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제일 문화(미디어) 사역(21)

작성자
민경덕
작성일
2021-05-14 14:23
조회
200
● 묵상의 말씀(106)

"옛날을 기억하라...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말하리로다."(신 32:7)

성경 역본 중에 어느 것이 더 훌륭하냐로 논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사람이 K.J.V.(King James Version)는 단순하게 아름다운 영어로 잘 된 역본이라고 했습니다. 두번째 사람은 A.S.V.(Americn Standard V~)가 원본에 가깝다 했습니다. 세번째 사람은 현대적 어휘를 많이 사용한 '모패트'(Moffatt)의 것이 가장 좋다고 했습니다.

마지막 사람은 "나는 우리 어머니의 번역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일생 동안 하루도 빠짐 없이 내게 성경을 읽어주시고, 그 뜻을 알기 쉽게 설명해 주셨다."라고 했습니다.

지나온 역사에 복음의 옷을 입혔습니다. 기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공주제일교회 윤애근목사드림


<지나온 역사, 오늘의 복음 4>
https://blog.naver.com/aigeunyun1216/222349455286

* 아름다운 글 하나 소개합니다!
감동입니다.

*놀라운 선교 비사*

지금부터 100년 전 한 젊은 선교사 부부(공주선교부 책임자-프랭크 윌리엄스)가 미국 선교부에서 한국으로 파송을 받았습니다.

이 젊은 선교사 부부는 충남 공주를 선교 기반으로 하여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공주에서 첫 아들을 낳았는데 첫 아들의 이름을 한국의 광복을 기원하면서 한국식 이름을 우광복(조지 윌리엄)이라고 지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밑으로 여동생 로저와 올리브가 있었으나, 올리브는 어린 나이에 풍토병에 걸려서 죽어 영명학교 뒷동산 선교사 묘역에 묻혔습니다.

우광복의 아버지 프랭크 윌리엄 선교사는 1906년 공주에 영명학교를 세우고 교장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영명학교가 독립 운동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유소년기를 공주에서 보낸 우광복은 미국 콜로라도주에 있는 덴버로 가서 고등학교와 의과대학을 공부하여 의사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일제강점기를 마치고 나서 미군에 의한 신탁통치를 하게 됩니다. 이때 하지장군이 군정관으로 있게 되는데, 미 군정청은 영어와 한국말을 능통하게 구사할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마침 우광복이 그 역할을 맡아 하지 장군의 통역관으로서 한국 정부 수립에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하지가 우광복에게 “자네가 한국 실정을 잘 아니 앞으로 한국을 이끌어 갈 인재 50명을 추천해 달라"라고 합니다.

우광복은 어머니와 상의한 후 어머니가 추천해 주는 50명을 하지 장군에게 소개했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그중 2명을 제외한 48명이 다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 정부가 수립될 때 요소요소에 기독교인들이 들어가서 나라를 세우는데 헌신하게 됩니다.

특별히 문교부 장관에 기독교인이 임명되어 미신 타파를 시작했습니다. 국방부장관은 군대 안에 군목제도의 토대를 마련하여 한국군의 정신력 강화에 크게 이바지하였습니다. 그리고 제헌 국회 국회의원 거의 모두 기독교인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우리나라 제헌국회 속기록 첫 장을 열면 기도로 국회를 개원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948년 5월 30일, 이승만은 이윤영 목사에게 기도로 국회를 열 것을 주문합니다.

"대한민국 독립 민주국 제1차 회의를 여기서 열게 된 것을 우리가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먼저 우리가 다 성심으로 일어서서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릴 터인데 이윤영 의원 나오셔서 하나님에게 기도를 올려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기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이시여, 이 민족을 돌아보시고 이 땅에 축복하셔서 감사에 넘치는 오늘이 있게 하심을 주님께 저희들은 성심으로 감사하나이다.

오랜 시일 동안 이 민족의 고통과 호소를 들으시사 정의의 칼을 빼서 일제의 폭력을 굽히시사 하나님은 이제 세계만방의 양심을 움직이시고, 또한 우리 민족의 염원을 들으심으로 이 기쁜 역사적 환희의 날을 이 시간에 우리에게 오게 하심은 하나님의 섭리가 세계만방에 성시하신 것으로 저희들은 믿나이다.

하나님이시여, 이로부터 남북이 둘로 갈리어진 이 민족의 어려운 고통과 수치를 신원(伸寃)하여 주시고 우리 민족 우리 동포가 손을 같이 잡고 웃으며 노래 부르는 날이 우리 앞에 속히 오기를 기도하나이다."

이때 기독교인이 전 국민의 5프로도 안 되는 때였습니다. 그런데 윌리엄 사모님이 추천해 준 50명의 기독교인들이 각 분야에 들어가서 영향을 미친 결과 10년 만에 500만이 되고, 20년 만에 1000만 성도가 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이 기적이 어떻게 가능했습니까?

미 군정 시절 우광복이 추천한 50명으로부터 시작했습니다. 우광복에게 누가 50명을 추천했습니까? 바로 우광복의 어머니입니다. 그는 딸을 잃어버린 아픔 속에서도 한국을 위해 헌신했고, 아들 우광복은 평신도 의료선교사 역할을 하면서 선교와 한국 역사 발전에 공헌하였습니다.

우광복은 1994년 87세 일기로 소천 할 때 "나를 화장해서 나는 미국 시민이니 나의 시신 한 줌은 미국 본토에 뿌려주고, 한 줌은 내가 해군이었던 것을 기억하여 태평양 바다에 뿌려주고, 마지막 한 줌은 11살에 죽은 내 동생 올리브가 묻혀있는 한국 공주 영명동산 내 동생 곁에 나를 묻어 달라"라고 유언했습니다.

아마도 한평생 동안 한국에서 풍토병으로 죽은 동생이 가슴에 살아있었나 봅니다. 실제로 우광복 소천 후 교포에 의해 그의 시신 일부가 공주로 돌아와 묻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우광복의 묘가 공주 선교사 묘역 동생 옆에 나란히 있습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한 외국인 선교사 우광복! 이러한 헌신과 희생을 바탕으로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내 나라와 내 민족이 깨어서 다시 한번 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민족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출처] 우광복 선교사|작성자 공주기독교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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