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강해 5
2010-03-07 09: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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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바울 사도는 자신이 그리스도에 대한 과거의 거칠었던 행위를 언제나 마음 아프게 생각하고 있습니다(행 7:58-8:2). 사울은 교회를 핍박하는 일에 앞장을 서서 성도들을 죽이고 체포하는 데 동참했던 사람입니다.
바울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알지 못하고 예수를 배척하고 핍박하며 체포와 죽임을 찬성하였던 그가 예수님의 은혜로 과거의 죄인 된 사울이 복음의 능력으로 변함을 받아서 바울이라고 하는 새 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자신은 죄인의 괴수이지만 자신을 택하시고 세우셔서 이방인의 사도가 되게 하신 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예수를 배척하고 핍박하였으나 예수님은 바울을 버리지 않으시고 오히려 택하셔서 사도로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자신을 택하여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언제나 자랑하고 모든 인류가 믿고 따라야 할 최고 최상의 목표임을 선언하고 자랑합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렇습니다. 바울이 증거 한 것처럼 우리가 믿고 구원을 받게 된 것은 바로 우리가 스스로 된 것이 아니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요 사랑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요 15:16).
우리는 예수님이 택해주심을 받은 것만으로도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복을 주시고 상을 주시려고 택하신 것이지 저주를 받고 멸망을 받게 하려고 하시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매를 맞으시고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은 우리의 죽음을 해결하시기 위함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증거 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사 53:4-6).
우리가 당해야 할 슬픔을, 예수님이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징벌을, 예수님이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맞아야 할 매를, 예수님이 맞으셨습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고난을, 예수님이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허물 때문에 예수님은 채찍에 맞고 굵은 쇠못에 박히셨습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예수님은 옆구리에 창으로 찔리셨습니다.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상처를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우리가 당해야 할 징계를 예수님이 받으신 것입니다.
그 때문에 우리의 죄가 사함을 받았고 멸망에서 구원을 받고 죽음에서 생명을 얻었으며 평화를 누리고 나음을 입게 된 것입니다.
어디 그뿐 입니까? 죄인의 괴수 중에서도 괴수인 우리들을 택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며 바울의 자랑은 우리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오신 선물입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베푸신 선물입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일반적인 선물로서 모든 신자들에게 베풀어 주십니다.
은혜를 헬라의 원어로 ‘카리스’(χαρις)라고 하는데, “총애” “호의”를 뜻하며 공로 없이 값없이 받는 선물이며 사랑을 뜻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자발적이며 제한 할 수 없는 사랑이다”고 그린(Green)은 말했습니다.
“은혜는 하나님이 사람과 같이 즐거워하며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기뻐한다는 이해 할 수 없는 사실이다”고 바츠(Barth)는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원죄와 우리의 자 범죄 스스로 지은 죄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위에 전가시켜서 사함 받게 해주신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혜이십니다. 그러므로 남달리 구원의 은혜를 받은 성도들은 감격스러운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기뻐 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죄를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 전가시키셨으며 사망도 전가시키셨고 지옥의 고통도 전가시키셨습니다. 그 대신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과 거룩함을 덧입게 하셨습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담당해 주셨다고 하는 것만도 감사한데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씻어주시고 기억도 하지 않으시며 동에서 서가 먼 것같이 죄를 옮기셔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 버리신 것 같이 기억도 아니 하십니다(요일 2:12, 렘 33:8, 시 32:1, 시 103:12, 렘 31:34, 사 1:18-19, 38:17, 44:22, 미 7:19, 롬 5:11). 그러니 그보다 더 큰 은혜가 어디에 있으며 그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사도의 직분을 받아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일반적인 선물로서 모든 신자들에게 주십니다. 그러나 사도직은 하나님의 특수한 은혜로(고전 3:10, 15:9-10, 엡 4:10), 특수한 자에게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먼저 신자가되고, 그 후에 사도가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은혜를 받은 다음에,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사도라는 말은 헬라의 원어로는 ‘아포스톨로스’(ἁποστολος)라고 하는 말로서 ‘보내심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사도직을 주시는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은혜와 사랑과 택하심을 하나님으로부터 예수님을 통하여서 주십니다.
이것은 성경적인 질서요 진리요 축복입니다.
바울은 구원의 은혜를 받은 뒤에 그리스도의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 영생의 복음을 인류에게 전파할 사명을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중개가 없이 하나님과 직접 통화를 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거짓말쟁이 인줄로 알아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하나님과 교제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러기에 아버지와 자녀들 사이에는 직접 교제가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중개가 없이 하나님과 직접 교제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모든 은혜를 예수님을 통하여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지막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무리 유창하고 능속하게 기도를 잘하여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 아버지께 응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은혜를 받기 전에 체험 없이 복음 증거의 목사나 전도사나 복음 증거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그는 문제가 있는 사람입니다.
은혜를 받지 못하고 어떻게 은혜를 끼치며 구원의 확신이 없이 어떻게 구원을 외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겠습니까?
“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그러므로 사단의 일군들도 자기를 의의 일군으로 가장하는 것이 또한 큰 일이 아니라 저희의 결국은 그 행위대로 되리라.”(고후 11:13-15).
구약시대의 제사장직은 아버지를 이어서 아들이 제사장 직을 계승하는 세습제도였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직은 하나님께서 직접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 그 계급이나 지파의 구별됨이 없이 학문이나 교육의 구별도 없이 선택하고 부르셔서 사명을 주셨습니다.
신약시대의 사도직도 구약시대의 선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선택을 받아 예수님께 교육을 받고 예수님의 부활을 만나본 사람들이 전도의 사명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도들은 대체적으로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들이었고 거의가 갈릴리 태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지도 않고 부르심을 받지도 아니하고서도 목사가 되고 종이라고 자처하며 이단설을 외치고 교계를 혼란시키는 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교회의 직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의 직분들도 사람에게 받은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아서 바른 은혜와 사명에서 충성하고 섬기고 봉사하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스스로 장로가 되고 스스로 목사가 된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장로나 목사는 교회의 절차를 따라서 과정을 거치고 교회의 법을 통과한 뒤에 안수를 받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는 그러한 절차와 규례를 거치지 않고 스스로 장로가 되고 목사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는 일이며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괴롭히고 멸시하고 때리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한 사람들은 이방인들이 아니요 죄인들이 아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율법박사들이 예수님을 비난하고 정죄하고 고소하고 돌로 치고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종교적으로 최고의 지도층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죽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교회를 어지럽히고 파괴하고 이단들이 일어나는 것은 이방인들이나 불신자들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직분을 받은 중직 자들이며 지도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을 받으면 교만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겸손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는 미덕을 보여야 합니다.
성경은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고 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생명의 면류관을 너희에게 주리라”(계 2:10)고 했습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
구약에서 익숙하게 나오는 구절(겔 20:14, 말 1:11)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그리스도에게서 그리스도에게로 하나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길을 따라가는 삶을 말합니다.
그리스도에 의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은혜와 사도의 직무를 맡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악의 세력과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믿음 안에서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누구든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한다는 것은 신앙을 얻기 이전이나 얻은 이후에나 하나님께 순종하는 동기나 상태가 조금도 변화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조금도 변화 없는 것이 신앙의 순종이라면 그리스도는 무엇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는지 알 수 없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앙에 들어온다는 것은 구원받는 것으로서 자유가 주어진 생활입니다.
이제는 과거의 노예들처럼 고통은 없어졌고 자유 안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순종만이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려고 할 때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다만 믿는 자는 그 순종이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믿음의 목표를 말하며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신성한 순환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존귀와 영광을 구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해서 위험을 무릅쓰고 목숨을 내어놓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을 복음에 귀의시키고 순종하도록 인도하기위해서 이였습니다.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모든 이방인으로 신앙에 복종케 한다는 말입니다. 사도직의 목표를 말하는 것입니다. 모든 이방인들을 믿음으로 순종하도록 하게하려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복음 전도는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그 이름을 영화롭게 하는데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위하고 그 다음은 백성들을 위하고 그리고 온 인류를 위하여서 입니다. 이것이 사도 적이며 복음적인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주 안에서 바른 자세입니다.
믿음은 순종하도록 만듭니다. 순종하지 않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성도의 신앙적 참 모습은 그 이름을 위하여 순종하는 참된 삶인 것입니다. 바울은 스스로 이방인의 사도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을 멸시하고 자신들은 선민임을 자랑했으나,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택함을 받은 것을 자인하면서 이방인들을 모두 이스라엘의 왕이신 예수님께 순종시키려고 노력하였고 충성하였던 것입니다. 그 때문에 바울은 대담하게 이방인 전도에 큰 사명을 안고 복음 전도에 전념하였던 것입니다. 그에게는 자기를 택하여 세우신 예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이방인들을 포함한 만민에게 전도하여 구원하는 것이 복음의 빚진 것을 갚는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증거 하지 않으면 내게 화가 임할 것이다” 이것이 바울의 복음 증거의 한 가지 이유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바울과 같이 복음증거의 불타는 사명과 열심으로 힘써서 복음을 증거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복음의 푸른 계절이 속히 이 땅에 임할 수 있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