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5
2010-03-13 09: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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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예수님이 “나를 따르라”고 하신 말씀을 자신도 할 수 있는 지도자적인 입장에서 “나를 따르라”고 외치기 쉽다.
그러나 예수님은 앞서서 가시면서 자신의 행함을 보고 배우라는 것이었다.
목회자는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은 자임을 망각하고 명령자인 것처럼 권위를 가지려고 생각하기 쉬운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경건하고 거룩하게 빛을 향해 산다고 할지라도 어리석고 부족한 인간이기에 허물과 그림 자가 따르고 냄새나는 인간임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예수님처럼 “나를 보고 나를 따르라”고 자신 있게 말 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밝은 태양을 향해 서있으면 흐린 날씨에는 그림자가 옅으게 드리어지지만 태양이 밝게 빛나면 빛날수록 뒤에 드리어지는 그림자는 더 짙게 깔려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 아무리 밝게 살아가려고 해도 세상이 온통 어두우면 허물과 그림자가 흐리게 희석되지만 세상이 밝으면 밝을수록 뒤에 깔려지는 허물과 잘못의 그림자는 짙게 드러나는 것이다.
목회자는 군대의 상관이 아니다.
종들을 부리는 지시자이거나 명령을 내리는 하달자도 아니다.
지시자이거나 명령자인 것처럼 “이것을 해라 저것을 그렇게 해라”하고 명령이나 지시를 하려고 해서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빛나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고 나타내려고 하기 보다는 자기가 서있는 자리에서 스스로 낮아지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아는 겸손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목회자라고 해서 명령만 하는 왕같은 지도자가 되려고 하기 보다는, 양떼를 인도하는 목자의 심정으로 해야 할 것이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말하기를 ‘그의 복음은 예수께서 들려 올라가실 때까지의 행함과 가르침, 이라고 요약해서 말했다.
목자는 언제나 자기 양떼 하나 하나를 살펴보면서 건강상태와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알아 행함으로 이끌어 가고 말씀으로 가르치고 인도하는 사명자이다.
굶주린 양들을 푸른 초장으로 인도해 가서 배불리 먹이고 목이 마르면 시냇물로 인도하여 마시게 해야한다.
행여나 실족하거나 무리에서 떨어져 곁길로 가는 양이 있으면 바르게 인도하고 상처를 당한 양이 있으면 싸매어 주고 치료해 주는 것이 목자의 사명이다.
사나운 맹수가 접근하지 못하도록 항상 감시하고 지켜 줘야한다.
목회자가 많은 성도들을 이끌어 갈 때 어떤이는 이단에게 속아 넘어가거나 무신론 주의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일일이 다 감시하고 보살피기에도 어렵다.
그렇다고 그들을 버려두지도 못하지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하고 명령하거나 책망하지도 못한다.
이미 지도자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거부하는 성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을 지시하려고 하거나 명령하려고 하는 지도자이기 보다는 진리와 말씀으로 설득하고 실천하여 그들이 요구와 바램이 무엇인지를 찾아 불만을 채워 주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상처가 나고 아픈 곳을 싸매어 주는 사랑의 목자를 양떼들은 기대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