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4
2010-03-04 09: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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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로마서 1:4절에서, 우리는 성경적인 삼위일체의 교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삼위의 하나님 중, 어느 한 분만을 강조한다든가 어느 한 분만을 소홀하게 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삼위의 하나님을 다 함께 소중하고 경외하는 심령으로서만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축복이 임하고 우리의 믿음이 바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신명기 6:4-9, “이스라엘아 들어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이신 여호와시니........”라고 하여 유일하신 하나님 한 분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성부도 유일하신 하나님이시고 성자도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성령님도 유일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분은 한 몸을 이루고 계시며 한 하나님이십니다.
이 3위 1체의 교리는 우리 기독교의 정통을 지켜나가는 뿌리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인간의 합리적인 방법으로는 설명하거나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혈통과 유대 적 제한에서 나신 인성은 다른 사람이 난 것처럼 나셨습니다. 산모의 몸을 빌려서 잉태되고 해산의 수고와 고통가운데서 태어나셨고 성장의 과정대로 나이에 따라 자라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추우면 옷을 입어야 했고 더우면 땀을 흘리셨고 굶으면 시장하였고 일을 하면 피곤하셨고 슬픈 일을 당하면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즐거운 일이 있으면 기뻐하셨고 다치고 상처를 입으면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시기에 사람의 죽음을 대신 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이시기에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며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또한 십자가는 예수님의 성역을 대표하며 부활은 예수님의 인격을 대변합니다.
바울 사도는 예수가 다윗의 혈통에서 난 역사적인 인물이며 하나님의 아들이란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예수가 구약에 예언된 메시아임을 이야기하고 받아들이기에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 시대에 살고 있던 바리새인을 위시한 종교의 지도자들이 그와 같은 증거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하실 때 그들은 “참람한 말을 한다.”고 비난을 하였고 십자가에 처형하는 조건으로 삼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니 바울의 증거도 그들에게는 믿어지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고 반대하는 자가 많아도 진리는 변함이 없습니다.
새벽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날은 밝아 오며 갈릴레오를 감옥에 가두었어도 지구는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어느 누가 저 하늘을 손바닥으로 가릴 수 있으며 어느 누가 저 하늘의 별들을 걸러 낼 수 있습니까?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을 아무도 변괘 시키지 못할 것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이 말을 직역하자면 “거룩하신 영에 의하면” 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논하는 말입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삼위 가운데 제 3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제 3위를 가리킬 때는 항상 다른 형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이라는 명칭이지 결코 성결의 영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성결의 영으로는 하는 말은 예수님을 보다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보고 이해하려고 하는 시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결의 영이란 육신과 대조를 이루는 말씀입니다.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으로 나셨고 성결의 영으로는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이 말은 예수님의 인성과 하나님의 아들을 나타내려고 하는 말입니다.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분이 어찌하여 하나님의 독 생 성자가 되었을까? 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가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부활하는 날까지는 독 생 성자가 아니셨다가 부활하실 때에 겨우 독 생 성자가 되셨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독특하게 사용되는 성경적인 표현입니다.
제 3위이신 성령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주님을 일으키심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일으키신 것은 하나님(행 2:24, 32, 3:15, 26, 4:10, 5:30, 10:40, 13:30, 33, 34, 17:31, 롬 10:9, 엡 1:20), 또는 성부(롬 6:4,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또는 예수님 자신(요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의 행위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성부의 뜻과 성자의 순종과 성령의 도우심이 함께 역사하심으로 부활이 이루어진 일입니다.
영이라는 말은 우상숭배와 구별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나타내는 말로 사용하고 있으며(요 4:24), 신성이나 보다 높아지신 상태의 메시아에게 적용되는 말로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신성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입니다.
사람이 되신 이분이 하나님의 독 생 성자이시며 많은 사람을 위하여 죄를 짊어지시고 대속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분이십니다.
그는 하나님이시면서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시며 예수님은 인간이시면서 다른 본성으로는 인간이 아니셨던 것입니다.
주님은 인간으로서 다윗의 혈통에서 태어나셨고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다른 본성으로서는 그는 하나님이셨으며 성육신 하시고 죽으시기 전에 가지셨던 본래의 상태를 회복하셨던 것입니다(요 17:1-5, 빌 2:2-11).
요한복음 17:1-5,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 로소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아버지여 창세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빌립보서 2:2-11, “마음을 같이 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은 단지 인성만을 소유한 인간만이 아닌 신성을 소유한 신이므로 사람이면서도 신이십니다.
예수님은 역사적인 인물이기에 과거의 인물이지만 하나님의 아들이시므로, 주가 되시고 그리스도가 되시고 현재의 신이 되십니다.
그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와 함께 계시는 분이십니다.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시며,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 예수님을 인성만 취급하고 신성을 무시하거나 신성만을 고집하고 인성을 부인하는 것은 이단입니다.
성결의 영으로는 이라는 표현 속에 숨어있는 참된 의미는 명백히 주님의 신성을 주장하는 수많은 성경 구절들로부터 나타나고 있습니다(요 1:1참고).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이 말은 주님의 신성을 신적 이름(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에서 그의 속성에서(전지, 전능, 사랑 등) 그의 교훈에서 또한 죽음에서도 나타나셨으나 결정적인 증거는 부활에서 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 부활은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어오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육체 성 더 정확히 말하자면 영체 성 곧 영체로서의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단회적인 그 때의 계시사건입니다.
주님은 죽음에서 부활하신 후에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는 것입니다. 오랜 동안의 자발적인 비하의 상태가 지난 후에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에 합당한 위엄을 갖추셨다는 말입니다.
주 예수님께서 부활을 통하여 독 생 성자로 확신시켜 주셨다는 것은 우리가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믿고 확신하는데서 독생자를 참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부활이 있기 위해서는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독 생 성자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독생자의 하신 일의 전체를 말하는 것이고 하나님 아버지의 하신 구속사업 전체를 명백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는 것은 부활 후에 예수님께서는 참으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사실을 고린도전서 15장에서 장문으로 아름답고 명백하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였으며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3-14) 할 정도로 주님의 부활은 그에게서 그렇게도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났다고 확신 있게 말합니다.
그때 만난 예수님은 베드로가 만난 주님과 똑같다고 하는 주장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습니다(고전 15:4-8).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후에 열 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왜 그처럼 바울에게 주님의 부활이 중요합니까?
그것은 예수님이 죄악과 사망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입니다.
육체의 죽음에서 생명의 부활로 승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다른 사람들의 죽었다가 잠시 다시 살아난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여리고의 나사로도 죽은 지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났습니다.
나인 성 과부의 독자도 무덤으로 향하는 중에 다시 살아났습니다.
회당 장 야이로의 죽었던 12살 먹은 딸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3층 누각의 창문틀에서 떨어져 죽었던 유두고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그들처럼 일순간에 다시 살아나 생명을 연 장 받은 것이 아니었고, 영원한 생명으로 죄악과 사망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전 15:55-58).
바울의 이러한 외침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이기신 승리에 대한 쾌거의 함성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심으로 승천하셨고 부활을 거점으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함축하는 사건이 된 것입니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라 하니라”(행 17:31).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행 2:36)
이렇게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된 큰 증거는 부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을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의 권위와 권세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예수님이 사람으로 죽으셨다, 그러나 3일 후에 부활하셨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제자들까지도 부활하심을 접함으로 인정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은 메시아에 대한 별칭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스스로 증거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임을 나타내는 의미로 하나님이 자기의 아버지이심을 주장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유대인의 율법을 폐하며 그들의 관습을 변화시키고 하나님 아버지와 같이 그 율법들을 지켜야 할 의무에서 면제될 수 있는 권세를 주장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셨을 때 그것은 평범한 부활사건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주님의 주장을 참된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주장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신 것이 참인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 분은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지금 그 분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계셔서 우리를 위해 은혜와 평강을 주시고 다시 재림하실 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엄밀히 말하면 메시아 즉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란 명칭은 유대인에게만 필요한 명칭이 아니요, 이방인이나 만민에게 대 속주로 오신 유일하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