주세요.
최세웅 감독 : 사실 이 학문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현장에서 필요에 의해서 학문이라는 것이 요청되고,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이라는 것은 학문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출발해서 나오는 학문이라야 살아있는 학문이고 목회 현장에 필요한 것이지요. 그 대신에 신학교 교수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로 대두되는 ‘목회자나 목회 현장에 도움을 주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우리 신학교 교수님들이 목회 경험이 없다고 하는 것이 결정적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가끔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목회자나 목회 현장과 너무나 거리가 먼 얘기를 한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서로 비판만 했지 도움이 안되고 협조가 안됩니다.
제가 제안하는 것은 신학자들로 하여금 구체적으로 어떻게 목회 경험을 가지게 하면 어떤가하는 겁니다. 일년에 한번이나 두 번 쯤 신학교 교수들이 목회자의 강의를 들을 수 있는그런 기회를 만들어 주면 어떨까요? 보다 더 나은 신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목회자의 소리를 듣고, 목회 현장의 깊은 이해가 담긴 그런 강의 교육을 통해서 간접적인 목회 경험을 갖도록 만들어 주면 피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래서 신학자들에게 목회자를 통한 교육을 1년에 1-2번 쯤 받게 만드는 제도를 우리가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합니다.
사회자 : 총장님이 계시면 제가 답변을 듣겠는데 시간이 지금 많이 지나서 , 그냥 이런 의견이 있다는 것을 여기 참석한 신학교 교수님들이 참고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B분과 보고 다 박수로 다 같이 마치겠습니다. C분과 <감리교회의 조직과 의회 제도>에 대해서 김고광 목사님의 사회하셨고 임정덕 목사님이 보고 하실텐데, 5분이라는 시간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임정덕 목사 : 우리 C분과 주제는 <감리교회의 조직과 의회제도>입니다.
첫째는, 의회제도입니다. 현재 우리 감리교회 5개 의회가 있는데, 이 중 여기서 비효율적인 의회는 축소를 하자는 의견입니다. 그래서 제1안은 구역회와 연회를 삭제하고 과감하게 당회, 지방회, 총회(3개의회). 그렇게 해보자는 의견입니다. 제2안은 구역회를 당회와 합쳐서 4개의회로 당회, 지방회, 연회, 총회로 그 직무를 행하게 하자는 겁니다. 이 두 가지 안을 다 상정해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또 총회 구성은 입법의회와 총회를 합하고 총대인원을 어떻게든 축소해서 정책을 확정할 수 있는 그런 총회가 되도록 하자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세 번째는 감독제도입니다. 감독회장은 4년 전임제, 중임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또 4년제를 전임하고 은퇴하더라도 이 4년 전임제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과 연회 감독은 점차적으로 4년 전임제로 했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다음은 선거제도입니다. 선거제도는 총회 시에 선거를 하지 말고 총회 1개월 전에 선거일을 정해 연회별로 동시에 모여서 선거를 먼저하고 총회를 하자는 의견입니다. 그래야 총회가 정책을 입안하는 총회가 될 수 있다는 의견입니다. 방법은 연회원이 연회감독과 본부감독, 즉 감독회장을 연회원이 연회별로 모여서 직접 선거하도록 하자는 겁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은급제도입니다. 현실적으로 은급비가 부족하다는 사실은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일인데, 자원을 마련하려고 하면 아무래도 경상비수입의 1.5% 내지 1%의 인상을 해서 상향 조정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그런 의논을 했고, 두 번째는 부담금만 가지고 말할 것이 아니라 수익자 원칙을 기본으로 해서 그 동안 정회원이 되면 10년만에 일차시 기여금을 내던 것을 3-5년 단축해서 연금제도와 은급부담금 제도를 병행해 나아가야만 앞으로 원활하게 운영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의논했습니다.
그리고 이 은급제도의 운영에 대해서 지금까지 전문적인 연구와 또 연구중인 장기적인 정책이 없었기에 이런 현실적인 문제에 봉착했는데 이제라도 전문적인 전문가에 의해서 장기적인 정책을 세우고 운영해야 하며, 부담금 책정을 경상비 수입 결산에 의해서 하지 않고 입교인 수에 비례해서 부담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사회자 : 우리 오른쪽에 회의 내용이 뜨고 있으니까 참고해 주시고,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여러분들이 많은 의견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압니다. 지금 설명한 것에 대해서 질문만 받겠습니다. 예, 이목사님 간략하게 질문하십시요.
이광석 목사 : 질문이 될 수도 있겠구요. 제안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어제 제가 속한 그룹에서 의논하면서 별세 교역자 미망인을 지원하는 방안이 연구 실시되었으면 좋겠다는 그런 얘기가 있었습니다. 또 하나 제안은 목회를 하다보면 교회 형편이 여의치 못한데, 고가의 의료비가 지출되는 질병에 걸린 교역자들이 있습니다. 가끔 우리가 기독교세계나 기독교타임즈에 나오는 소식을 보면 백혈병에 걸렸다든지, 암에 걸렸다든지 하는 교역자들이 있고 또 30대, 40대 초반에 교통사고로 별세하신 교역자들도 있는데, 사모님들과 자녀들의 생활이 참으로 절박합니다. 그래서 은급제도 하면 은퇴하시는 분들이 수혜를 받는 차원으로만 은급제도를 생각하지 마시고 제가 생각할 때는 연령이 적은 목회자 특별히 또 교세가 적은 교회에서 목회하다가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세상을 떠나시는 교역자들의 미망인과 자녀들을 지원하는 제도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드리고 싶습니다.
미성명 : 그 분과에 참여했었는데요. 한 가지 빠진 것이 있어요 무엇이 빠졌나하면, 수익자 부담원칙이라는 것이 빠졌어요.
권흥식 권사 : 제가 정리하기 전에 여기 올려 놓았기 때문에 제가 말씀드린 것과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첫 번째는 부담금을 상향조정해서 자원을 마련하는 것 하나하고, 또 하나는 수익자 부담 원칙에 의해서 10년에 한번씩 내던 것을 3-5년에 한 번 내는 방법. 그리고 부담금과 연금제도를 병행해서 앞으로 은급제도를 해나가야 한다. 그것이 의논이 된 것입니다.
김준영 목사 : 왜 3-5년으로 했는지 보충 설명을 해주어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웬만한 목회자들 스스로도 1년에 은급비가 얼마나 지급되고 있는지 또 얼마가 모자란지 또 수혜 받는 사람이 몇 백명이 되는데, 앞으로 5년 뒤라고 하면 몇 백명이 되기 때문에 얼마가 모자란지, 그런 것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십시요.
윤종웅 총무 : 예, 짧은 시간에 다 설명하기가 좀 그런데요. 어쨌든 은급부담금 약 42억원이 들어오는데, 2002년도에 지급된 은급비는 50억 이상이 나갔습니다. 10억 이상이 부담금 가지고는 부족액이고요, 그 다음에 사업수익금으로 임대료와 이자금 , 기타 수익을 합해서 2002년도 은급사업을 한 것이 1억 5000만원이 부족액이었습니다. 그래서 1억 5000만원을 전부 본부 경상비에서 충당하도록 금년에 재조정을 하고 순전히 은급비는 은급비로 지급을 하자 그렇게 했는데, 부담금이 42억이 나오면 금년도에 은퇴해서 더 상승된 것은 약 한달에 5억이 나갑니다. 그러면 60억이 나갑니다. 그러면은 20억이 모자란다는 것이 얼른 계산이 되지요, 이래서 현 제도로 향후 10년이 가게되면 190억이 모자라게 됩니다. 이것은 정책적인 준비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문제이지만 현실적으로 우리 발 앞에 불이 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원을 확보해야 하는데 이 자원을 확보하는 길이 무엇이냐? 은급부담금을 약 1.5%로 하고 여러분들이 내는 기여금을 전부 거두면 은급부담금 1년 내는 부담금과 기여금과 같습니다. 약 40억이 된다는 이야기지요. 그것을 3년 안에 한번씩 내면 그것이 일년 들어오는 은급부담금 액수와 같습니다. 그렇게 충당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만 하면은 향후 10년 간은 현재 상태로 유지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이 지금 장정 개정 위원회에 상정되어 있는 내용입니다.
사회자 : 지금 은급제도에 대해서는 우리 교단이 많이 논의하고 있고, 나도 지금 자료를 본 것이 있는데, 이 자료집을 낼 때 김준영목사님이 질문한 것에 대해서 첨부해서 자료집에 내도록 하겠습니다. 발표해 주신 윤 목사님과 C그룹 회원들께 박수 한번 해주시기 바랍니다. D분과 최은영 장로님 나오셔서 발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두 분과 남았는데, 5분을 꼭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최은영 장로님 : 우리 D분과에서는 <감리교 역사와 사회 의식>에 대해서 같이 토론했습니다. 교회학교에서 감리교 정신을 가르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하는 내용에 대해서 우리가 토의했는데요, 교회학교에서 감리교 정신교육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교회학교라고 하면 어린아이로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정말 감리교 정신인 웨슬리 정신이 우리에게 과연 있는가? 웨슬리가 만난 하나님을 전하고 있는가하는 그러한 토론을 했습니다. 그래서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웨슬리 교육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내용을 토의하면서 만일 한국교회에서 웨슬리 정신이 없다면 왜 없는지 이러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의논이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감리교회의 좋은 의회 제도나 여성사역에 대한 방문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된다는 의견입니다. 현재 한국 감리교회에 비민주적인 운영이 개선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계급적 운영을 지양해야 한다는 말이었습니다. 연회, 지방, 총회의 운영을 개선해서 현안 중심의 토의가 이루어져야지 정치적이나 선거중심의 이러한 총회나 연회 운영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우리 교수님 한 분이 말씀해 주시기를 외국에서는 토의를 할 때에 원탁토의를 한다고 했어요. 이렇게 앉지 않고 원탁으로 앉아서 찬성하는 사람들은 그린 팻말을 들고 반대하는 사람은 빨강색 팻말을 들고 질문이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노란색 팻말을 들고 자신들의 의견을 낼 수 있는 그러한 토론 문화가 중요한데 우리는 장소 때문에도 그렇고 회의문화가 제대로 정착되지 않았기 때문에 제대로 되지 않는 답답함이 있다는 토의를 했습니다.
또 발달된 감리교 제도를 학습하기 위해서 미국이나 영국에 그 교단 차원에서 역사 탐방하는 프로그램도 개발되어야겠다고 의견을 나눴습니다. 또 계급적 차원에서 방문이 이루어지데 비해서 젊은이들도 방문할 수 있는 기회를 허용하고, 감리교의 제도에 대해서도 미국 의회가 아무리 잘되어 있다고 하지만 비판적인 수용도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UMC에서 우리가 배워 온 것이 굉장히 많은데, 의회제도나 회의 문화는 우리가 배워오지는 못한 점이 아쉽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리고 한국전통과 문화를 기독교정신에서 재해석하고 기독교 문화를 창출해야한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먼저 감리교회의 정체성이 확립되어야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고 한국적 감리교회상, 한국적 감리교 영성 확립이 선행되어야 한국감리교인의 정체성도 확립이 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감리교회의 신학 확립이 필요한데, 한국종교전통 사상에서 긍정적인 부분은 수용하고 부정적인 면은 지양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예를 들면 유교의 효 사상이나 불교의 명상 등에 대해 우리들이 배격만 하지 아니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는 그러한 전통종교사상을 우리도 확립해 나가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한국감리교회 윤리 지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신학과 지침과 규범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사회 성화를 위해서 운동화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그래서 웨슬리도 성화 생활 지침을 세웠고, 그 규범을 세운 것 같이 우리도 사회 성화운동으로 이어가고, 이것을 하기 위해서 오늘과 같은 토론회가 계속되어져야 하고 그 토론회를 통해 운동하는 그런 movement가 일어나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 다음에 감리교회 역사자료개발 담당자 육성 및 전문화를 위한 교육을 설치함에 있어서 각 대학에서 역사자료를 모으고 현재로써는 지방의 회의록이라든가, 연회 회의록, 주보 이런 것들도 제대로 보관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교단 안에 전문가 육성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감리교 역사박물관도 설립하는 그러한 비젼을 가지고 교회 역사자료를 모아야겠고, 교단의 역사위원회를 설치해야된다는 의견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교단적 가이드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지금 현재 서부연회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대북사업은 계속해서 하고, 바로 지난주에 결성된 평화통일위원회에서 정책적 연구를 해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주시고 개교회가 평화통일에 대한 것은 어떻게 해야한다는 가이드 라인을 제시해 주도록 평화통일 위원회와 서부 연회에 의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리고 교회와 기관 및 선교지에서 감리교리와 역사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감리교 유적지가 많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감리교인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 감리교 유적지를 탐방하고 견학을 통해서 우리가 감리교의 역사를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다음 토론회에서는 이슈별로 토론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토론이 계속되어서 우리가 의회제도에 대해서나 여성참여에 대해서나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서 토론을 계속했으면 좋겠구요, 감리교인됨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의식구조 개편은 감리교회의 정체성이 확립된다면 가능할 것이라고 봅니다.
사회자 : 네, 감사합니다. 마지막 E분과 <감리교 에큐메니칼 의식과 리더쉽>에 대해서 추연호 목사님이 사회 보셨는데, 시간을 지켜 주십시오.
미성명 : E분과에서는 <감리교 에큐메니칼 의식과 리더쉽>에 대한 주제로 11분이 참석했습니다. 주어진 주제에 의해 열띤 토론을 한 결과 우선적으로 가칭 에큐메니칼 추진위원회 혹은 협력위원회를 두자는 의견입니다. 감독실 산하 기구로 특별위원회로 구성을 해서 이 위원회가 에큐메니칼 관련 행정업무를 주도하도록 하자는 논의를 했습니다. 이 특별위원회는 몇 가지 역할을 해야된다고 논의했습니다.
첫째, 이 위원회에서는 전문인 발굴과 지도자 양성에 주력하고 또 인력을 확보해 두고 그리고 관리를 하는 기관을 두자는 이야기입니다. 둘째, 연합기관의 실무책임자를 추천하기 위해서 인재를 발굴해서 그 후에 감독실 또는 감독으로 이루어진 인사위원회 전문인들을 추천해서 연합기관에 보낸다는 것입니다. 셋째, 해외 에큐메니칼 기관과의 다각적인 협력관계를 추진하고 협의하는 위원회를 두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넷째, 연합기관에 위원 파송과 사전 교육 등을 그 위원회에서 했으면 좋겠다고 논의를 했습니다.
다음으로 에큐메니칼 교육을 위해서 장기적으로 에큐메니칼 전문교육기관의 설립이 필요하다는 의논이 있었습니다. 현재 거대한 규모의 전문기관 설립에 앞서 작은 규모의 교육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이 우선적 과제라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예를 들면 장신대에서는 신학교에서 30명을 뽑아서 에큐메니칼 교육을 시킨다고 합니다. 그래서 타 신학교 타 교회 연합기관에 수시로 가서 교회 밖과 구분시켜서 전문인력을 키운다고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2년에 한번 씩 커리큘럼에 에큐메니칼 과정이 있는데, 그것도 타교단에서 교수를 초빙해서 공부를 시킨다고 해요.
이에대해 첫째로 에큐메니칼 교회를 장기적으로 계획하는데 있어서 감리교회가 한국연합운동과 에큐메니칼 신학형성에 어떤 주도적인 역할을 해왔는지 그 역사성을 배우는 장을 마련해야 되겠다는 말입니다. 거의 100년의 역사 속에 감리교가 에큐메니칼 진영에 굉장히 많이 영향력을 주도해 왔는데 관련기관의 총무직은 이제와서야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 여러가지 이유를 볼 때 연합기관에 가서 일할 전문인 양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말씀드렸습니다. 에큐메니칼 신학과 정신을 가르치는 전문 교육 프로그램이 단계적으로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전문기관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리고 에큐메니칼 아카데미를 통해서 차세대 지도자들이 세계 교회를 배우는 기회를 제공해 주자하는 논의를 했습니다.
네 번째는 에큐메니칼 교육 기회를 다양하게 마련하고, 대상을 고려한 구체적인 커리큘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도록하자는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다섯 번째는 에큐메니칼 신학과 근본정신인 일치를 배우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에큐메니칼운동에 대한 오해를 해소시키고 바람직한 교회지도력을 키워나가자고 의논했습니다.
여섯 번째는 한국적 상황에서 가장 시급하고 중심된 정의와 평화의 문제를 다각도에서 접근하고 이해하도록 교육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입니다.
마지막으로는 에큐메니칼 교재, 에큐메니칼에 대한 책자, 여러 가지 안내서, 이런 것이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도록 3년에 한번씩 재수정해서 출판하도록 하고 교재 혹은 가이드라인 지침서 제작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는 논의도 했습니다.
사회자 : 우리 교단의 발전을 위한 토론회가 근간에 처음으로 열렸는데, 제가 여러분에게 말씀 드릴 것은 이런 프로그램이 정말 우리 교단에 필요한 것인지, 한번 해 본 결과 앞으로 어떤 방법으로 했으면 좋겠다든지 참여한 여러분들의 의견을 듣고 싶구요. 또 하나 이것을 자료로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런데 이 토론한 것이 정책에 어떻게 반영되어야 하는지 이런 것에 대해서 여러분들의 견해와 의견을 들은 후 감독회장님 말씀 듣고 종합보고를 마치겠습니다. 여러분들이 앞으로 이것은 꼭 필요한 것이니 더 해야겠다고 강하게 주장하면 그렇게 방향을 잡을 것이고 그렇지 않고 유익이 없다고 판단되면 비생산적인 것은 할 필요가 없지요. 여러분들의 의견을 편안하게 얘기해 주세요.
미성명 : 앞으로 이런 토의가 당연히 필요하다고 보며, 매우 유익했다라는 결론입니다.
최세웅 감독 : 토론회는 어떤 사람이 참여하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느끼기에는 대체적으로 이번은 신중하게 선택하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토론회를 계속 갖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번 토론회가 성공적이었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여기서 나온 의견은 어떤 것은 직접 반영해야 할 것도 있지만 필요한 기구마다 되돌려야 할 것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여기 보도되어 있는 것은 책자로 발간함은 물론이고, 중요한 내용을 필요한 기관에 알려주기도 해서 유기적으로 발전해 나가도록 지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성옥 장로 : 준비위원회를 보니까 거의 목사님들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평신도들이 함께 참여하고 같이 논의해서 준비가 되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사회자 : 그러면 이제 이 문제를 처리하는 많은 부분이 감독회장님의 의지에도 관계되어 있기에 여기에서 의논하신 것을 전부 말씀하시고, 또 이 자리에서 감독회장님께 말씀드릴 것이 있으면 말씀해 주십시오.
강남순 교수: 제가 한가지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저는 이 토론이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고요, 다음에는 숫자가 적어도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참석할 분을 신청 받아서 진행했으면 합니다.
사회자 : 등록하신 분은 110명인데, 이 자리에 현재 80명이 계십니다. 아쉽지만 다음 번에 꼭 조건부로 초청하도록 하겠습니다. 감독회장님 나오셔서 말씀해 주십시오.
김진호 감독회장 : 그래도 강남순교수님, 우리 감리교회 모임 중에 이렇게 끝까지 남으신 분이 많은 것을 보니 이번 토론회는 참여률이 매우 높은 편입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오늘 토론회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심으로 이 일을 시작하고 준비해 주신 모든 분들이 보람을 느낄 것입니다.
오늘 이런 의견들을 종합해서 정리하면서 감독회의에서 그 의견들을 진지하게 의논할 것입니다. 그리고 장정개정위원회에 이번에 토론된 내용들을 진지하게 말하겠습니다.
앞으로 이런 모임이 필요하다고 느낍니다. 이번에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폭넓은 주제를 다루는 바람에 다양한 얘기가 나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예를들어 교역자수급이나 미자립교회 등 심각한 몇가지 문제만 가지고 집중적으로 1박2일 동안 씨름하고 그 속에서 좋은 안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서 보다 포괄적이고 진지하게 의견을 교환할 수 있도록 그런 토론을 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참여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사회자 : 종합토의를 마치고 곧이어 폐회예배를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