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교회에게 보내는 호소문!
2006-06-28 05:08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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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님께서는 앞을 볼 수 없기 때문에 인터넷을 하기엔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본 글은 목사님께서 직접 작성하신 글입니다.
꼭 읽어봐주시고, 각 교회에 광고해 주시고 장애우들에 대한 관심과 기도 부탁드립니다.
자유게시판에 글이 올라가지 않아 아쉽군요...
일부러 회원가입까지 했는데 말이죠...
원본 파일이 필요하시면 메일로 연락해 주세요~
98selly@hanmail.net
각 교회에게 고하는 호소문
교회들이여 잠잠하지 마십시오. 지금 우리의 시각장애 형제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하여 기도해 주십시오.
지난 5월 25일 헌법재판소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만 안마업을 허용하는 것은 위헌이다\"라고 판결함으로서 사실상 20만 시각장애인들과 그 부양가족들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판결을 내렸습니다. 건강하고 눈뜬 사람들이 무슨 일을 못 해서 단 하나 밖에 없는 장애인들의 직업을 빼앗는단 말입니까?
100만에 달하는 사람들이 그동안 무면허 안마사 행위를 해 왔습니다.
전국의 무허가 안마시술소가 10만 곳이나 된답니다.
그동안 복지부에서 단속만 했어도 독버섯이 자랄 수 있었겠습니까?
허가를 가진 안마시술소도 돈 많고 권력의 힘을 가진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을 앞세우고 큰 물주가 되어 퇴패하는 일을 해 온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그 많은 사람들이 직업은 자유라고 하며 헌법 소원을 내게 되었고 우리나라 헌법재판소는 강자의 손을 들어 줌으로서 약자를 생매장시키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법 정신을 떠나서도 인도적인 입장에서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을 국가가 저질렀습니다.
이 보도는 전 세계에 알려져 우리 국가를 참 수치스럽게 만들었습니다.
잔인한 야만행위!
국가도 국민도 우리 모두 창피한 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예언자적 사명을 다 해야 합니다.
이 억울한 처지의 형제들을 위하여 잠잠하지 마시고 정의를 세우는 일에 앞장 서 주십시오. 우리 장애우들은 교회의 따뜻한 사랑과 보호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는 명암을 전혀 분별 못 하는 1급 시각장애인으로서 현재 한국기독교장로회 사랑의교회 전북동노회에서 시무하는 목사입니다
196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의 경제적인 삶은 얼마나 힘들었습니까?
상대적으로 장애인들의 삶은 죽지 못 해서 사는 비참한 처지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하시겠지요. 그 때 나는 안마를 하며 고학을 했습니다.
안마사는 전국적으로 약 100명도 못 되었지만 워낙 가난했던 시절이어서 안마고객은 거의 없고 죽지 못해서 사는 정도이어서 시각장애여성들은 부양가족을 위하여 뛰는 남성들의 피맺힌 경쟁 때문에 밀려 전혀 안마업을 해 보려는 엄두도 내지 못 했습니다.
그 때 제가 목숨을 걸고 일어서 여성들에게도 안마를 직업으로 주는 일에 성공 하였습니다.
사실 저의 형제는 11남매나 되는데 그중 남 2인 여 2인 4남매가 눈을 보지 못합니다.
물론 유전은 아닙니다.
아버지는 한 때 중풍으로 쓸어져 거동을 못 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의료의 혜택은 전혀 불가능하고 친척 마을 사람들은 예수 믿기 때문에 그렇다고 조롱했을 때, 하나님 밖에 그 절망적인 슬픔을 누가 알았겠습니까!
우리는 눈물로 찬송을 부르고 기도하시던 어머니의 변함없는 깊은 신앙을 통하여 목사님의 지도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는 생명보다 귀하다는 진리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치료되고 우리는 장애를 극복하는 놀라운 생을 체험하였습니다.
오히려 장애는 힘이요 하나님과의 약속의 비밀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가족은 그 체험 속에서 장애우들을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이 익어 국가도 사회도 교회에서도 완전히 소외시킨 그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되어 살았습니다.
맹학교에서 안마교육을 받았어도 전혀 직업전선에 나서지 못하는 여성들. 그리고 여기 저기 숨겨진 여성들을 모아 안마사로서 필요한 다소의 훈련을 시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열었으나, 사자처럼 덤벼드는 고백 남성들 앞에서 피할 길이 없어 피 맺힌 눈물을 흘릴 때도 있었습니다. 나도 내 부모님도 그들과 함께 울었을 때 하늘도 함께 울은 것 같았습니다.
한국 유사 이래 최초로 직업이 주어지는 시기였기 때문에 그들은 스스로 철저하게 몸조심을 하고 안마시술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기도를 합니다. 손님이 주는 음료수나 팁은 절대로 사양을 했습니다. 과도한 팁은 자신을 지킬 능력을 잃게 하는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셨지만 저의 선친이신 최덕규 장로님, 김봉춘 권사님 그리고 우리 온 가족이 총 동원하여 3년간의 애절한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 때 우리 가족은 참 어려운 삶 속에서도 온전한 십일조 생활로 만들어진 몇 푼의 생활비를, 부모도 교회도 국가도 돌보지 않는 그 불우한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기로 결심하고 기도하는 중에 얻어진 지혜로 사우나를 창안하고 휴식공간을 만들어 한국 최초로 안마시술소를 개설하여 그들에게 안정된 환경에서 일 할 수 있는 터를 만들어 주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는 새 희망과 꿈을 갖게 되었고 안정된 환경 속에서 국민건강의 1익을 담당하는 당당한 유사의료업자로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에 큰 긍지를 가졌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한 번도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으나 그 분들의 숨은 봉사와 고난의 삶 속에 우리 시각장애우들의 희망과 꿈이 뿌리박았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 깊고도 오묘합니다.
사랑하고 존경하는 믿음의 형제들이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온전한 1/10조 생활은 반드시 합시다.
그리고 교회의 지도는 철저하게 받읍시다.
나도 살고 장애우도 살고 다 함께 잘 사는 지혜가성서 속에 있습니다.
기도 속에서 이루어진 안마시술소의 출현은 시각장애인들에게 있어서는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에 버금가는 직업의 혁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1960년대 전국의 안마를 직업으로 가진 인구가 100명도 훨씬 밑돌았으나 지금은 거의 1만 명에 이르고 어려운 안마교육과정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20만의 시각장애우들은 비록 육체는 장애를 가졌을지라도 훌륭한 유사의료업자가 되어 국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려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꿈은 국가나 일반 사람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입니다.
시각장애 여성들은 반만년의 한국 유사 이래 처음 직업으로 갖는 기회이어서 그 업을 보호하려고 얼마나 몸과 마음 모든 경우에서 조심하고 있었는지, 일반사회인들이나 정치인들이나 교회에서까지도 아마도 전혀 모를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 하는 그들의 모습, 천사들의 노래인양 사람들의 마음 깊은 구석까지 뒤흔들어주는 아름다운 찬양, 손끝에 피 맺히도록 안마하여 번 돈으로 하나님 앞에 바치는 정성스러운 헌금, 목회자들의 지도 앞에 어린 양처럼 순종하는 그들의 신앙생활을 목사님 장로님 알고 계십니까!
그 사랑스러운 우리의 유약한 형제들이 울고 있습니다.
지금 그 사랑스러운 우리의 형제들이 지난 5월 25일 헌법재판소의 잘 못된 판결로 절망과 실의에 빠지고 어제도 오늘도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져 투신자살하는 사람 한강 물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 사흘 전에도 광주에서 변경애 55세 안마사가 뽀 아파트 옥상에서 몸을 던졌습니다.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은 죽어도 대문짝 같은 기사가 실리던데, 이름 없는 사람들은 어굴하게 죽어도 신문기사화도 안 되더군요.
안마시술소는 퇴패업소라고요??
권력 있고 돈 많은 사람들이 시각장애인을 앞세우고, 그들은 뒤에서 물주가 되어 목줄을 잡고 있는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그 더러운 말을 다 들으면서도 입을 열지 못하는 그
약자의 처지를 아시는 가요?
그 것도 부족하여 지난 5월 25일 국가는 하나 밖에 없는 그 직업도 완전히 빼앗아 버렸습니다.
여러분 이제는 그 수치스러운 야만행위도 고만 그쳐야 하겠지요?
법정은 국가의 양심입니다.
그런데 분통이 터지는 것은 국민의 권리를 지켜준다고 하는 법조계도
정치권도 시민연대도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한다고 기치를 든 교회까지도 다 입을 다물고 있습니다. 참 기가 막힙니다.
존경하는 목사님! 장로님! 그리고 정의를 사랑하시는 분들이여!
관망만 하지 마시고 일어서서 불의를 심판해 주십시오.
꼭 우리 장애우들을 도와주십시오.
그리고 기도해 주십시오.
약자와 있는 자와의 양극화가 심화되는 이 때 하나님의 정의를 선포하는 교회는
반드시 일어서야 합니다.
대체입법도 하고 듣기 좋은 말로 설득을 시기면 그런대로 시각장애인들의 일은 잠잠해 지겠지만, 교회는 결코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불의는 어떠한 경우에도 정당화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교회는 절대로
1 장애우들이 가능한 한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2 장애인들만 가진 독특한 재능도 있습니다. 그 것을 교회가 수용하여 귀하게 국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3 장애인들과 건강한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평화롭고 정의로운 사회풍토를 만들기 위하여 국가의 모든 제도와 법령을 개선하도록 하는 일에 앞장서야 하며, 선교의 모든 전략과 방향을 이번 일을 기회로 새롭게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확신합니다.
우리는 매 주일 오후 3시 전주시 중앙동 객사 앞 거리에서 시각장애우를 위한 특별 기도회를 갖고 있습니다.
교회에 광고해 주셔서 많은 사람들이 참석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감사합니다.
2006년 6월 15일
한국기독교장로회 전북동노회 사랑의교회 당회장 최 용 진
연락처 018-241-4105 주소 : 전북 용진면 구억리 874-5 한국기독교장로회 사랑의교회
총회장님 노회장님 각 교회 당회장님 귀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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