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3
2010-03-04 09:00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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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역사상 알렉산드리아가 헬라신학의 중심지였을 때, 칼타고는 라틴신학의 중심지였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터틀리안(Tertullianus)은 160년 칼타고에서 출생하였는데, 그의 부친은 백부장이고 어머니는 이교도였다. 이러한 종교적인 갈등 사이에서 태어난 터틀리안은 청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갈등도 많았지만, 3, 40세가 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고 엄격한 도덕을 지키며 살았는데, 아내를 맞이하고 220년, 몬타노(Montanus) 교단에도 가입을 하였다.
당시 교회들은 규율이 해이한데 반하여, 몬타노교 신앙은 열심임으로 감화를 받았던 것이다. 그는 많은 논문을 남겼는데, 처음에는 헬라어로 집필을 시작하였으나, 후에는 라틴어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가 쓴 변증론은 204년 당시 모든 방백들에게 보내기 위한 것이고, 마르기온 공격서는 207년에 썼다.
그 외에도 “이단의 금제”(De Prescription Hermeticism) 등 30종의 논문이 있는데 아주 힘이 있고 논리가 정연하며 학문적으로도 빈틈없이 정확하였다.
그는 240년에 생애를 마쳤는데, 그가 남긴 논문들은 국민성으로나 교육적으로 알렉산드리아 파와는 다른 터틀리안 적인 신학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알렉산드리아 신학은 철학적이고, 라틴신학은 법률적이어서, 기독교철학과 조화하려고 하기보다는 차별하려고 하였다.
어떠한 문제든지 이성과 부합함으로 믿고 따를 것이지만 불가능함으로 확실히 다르다는 것이다.
속죄론의 기초인 죄악론은 인류의 조상이 불순종함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불화가 생겼다고 하였다.
영혼은 부모로부터 유전 받았다고, 유전설(Traditionism)을 주장하였고, 죄도 유전을 받았음으로 본래부터 죄가 육체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하였으며, 그리스도의 사업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인류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고 하였다.
또 신학사상 신 용어들을 많이 만들어 내었는데 신약(新約 New Testament)이라는 말과 3위1체(Trinities)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들어 내어 사용하였으며, 삼일신사상(三一神思想)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성령이 하나님과 성자에 대하여 제 3위에 처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가, 다시 나무를 육성시키는데 대하여 제 3위가 되는 것과 같고, 또 햇빛이 태양에 대하여 제 3위인 것과 같다고 하였다.
터틀리안이 신약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만들어 사용함으로, 자연히 성경은 구약(舊約 Old Testament)이라는 용어로 불러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