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특강 : 제 38 강
2007-04-17 01:53
관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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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신약 주석 시리즈 완간/ 난해 성구 해설/ 형통의 기도/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영문, 한글/ 설교집 17권)
진보와 보수를 망라하여 48권의 마가복음 주석서들을 대조 연구하며 집필한 필자의 \\'마가복음\\'(신약 주석 시리즈)을 매주 1회씩(주일저녁 또는 오후예배와 수요저녁예배)을 교인들에게 가르칠 수 있도록 매주 1회 가르칠 분량을 올릴 계획입니다. 여기에 예화나 실화를 첨가해서 사용하시면 더 유익할 것입니다. (아쉬운 점은 여기에 난하주나 헬라어나 문장 부호 등을 제대로 표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제 38 강>>
11. 세례 요한을 죽인 헤롯의 공포[6:14-29]
<비교 : 마 14:1-12, 눅 9:7-9>
제자들이 전도하러 나간 동안에 예수께서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셨는지에 대해 마가는 아무것도 기술하지 않았다. 그 동안의 시간적 공백을, 마가는 예수께 대한 세상 사람들의 평가와 예수께 대한 헤롯의 공포 그리고 세례 요한의 죽음의 기사로 채우고 있다.
“비교할 수 있는 양식들 가운데는 헬레니즘적인 순교자들에 대한 기록과 유다교적인 순교 보도가 있다. 전자는 재판 과정에서 순교자들에 대한 변호에 집중하고, 후자는 순교자가 율법 때문에 당하는, 그럼으로써 그의 경건함을 입증하는 고난을 서술하는 데 집중한다. 순교자는 오로지 율법에 위반되는 것을 거부할 뿐 아니라, 율법의 수호자처럼 행세한다. 그는 하느님의 말씀과 율법에 대항하여 싸우는 세상의 임금들과 군주들 앞에서 당당하게 증언한다. 이러한 순교자상의 요소들이 분명히 이 보도에도 나타나 있다”(J. Gnilka, pp. 313-314). 그렇다고는 해도, 그러한 이유 때문에 이 기사를 그러한 전승 중에서 인용하여 편집한 것으로 결론짓는 것은 너무 성급하다.
특히, 17-29절의 역사적 온전성은 진지하게 도전을 받아 왔다. 마가와 요세푸스(Josephus) 사이에 존재한다고 주장된 차이점들은 (1) 헤로디아의 첫 남편의 이름, (2) 요한이 사형당한 이유, (3) 투옥과 사형당한 곳에 관련된다.
(1) 레인(W. L. Lane)은 “요세푸스(Josephus)는 헤로디아의 첫 남편을 헤롯, 즉 헤롯 대왕과 마리암네 2세의 아들이며, 안티파스의 배다른 형제인 헤롯이라고 진술한다. 마가는 이 사람을 빌립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거의 모든 헤롯 대왕의 아들들이 ‘헤롯’이라는 이름을 가계의 칭호로 썼으므로(예 : 헤롯 아켈라오스, 헤롯 빌립, 헤롯 안티파스, 그리고 손자인 헤롯 아그립바) 꼭 모순이라고 할 것이 없다.”라고 하였다. 山口 昇은 “요세푸스(Josephus)는 헤롯 빌립을 헤롯으로만, 마가는 빌립으로만 일컬은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2) 레인(W. L. Lane)은 “헤롯은 요한의 지도력으로 인해 발생할지도 모를 정치적 소요를 두려워하여 세례 요한을 투옥하고 사형시켰다고 한 요세푸스(Josephus)의 보고는 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안티파스의 영역은 좁고 긴 베뢰아가 포함됐는데, 그 곳은 나바티아 왕국과 접해 있었다. 헤롯과 헤로디아와의 결혼은 먼저 아내인 나바티아의 아레타스 4세의 딸과의 이혼을 요구하였다. 그러므로 헤롯의 간통과 같은 결합의 비합법성에 대한 요한의 선언은, 헤롯의 영역의 동쪽에 있는 나바티아인들을 골나게 한 것만큼이나 심각하게 내부로부터 헤롯을 위협하는 폭동을 일으키게 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었다는 것이 확실하다.
요세푸스(Josephus)와 아주 다른 관심을 가진 마가는 헤로디아의 교활함을 강조한다. 이 강조는 요세푸스(Josephus)가 여인들에 의해 발휘된 능동적인 역할과 헤로디아의 일에 대한 행동에 있어서 그들의 음모들에 관하여 보고한 것과 전적으로 일치한다. 따라서, 이 설명에 대한 마가 설화의 역사적 정확성을 의심할 충분한 이유가 없다.”라고 하였다.
이 문제에 대해, 山口 昇은 “헤롯의 정치적 동기와 헤로디아의 개인적 증오가 요한을 죽인다고 하는 공동의 목적 때문에 공동 전선을 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라고 하였다. 실상, 이러한 야합은 언제 어디서나 있었다.
(3) 레인(W. L. Lane)은 “요세푸스(Josephus)는 헤롯이 요한을 사해의 북동쪽 모퉁이에 접하는 베뢰아의 남쪽 끝에 있는 마케루스 궁전이자 요새로 보냈다고 진술한다.”라고 하였다. 마가는 그 곳에 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 전승의 역사성을 부정하는 학자들은 21절의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 쌔”를 들어, 헤롯의 영역의 수도인 갈릴리 디베랴로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없다.
마가의 설화가 엘리야와 이세벨의 싸움을 생각나게 하므로 역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은, 예수께서 요한을 엘리야와 동일시하므로(9:11-13) 더욱 그럴듯하다. 또한, 에스더 이야기와 병행되므로 그 역사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하는 주장도 그럴듯하다. 그러나, 그러한 정도의 유사성 내지는 관련성을 가진 사건이나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통해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山口 昇은 “문학적으로 보아 비슷한 어조라고 하는 것만으로, 이 전승이 이 설화들에 기초한 창작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적인 추측일 뿐이다.”라고 하였다.
헤로디아의 딸, 즉 왕녀가 왕실 잔치에서 감각적인 춤을 추어 품위를 떨어뜨릴 리가 없다는 생각은, 헤롯의 가계가 도덕적으로 타락했었다는 사실을 보아 받아들일 수 없다. 이것은 그녀의 춤이 헤로디아의 간교한 지시에 의한 것(24절)임을 미루어 보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슈바이쳐(E. Schweizer)는 역사적 사건이 전설적 요소에 의하여 착색된 것으로, 세례 요한의 제자의 무리에 속한 사람이 요한을 엘리야의 재래로 보고 이 전승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뒷받침해 줄 만한 확실한 근거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결국 마가의 설화는 발생한 사건이 먼저 소문나게 된 것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레인(W. L. Lane)은 “마가는 그 당시에 말해진 것을 서술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가. 헤롯의 공포<6:14-16>
마가는 이 기사를, 【14】이에 예수의 이름이 드러난지라 헤롯왕이 듣고 가로되 이는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 하고로 시작한다.
예수님의 명성이 자자해지고, 헤롯 왕까지 듣게 된 것은 제자들의 갈릴리 선교, 특히 예수님의 눈부신 활동의 결과라 할 수 있다.
헤롯 왕은 헤롯 대왕(헤롯 1세)과 마리안느 사이에서 출생한 헤롯 안티파스(Antipas)를 가리킨다(마 14:1-7, 눅 8:1-19, 8:3, 9:7, 13:31, 23:7 -15, 행 4:27, 13:1. 참조 : 마 2:1-19, 눅 1:5■헤롯 대왕). 그는 헤롯 대왕이 죽은 후, 16세에 갈릴리와 베뢰아 전 지역의 분봉왕이 되었다. 그의 재위 기간에 대해, 헨드릭슨(W. Hendriksen)은 주후 4년~39년이라고 하나, 레인(W. L. Lane), 슈바이쳐(E. Schweizer), 山口 昇, 산너(A. E. Sanner), 이상근 님 등은 주전 4년~주후 39년이라고 한다. 그의 부친이 주전 4년에 죽은 것을 미루어 보아 후자가 옳을 것 같다.
엄밀히 말하면, 그는 일반적인 왕이 아니라 분봉왕이었다(마 14:1, 눅 9:7). “그는 후에 로마에서 왕의 신분을 얻으려고 했으나 실패하였다”(W. W. Wessel, J. Gnilka, p. 315). “마가가 그를 가리켜, 왕이라고 한 것은 그 지역의 습관을 따른 것이거나, 혹은 비아냥거리는 투였을 것이다”(W. L. Lane, W. W. Wessel).
그는 정치적 감각이 둔한 사람이었다. 이 점에 대해, 레인(W. L. L- ane)은 “그의 유대의 감수성에 대한 전적인 무시는 헤로디아와의 결혼뿐 아니라, 그의 수도인 티베리아스의 자리로 옛 공동 묘지를 선택한 데서 드러난다. 이 선택에 의해서 그는 결과적으로 유대인 정착자들을 축출시켰다. 그 까닭은 그 도시에서 사는 것은 의식적 율법의 관점에서, 유대인들을 영구히 부정한 상태가 되게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성격은 음모와 폭력과 존속 살해로 특징지어진 그의 집안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는 육욕적이고 간교하고 변덕스럽고 잔인하고 어리석고 무도하고 미신적이고 전제적인 영주였다(마 14:9, 눅 3:19, 13 :31, 32).”
헤롯 안티파스가 예수님의 소문을 들은 것이 너무 늦은 감이 있는데, 이는 “그가 거주했던 궁전■이곳은 사해의 동쪽 해변에 위치한 마카에루스 [요새]였을 것으로 추정■이 가버나움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W. Hendriksen).
헤롯 왕이 듣고 가로되(■καὶ ἔλεγεν)는 א, A, C, K, L, Δ, Θ, Π, ƒ1 사본 등을 따른 것이고 ; B, W 사본 등에는 “헤롯 왕이 듣고, 저희가 이르되”(■καὶ ἔλεγον)로 되어 있다. 사본들의 가치와 수로 보아 전자를 취해야 할 것이다. 전자는 헤롯 안티파스 왕이 말한 것을 나타내고, 후자는 일반 여론을 나타내는 것이다.
일부 여론을 반영하고 있는 예수께 대한 헤롯 안티파스의 판단은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도다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느니라라고 한 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것은 헤롯 안티파스의 미신과 죄책감을 가진 양심의 판단이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가(마 14:3, 눅 3:20) 결국 사형시켰다(6:17-29, 마 14:4 이하, 눅 9:9). 그 결과 내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지배할 수 없었다. 그의 생각은 항상 죄의 명령에 의해 유린당할 수밖에 없었다. 외적으로는 죄가 발견되리라는 것과 언젠가는 죄악의 결과가 자기를 사로잡을 것이라는 두려움 속에 살 수밖에 없었다. 한 마디로 말해, “헤롯의 미신과 죄책감을 가진 양심은 자신을 괴롭히는 유령을 만들었다”(E. P. Gould).
만일 그가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신 사실(3:13-17)을 알았거나, 세례 요한이 행하지 못했던 기사와 이적을 행하신 사실을 알았더라면, 예수님을 죽은 세례 요한이 환생한 존재로 오인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세례 요한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것으로 믿게 한 것은 예수님의 선교에 나타난 능력의 요소 때문이었다. “그런데 세례자 요한이 생전에는 기적을 행하지 않았었는데, 다시 살아남으로써 기적을 일으켰다고 보는 것인지, 또는 예수가 기적을 행함으로써 생전에 기적을 행했던 요한을 생각나게 한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J. Gnil- ka, p. 316 ).
그 당시의 사람들의 예수께 대한 판단에 대해, 마가는 【15】어떤 이는 이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는 이가 선지자니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 하되라고 하였다.
예수님이 엘리야라고 하는 여론은, 말라기 4:5의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와 결부된 것이다. 엘리야가 다시 온다는 것은 외경인 집회의 서(Ecc- lesiasticus) 48:10 이하에도 기록되어 있다.
바클레이(W. Barclay)는 “그러한 이론은 예수님 안에서 자기의 야망의 실현을 발견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판단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굴복하고 복종해야 할 대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할 대상으로 생각한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보다 자신의 야망을 더 생각한다.”라고 하였다. 예수님에 대해 옛 선지자 중의 하나와 같다고 하는 여론은, 다시 온 엘리야라고 하는 여론보다 더 낮추본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반적으로 당시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이해하지 못했다.
마가는 한 번 더 【16】헤롯은 듣고 가로되 내가 목 베인 요한 그가 살아났다 하더라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14절의 단순한 반복이 아니라, 설명 조의 반복이다. 헤롯의 말은 그 자신이 죄의식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동시에 죄에 대한 보응을 두려워하면서 살아왔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는 회개할 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