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강해 3

2010-03-01 19:04 관리자 402
육신으로 나신 예수님
                       로마서 1:3.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 말씀은 로마서 1:1절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복음”과 관계를 맺고 있는 말씀입니다.
몸이 매우 아픈 사람에게는 병 고침 받는 것이 복음처럼 들릴 것입니다. 몹시 배고픈 사람에게는 먹는 것이 복음처럼 들릴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유해 지는 것이 복음처럼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그렇게 정해지고 전해져서는 아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병든 자, 배고픈 자,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들려주라고 하셨지, 밥이나 돈을 주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마 11:5).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복음은 물질을 반드시 약속하지 않았고, 부를 반드시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아들에 관하여 논하고 있고, 하나님의 복음의 목적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고, 교제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복음의 중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바울은 이 로마서의 기록을 통하여, 하나님의 복음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그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이란, 하나님의 아들이 이 땅위에 임하셨다는 것, 그 분은 우리의 주가 되신다는 것, 예수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안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됩니다.
  만약 그리스도교가 어떤 종교냐? 고 물으면, “예수님은 하나님의 외아들이심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고 시인하시오”라고 하면 가장 타당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 1:8)라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주님을 아는 것은, 주님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와 반대되는 일을 베드로가 행한 적이 있었는데, 베드로가 주님을 부인할 때, 주님이 눈앞에 계시는 데도 외면하고, 베드로는 주님을 알지 못한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러기에 보고도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고, 보지 못하고도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에 대하여 많이 가르치셨는데,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으며(약 5:20), 모든 율법을 행하는 것이라고(롬 13:8) 했습니다.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하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이니라.”(약 5:20)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 13:8)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외에는 알지 아니하겠다는 결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보혈로 우리 죄를 씻으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의 죽음을 대신하셨다는 사실 외에는 복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갈 3:1)고 바울은 질책합니다.
  그리스도의 사실을 보면, 부정할 수 없는 명확한 사실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1. 예언대로 성취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2절)고 했습니다. 아담 때부터 모세를 위시한, 말라기까지, 모든 선지자들을 망라하여,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 그리스도가 모든 인류를 구원할 것을 예언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생지, 자라심, 행하신 일, 십자가에 죽으심, 고통과 고난, 장사되심과 부활에 대하여, 어느 것 하나도 빠지지 않고 모두 예언대로 하셨고, 선지자들의 예언대로 모두 실천하신 것입니다.

  어느 누가 하루의 일을 계획하고, 계획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사람은 단 5분도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단 1분 후의 되어 질 일도 모르고, 단 1초 후에 되어 질 일도 모르는 것이 우리 인간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미래를 예측하고 살 수가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4천 년 전부터 예언하신 그대로 사셨습니다.
  그 예언도 구약의 1500년의 오랜 역사 전에 예언되었고, 30여명의 기자들이 다 같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 300번 이상을 한가지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대와 역사가 다르고 환경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다 같이 일목요연하게 한가지로 예언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있을 수가 없는 일인 것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 한 분이신 성령님이 모든 시대를 망라하여 모든 선지자들에게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누가 뭐라고 하고 사탄의 간계가 미칠지라도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예언대로 오셨으되 역사 속에 오신 것입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이 시공의 제한 속에 들어오셔서,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동정녀인 처녀의 몸을 통하여 다윗의 혈통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동정녀인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예언대로 나셨다는 것은, 남자를 전혀 접촉하지 않은 처녀라는 말입니다. 인위적인 남자의 혈통이 섞여지지 아니하고,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잉태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은 여자가 남자와 정을 통하여 낳았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서 낳기까지 오래 기다리셨을까요?

2. 사람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민족과 혈통들이 있지만 그 중에 유대인의 다윗 왕의 혈통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 1:1절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를 보면 혈통으로는 유대인이고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으로 나신 것입니다.
  여기에 “나셨고” 라는 말은 “존재하다” 또는 “되다”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의 혈통은 다윗의 후손이나 가문을 말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가장 유명하고 훌륭한 왕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성군입니다. 그 다윗의 후손으로 오셨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듯이 예수님은 영적 이스라엘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아니 만왕의 왕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다윗이 역사의 인물이며 과거의 인물이듯이 예수님은 역사 속에 오셨으나 온 인류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옛날에는, 구약시대에 염소나 양이나 비둘기로 피의 제사를 드림으로, 인간 죄를 대 속하였으나 인간 죄를 짊어지신 예수님은 자신의 몸으로 인류의 죄를 대 속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 “육신으로는.........” 이라고 하는 한 단어에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말은 우리와 똑 같은 살아있는 육체를 가지셨다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추위도 더위도 배고픔도 피곤함도 분노도 기쁨도 그리고 수치도 아픔도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육체를 지니셨기에 피부에 닫는 감각들을 모두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이 몸과 혼과 영을 모두 지니신 분이십니다.
  인간의 본능과 본성을 모두 지니신 분입니다.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 하더라”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나타내었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 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두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빌 2:6-10).
  독생 성자와 하나님 아버지와의 관계를 이처럼 선명하게 납득시켜서 우리로 하여금 예배하도록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3. 살과 뼈를 지니신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모습 그대로 세상에 오셨습니다.
  만약 예수님이 인간 세상에 오시면서 살과 뼈가 없는 모습으로 오셨더라고 하면, 사람들은 감히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씀을 하실 때 참람하다고 말하거나 ‘그는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그의 형제와 모친을 우리가 안다’고 말하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또 예수님에게 간음 현장에서 잡은 여인을 끌고 와서 돌로 치려고 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의 눈에 예수님은 분명히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분임을 보았고 살과 뼈를 지니고 오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말씀과 하시는 일에 거부감을 가지고 대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코 신비로운 분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육체를 지니신 예수님은 살과 뼈를 우리와 똑같이 지니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상징적인 몸으로 보이신 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살과 뼈를 모두 지니고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그의 육체는 아픔과 추위와 배고픔과 수치를 모두 느끼시는 분이십니다.
  혈기와 분 냄과 기쁨과 사랑의 감정을 나타내셨습니다.

  영체는 살과 뼈가 없지만 육체는 살과 뼈가 있다고, 누가복음 24:39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내 손과 발을 보고 나 인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예수님은 부활 후에도 음식을 잡수시며 완전한 부활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어찌하여 두려워하며 어찌하여 마음에 의심이 일어나느냐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고 했습니다(눅 24:37-43).

  예수님의 부활의 모습은 유령으로 나타나신 것도 아니요,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신 육체 그 모두를 지니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이시기에 죽으셨고 신이시기에 다시 부활하신 것입니다.
  동물적 조직의 육체를 지니셨기에 십자가는 고통스러우셨고 신의 성품을 지니셨기에 썩지 않으시고 원래의 모습대로 부활하신 것입니다.
  인간의 몸을 지니셨기에 부끄러움을 당하셨고 거룩하신 분이시기에 영광의 부활을 하신 것입니다.
  사람의 감정을 지니셨기에 어머니를 부르셨고 제자에게 부양을 부탁하셨으며 신령하신 분이시기에 ‘다 이루’시고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모든 인류에게 절망을 딛고 소망을 갖게 하는 생명의 보장이요, 선물이 되셨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도 부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 되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영생을 누리시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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