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종임을 자랑하는 바울
2010-02-18 09: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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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로마서는 이름 그대로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보내는 사도 바울의 편지입니다.
기독교의 경전가운데는, 특이하게 바울 사도가 쓴 편지들이 많이 들어있음을 알게 됩니다.
기독교의 경전을 말하자면 구약, 신약을 말합니다. 그 중에서도 신약은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경전입니다.
그것은 기독교의 중심인물인,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예수님의 삶과,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기록들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는 책이라면, 하나의 문학작품이거나, 하나의 소설일 뿐일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27권중 4권은 복음서로서, 예수님에 대한 기사들로 되어있고, 사도행전과, 요한계시록을 제외한 책들은 모두 편지들로 되어있습니다.
그 편지들은 거의가 바울의 서신들로서 12서신이나 됩니다.
그 가운데 히브리서는 저자가 분명치 않습니다.
그 중에서도 로마서는 “책 중의 책” 이라고 할 만큼 아주 중요한 책이며, 은혜로운 책으로, 기독교의 교리를 잘 말해주고 있는 수준 높은 책입니다.
성경 중에 보석의 창고입니다.
바울은 이 로마서를 쓸 때에는 아직 로마에 가지 못하였습니다(롬 1:13).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의 은혜로, 로마에 가게 될 것을 기대하고 있음을 본서를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롬 15:23-24).
이 로마서는 16장 432절이고, 헬라 원어로 7천자이며, 영어로는 8천자에 달하는데, 구절마다 문장마다 각종 보석들의 보고처럼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로마서를 7천개의 각종 보석으로 지어진 웅장한 집으로, 그 한개 한 개마다 너무도 놀라운 개개의 보석들로 오묘하고 절묘하게 조각되어져 있다고 표현을 하였습니다.
그러기에 로마서는 한 구절도 빼놓을 수 없는 진리의 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이 로마서를 한 구절씩 연구하며 살펴보고자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의 서두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자기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종, 바울이라고 4개의 단어로 씌어져 있는데, 바울이 이처럼 자신을 종이라고 소개를 하면서 기록한 것은, 자신의 입장을 설명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회적 입장으로 살펴보면, 종이라는 신분은 결코 자랑스러운 신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천하고 부끄러운 신분입니다.
종이란 노예라는 말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은 자기 자신을 말할 때, 종이라는 말을 즐겨서 자주 사용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종이라는 말을 부득이해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게 사용하며, 자기 기분을 잘 표현하는 말로서 자랑삼아 말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바울의 이름의 뜻도 “가장 적다”라는 뜻인 것을 보면, 종이라고 노예의 신분을 즐거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는 어떤 신앙의 확신과 영적관계를 맺은 주인을 높이려는 것일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종이라는 표현에서 생각을 할 때, 천한 입장에 자기를 두는 것 같아서, 슬프고 우울하게 생각이 되어 질 수도 있겠으나, 바울은 오히려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이라고, 자랑스럽고도 당당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의 랍비들의 속담은 “종이 되는 것보다, 개가 되는 것이 더 쉽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고 할 정도로, 종들은 재산이나 처자가 있어도, 언제 어느 때 주인에게 빼앗길는지 모르는 신분입니다. 그런데도 바울이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을 한 것을 보면, 자신은 예수 그리스도에게 매어있는 신분임을 드러내려고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바울의 주인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바울은 한 때, 예수님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입니다.
율법의 노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그런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구원을 받아서, 그리스도의 것으로 변화되었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한 것입니다.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에서 낳았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재로 공부하였고, 율법을 전수한 열심의 사람입니다(행 22:3).
그 당시에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빌 3:6)라고 할 수 있는 바울은, 거만한 바리새인들 중에서도 자신이 있었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을 가장 큰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율법의 종으로, 죄의 종으로(6:15-22) 있을 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죄의 노예로 지내었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이면서 조물주 하나님을 배반하고, 자기의 결점만 드러내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아, 율법과 죄에서 자유를 받았습니다.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전 7:22-23)는 말을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았기에, 기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지위를 높이려고, 친구를, 사도 혹은 전도자로 나타냅니다. 그런데 바울의 자랑은, 자신을 격하시켜서 종이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겸손을 본받은 모습이라고 생각하여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를 버리시고, 인간의 몸으로 죄악 세상에 오셨으며, 베들레헴에서 마구간에 태어나시고, 나사렛에서 목수의 아들로 자라셨고, 병든 자와 낮은 자와 소외된 자들의 친구가 되셨으며, 제자들에게 발을 씻으라고 발을 내어 밀지 않으시고, 오히려 제자들의 발을 모두 씻어주셨습니다.
겸손하게 제자들의 발까지 씻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도 겸손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 복종하는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종이라고 말할 때, 주인의 신분을 대리할 때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종이란 주인을 위하여 진심으로 일하고 주인의 표정에 의하여 행동을 합니다.
주인의 중요한 임무를 맡아 주인의 대리와 같이 일을 합니다.
창세기에서 요셉이 애급으로 팔려가 종이 되었어도, 주인의 일을 맡아서 처리한 것들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종이 주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 주인에게 봉사하는 종은, 주인을 대표할 수 있다는 것은 바울이 종에 대한 관념의 비밀입니다.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소개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소개하면서, 처음에는 종이라고 소개 하고나서,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을 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진 말로서 특사를 말합니다.
특별한 사명을 위해 파송된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종이라는 신분이 사람들에게 자랑스러운 신분이 될 수 없으나, 사도라고 말할 때 특수한 지위나 자랑스러운 신분으로 느껴집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소개하는 것은, 로마교회의 성도들에게 자기를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사명자의 입장에서 소개한 것입니다.
사도가 되기 위해서는 “부르심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은 선택을 받았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종은 값으로 주고 산 자”이지만 사도는 “택함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의 핍박자로 다메섹으로 기독교인을 잡으러 살기등등하여 올라가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어, 종이요, 율법의 종이었던 그가, 예수의 종이 되었고, 택함을 받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보혈의 피로 값 주고 사신바 된 바울은 율법의 종, 죄의 종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고, 다메섹에서 택함을 받은 그는, 복음의 그릇으로 쓰임 받는 사도가 되어 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말할 때, 그때의 일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 모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갈 1:15-16). 그것은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은 것이나, 차이가 없습니다.
사도직이란 복음을 전하는 자격을 가진 자로서, 세상 지식이나 성경지식이 많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자의 사명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일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할 수 없으며, 말씀의 전파자가 될 수 없습니다.
사도가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말할 때,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사도입니다.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하나님의 일 말고 다른 목적을 가졌다면, 사도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사도가, 다른 자기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전도자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에게 전도하려할 때, 우리는 모르는 사람에게 전도하기 보다는 아는 사람들, 특히, 친구, 친척, 이웃들에게 복음증거하기에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기에 전도란 자신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전도여행 보내실 때, 둘 씩 둘 씩 짝을 지어 보내시면서, “병자를 고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고 하셨으며, “뱀과 전갈을 밟으며,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어할 권세를 주었으니,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눅 10:19)고 하셨습니다.
전도자가 복음을 전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 보내심을 받았다는 확신이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생전에 사도로 부르신 사람은 12사도입니다.
12사도는 제 1급 사도이며, 전도자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고 하면 사도 바울은 여기에 포함되지 아니합니다.
바울은 다메섹에 올라가다가, 예수님을 환상 가운데 만나서 사도가 된 사람입니다.
그 후 바울은 3차에 걸쳐서 전도여행을 다니며, 아시아와 마케도니아와 유럽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바울은 복음전파를 사명으로 당연한 일로 알고 확신 있게 전하였던 것입니다.
갈라디아서와 고린도후서에서 자기가 사도인 것을 바울은 말합니다.
그러나 사도는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복음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고전 1:22-23,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라고 바울은 기록했습니다.
바울은 지식에서나 재능에서도 뛰어났으며 훌륭한 교양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말합니다.
바울이 이렇게 고집스럽게 복음만을 주장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사도와 복음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사도는 복음을 위해서 부름을 받고, 복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의 임무는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하나님과 인류가 화목하게 하도록 원하는 일을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복음이라는 낱말은 기쁜 소식을 가지고 온 사자에게 주는 보수입니다.
그것이 변하여, 기쁜 소식, 그 자체를 가리켜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하는 것은 좋은 충고를 듣거나 지식을 배우거나 지혜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소식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이사야 61:1-3,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이사야 52:7-8,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들을지어다 너의 파수 군들의 소리로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일제히 노래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온으로 돌아오실 때에 그들의 눈이 마주 봄이로다” 했습니다.
세상에는 기쁜 소식이 많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이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을 살려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으로 오셔서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 그 이상의 기쁜 소식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복음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죄는 미워하십니다.
죄를 미워하시기에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속에는, 공의가 있고, 공의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어서, 하나님의 공의가 근원이 되어서 인간에게 전해진 생명의 소식이 바로 복음인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전도를 하려고 할 때, 시대의 변천에 따라 무엇을 전할까? 망설이지만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독생자 예수를 증거 하여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도를 세우신 것은 복음 증거의 목적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피로 값 주고 사서 종을 삼으신 것은 복음을 증거 하게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교회를 세우신 것은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함입니다.
종이나 사도나 택함을 받고서도, 복음 증거와 상관이 없으면, 빛과 소금의 사명을 잃은 자이며, 빛 잃은 등잔은 등경 위에서 내려질 것이고, 맛 잃은 소금은 길에 버려진 채 사람들에게 밟힐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복음 증거에 힘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