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2
2010-02-27 09: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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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의 순교를 시작으로 대 박해가 시작되었는데, 많은 신자들이 붙들려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러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해 각지로 흩어졌는데, 그들은 정착한 곳에서 다시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를 세웠으며, 전도하여 복음은 널리 전파되었다. 그런데 이 박해가 시작 된 것은 교리적인 오해와 모함도 포함되어 있었다.
예를 든다고 하면 기독교인들이 성만찬을 나눌 때, “이것을 받아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이것을 받아 마시라 이것은 내 피니라”는 말씀으로 떡과 포도주를 나누는 것을, 이방인들은 참으로 사람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으로 오해를 하였고, 기독교인들은 식인종으로 생각하였으며, 성도들이 소유를 팔아 서로 나누어 공동체의 생활을 하고, 예수님께서 부자 청년에게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고 너는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기독교인들은 재산을 모두 몰수당하는 종파로 오해하였으며, “이웃을 사랑하라 형제를 입맞춤으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기독교는 음란을 조성하는 종교집단으로 오해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결정적인 박해의 이유는 주후 64년 7월 18일 로마 시에서 일어난 대 화재로 6일간이나 진화하지 못하고 로마시의 14구중에 3구는 전소하고 7구는 대부분이 소실 당하였는데, 이에 로마 시민들은 네로가 화재를 일으켰다는 소문이 퍼지자 네로는 당황하여 이 죄를 기독교인들에게 돌려 기독교인들이 방화범이라고 죄를 전가하고 박해의 조건으로 삼았던 것이다.
당시에는 로마에 많은 유대인들이 살았고, 기독교인들의 수도 많았다.
글나우디오(Claudius)는 한 때,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몰아내려고 계획하였으나(행 18:2) 유대인들의 수가 너무 많아 폭동이라도 일어 날까봐 두려워서 시행하지 못했다고 하는 말까지 있었다.
로마의 원주민들을 비롯하여 이방인들까지 기독교인으로 개종한 사람들이 많아서 유대인들 외에도 로마인들이나 이방인들이 로마 교회에서 주동역할을 하였다. 그래서 네로가 통치하는 때에는, 기독교인들이 더 많이 늘어나 로마의 전체 인구 150만 내지 200만 중에 기독교인들의 수가 많이 차지했다고 한다.
박해자들은 기독교인들을 잡으면 그 죄를 자백하게 하고, 그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을 체포하여, 갖은 잔혹한 방법으로 살해하였는데, 심지어 짐승의 가죽을 입혀서 맹수들의 밥이 되게 하거나, 십자가에 못 박고 기름을 부어서 불에 태워 죽임으로 화광이 충천해 불야성을 이룰 때, 네로는 오히려 사람들을 불러서 구경거리로 삼았다고 하는 것이다.
이렇게 박해를 받을 때, 여러 나라 각 지방으로 흩어졌던 기독교인들은 지중해의 여러 도시로 흩어졌는데, 가이사랴, 욥바, 사마리아와 수리아, 안디옥, 다메섹의 2대 도시를 비롯하여 구브로 등 곳곳으로 번져 나아갔다.
로마 병정의 사관으로 유대교에 개종한 고넬료와 그 전 가족들이 가이사랴에서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았는데, 이것이 이방인 수세자의 시초가 되었던 것이다.
안디옥에서는 다시 이방인들에게 전도의 문이 열렸는데, 안디옥은 소아시아에서 수리아로 가는 관문이다.
안디옥은 당시 동방의 수도이고 세계 3대도시의 하나로 불리었던 곳이다. 그런데 이 안디옥으로부터 크리스천(Christian)이라는 명칭으로 불리어졌고(행 11:26) 예루살렘 다음으로 교회의 중심지가 되어 소아시아로부터 구라파까지 교회가 발전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