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목사 복지실의 어제와 오늘

2007-01-24 19:27 관리자 1972
       감리교회 원로목사 복지실의 어제와 오늘

기독교 대한감리회 원로목사회가 지금은 연회별로 각기 운영하고 있지만, 1994년 여름까지 만해도 ‘전국원로목사회’ 는 하나로 통괄하고 있었다.
우리 감리교단의「원로목사회」라는 공식 이름이 생긴 것은 정확히 1973년 1월 28일 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김종필 감독, 이환신 감독, 엄재희 목사, 윤성렬 목사, 박창국 목사, 조윤승 목사, 고명균 목사, 박내철 목사 등 수 수십명의 원로목사님들이 인사동 태화 사회관에 모여서 원로목사회를 조직하고 제1대 회장으로 김종필 감독을 추대 했던 것이다. (회원명부: 74명)

이 시기, 원로목사님들은 모일만 장소가 없어, 주로 본부 감독실(당시 윤창덕 감독)에 모였었고, 다방을 이용하기도 했다, 점심은 돌려가며 식대를 내셨다고 한다. 그러기를 10년 후, 1983년에 종로중앙교회 건물인, 하나로 빌딩이 건축되고, 1987년, 8층 전 층(369평)이 은급재단 소유로 등기되었다.
처음에는 중앙교회 담임자인 정영관 목사의 배려로 빌딩 10층에서, 그리고 ‘84년 3월부터 12층으로 옮겼다가, 1990년 10월에 현재의 808호실로 이사했었다.
이 808호실이 복지실로 되기까지 당시 원로목사님들의 노력과 기도는 어떠했을까? 그것은 각자 상상에 맡긴다.  

이 808호실은 원로목사들이 휴식하는 그냥 복지실 만이 아니었다.
이는 전국 원로목사들의 요람이요 근거지며, 동시에 활동무대이었다. 이 복지실로 공동체를 이룬 어르신들은 실로 많은 일을 하셨다. 매월 1천원, 2천원을 빠짐없이 내는 회비와 찬조헌금을 모아서 해외선교를 하고, 국내에 개척교회를 보조했다.
제주도 조천읍에 있는「선흘감리교회」는 우리 원로목사회에서 헌금하여 1982년에 봉헌한 “원로목사 기념교회”이다. (차종필: 원로 목사회 약사 P..35, P.42 참조)  

1984년 9월, 원로목사회는 이병남 목사를 복지실 실장으로 임명하면서 그 활동은 더욱 활발해졌다. 문서출판에도 힘을 기울여 우리 감리교회를 빛낸 양주삼 총리사, 전덕기 목사, 신석구 목사, 남궁억 선생 등 잊혀가는 인사들의 약력과 업적을 발표하며 그들의 초상화를 벽에 걸어 선구자들을 기리기도 했다. 그리고 1986년 6월부터는「元老牧師會報」(4.6배판30쪽)를 12호까지 발간했다.
이처럼 그 활동이 교계에 알려지면서 원로목사회를 위해 헌금하는 교인들과 사무실(복지실)집기를 자진 헌납해 주는 교회들이 여럿 있었고. 본부에서는 사무실 운영을 위해 매월 60만원을 1994년 6월까지 보조해 주었으므로 이 사업은 가능했었다.

전국 원로목사회 해체
교단이 성장함에 따라 1994년에는 7개 연회에, 전국 원로목사 수효가 258명으로 늘어나, 회집하기도 힘들고 출판부에 어려운 문제도 생겼다. 이로 인해 거듭한 회의 끝에 출판부를 폐지하고 ‘전국 원로목사회’ 운영이 지속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1996년 6월 21일 11시, 회장 김영창 목사는 실행위원회를 복지실에 소집하고
본「전국원로못회」는 해체하고 각 연회별로 원로목사회를 조직, 운영하기로 만장 일치 결의했다. 이로서 감리회「전국원로목사회」는 창시 23년 5개월 만에, 제9회 총회를 끝으로 그 막을 내린 것이다.

복지실의 수직(守直)
본「전국원로못회」는 해체하고 각 연회별로 원로목사회를 조직, 운영하기로 만장 일치 결의했다. 이로서 감리회「전국원로목사회」는 창시 23년 5개월 만에, 제9회 총회를 끝으로 그 막을 내린 것이다.
1989년 6월까지는 이병남 목사가 상임당직 일을 보았고, 복지실의 모든 운영경비도 본회 자체 해결했다. 1989년 7월부터 원로목사회 임원들이 하루씩 교대로 근무했다. 그러나 그것은 명분뿐이고 그때는 여직원 한명이 있어 복지실을 지키며 모든 사무를 담당했다.
  (참고: 복지실 근무여직원: 송인숙(‘93. 5-8월)월급-20만원,  유정란(’93.9-‘94.6)월급- 40만원)

1994년 6월, 전국원로목사회는 아쉽게 해체 되었지만 전국에 유일한 감리교 원로목사들의 본거지인 복지실은 그대로 존속해야 했다. 그러므로 전국 원로목사회가 해체된 후에도 안경호 목사와 차종필 목사가 9월까지 계속 사무실을 지켜오다가 더 이상 감당할 수없게 되자, 1994년 10월 5일 당시의 은급부 간사 장병호 목사는 장태명 목사, 차종필 목사, 곽영찬 목사에게 복지실을 수직하는 봉사임무를 위탁했다.

1995넌 10월부터 곽영찬 목사가 병환으로 출근치 못하게 되어 차종필 목사가 매주 3일 근무를 계속하다가 1996년 1월부터 중부연회(월), 중앙연회(화), 서울남연회(수), 동부연회(목), 서울연회(금) 원로목사들이 요일별로 당직근무를 수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울. 원로목사 복지실은 현재 매월 연 80명 내지 90명의 감리교회 원로목사들이 찾아와 서로 만나 옛정을 나누며 나라와 교회의 앞날을 걱정한다.

그런데 2007년 1월 5일, 신경하 감독회장은 사전에 아무런 상의절차도 없이 복지실 당직 목사들과 연회 원로목사 회장들에게 2월 1일부로 복지실을 폐지한다는 통지문을 발송했다.
그 이유론 다음 두 가지를 들었다.
첫째,  복지실이 서울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멀리 있는 삼남, 호남연회는 혜택을 받지 못해서 형평상     불합리하다는 여론,
둘째, 복지실 운영예산 연 1.700 여만원이 부담이된다는 것이다.    ( 이후에 계속)
                                    
                                                    
   복지실에 집기와 용품을 기증한 교회와 목사들

1. 금호제일교회-전화 1대,    2. 상동교회-커피 셋트, 보온병, 찬장.
3. 정동교회-냉장고,  4.. 석교교회-철제책상 1개,  5. 서강교회-T.V 1대,  
6. 서울연회-캐비넽,  7. 중부연회-철제책상 1개,   8. 성서공회-성경 50권,
9. 기독교서회-찬송가 50권,   10. 함성학 목사-소파,  11. 김광우 목사-선풍기
12. 김창희 감독-의자, 기타. (이상은 1980년대에 기증)
    --- 이 중 고물이 되어 대부분 폐기 처분 되었음 ----  

13. 본부 사무국-소파 2개, 의자 2개.         14. 종교교회 나원용 감독- 탁자 2개,
15. 주안교회 한경수 감독-T.V(25인치) 1대.  16. 구로교회 곽전태 목사-대형 시계 1개,    
17. 기둥교회 고용봉 감독-전화 받침대  18. 동수교회 주봉택 목사-FAX 1대,  
19. 필동교회 전택수 목사-찻장 1개, (이상 1999년 기증)
20. 김봉록 감독-컴퓨터, 프린터(중고),    21. 차종필 목사-컴푸터 책상,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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