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는 감리교회
- 일시 : 2005. 5. 10 ~ 12
- 장소 : 강원도 횡성군 현대성우리조트
2005 임원대회 환영사
당신은 희망의 청지기입니다
감독회장 신경하
영원한 희망이신 하나님께서 2005년 임원대회에 참석하신 여러분과 함께하시길 빕니다.
선교 120주년을 맞은 우리는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가 되려고 한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나날이 새로워지고, 든든히 서 가며, 세계로 나아가는 감리교회는 우리가 추구하는 희망입니다.
우리가 2005년 전국임원대회를 여는 목적은 ①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에 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② 영적 각성과 총력전도운동, 세계감리교대회(WMC) 준비를 구체적으로 추진하며 ③ 감독부터 지방 임원에 이르기까지 앞장서서 헌신을 결단하려는 것입니다.
감리교회가 의욕적으로 채택한 4년 전임감독제는 교단장 한 사람의 변화를 목적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이미 시작한 위로부터 제도변화는 아래까지 구석구석 모든 영역의 성결과 제도개선을 요청합니다. 지금 감리교회는 다시 깨어날 때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각성하여, 영적 부흥을 꿈꿀 때입니다. 2005년 임원대회가 희망의 대회가 되고, 희망의 용광로가 되며, 희망의 장터가 되게 합시다.
이를 위해 희망의 청지기인 임원들이 먼저 뜨거워집시다. 지혜를 모아 청사진을 만들어 봅시다. 우리가 먼저 감동을 나누어야, 우리 이웃에게 희망의 전도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희망을 믿음으로 체험해야, 목마른 이 땅에서 희망의 단비가 될 수 있습니다.
임원대회에 참석하신 여러분은 이미 희망의 증인입니다.
준비 중
2005 임원대회 주제강연(5월 10일)
희망의 청지기
신경하 감독회장
기독교대한감리회가 선교 120주년을 맞아 ‘2005 임원대회’를 연 것은 대단한 의미가 있습니다. 물론 연례적으로 열렸던 행사이지만, 특히 올해는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의 원년으로서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대한감리회는 이제 다시 영적으로 각성함으로써, 한국 감리교회를 든든히 세워내고 그리고 민족 복음화와 세계를 품는 신앙공동체가 되려는 희망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시점에서 희망을 말하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이 사회와 역사 앞에서 과연 희망을 주는 공동체이며, 앞으로도 희망을 제시할 수 있을까 라는 물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현장 교회에 있을 때나, 감독회장이 되어서나 변함없는 제 믿음은 ‘교회는 영원한 희망의 공동체’라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면 지금 이 모습으로는 아니라는 생각도 분명 갖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나온 발자취를 되돌아보면 자랑도 있지만, 허물도 못지않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기보다, 멀리해야할 세상의 습속에 익숙해졌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겉만 의로움을 내세우는 죄인의 존재이며, 말로만 섬김을 강조해온 오만한 존재였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주장하되 경건한 생활을 게을리 한 부끄러운 신앙인이었습니다. 오늘 거룩한 교회가 신뢰를 잃고, 존엄을 상실한 것은 먼저 교회의 책임자요, 임원된 우리들의 잘못 때문입니다.
지난 봄에 장로교 예장 통합측이 발행하는 기독공보 50주년에 초대받아 축사를 하였습니다. 그날 총회장인 김태범 목사님이 설교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이 참 인상적입니다. “지금 우리 교단은 찢어진 부대와 같습니다. 낡은 부대를 교체하지 못하니 지금 여기저기에서 찢어지고 터지고 있습니다. 꿰매기가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는 영락교회, 광성교회 등 예장 통합의 대표적인 교회들이 극단적으로 분쟁하고, 사회 문제화하는 모습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그들은 지금 이대로는 안된다는 강한 자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우리 어떻습니까? 그것은 우리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 것입니다.
올해는 기독교대한(조선)감리회가 세워진 지 75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우리 선배들은 1930년에 미감리회와 남감리회의 합동을 이루었고, 이 합동은 장차 미국 내 감리교회의 연합을 가져온 선구적인 안목이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여러 차례의 갈등과 분리를 겪었지만 언제나 하나로 재일치하였고, 지역과 계파, 세대와 신학노선의 차이와 불화에도 불구하고 성서적이고 복음적이며 현대화된 교회제도를 이루어 가고 있음을 자부합니다.
1930년 12월 2일, 기독교조선감리회 총회는 새로 건설될 한국 감리교회의 성격을 ‘진정한 기독교회’, ‘진정한 감리교회’, ‘조선적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진정한 기독교회’(truly Christian Church)는 그리스도의 정신과 가르침에 충실한 교회입니다.
‘진정한 감리교회’(truly Methodist Church)는 감리교 창시자 웨슬리의 정신에 충실한 교회를 뜻합니다.
‘조선적 교회’(Korean Church)는 한국의 민족적 상황과 현실에 능동적으로 참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수난을 당해온 민족과 함께 하며, 조선의 문화와 풍속과 관습에 조화되게 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한국 감리교회는 누구에게나 ‘열린 교회’를 지향하였습니다. 한국 감리교회가 1930년 총회 때 여성 안수를 채택한 것과 모든 의회에 목회자와 평신도를 같은 수로 구성하도록 규정한 것은 이같은 열린교회, 평등교회를 지향한 결과입니다. 특히 전도와 교육과 사회봉사를 균형 있게 전개하기로 하였습니다.
초대교회이래로 교회는 질적인 변화와 양적인 성장을 계속해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생래(生來)적으로 진보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생명 있는 이의 특징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변화와 성장은 살아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변하지 않으면, 각성하지 않으면 ‘화석화’된 교회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감리교인은 복음이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진리인 것을 믿으며 성령의 역사에 따라 ‘살아 움직이는 교회’여야 함을 분명히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의 모범으로 따르는 존 웨슬리는 이렇게 유언처럼 말하였습니다.
“메도디스트라 불리는 사람들의 조직이 설령 이 땅에서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나는 염려하지 않는다. 두려운 것은, 단지 능력 없는 형식적인 종교로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행여 오늘 우리가 존 웨슬리의 두려움처럼, 감리교회가 사람들의 욕망과 권력으로 유지됨으로써, 정의와 사랑을 나눔으로 이루어지는 참된 하나님 나라를 파괴하지는 않을까 염려됩니다.
존 웨슬리는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경건한 삶 속에서 참된 기쁨과 행복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메도디스트 운동도 의심할 여지없이 그렇게 될 것이다.”고 이미 강하게 경고하였습니다.
이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초대교회에는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말하는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교회는 금으로 기둥을 만들고 대리석으로 바닥을 깔아 하나님의 집을 지었다. 은과 금은 이제 우리에게 너무 많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을 잃었다”
선교 120주년을 맞아 우리가 먼저 영적 각성을 통해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라는 목표를 정한 까닭은 여기에 있습니다. 따라서 감독회의에서는 우리부터 영적 각성의 모범을 보이고, 앞장서서 실천해 나가자는 의견을 모았습니다. 그 결과로 “감독회의 영적 각성 선언문”을 발표한 것입니다. 물론 어떤 행정수단과 정치적 방법에 앞서 먼저 우리는 다시 하나님께 마음을 돌이키려고 합니다. 그것은 처음이며, 동시에 마지막인 가장 중요한 선택임을 믿습니다.
영적 각성은 한마디로 다시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바로 서려는 회개운동입니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는 하나님 앞에 바로 서서 진정한 회개와 새 출발의 바탕 위에 시작해야 신뢰를 얻을 수 있음을 믿습니다. 물론 이것은 행사치례에 그쳐서는 안됩니다. 감독회의가 첫단추를 꿰었으니, 이제는 연회와 지방 그리고 현장교회에 이르기까지, 더 나아가 우리 한사람 한사람 감리교인의 결단 속에서 이루어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감독회장의 직무를 하는 중에 종종 어떤 목회자에 대해, 어떤 교회에 대해 교회 안팎에서 시시비비가 오르내리는 것을 듣습니다. 제게 직접 문제를 가지고 찾아오고, 인터넷을 통해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저 자신도 구설수를 듣고, 도마 위에 오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목회자들의 비리를 고발할 때 저는 남의 일 같지 않게 분노를 느끼기도 하였습니다. 교회가 이러 저러한 문제가 발단이 되어 쪼개지고, 파탄이 나고, 교인들이 흩어진다는 소문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부끄러운 줄 모릅니다. 저로서는 남의 일 같지 않게 분노를 느끼기도 하고, 또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때로는 동정심이 들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럴 때마다 어떠한 비난과 책망보다 먼저 거룩한 질문이 요청되어야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에게 세 차례나 반복하신 주님의 물음(요 21:17)이 나를 살리고, 그리고 우리 교회를 살리고, 더 나아가 우리 모두를 살릴 것을 저는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의 위기는, 한국 목회자들의 위기는, 한국 그리스도인들의 위기는 바로 이러한 물음을 잊어 버렸기 때문에 찾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모두 거룩한 사람입니까? 아닙니다. 다만 거룩한 물음이 필요한 사람입니다. 진정으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라는 그 거룩한 물음에 근심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거룩한 물음이 나를 일으켜 주고, 길을 돌아가게 하고, 새로운 삶을 다시 결단하게 하고, 하나님의 뜻을 돌이키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제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위해 함께 청지기 직분을 맡은 여러분!
이미 여러분은 위대한 물음 속에서 출발한 사람들입니다. 앞으로 기독교대한감리회의 자랑스런 목사로서, 장로로서, 희망의 청지기로서 위대한 비전을 공유하고, 희망을 설계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내가 예수를 사랑하는가 라는 물음에서 시작합니다. 그 사랑 때문에 우리는 어려운 직분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는 결코 새로운 주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인류의 희망으로 역사 속에서 존재하였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지난 선교 120년 동안 이 민족에게 희망을 주는 일을 해왔습니다.
저는 선교 120년이 지닌 의미를 이렇게 정리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 60년은 구한 말 척박한 땅에 감리교회가 복음의 뿌리를 내리고 일제 강점기 속에서 고난과 함께 교회가 성장하던 시기였습니다.
두 번째 60년은 해방과 분단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성장과 분열을 함께 겪어온 세월이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세 번 째 60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감리교회의 정체성을 재정립하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위해 재도약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 민족의 미래를 함께 준비하며, 평화와 통일시대를 여는 교회로서 준비해야 합니다.
작년 8월에 광주광역시에서 열린 호남선교대회의 열기와 성취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우리 감리교회의 저력을 발견했다고 말들 하였습니다. 다시 감리교회가 역사의 흐름 가운데 상승분위기를 탔다고도 하였습니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으로 뜨겁게 기도하고 새롭게 변화해 나간다면 우리는 분명히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희망을 주는 교회와 성도가 될 수 있습니까? 세 가지 목표를 정하였습니다. 나날이 새로워지는 감리교회, 든든히 서 가는 감리교회, 세계로 나아가는 감리교회입니다.
먼저, 나날이 새로워지는 감리교회는 무엇입니까?
우리 감리교회가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영적 각성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그러한 시점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적으로 새로워져야 합니다. 교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부터, 목회자들과 평신도들 모두 영적으로 각성하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 길만이 우리 감리교회가 다시 살아나고, 거듭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거듭남은 자기 발견과 자기 사랑은 물론 새로운 창조, 새로운 대안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나로부터 우리 공동체가 더불어 깨어나고 성장하는 일이며, 이를 통해 우리는 희망을 주는 하나님의 사람, 희망을 주는 교회로 새로워져 나갈 수 있습니다.
지난 선교역사를 보면 우리 감리교회는 언제나 영적 각성을 주도한 자랑스런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일례로 1903년 원산에서 감리교를 중심으로 일어난 회개와 기도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어 심령 대 부흥운동, 새벽기도운동, 백만 명 구령운동으로 이어지며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던 것입니다. 민족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했을 때 일어났던 현상이며, 어느 누구도 희망을 줄 수 없었을 때 발생했던 신앙운동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 각성은 희망을 발견하는 안목을 제공했고, 시야를 마련해 주었던 것입니다.
둘째, 든든히 서가는 교회가 될 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 교회를 가리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말씀합니다. 몸이란 살아있는 유기체입니다. 교회는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든든히 성장해 갈 때, 아름답고 희망을 주는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든든한 교회로 서가기 위해서는 우선 ‘양적으로 부흥과 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열심으로 전도하고 교회부흥에 전심전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질적인 성장도 균형 있게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선교학자들은 교회가 사회적으로도 성장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사회적 성장은 교회가 사회 속에서 섬김과 나눔을 실천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이를 잘하면 교회는 사회 속에서 든든히 서가면서 사회를 변화시키는 희망의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9장 31절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희망이 있는 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대와 갈릴리와 사마리아 교회가 평안하여 든든히 서가고 주를 경외함과 성령의 위로로 진행하여 수가 더 많아지니라”.
우리 감리교회는 존 웨슬리의 유산을 이어받아 영적 부흥과 사회적 성화가 잘 조화된 선교 전통을 이어 왔습니다. 웨슬리는 많은 평신도를 훈련시켜 복음전도자와 부흥운동의 주역이 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사회 속에서 사랑의 봉사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게 하였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감리교회가 영국사회를 개혁하며 든든히 서가게 하였던 것입니다.
셋째, 세계로 나아가는 감리교회가 될 때 희망을 주는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웨슬리의 정신을 따라 세계적인 선교 비전을 가진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을 이 민족과 세계를 향해 큰 비전을 가진 선교의 도구로 사용하시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세계를 가슴에 품어야 합니다.
우리 한국감리교회는 앞으로 큰 과제가 눈앞에 놓여있습니다. 2006년 7월, 서울에서 열리는 제19차 세계감리교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5000명이 넘는 감리교 지도자들과 젊은이들이 한국을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한국 감리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입니다. 이 대회를 성공적으로 준비하고 개최할 때, 우리 민족 위에 화해와 평화의 전기가 마련될 것입니다. 더 나아가 한국 감리교회가 21세기 세계선교를 주도하는 교회로 새롭게 거듭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대회가 의미 있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화해하시는 하나님”이란 주제가 우리 민족의 화해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전망하기 때문입니다. 질리앙 킹스턴 프로그램위원장은 주제 채택과 관련하여 “WMC에 적합하고 개최국 상황에도 합당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습니다. 저는 이 대회가 서양인의 눈으로 볼 때 위험한 분단국가에서 개최된다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화해케 하시고, 평화로운 통일로 이루어 가시려는 놀라운 계획이 담겨있음을 분명히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해자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인 우리를 책망하고 심판하시기는커녕 오히려 부르시고, 용서하셨습니다. 당신과 화해하셨을 뿐만 아니라, 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화해의 사절로 삼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음으로써 화해의 직분을 맡은 사람입니다. 세계감리교대회를 통해 우리 한국감리교회는 한국교회의 뜨거운 복음열정과 함께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화해의 물꼬를 트게 하는 계기를 마련하도록 힘써야 합니다.
이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의 부름받은 종으로서, 청지기 직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지기(Oikonomia)란 ‘어떤 집의 가사를 맡아 관리하도록 주인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종이나 삯군’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영혼들과 오늘의 교회와 이 사회와 역사까지 맡겨주셨습니다. 한스 릴제 감독은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청지기라는 사실을 아는 것은 우리의 삶 가운데 깊은 염원에 대한 응답을 주는 것이다”. 이 말은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전 생애를 어떻게 책임있게 운용할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벧전 4:9-10)
특별히 우리는 희망의 청지기로 부름 받았습니다. 제 생각에 희망의 청지기는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특별한 지도력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엄마형 리더’가 각광을 받는다고 합니다. 남성적 성향을 가진 리더를 ‘상어형 리더’, 그리고 여성적 성향을 가진 리더를 ‘돌고래형 리더’라고 규정합니다. 같이 행동하기 보다는 홀로 공격하고 쟁취하는 상어가 남성적 리더십이라면, 뛰어난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고 친화력과 높은 소통능력으로 정보를 함께 나누는 돌고래는 여성형 리더십입니다.
여성 리더십의 특징은 꼼꼼함과 유연성, 그리고 서비스 정신이 바탕을 이룹니다. 앞으로 조직에서 필요한 것은 직원을 칼날처럼 짓누르거나 예리하게 재단하는 불굴의 남성적 기업가 정신이 아니라, 엄마처럼 세세하게 보살펴주는 배려의 정신일 것입니다. 친절하고, 따듯한 감성을 지닌 ‘엄마형 리더’야말로 조직의 유연성을 만들고 직원들에게 책임감을 준다고 합니다.
희망의 청지기의 지도력은 남을 다스리는 능력을 말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스스로 심부름하는 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섬김과 봉사의 직책이라는 청기기상의 모범을 보이셨습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서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 22:27)
바로 희망의 청지기는 섬기고, 봉사함으로써 감동을 주고, 지도자의 말이 아닌 지도자의 행동을 통해 희망을 경험하게 합니다.
둘째로 특별한 소명의식입니다.
바로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세우셨다는 소중한 자각입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성형수술을 합니다. 그런데 수술을 하는 이유가 꼭 못생기거나, 눈이나 코가 비뚤어진 것 때문만은 아닙니다. 미국의 성형외과 의사 맥스웰 몰츠의 조사에 따르면, 성형수술을 받은 후에 환자들의 인생살이가 달라졌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혁신은 내면의 자아 이미지를 바꾸는데서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셀프 이미지입니다. 즉 정신적 성형수술을 통해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자각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하셨느니라”(렘 9:26)는 말씀이나, 바울 사도의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돌 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 판에 쓴 것이라”(고후 3:3)라는 말씀은 자신의 의식과 내면으로부터, 영적 각성을 통해 새롭게 창조해 가는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통해 자기 자신감, 자기 사랑함, 자기 존중감, 자기 희망을 얻음으로써 나부터 희망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특별한 은총의 생활입니다.
청지기는 다만 주인의 재산과 사람을 관리하는 존재입니다. 따라서 희망의 청지기는 권리보다 의무를 소중하게 생각합니다. 희망의 청지기는 은총으로 사는 사람이며, 은총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 아닙니까?
우리는 내 것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남의 물건을 빌려다가 오랫동안 쓰고 나면 내 물건인줄 착각하게 됩니다. 돌려 줄때가 되면 아쉬운 생각이 먼저 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분 중에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내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지 않습니까? 재산도, 건강도, 생명도 내 것이 아닙니다. 오랜 세월 맡아서 관리하다 보니까 어느새 내 것인 줄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가 겪는 위기와 혼란의 출발점은 나 자신이 어느새 주인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위기는 먼저 부정적인 생각, 소극적인 생각, 할 수 없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됩니다. 더 큰 위험은 이기주의, 탐욕, 그리고 특권적 사고입니다.
우리는 다시 희망의 청지기로서 자신을 비우고 하나님 앞에 빈 손으로, 맨 발로 설 수 있어야 합니다. 이제 희망의 청지기로써, 자기 자신으로부터 창조적인 변화를 시작해 봅시다. 헬렌 켈러는 이렇게 말합니다. “볼 수 있으면서도 비전이 없다면? 그것은 끔찍한 일이다”.
매일 조금씩 개선하는 것은 우리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한일 월드컵의 영웅인 히딩크 감독도 날마다 1%씩 바꾼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세계를 향하여 거룩한 꿈을 가지고 나아갈 때, 우리는 진정으로 세상에 희망을 주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선한 청지기로의 남은 생을 살아야 합니다.
희망은 매우 종말론적인 메시지입니다. 희망은 교회가 지닌 예언자의 능력입니다. 비록 우리는 천기를 누설할만한 지혜와 능력은 없지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을 맡겨주셨습니다. 모두가 절망하고 눈앞이 캄캄하다고 좌절하는 가운데 희망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용기입니다. 그래서 현재 안에 배태되어있는 미래를 보았던 예언자들은 미래에 대해 말할 때에 완료형 문장으로 썼던 것입니다. 예언자들의 역사를 보는 눈은 현실에 고정되거나, 정지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현실보다 먼저 앞서 나갔습니다. 그것이 희망의 본질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이제 여러분의 희망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말씀 드리십시오. 또 여러분에게 묻는 이들에게 여러분의 희망을 보여주십시오. 이제 우리는 우리 속에서 넘쳐나는 희망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너희는 하나님께로 돌아오너라.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너희 하나님에게만 희망을 두고 살아라”(호 12:6).
이제 기독교대한감리회 임원으로 부름을 받은 우리가 ‘희망을 주는 감리교회’를 이루어 갈 수 있도록 참되고 충성된 희망의 청지기가 되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개회예배설교 - 이규학 감독
변화와 부흥 그리고 비전
행 2:11-21
세상이 교회를 향해 변화하라고 한다
세상이 이렇게까지 변할 줄은 60년대 농경사회 때까지만 해도 예측하지 못했다. 30년 어간에 우리 사회는 과거 수천년 동안 유지해온 문화며 환경이 대부분 바뀌었다. 세상은 지금도 너무 빨리 변하고 있다. 민족의 격동기에 이 땅에 들어온 교회는 세상의 변화를 잘 수용했다. 교회는 세상을 선도하면서 꾸준히 성장하여 안팎으로부터 많은 찬사와 기대를 받아왔고 한동안 민중의 지팡이며 희망이었다. 급성장한 교회는 90년대에 들어오면서부터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시대를 선도하기는 고사하고 옛날이여!를 외치고 있다. 그 결과 젊은이들과 식자들이 교회를 외면하면서 교회를 개혁하라고 요구한다.
어떻게 한국교회가 변화하는 세상을 보듬으면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아니하고 사람의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령으로 된다(슥 4:7). 교회는 오직 성령의 권능과 지혜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세상의 소망이 된다. 그런데 성령께서 권능 주시고 지혜 주심으로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선교다. 주님의 지상 명령이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선교명령이며, 이 명령은 성령이 임하므로 시작되었다. 교회는 세계선교를 위해 권능을 받을 것이며,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이다(행 1:8). 초대교회로 돌아가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제자들은 무력감에 빠졌다. 유다는 돈 때문에 스승을 팔았다. 주와 함께 죽겠다던 제자들은 주님을 버리고 도망갔고, 베드로는 계집종 앞에서 주님을 저주했다. 그러면 이들이 주님께 보인 헌신이 거짓이었을까? 아니다. 진심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희망은 골방에서 잉태되었다. 그들은 드디어 주님의 약속을 믿고 마가 다락방에 함께 모여 기도했다. 주님께서 보내신다는 보혜사 성령을 기다리며 기도했다. 주님께서는 약속 믿고 기도하던 제자들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이 오셨다. 제자들이 근본적으로 변했다.
성령이 오심으로
오순절에 성전에서 기도하던 제자들에게서 성령이 오신 증거로 방언이 터져나왔다. 15개 나라에서 온 유대인들이 난 곳 방언으로 하나님의 큰 일을 들었다.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이게 어찌된 일이냐? 저 사람들은 갈리리 촌 사람들이 아니냐? 갈리리 방언을 하는데 우리말로 하나님의 큰일을 듣고 있지 않느냐? 갈릴리 촌사람들이 성경을 능력있게 해석하느냐? 저 사람이 자기 스승을 버리고 도망갔던 겁쟁이들 맞냐? 혹시 저것들 스승을 배반하더니 들어앉아 술만 먹다 대낮부터 술에 취한 것 아니냐? 의혹하며 반문하는 세상을 향해 베드로가 11사도와 함께 외쳤다. “너희 말처럼 우리가 스승을 배신했던 죄인이었던 것 맞다. 그러나 우리가 술취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방언하고 예언하는 것은 요엘 선지자의 예언처럼 성령이 오신 것이다, 말세에 하나님께서 모든 육체에게, 내 남종과 내 여종에게 하나님의 영을 부어 주리라고 하셨는데 너희가 죽인 예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부어주셨다. 성령을 받으면 예언하고, 환상을 보고, 꿈을 꾸리라고 했으니 이 일이 이제 이루어진 것이다. 당신들도 회개하고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이다” 베드로의 설교처럼 오순절이후 성령이 오셨다. 성령받은 사람들의 시대가 왔다. 성령 받은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예언하여 이루었으며, 환상을 현실로 만들었고 꿈을 성취시켰다. 사도행전이 바로 이것을 증거한다.
성령이 오심으로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박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가 성령받은 제자들을 통해 변하기 시작했다(행 3장이하). 예수를 죽이고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들이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하며 주께 돌아왔다. 살인과 광포가 충만하던 도시가 사랑을 나누기 시작했고 기쁨으로 가득했다. 자기 제산을 팔아 구제에 써 달라고 가져오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칭송했다. 3000명, 5000명, 제사장의 무리들, 무수한 사람들이 주께 돌아왔다. 제자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전했다. 교회는 모이기를 힘쓰며 모일 때마다 예배드렸다. 모일 때마다 기도하고 교제했다. 교회도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조직을 정비했다. 사도들은 말씀전파에 전담하기로 했다. 교회는 구제를 위해 큰 결단을 했다. 예루살렘 교회에 기득권이 전혀 없는 헬라파 출신 평신도들 7인을 택해 구제 즉 재정을 전담하게 했다. 예루살렘 교회는 복음전파를 위해 기득권과 전통까지 과감하게 포기했던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에 비해 한국교회는 젊은이들과 새신자들을 수용할줄 모른다. 오랜 교회문화에 젖은 10-20년 된 분들이 자리를 독식하고 있으니 거기서 시대를 앞서가는 혜안이 나오기 어렵고,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품에 안을 수 없다. 젊은이들이 발붙일 공간이 없다. 모세가 이방인 호밥을 초빙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에 동참시키고, 바나바는 만인이 외면하는 바울을 초빙하여 안디옥교회를 세게선교의 핵심기지로 만들었던 역사가 우리 한국교회에서도 이제 일어나야한다. 연공과 서열, 기득권을 포기해야한다.
성령의 사람들로 인해 오랜 흑암의 땅 사마리아가 변했다
성령충만한 일곱 집사 중 한 분 빌립이 사마리아로 갔다. 빌립은 평신도사역자였다. 빌립같은 평신도 사역자를 키우고 능력과 권한을 인정해 준 곳이 예루살렘 교회였다. 빌립을 통해 회개운동이 사마리아에 일어났다. 원수가 되었던 사마리아와 유대가 화해했다. 사마리아를 사로잡고 있던 귀신들이 도망갔다(행 8장). 육신과 영혼이 병든 사람들이 치료되었다. 사람들을 미혹하던 마술사들까지 빌립에게 나와 세례를 받았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빌립을 꿈과 희망을 준 사람으로 기억한다. 오늘 우리의 사마리아는 소외된 빈민촌이며, 농어촌이며, 외국인 노동자들 아닌가? 환상을 보는 사람은 다른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사람이다.
성령이 오심으로 세계를 보듬다
안디옥 교회는 바울과 바나바 성령의 지시를 받들어 선교사로 보냈다. 기독교 역사상 처음으로 선교사를 파송한 교회는 유능한 담임목사를 세계선교사로 보냈다. 바울과 바나바는 성령의 인도하심대로 세계를 가슴에 안고 나섰다. 구브로가 변하고 안디옥이 변했으며, 이고니온과 루스드라가 변했다. 아시아와 유럽에 생명의 복음이 전해졌다. 바울의 선교목표는 예루살렘에서 출발한 복음이 온 세상을 복음화한 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바울이 공개한 선교의 비밀을 아는가?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며, 이방인이 모두 구원받으면 비로소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이다(롬 11:25-26). 바울은 자기 민족의 구원을 위해서라도 세계선교에 목숨을 걸었던 것이다. 그러면 오늘날 바울이 염원했던 세계선교는 어디까지 왔는가? 이스라엘이 온전히 구원을 받으려면 주께서 명령하신 모든 족속에게(마 28:19) 복음이 전파되야 하는데 선교학자들은 이 지구상의 족속을 12,000 정도로 보고 있으며 그 중 절반정도에게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며, 절반은 미전도 종족으로 남아 있다고 한다. 미전도 절반에는 성경번역이 되지 않은 부족과 이슬람권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성령이 임하심으로 성도에게 생긴 환상과 꿈은 결국 세계선교로 초점이 모아진다. 성도는 전도와 선교, 즉 영원구원을 위해 배우고, , 투자하며 헌신하고, 경제활동을 하고, 자녀를 양육해야한다. 영혼을 구원하는 이것이 하나님이 영광받으시는 일이다. 우리는 가든지 보내든지 해야한다. 이슬람 나라와 미전도 부족들을 향해! 사도행전은 성령의 역사며, 성령 받은 사람들의 행전이다. 성령께서는 교회가 비전을 상실하여 타락하고, 세속화 될 때마다 하나님께 헌신하는 소수들을 성령충만케 하여 교회를 새롭게하신다. 16세기 암흑기에 루터와 칼빈을 보내셨다. 18세기에 웨슬리를 보내 영국을 새롭게 했다. 무디와 빌리그래함을 쓰셨다.
이제 다시 성령을 구하자
오늘 우리현실이 어둡다. 영적 무감각이 성도들을 지배한다. 기도가 사라지고 있다. 교회와 사회 곳곳이 부도덕으로 멍들고 있다. 전도가 어려워지고 교인들이 오히려 감소하고 있다. 교회가 무능력해지고 있다. 교회와 세상이 영혼구원, 전도, 선교라는 목적을 상실하고 잘먹고 잘살아 보자고 방자히 행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변화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금년은 한국 선교 120주년이다. 이제 어두음을 깨뜨릴 때이다. 교회가 다시 민족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노래할 때이다. 만일 교회가 계속 침묵한다면 그것은 성령을 소멸한은 것이다. 유럽 교회처럼 텅빈 교회당만 덩그러니 남을 것이다. 그러기 전에, 마가 다락방을 만들자. 성령께서 임하시기를 기도하자. 말씀으로 돌아가자.
결단예배설교 - 장동주 감독
깨어진 사람을 쓰신다
눅5:1-11.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 들어 쓰임을 받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여러 방법들이 소개가 되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의 말씀을 통해서 들어 쓰임을 받는 사람에 대해서 묵상하고 은혜를 받고자 한다.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는 사람은 ‘깨어진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깨어진 사람들에게 임하셨다.
자기의 지혜, 지식, 명철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는 하지만, 성령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다.
게네사렛 호수가에서 어부들이 밤새 그물질을 하고 와서 그물을 씻고 있었다. 두 배가 있는 중에 예수께서 한 배에 올랐다. 그 배는 시몬의 배였다. 예수께서는 육지에서 조금 띄기를 청하시고 배에서 무리를 가르쳤다.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말씀하시기를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다.
시몬은 밤새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다. 어부들에게 있어서 고기가 잘 잡히면 밤을 지새워도 피곤하지 않다. 그러나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밤의 노력은 너무나 힘들다. 지친 시몬이 자신의 배에 올라와 천국 복음을 전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참으로 귀하고 본받을 만한 일이었다.
여기에다 예수님께서는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하신다.
밤에 잠 한숨 못잔 사람에게는 만금을 준다고 해도 그것은 귀찮은 것이었다. 시몬은 예수님께 대답했다.
(눅5:5) 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들이 밤이 맞도록 수고를 하였으되 얻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리이다 하고…
주님께서 말씀을 하시니까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서 주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내 육신이 피곤하고 힘들고 지쳐있는 상태에서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내 육체적인 경험, 지식, 기술, 판단에 맞지 않을 때에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그 결과는 엄청난 고기를 잡았다. 두 배에 잠길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했다.
(눅5: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바다 밑과 사람의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은 분명 하나님이셨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마지못해서 따랐던 자신이 죄스러웠다.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말씀은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깨어진 자기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자신의 고기 잡는 실력, 경험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신뢰했던 자신의 그 오만함과 자만을 스스로 회개했다.
주님께서는 자신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며 겸비한 마음을 나타내는 사람을 가까이 하신다.
(시34:18)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 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자신의 마음을 깨뜨리는 시몬 베드로에게 주님은 대답하셨다.
(눅5: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주님께서는 우리가 깨어지고 난 다음에 은혜를 베푸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며 들어 쓰시는 것이다.
오순절 마가의 다락에 있었던 사람들, 그들은 주님께서 떠나고 난 후에 어쩌면 돌아갈 곳도, 생업의 터전도 없었다.
그들이 의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말씀뿐이었다. 주님께서는 부활 승천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말씀을 하셨다.
(행1:4-5)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저들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깨어졌다. 오직 그들에게는 주님의 말씀만이 희망이었다. 저들은 주님의 말씀만을 생각했다. 주님의 말씀을 그대로 순종했다.
주님께서는 저들을 돌아 보셨다. 성령의 역사, 즉 방언을 주셨다.
진,에드워드의 ‘세 왕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하나님께서 학교를 하나 가지고 계신다. 적은 수의 사람이 입학해서 아주 더 작은 수의 사람이 졸업을 한다. 하나님께서 이 학교를 가지고 계신 이유는 그 분께는 깨어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깨어진 사람 대신, 여러 종류의 사람이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권위를 가진 자라고 주장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깨어진 사람이라고 부르짖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하나님 보시기에 이 모든 것을 요란하게 썩은 잡동사니의 사람들이 있다. 그분은 이런 사람들을 넘치도록 가지셨으나, 깨어진 사람은 없는 것이었다.
순종과 깨어짐을 배우는 하나님의 학교에 학생들이 적은 이유는 그들이 겪어야할 고통 때문이다. 종종 고통을 안겨주지만 깨어지지 않는 지도자들 있기 때문이다.
이 광야 대학의 필수 과목은 ‘궁핍’과 ‘핍박’이었다. 이것은 선택과목이 아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때때로 실패와 좌절의 긴 터널을 주신 것은 깨어지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욥은 이렇게 절규하듯 말을 한다.
(욥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 같이 나오리라
하나님 앞에 깨어진 다윗은 깨어지지 않은 큰 지도자 , 이스라엘의 왕인 사울을 이겼다.
주님 앞에 깨어진 베드로에게는 잡아야 할 물고기보다 비교할 수 없는 위대한 일, 사람을 낚는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많은 물고기를 잡는 것과 같은 물질의 축복을 받기를 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
그 보다 더 크고 위대한 사람을 낚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시시때때로 주님 앞에 깨어지는 것이다. 말로만 깨어지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눈물로 깨어지는 것이다.
주님!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고 깨어지면 우리는 사람을 얻을 수 있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얻는데 필요한 지혜, 권능, 능력, 사람들을 붙여 주시게 될 것이다.
성령님의 역사는 이때에 함께 임하실 것이다.
끝으로 다윗의 눈물의 기도, 하나님 앞에 깨어지는 모습의 기도를 소개한다.
(시51:17)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다윗의 승리의 삶, 베드로의 사람을 낚는 삶, 이것은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할 때 일어났다. 주님을 위한 가장 위대한 일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다’. 주님은 깨어진 사람에게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 하늘과 땅의 권세를 주시겠다고 하셨다.
(마28:18-20)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회개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이 크게 들어 쓰임을 받는 사람들이 되기를 축원한다.
아멘.
저녁성회2 - 곽성영 감독
더욱 더 힘쓰라
(살전 4:1)
할렐루야!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립니다.
암울했던 지난 역사에 감리교회가 민족의 역사를 선두하며 선교120주년을 맞이했습니다. 에벤에셀!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의 김리교회가 있기까지 헌신한 신앙선배들의 기도와 헌신을 감사하고 치하하며 ,추모합니다. 특별히 민족의 복음화를 위한 300만 신도운동과 대 각성 운동은 세상에 빛으로서의 큰 사명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교회와 세상에 희망의 팡파레를 울리며 21C의 정상을 향하여 힘찬 진군을 시작한 이때 지도자 된 우리들이 새롭게 거듭나서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더욱 힘쓰고, 구하고, 헌신할 수 있기를 소원합니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지속적으로 부흥하여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의 주체가 되는가? 그렇지 않으면 침체되어 주저앉는가? 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런 시점에 지도자인 우리들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권능 받고 사명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복음의 푸른 숲을 이루는 청지기가 되어야 허겠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신앙에 굳게 서서 타교회의 모범이 되었으며 나무랄 데 없는 신앙생활의 본을 보였습니다. 그럼에도 사도 바울은 이제까지의 신앙생활보다 더욱 더 진보하기를 힘쓰라고 권면을 했습니다.
지금것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한 감리교회도 이 자리에 안주하고자 한다면, 믿음의 역사는 제한되고 기독교와 세상에 더 이상 희망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 뜻에 헌신하여 새 시대를 열어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이를 위하여
첫째로 주님의 뜻을 바로 알기위해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그러므로 우리가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3)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6:6)” 했습니다. 하나님 뜻을 안다고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기에 나다니엘은 빌립으로부터 예수를 소개 받고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고 비웃었고 베드로는 3년이나 주님을 따르고도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가로 막았으며, 제자들은 최후의 만찬석에서 주님 뜻을 외면한 체 누가 크냐고 자리다툼으로 서로 심기가 상했고 엠마오의 두 제자는 주님께서 부활하시던 날 그 소식을 듣고서도 여전히 불신과 회의로 엠마오를 향하여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사55:8)” 말씀과 같이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안다는 것이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종 된 우리들은 바울의 권면대로 주님을 아는 지식에 자라야 하고 주님의 뜻을 아는 일에 더욱 더 힘써 주님의 기쁘신 뜻에 합당한 일을 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거룩한 삶을 위하여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살전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과 같이 구원받은 성도들을 향하신 주님의 관심은 거룩한 삶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당신의 자녀들도 거룩한 삶을 살 때 영광을 받으십니다(레11:45).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라고 하면서 세상의 불의와 죄악에 대하여 무감각하며 죄의 세력을 맞서지 못하고 회피하며, 도리어 그 세력에 물들어 범죄 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세속에 물들지 않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좆아 살아가길 원하시고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삶을 위하여 날로 불의와 악이 더하여 가는 세상에 시험 들지 않게 기도하며 육체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을 따라 거룩하게 살기 위하여 더욱 더 힘써야 하겠습니다.
셋째로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크리스찬이라면 누구든지 “저는 주님을 사랑합니다”라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보다 주님을 더욱 더 사랑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에 아-멘 하지 못하고 주저 할 때가 많습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절대로 주를 떠나지 않겠다던 베드로가 마지막 새벽 주님의 목전에서 세 번씩이나 부인하고 자신을 저주까지 한 것은 주님을 사랑했지만 자신의 목숨보다는 덜 사랑했기 때문이요, 가롯 유다가 은 삼십을 받고 원수들에게 주님을 팔아넘긴 것도 주님을 사랑함이 돈다발 보다도, 세속적 영달보다도 덜 사랑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오늘도 돈 트럭에 주님을 팔고 세속적 권력 앞에 교회를 팔 자가 이 자리에도 앉아 있을지 어찌 알겠습니까?
데마가 바울을 버린 것은 주님보다는 세상 락(濼)을 더 사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주님은 오늘도 나에게 묻고 계십니다.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21:15) 물으시며, 대답하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하셨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그리고 평신도 지도자 여러분! 주님의 양들을 사랑함이 주님을 사랑함이요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베푼 사랑이 주님 사랑이 아니겠습니까?
길 잃은 영혼 위하여 밤을 지새우는 눈물이 주님을 사랑함이요 상처와 찢기 움으로 고통 하는 영혼을 찾아 땀 흘림에 어찌 주님 기뻐하시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300만 500만 이민족과 세계를 구원코자 힘쓰고 애쓰는 우리 감리교회를 어찌 돌보지 않게습니까? 우리 모두 영혼사랑에 교회사랑에 더욱 더 힘을 쏟아 주님 사랑을 증거합시다.
넷째로 주님께 더 많이 드리도록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주님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주님께 드림에 있어 제한이 없으며 아무리 많이 드려도 낭비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값 비싼 옥합을 깨뜨리는 여인을 보고 칭찬을 하신 것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대한 봉헌은 최저선은 있지만 상한선에는 제한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물질을 드림에 십일조 이하로 내려가서는 안 되지만 십일조 이상은 얼마든지 드림이 아름다우며 시간을 드림에는 이레 중 하루를 드리지 않으면 안 되지만 그 이상 많은 시간을 주님의 일에 투자하는 것은 참으로 귀한 충성이 되는 것 입니다. 사랑하는 감리교 지도자 여러분! 주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우리는 주님 앞에 드리고 헌신함에 인색한 마음을 씻어내고 더욱 더 드리고 헌신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다섯째로 기도하는 일에 더욱 더 힘써야 합니다.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33:2-3)” 하나님은 기도하는 백성을 기뻐하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승리며,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고, 기도하는 민족은 살아납니다.. 주님은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고 말씁하셨습니다. 기도하면 응답 받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한번 마음껏 기도 합시다 부르짖읍시다. 우리가 기도하는 이곳을 성령의 진원지로 삼아 부흥을 다시 한번 일구어냅시다. 바울과 실라는 옥중에서 찬송하며 기도할 때 대 지진이 일어나고 옥문 열리며 빌립보와 마게도니아 온성에 부흥의 불길이 타오르고 유럽 선교의 문이 열렸습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부흥합니다. 새벽기도가 살아나면 교회가 살아나며, 기적이 일어납니다.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주님의 말씀대로 한 곳에 모여 전심을 다하여 부르짖을 때 하늘 문이 열리고 성령이 바람같이 불같이 역사하여 부흥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제 우리 감리교회는 교회와 세상에 희망의 시대를 선포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평신도 지도자 여러분! 우리 모두 이 밤에 부르짖는 기도의 용사되어 성령폭발 진원지로 제2 제3의 부흥시대를 열어 갈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아침기도회1 - 김광덕 목사
제목 : 물이 희망입니다.
본문 : 에스겔 47:1-12
제가 섬기는 군포지방 주소록 중 맨 먼저 나오는 교회가 102년 된 둔대교회입니다. 이 교회의 예배당은 저수지 옆 산골동네 산자락에 70년 전에 건축되었습니다. 물론 조그마한 시골 마을의 단일부락으로 사는 사람자체가 얼마 되지 않으니 미자립 교회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담임전도사님을 이렇게 부릅니다. “감독 회장님” 왜일까요? 먼 옛날 직전 감독회장이신 김진호 감독님이 섬기셨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열악한 환경에 젊음을 바쳐 헌신하는 젊은 전도사에게 “희망”을 선물하고픈 가슴 뜨거운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말씀입니다. 범죄한 이스라엘을 사람 막대기인 바벨론에 맡기신 것입니다. 인정사정없이 얻어맞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훈련입니다. 하루 이틀이 아닙니다. 1년 2년이 아닙니다. 10년 20년이 아닙니다. 70년이 넘는 포로생활입니다. 사랑하는 할아버지도, 나를 낳아 길러주신 아버지 세대도 피투성이가 되어 평생을 한과 슬픔 속에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난의 연속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입니다. 전후좌우를 보아도 절망입니다. 살아있으나 죽은 목숨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골짜기의 마른 뼈의 환상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른 뼈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역사의 끝자락에, 죄악과 절망의 끝자락에 하나님의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회개를 외치는 사랑의 사람을 준비하십니다. 절망과 죽음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작이라고 외치는 하나님의 사람을 세우시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입니까? 예언자입니다. 왕이 아니라 예언자입니다. 제사장이 아니라 예언자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감리교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에 “예언자 에스겔”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이 시대의 예언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 나오는 위대한 예언자 에스겔의 환상은 오늘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희망”입니다. “비전”입니다. 축복입니다. 해답은 “물”입니다. “물”이 희망입니다. 이 물은 예루살렘 성전 문지방에서 부터 흘러나옵니다.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세차게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막에 강을 내시고 황무한 광야를 젖과 꿀이 흐르는 동산으로 만드시는 하나님이 축복과 기적이 물로써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 물이 넘치고 넘쳐흘러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그렇습니다. 물의 역사입니다. 물의 희망입니다. 100% 하나님이 행하시고 주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1. 이 물은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대부분의 주석학자들은 물은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데 동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선물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나를 죄와 사망에서 건저주시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가정과 교회 그리고 민족과 세계의 희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대강 예수가 아니라 오직 예수입니다. 99.9% 예수가 아니라 100%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돌 항아리에 가득 채운 맹물이 변하여 맛 좋은 포도주가 된 것 처럼 예수 충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예수에 미쳐야 합니다. 100% 예수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 예수, 예수입니다.
2. 이 물은 성령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7:37-39 말씀에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르쳐 말씀하신 것이라.” 오직 예수는 오직 성령입니다. 100% 예수는 100% 성령입니다. 부활하신 우리 예수님의 마지막 명령이십니다. 군사용어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감리교회는 성령으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감리교회가 되려면 성령 충만해야 합니다.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1738년 5월 24일 밤 8시 45분의 체험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의 불벼락이 떨어져야 합니다.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의 힘과 능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1천척을 척량하니 발목입니다. 또 1천척을 측량하니 무릎입니다. 또 1천척을 척량하니 허리입니다. 또 1천척을 척량하니 건너지 못할 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감리교단 지도자 여러분!
300만 전도운동은 우리 감리교단 뿐 아니라 한국교회 생존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세계교회의 문제입니다. 세계는 한국 교회의 어깨에 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교회의 빈자리를 채워야 할까요?
저는 지난 4월 첫 주 싱가포르 FCBC의 로렌스 콩 목사가 인도하는 셀 G-12 컨퍼런스를 보고 왔습니다. 아시아의 지도자 3,000명이 실내체육관에 모였습니다. 부르짖는 기도 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는 장관을 체험하였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전세기를 동원하여 G-12 전도로 유명한 콜롬비아 보고타의 MCI의 세사르 카스텔 라노스 목사를 보러갑니다. 그러나 원조는 한국에 있습니다. 그들의 고백입니다. 15,000 구역에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여의도 순복음교회입니다. 구역조직 원리와 성령의 영성입니다.
100년 전 남미의 개신교인이 5만 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산불처럼 일어나 셀 수 없는 무리로 부흥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필리핀에 강력한 부흥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마닐라의 극장 18개가 변하여 교회가 되었습니다. 6만개의 개신교회가 2010년까지 10만 교회가 된다고 합니다. 1,500개 감리교회를 제외하고 교회마다 젊은이로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 교회의 현실은 어떠합니까? 전도가 되어 지지 않고 있습니다. 고구마 전도, 이슬비 전도, 진돗개 전도, 꿀벌 전도 ……. 수 없는 전도법이 있지만 최고의 전도는 “성령 충만”입니다. 능력전도인 것입니다. 전도에는 지름길이 있을 수 없습니다. 사도행전 1:14로 돌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전도와 선교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프로그램이 아닙니다. 컴퓨터나 플래카드, 프로젝트나 성전건축에서 나오지 아니합니다. 마가다락방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무릎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150만 감리교인 모두가 “생명”을 낳기 위하여 하루에 한 시간 이상 기도하기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전교인 새벽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합니다. 이제 “복 타령” 기도를 접고 자기 교회 성장만을 위한 자본주의적 사고의 기도를 절제하고 열방과 세계를 품에 안고 생명을 주시라고 울면서 기도할 때 1907년의 부흥을 주실 것입니다. 통일의 기쁨도 주실 것입니다. 3만 불 경제부흥도 주실 것입니다. 물론 가정과 직장, 사업과 교회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21세기 세계선교 주자로 쓰임 받게 될 것입니다.
3. 물은 회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물은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3:21 말씀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기독교 복음의 시작은 “회개하라”입니다. 믿으면 된다는 싸구려 복음이 아닙니다. 눈물샘이 터지고 콧물이 흐르고 가슴을 치는 “회개”가 시작인 것입니다. 초대교회 부흥도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의 대부흥도 1960년대의 용문산, 삼각산을 중심으로 시작한 부흥운동도 시작은 회개운동인 것입니다. ‘형제여, 우리가 어찌할꼬’의 역사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감리교단 지도자 여러분!
회개에는 두 종류가 있습니다. 첫째는 율법 회개이고 둘째는 성령 회개입니다.
율법회개를 현대어로 고치면 “시스템 회개”입니다. 복음을 준비하기 위해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점잖은 사람도 예비군복만 입혀 놓으면 형편없는 사람이 되는 이치입니다. 자유중국이나 우리나라에 영수증 제도가 거의 같은 시기에 도입되었습니다. 자유 중국은 성공하고 우리나라는 실패하였습니다. 왜일까요?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자유중국은 영수증에 복권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에 성공한 것입니다. 싱가포르에 가면 껌 씹는 사람이 없습니다. 공중도덕법을 어기면 $100, $500, $1000 벌금입니다. 잘못하면 태장을 맞아 기어 나와야 합니다. 싱가포르 사람이 천사가 아니라 법이 천사되게 하는 것입니다. 교황의 장례식을 보면서 지난해 8.27 광주집회를 보면서 감리교회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4년 전임감독 회장제도가 기회입니다. 한국교회에 모델이 되는 기회입니다. 2006년 7월의 세계 감리교대회는 세계를 살리는 기회의 문입니다.
3가지 율법회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두렵고 조심스런 마음으로 드립니다.
1)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추모의 행렬이 10Km를 넘었다고 합니다. 로마 인구가 260만인데 400만의 추모객이 모였습니다. 11억 가톨릭의 수장은 죽어서도 전도합니다. 죽은 교황도 전도하는데 살아있는 감독, 감리사, 목사가 하나 되어 서로 높여줄 때 왜 전도가 아니되겠습니까? 감독회장, 감독, 감리사들이 죽지 않고 살아서 존경받고 일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이 세워주신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협력하는 운동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들은 성육신 하신 예수님처럼 물이 되어 낮은 데로 흐르고 생명을 살리는 희생 제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단을 향한 불만, 불평, 불신, 부조화를 청산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2) 감리교단의 모든 선거는 제기 뽑기로 바뀌어야 합니다. 장로교 합동측은 총회에서 7시간 동안 평신도 총대들을 설득하여 통과시켰습니다. 너무나 좋은 열매 때문에 2005년부터 상비부의 모든 임원선거는 제비뽑기로 한다 합니다. 학연, 지연, 써클을 무슨 수로 초월할 수가 있겠습니까? 정치판과 기생집에는 윤리, 도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윤리, 도덕이 없는데 어찌 성령께서 역사하시겠습니까? 천국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요? 감리교회를 살려야 합니다. 한국교회를 살려야 합니다. 루터로는 아니 됩니다. 칼빈으로도 아니 됩니다. 웨슬리 후예만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선거는 제비뽑기로 전환해야 합니다. 선거가 축제가 될 것입니다. 우리 감리교단이 한국 교회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3) 목회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돈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좋아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직업이라면 성직입니다. 예수님이 하실 일을 대신 하는 것입니다. 울면서, 굶으면서, 잠 안자면서 하는 직업이 어디 있습니까? 두 내외가 평생 살다가 자식에게 유산 물려주지 않고 살던 집은 교회소유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적든 많든 남은 재산은 교단에 바치는 것입니다. 감리교 신앙의 원조인 웨슬리처럼 살다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복음 전하다가 빈 무덤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너무나 쉬운 일입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식은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천주교 신부를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 좋은 결혼생활도 자식, 손자도 보았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교인은 목사 닮기 마련입니다. 불교의 법정 스님보다 감리교 목사의 삶이 깨끗해야 합니다. 천주교 신부보다 나아야 합니다. 한국 감리교단 목사들에게 이 운동이 일어난다면 감리교단의 모든 문제는 해결됩니다. 민족에게 감동을 줄 것입니다. 전도는 자연히 될 것입니다. 감동거리가 있는 감리교회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우리 감리교회가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2006년 세계 감리교 대회에 우리의 삶을 보여줄 때 세계 교회가 일어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도 미국 국회의사당 라운지의 8폭 그림 중 4폭 그림은 초기 감리교도들을 그린 그림입니다. 초기 미국의 감리교도 평균 수명이 32세였습니다. 당시 성공회, 루터교, 장로교 지도자들은 “저 감리교도들을 보아라. 저들의 가는 곳에 성령의 불길이 솟지 않는가?”라고 감탄하였습니다. 그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라면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심었기에 지금도 미국 정치, 경제 모든 분야에 감리교인들이 제일 많습니다.
사랑하는 감리교 지도자 여러분.
이 아침 우리 모두 결심합시다. 율법 회개, 시스템 개혁을 위한 회개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1738년 5월 24일 이전의 메도디스트들처럼 율법 회개로 잃어버린 이름을 회복해야 합니다.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 가정과 그리고 자녀들을 축복하실 것입니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기독교라면 종교입니다.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생명입니다. 지금 하나님은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오직 예수로! 오직 성령으로! 오직 회개로!
내 사랑 감리교회여! 한국 교회여! 물, 물, 물로 충만하게 하소서. 이 물이 땅 끝까지 온 세계로 흘러넘칠 때 사랑하는 우리 주님이 다시 오실 것입니다.
물이 희망입니다.
아침기도회2 - 김학중 목사
하나님은 바로 우리 감리교회를 주목하십니다
(민 13:30- 14:10)
하나님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을 주목하십니다.
긍정적인 공동체를 주목하십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는 점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성공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똑같은 일을 놓고도 어떤 사람은 ‘여덟가지 밖에 안남았군’ 하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여덟가지나 남았네’ 라고 생각합니다.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기업 총수나 회사 중역은 대다수가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지니고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고방식으로는 산적해 있는 일들을 한정된 시간 안에 처리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진취적인 사고방식과도 통합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녀야만 미래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 갈 수 있습니다.
훌륭한 상사는 예전에 한 번 실수를 했던 직원일지라도
일을 맡길 때는 ‘지난번에 실패 했지만 이번 일은 잘해낼거야’라고 생각합니다.
지난번에도 실패했는데 이번에도 실패하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상사라면 아랫사람을 부릴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나서서 처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그런 사람은 하급관리자 이상으로 승진하기 힘듭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지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지금까지 보아왔던 세상보다 훨씬 넓은 세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 보면 두 명의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입니다. 이 두 사람의 특별한 긍정적 사고방식과 안목을 통해서 우리 감리교회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1. 여호수아와 갈렙은 비젼을 보았습니다.
꿈이 있어야 합니다. 특별한 꿈을 가진 사람은 특별한 일을 합니다.
꿈을 보는 사람은 남과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우리 감리교회도 큰 비젼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교단들과는 차별성이 있는 큰 꿈을 꾸어야합니다.
단지 세상 교회들과 비교 우위를 점하려는 작은 소망에서 벗어나 세상과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경쟁대상은 기타 다른 교단의 교회가 아니라 바로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을 이기는 커다란 비젼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2.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동행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였을 때, 그의 말씀을 청종하였을 때, 우리들에게는 사람의 인식의 한계를 뛰어넘는 성공과 승리가 있게 됩니다.
내 삶 속에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시고 하나님의 주목받는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무리 위대한 교회라도 하나님이 동행하지 않으시는 교회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하나님이 영원토록 동행하시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이 동행하는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성장합니다.
우리 감리교회에 하나님의 동행하시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여호수아와 갈렙은 미래를 보았습니다.
편안한 오늘보다 고생스러운 내일을 택하는 이가 미래지향적인 사람입니다.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은 자기 자신에 대해 헌신적입니다.
절망과 실의에 빠져 있을 때는 반드시 우리에게 미래를 책임져 주시는 하나님만을 깊이 의지하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미래가 없는 교회는 망하는 교회입니다.
우리 감리교회는 미래를 내다보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미래에 가장 주목받고 가장 본이 되는 교회가 되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미래는 밝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지도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긍정적 사고방식으로 감리교회의 미래를 밝혀나가시기를 기도합니다.
✻ 생각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기
1. 우리 감리교회에는 꿈이 있나요. 하나님이 우리 감리교회에게 주신 꿈은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2. 우리 감리교회는 모든 목회 사역 속에 하나님과 동행하고 있나요. 동행하고 있다는 증거를 묵상해보고 기도합시다.
3. 우리 감리교회의 미래에는 하나님이 계셔야 안정적입니다. 우리 감리교회의 10년, 20년 후를 생각해보시고 그때의 승리의 비젼을 바라보며 함께 기도합시다.
교회성장과 갱신 - 김정호 목사
부흥(Revival) 갱신(Renewal) 재활성(Revitalization)
– 웨슬레의 신앙 운동적 교회로의 회복
김정호 목사(아틀란타 한인교회)
*본 내용은 자료집을 위해 급하게 만들어진 발표 초안입니다.
부흥 = 말씀 선포와 기도를 통해 오는 하나님의 선물
갱신 = 잃었던 것을 회복하여 제자리(Shalom, Salvation, Wholeness)를 찾음
재활성 = 영적 지도자들이 교회의 Shalom을 위해 성경적 원리에 근거하여 건강한 교회 건강한 성도 건강한 가정을 만드는 과정과 결과
본 발제의 의도:
현재 부흥하는 교회들에 대한 인포메이션 제공
감리교회 부흥을 위한 제안
전제:
교회부흥/갱신/재활성 문화(culture, DNA)가 있고 원칙(Principle)이 있다.
각 교회가 처해있는 지역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부흥’이란 각 교회에 주어진 가능성(potential)에서 하나님이 세우신 목적을 위해 최고최선의 영향력(power)을 발휘하는 것을 의미한다.
* 주목해야 할 사실: 지난 10여년간 미국에서 부흥하는 교회로 주목 받는 교회들 가운데 미연합감리교회(UMC)들이 타 교단에 비해 앞서고 있다.(한가지 예로 2005년도 Beeson Institute for Advanced Church Leadership에 발표된 강사 12인 가운데 Rick Warren, Billy Hybels, Eddie Long과 함께 3명이 UMC 목사들이다. Michael Slaughter of Ginghamsburg OH(www.ginghamsburg.org), Kirbyjon Caldwell of Windsor Village, Houston, TX(www.kingdombuilders.com), and Adam Hamilton of Church of the Resurrection, Kansas City, KS(www.cor.org).
* 잘못된 전제: 미연합감리교회가 부흥하지 않는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이다. 지난 20여년간 미국 UMC는 지역에 따라 심한 부흥과 낙후의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동남부, 중남부 교회들은 계속적인 양적인 성장을 하고 있으며 동북부, 서부, 중북부등 지역의 교회들은 극감하고 있다. 이것이 우연한 것이 아니라 각 지역연회들의 정책적인 문제임이 지적되고 있다.(참조. “The Ice Cube is Melting – What Is Really at Risk in United Methodism?” by Lyle E. Schaller) 예를 들어 본 발표자가 속한 북죠지아연회(North Georgia Conference)는 매년 평균 7,000여명의 교인증가가 있으며 5천에서 만명이 넘는 교회들이 30여개가 되고 있다. 참고: 교인숫자는 교회마다 차이가 있지만 한주간 모든 프로그램 참여자가 아니라 거의 주일예배 성인출석(평균 75%)을 의미한다.
*생각을 돕는 것들
‘질적향상 추구’(Quest for Quality) 이론의 전제 = People + Process = Product
Natural Church Development 기본 전제
3M의 회복 – Member(교인) 와 Money(헌금)이 줄 때 무엇이 우선적으로 회복 되어야 하는가?
미연합감리교회 가운데 부흥하는 대표적인 미국교회들
Christ UMC, Fort Lauderdale, FL(www.christchurchum.org)
“Waking To God’s Dream”(하나님의 꿈으로 다시 깨어나자) – 저자 Dick Wills는 현재 테네시연회 감독 – 교회 앞으로 고속도로가 들어서면서 연회에서 교회 문닫을 준비시키러 딕 윌스목사를 파송함. 그러나 그의 목회지도력을 통해 기적과 같은 부흥모델 교회가 됨. 중점사역비젼: 1. “예수제자 만드는“ 교회존재목적에 대한 분명한 비젼 2. 소그룹을 통한 전 교인 사역화 3. 세상의 고통을 치유하는 선교사역
Frazer Memorial UMC, Montgomery, AL(www.frazerumc.org)
공인된 평신도목회자 900명/ Lay Pastor훈련 전문교회/ 평신도사역의 권위와 전문성 인정과 활성화
Ginghamsburg UMC, Tipp City, OH(www.ginghamsburg.org)
현대적, 열정적, 현실적용 메시지와 예배/담임목사가 한국교회에서 감동 받은 후 부흥
Mount Pisgah UMC, Alpharetta, GA(www.mountpisgah.org)
잃은 영혼에 대한 영혼구원 열정/ 선교(소수민족 포함) 열정/ ‘상처받은 이들’ 치유사역/ 60% 새교인들이 예수영접 새신자(profession of faith)/ 3,000명 예배당 건축(멀티 캠퍼스 교회)과 동시 부흥의 주역 Warren Latham(12년만에 문닫으려던 교회를 5,000명 주일출석교회) 평신도사역훈련 전념 목적으로 조기은퇴/ 37세 후임목사 3년되면서 5,000명에서 7,000명 주일예배 출석으로 부흥/ 전문적 어린 스포츠 프로그램과 유치원에서 고등학교까지 운영
Church of the Resurrection UMC, Leawood, KS(www.cor.org)
왜 예수를 믿어야 하나? 왜 교회가 필요한가? 왜 CR UMC가 필요한가? 교회 존재목적이 분명/ 이 목적을 교회내부와 지역사회에 정확하게 전달 “to build a Christian community where non-religious and nominally-religious people are becoming deeply committed Christians.”
Windsor Village UMC, Houston, TX(www.kingdombuilder.com)
UMC 가운데 가장 큰 교회(흑인교회)/ 120개의 non-profit org.으로 사역
/ 총체적 코뮤니티 발전을 위한 쎈타로서의 교회/ 죠지 부쉬 대통령이 자기 가족의 담임목사로 여기는 목사
타 교단의 미국교회들
North Point Community Church(Southern Baptist), Alpharetta, GA(Andy Stanley, www.northpoint.org)
미국내에서 현재 가장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는 교회 가운데 하나. 특별히 청년과 청장년들이 주를 이룬다. 1995년도에 개척하여 현재 1,5000-20,000의 성인출석/ 화요일 777 Ministries는 저녁시간에 수천명의 대학생,청년들이 2시간이 넘는 예배와 성경공부에 집중한다.
Redeemer Church in Manhattan NY(PCA) (www.redeemer2.com)
뉴욕 맨하탄 일류엘리트층 중심으로 주일 출석 4,000명 가운데 2,000여명이 아시안 어메리칸인데 대다수는 한인2세들/ “탕자의 비유”에서 큰아들 같은 교회가 아니라 탕자의 심정을 이해하는 목회철학/ 예배의 아름다움/ 복음을 지성인들에게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설교/ contextual sensitivity(목회현장을 이해하는 예민함)
Perimeter Church(PCA), Duluth, GA(www.perimeter.org)
head, heart, hand(Unite! 운동의 중심)/ 복음증거의 확대를 위한 교회개척 전문교회
III. 아틀란타 한인교회(www.kcaumc.org) – 본 발표자가 목회하고 있는 아틀란타 한인교회는 2004년 다목적쎈타 건축(총 비용 700만불)을 끝내고 2006년 천만불 예상으로 예배당과 교육쎈타를 건축준비중에 있다. 1971년 개척 1997년 성인 100-120명 출석(예산 20만불)에서 2003년 300명 출석 결산 60만불 / 2004년 건축 이후 성장 2005년 현재 성인출석 900-1,000명 연말 결산을 200만불 예상.
2005년도 결산으로 성인 1,000 – 1,200 출석 어린이 포함 1,500 -1,700 + 예상
교회 모토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열린교회 나눔과 섬김으로 연결된 교회”(Christ Centered People Oriented)
교회목적 – “예수의 제자 만드는 교회”(모든 UMC교회 존재목적)
IV. 부흥하는 미국교회들에서 발견하는 공통점(Paul Wilkes, “Excellent Proestant Congregations”를 중심으로)
Approach(목회 문화)
A vibrancy, an excitement about living a Christian life(신앙의 역동적 실천을 통한 기쁨이 있다)
Entrepreneurial(창의적 개척정신과 창업가적 의지가 있다)
Draw not geographically or even denominationally, but philosophically(교인들이 지역주변이나 교단배경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목회 철학을 보고 온다)
Reach beyond their comfort zone(자기편리와 편안한 수준을 넘어서는 전도)
Regularly evaluate themselves(체계적이고 정기적인 목회 평가)
Have a clear, yet changing, sense of mission(정확하고 그리고 상황에 따라 지혜롭게 변화할 줄 아는 비죤과 사역이해가 있다)
Willingness to break up and reassemble(안되는 목회이면 해산하고 다시 모일 줄 아는 의지가 있다)
Unafraid of being vulnerable and of making mistakes(새로운 시도와 도전을 위해 약점을 인정할 줄 알고 실수를 용납할 줄 안다)
B. The Work(사역)
Laity are integral in leadership(평신도들이 중요한 지도력을 발휘한다)
Preach and practice forgiveness and acceptance(용서와 용납의 복음이 있는 설교와 가치관의 목회)
Believe in evangelizing without “evangelizing”(상투적인 전도가 아니라 효과적인 전도를 한다)
C. Community(교회 자화상)
See themselves as a unique community(자신들의 교회를 특별한 독특한 목적을 가지고 본다)
In transforming the culture, hold government, agencies, and institutions accountable(세상을 복음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정부, 일반사회단체와 기관들이 기독교적 가치를 따르도록 영향력을 행사한다- 사회에 영향력을 발휘한다)
Believe in partnerships with other churches, agencies, interest groups, and government(타교회, 단체, 정부등과 연대합력하여 일할 줄 안다)
D. Spirituality(영성개발)
Offer an ascent to God, a relationship(하나님과의 만남 관계형성 기회 제공)
Traditional without being traditionalist(신앙전통을 존중하지만 전통주의적이지 않다)
Bible at their core(성경중심적이다)
Are innovative about different spiritual approaches(열려있는 신앙체험 은혜의 통로를 제공한다)
Tailor liturgies and programs to different constituencies(다양한 예배와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Have powerful, life-situation preaching(삶의 변화에 적용되는 힘있는 설교가 있다)
Structure(조직행정 구조)
Pastors have been in place for years(담임목사가 장기목회를 한다)
Training, training, training(효과적인 사역을 위한 훈련이 있다)
Bring new members to full membership and participation((‘목적이 있는 교회’씨스템과 같이 의도적인 신앙훈련의 과정이 있다)
Call leaders, don’t fill slots(지도자 자리를 메꾸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을 세운다)
Break out of their walls and into the world(교회 담을 열어 세상으로 들어간다)
Utilize media well(코뮤니케이션 도구들을 잘 사용한다)
부흥하는 한인교회들의 공통점
목회자의 권위와 지도력이 외부에 의해 좌지우지 당하지 않는다 – 회중운영제도의 교회들이 대부분 부흥한다(주로 장로교회와 침례교회)
목회자들이 장기목회한다
목회자 tenure가 교단에서 제도적으로 보장되기 보다 개체교회 목회자 지도력에 의해서 보장되는 교단의 교회들이 부흥한다.
제도적으로는 유연성(flexible)있는 구조와 신학적으로는 복음적인 교회들이 부흥한다.
근래에 부흥하는 교회들은 모두 선교적 열정과 건강한 사회참여가 있는 교회들이다. 이기적이고 폐쇄적인 교회들은 더 이상 부흥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지난 수년간 성장하는 교회들은 내적경건과 외적경건의 건강한 균형이 있는 교회들이다.
이민초기부터 자리잡은 대교회들이 아닌 지난 10년내 부흥하는 교회들은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Willow Creek교회와 같은 부흥성장의 모델을 제대로 공부한 목회자들이 개척한 교회들이다
네임 브랜드가 있는 교회들이 부흥하고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교회들과 연관된 교회들이 부흥한다. 주로 동부와 서부에서 일어나고 있다.
교단이 안고 있는 부정적인 문제가 없는 교회들이다.
기본적으로 NCD나 Purpose Driven Church를 포함한 교회성장문화를 적극적,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소화하는 교회들이다.
요즘 부흥하는 한인교회들은 2-3년안에 천명에서 2천명으로 급성장한다. 이민초기의 대교회들은 낙후또는 침체 아니면 현상유지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요즘 부흥하는 교회들은 인구성장 지역에 신속하게 들어가서 교회를 개척하는 안목과 신속한 자리확보와 나아가서 창조적으로 목회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
결론:
18세기 영국과 미국 감리교회의 부흥 역사와 20세기 감리교회(미국 중심)의 영향력 약화의 현실을 비교해 볼 때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성서적 성결의 목적으로 시작된 신앙운동이 거대한 자기 개혁능력을 상실한 제도화된 교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부흥하는 교회들의 바탕에는 요한 웨슬레의 신앙운동의 요소가 자리를 잡고 있다. 이 자랑스런 전통을 회복해야만 부흥이 있을 것이다.
감의 1 - 역사 속에서 희망 찾기 - 이덕주 교수
역사 속에서 희망 찾기
초기 부흥운동과 한국 교회의 영적 각성
이덕주(감신대 교수/ 한국교회사)
1. 머릿글: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 교회, 이대로는 안 된다!”
“한국 교회, 뭔가 근본적으로 바뀌지 않으면 망한다!”
“한국 교회, 종교개혁 같은 대 변혁이 있지 않고는 가망이 없다!”
이제는 너무 자주 듣는 말이 되어서 그런지 다급한 외침인데도 감각이 별로 없다. 바로 그 점이 문제다. 최근 들어 교회나 목회자와 관련하여 이루어지고 있는 사법 당국의 처사나 이에 대한 일반 언론의 보도는 한편으로는 감정적이고 의도적인 반(反) 기독교 정서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지만, 다른 한 편에서 기독교의 위기 상황에 대한 강한 경고의 성격도 갖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경고에 대해 교계의 반응은 ‘교권 침해’, ‘편파적 보도’ 운운하며 사법 당국과 언론 기관을 향해 공세를 취하는 입장과, 이번 기회를 회개와 자성의 기회로 삼아 실추된 교회의 권위를 회복할 수 있는 영적 갱신운동을 일으켜야 한다는 입장까지 다양하게 나오고 있다.
강의 2 - 한국교회의 갱신 - 김흥규 목사
어거스틴, 웨슬리, 그리고 한국교회의 갱신
김흥규(내리 교회 담임 목사)
배도둑질에 대한 어거스틴의 回憶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 354-429)은 『고백록』에서 배도둑질 한 것에 대해서 회고한 적이 있습니다. 16세 때 불량한 친구들과 함께 배를 몰래 땄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배서리 자체가 아니라 왜 죄를 짓게 되었는가 하는 죄의 근원적인 동기를 분석하는 데 있습니다. 어거스틴은 배가 탐이 나서 도둑질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보다 더 좋은 배가 얼마든지 자기에게 있었을 뿐 아니라 훔친 배를 다 먹지 않고 겨우 몇 개만 맛본 후 돼지 떼에 던지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어거스틴이 배를 훔치게 된 것은 배 자체에 대한 탐욕 때문이 아니라 도둑질 그 자체, 죄 그 자체를 더 즐거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 속에 깊이 잠복해 있는 죄의 속성, 즉 인간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떠나 돌아서서(abs te), 하나님 밖에서(extra te) 행복을 찾으려는 인간의 원초적 속성 때문에 죄를 지었다는 것이지요.
강의 3 - 영적도약과 미래 - 은준관 목사
한국감리교회의 영적 도약과 그 미래
은준관 목사(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Ⅰ. 1978년의 감격과 그 이후 – 역사적 증언
1. 1974년의 감리교회 – 분열과 아픔
2. 1978년의 재결합 – 감격과 환희
3. 한국감리교회가 받은 축복 – 헤어져서는 못사는 신앙의 일
4. 1978년 이후의 한국 감리교회 – 성장의 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