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교회론에 대하여
2007-01-19 19:21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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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1:3의 주석>
교회는 에클레시아(??κκλησία)이며 바울의 서신 안에 60회 정도 나온다(W. Barclay). 이 낱말의 히브리어적 배경으로 카아할(창 49:6, 출 12:6, 민 14:5, 신 5:22, 겔 23:24 등) 및 에에다(레 8:4, 민 8:9, 10:2, 잠 5:14 등)가 있다. 전자는 ‘부름을 받은 모임’, 후자는 ‘지명된 모임’의 뜻으로 다같이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 또는 선민 자체를 가리켰다.
신약 성경에서 그 말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소환된 사람들의 모임, 특수 지역의 거주민들로부터 모집된 믿는 자들의 공동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 소집된 공동체, 하나님의 종말론적 백성 등의 의미로 사용되었다”(P. S. Minear).
<에베소서 4:11의 주석>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충만케 하시기 위해 주신 다양한 은혜에 대해서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에 열거된 직분은 교회에서의 고하(高下)의 순서를 따른 것이라 할 수 있다(참조 : 고전 12:28).
사도(아포스톨루스, ἀποστόλους)는 갈라디아서 1:1의 주석을 보라.
선지자(프로페테스, προφήτας : 복수)에 대해 {헨드릭슨(W. He- ndriksen)은 “πρό(‘앞으로’, ‘밖으로’)와 φημί(말하기)가 결합된 말이다.......그리고 선지자(예언자)가 앞을 향해, 또는 밖을 향해 말하거나 공공연히 선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마음이다. 그는 선포자이지, 반드시 예고자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예언을 멸시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무시하는 것이다}(살전 5: 20의 주석).
여기에 언급된 선지자는 구약 시대의 선지자가 아니라, 신약 시대의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렌스키(R. C. H. Lenski)는 2:20의 주석에서 “예언과 예언자는 이미 계시된 구원의 진리를 가장 적절하게 전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예언자는 교사이기도 하며, 전도자요, 목회자이기도 하다. 그리고 우리는 아가보와 빌립의 딸들(행 21:9-10)과 같은 예언자들을 발견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장차 오는 사건에 관한 여러 가지 계시를 전달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구약성경의 예언자는 물론, 신약성경의 사도들보다 하위에 위치한다. 그들의 기능은 부수적이며, 그들의 계시는 어쩌다 있었으며, 또한 그 수에 있어서도 소수에 불과하였다.”라고 설명하였다.
신약 시대나 구약 시대의 예언자들은 단순히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는 기계적 존재가 아니라, 계시의 본질적 사명과 깊은 연관이 있는 인격적 존재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전할 예언자들을 일시적이며 기계적인 도구로 취급하시지 않고, 먼저 그들을 불러 인격적 만남을 통해 사명자로 세우시고, 그들의 개성과 재능과 행동으로 말씀을 전하게 하셨다.
바클레이(W. Barclay)는 그들의 특성과 운명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1) 박해 시대에 제일 먼저 고난을 당한 사람들이 바로 선지자들이었으며, 심지어 순교의 제물이 되기도 하였다.
(2) 선지자들이 문젯거리가 되었다. 교회가 성장함에 따라서 지역적인 조직이 발달되었다. 모든 교회가 개 교회만을 위한 담임 목회자를 가질 수 있으며, 그리고 그 지역만을 위한 행정 체제를 가질 수 있을 만큼 조직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서 담임 목회자들은 자신의 교회를 혼란하게 하는 순회 선지자들의 개입에 대해 분개하기 시작하였다.
담임 목회자들은 언제나 순회 선지자들을 좋지 않게 생각하게 마련인 것이다. 당연한 결과로 점차 선지자들은 없어지고 담임 목회자가 우세하게 되었다.
(3) 선지자의 직분은 쉽사리 남용되기 쉬운 것이었다. 순회 선지자들은 굉장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자신의 직분을 남용하여 그들이 방문하는 교회의 비용을 가지고 매우 안락한 생활을 하였다.
바울의 시대에는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참된 메시지를 각 교회에 전하였었다. 그러나, 이런 순회 선지자가 시대 착오적인 존재로 떨어지게 되는 시대가 오게 되었다. 더욱이 그들 중에는 그들의 직책을 여지없이 추락시킨 경우도 있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존재는 점차 사라져 버렸다.
복음 전하는 자(유앙겔리스타스, εὐαγγελιστάς)는 직책을 가리키는 칭호가 아니라, 초대 교회의 순회 전도자(선교사)와 복음 설교자들을 가리키는 칭호이었다. 일곱 집사 가운데 한 사람인 빌립이 전도자로 일컬어졌고(행 21:8), 디모데도 바울에게서 전도인의 일을 하라는 권면을 받았다(딤후 4:5).
“초기에는 의심할 것 없이 사도들의 활동이 복음 전하는 자들의 활동과 엄격하게 구별되지 않았다(cf. 갈 1:8, I Clem. 42, Bar- n. 8:3). 후기에는 복음 전하는 자들을 사도들의 제자 또는 그들의 본을 따르는 자들로 생각하였다(Euseb. Hist. Ⅱ. 3:1. Ⅲ. 37:2 그리고 Ⅴ. 10, 2-3. 여기서는 2세기의 알렌산드리아 교리 문답 학교의 설립자인 판테이누스(Pantaenus)가 복음 전하는 자로 간주되어 있다)”(Shepherd). 위의 세 부류의 사람들이 넓은 의미의 교회에 적용되는 데 비해, 목사와 교사(ποιμένας καί διδασκάλους)는 특히 개체 교회에 적용되고 있다. 목사와 교사에 대해 전혀 다른 직책이라는 설과 같은 직책의 두 가지 역할이라는 설이 있다. 두 낱말이 한 관사에 의해 수식된다는 점과 목사(문자대로의 뜻은 목자)의 기능이 교회 회중(양 무리)을 통치하고 보호하며 가르치고 인도하는 것(참조 : 요 10:1-18, 히 13:20, 벧전 2:25, 5:2, 4)이라는 점을 보아 후설을 취해야 할 것이다.
목사 또는 교사는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 또는 사상 등을 가르치는 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훈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에 관한 영적 지식을 가르치는 자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우주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는 자이다. 동시에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인간을 포함하여 우주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교훈하는 자이다.
러셀(Russell)은 “기독교 교육이란 인간들의 참된 인간성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초대에 참여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교사란 기독교 교육의 시작과 진행과 목적을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이다(마 28:16-20). 그러한 의미에서 기독교의 교사에게 필수적인 것은 대 교사인 그리스도의 도구가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교사는 다만 자신의 입과 행위를 통해서 피교육자를 양육하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부활의 주께서 위에 열거한 여러 가지 직책을 주신 목적에 대해, 바울은 【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설명하고 있다.
목적의 내용인 세 구에 대해 (1) 병행구로 보는 설(J. A. Beng- el, “Chrysostom”), (2) 상호 관련이 없는 독립구로 보는 설(G- rotius, Koppe), (3) 나중의 두 구(εἰς가 있는 구들)는 병행하여 첫 번째 구(πρὸς가 있는 구)의 목적을 지시한다는 설 등이 있는데, 많은 학자들의 견해인 (3)설이 무난하다.
성도(1:1의 주석을 보라.)를 온전케 하며의 온전케 하며는 카타르티스몬(καταρτισμὸν)인데, ‘수리하다’(마 4:21), ‘실수와 죄로부터 바로잡다’(갈 6:1),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다’(살전 3:10, 벧전 5:10), ‘깨어진 조화를 회복하다’(고전 1:10), ‘선한 일에 온전케 하다’(히 13:21) 등을 의미하는 카타르티조(καταρτίζω)라는 동사에서 온 말이다. “그 말은 외과 의사들이 수족의 골절을 다시 맞추고, 어긋난 관절을 다시 제자리에 끼워 맞추는 경우에 사용되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정부의 일이 잘되어 나갈 수 있도록 대립되는 당파를 합칠 때에 사용되었다”(W. Barclay). 특히, 여기서는 절대적 완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나 목적을 성취하는 데 적합하도록 하는 완전을 의미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성도를 온전케 하는 목적에 대해 바울은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라고 하였다. 여기서는 교회의 공직이나(T. K. Abo- tt, 이상근) 기독교인의 대 사회적 봉사(R. P. Martin)가 아니라, 기독교인 상호간의 봉사를 의미하고 있다.
봉사의 일을 하는 올바른 자세는 자신을 내세우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이미 받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으로 하는 것이다. 다음으로는 주인으로서가 아니라, 주님처럼 종으로서 섬기는 것이다(눅 17:7-10). 그 다음으로는 “보상을 바라는 대신에 봉사 그 자체를 선물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O. Wedel).
성도를 온전케 하는 또 하나의 목적에 대해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라고 하였다. 그리스도의 몸은 교회를 의미하는 것(1:23의 주석을 보라.)으로 교회의 성장 또는 부흥을 성전을 세우는 일에 비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 대해서 카터(C. W. Carter)는 “교회란 고착된 제도가 아니라, 항상 성장하고 발달하는 영적 조직체이다.”라고 설명하였다. 블레이키(W. G. Blaikie)와 폴크스(F. Foulkes)는 구체적으로 “믿는 자의 수가 증가하고, 각 교인의 영적 생활이 증진하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하였다.
바울은 교회(교인)의 성장 목표에 대해 【13】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좀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숙한 하나의 교회가 되기 위해서 모든 교회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1:13의 주석을 보라.)에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신앙의 일치에 있어서 기본적인 조건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일’(에피그노세오스, ἐπιγνώσεως : 1:17의 주석을 보라.)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 대한 지식이 서로 다를 때에 그분에 대한 믿음도 달라지며, 따라서 교회의 분열을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올바를 때에 올바른 믿음이 가능하며, 역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올바를 때에 올바른 지식이 가능한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해, 믿음과 영적 지식은 상관 관계에 있는 것이다.
이어서 바울은 보다 더 중요한 교회(교인)의 성장 목표에 대해서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라고 하였다.
온전한은 텔레이온(τέλειον)으로서 {어떤 역할에 있어서 ‘완전한’(약 1:4), ‘장성한’(히 5:14), ‘기독교인으로서의 성숙한’(마 5:48) 등을 뜻한다. 바클레이(W. Barclay)는 “텔레이오스(τέλειος)란 대체로 기정적 목표와 기정적 목적에 대하여 완전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은 무엇인가를 할 수 있도록 보내졌으며,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무슨 일인가를 하도록 명령한 이 세상에서의 과업에 그 자신을 적응시키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제대로 감당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설정해 주신 목표에 도달한다는 의미에서의 완전이지 신과 같은 절대적 완전은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약 1:4의 주석).
끝으로, 바울은 교회(교인)의 최종적인 성장 목표에 대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라고 하였다.
장성한은 헬리키아스(ἡλικὶας)로서 ‘연령적 성숙’(요 9:21, 23)과 ‘신체적 성숙’(눅 19:3)을 뜻하는 것이다. 결국 바울은 그리스도의 성숙한 상태가 충만(1:23의 주석을 보라.)한 데까지 도달하는 것이야말로 교회(교인)의 최종 목표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최종 목표의 궁극적 실현 시기에 대해 현세라는 설과 내세라는 설이 있다. 신학적으로는 후자가 타당하지만(롬 8:23, 고후 4:16, 빌 3:10-12), 여기서는 최종 목표를 실현해 나가는 현실적인 과정을 중요시하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 브루스(F. F. Bruce)는 “성장의 궁극적 실현은 부활의 몸을 입을 때이다. 그러나, 그 날에 대한 기대는 현재의 영적 발달에 강한 자극제가 될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풍성감리교회 목사. 저서:신약 주석 시리즈 완간, 난해 성구 해설, 형통의 기도,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설교집 17권. 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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