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89강 멸망의 가증한 것(13:14-20)

2012-10-26 20:06 관리자 1685
라. 멸망의 가증한 것<13:14-20>

마가는 이 부분을【14】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로 시작한다.

가증한 것(브데뤼그마, βδέλυγμα)은 구약성경에서 ‘혐오의 대상’, 특히 ‘손으로 만든 우상’을 나타낸다.1)

멸망의 가증한 것(τὸ βδέλυγμα τής ἐρημώσεως)은 ‘황폐하거나 황량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라는 말과 같은 뜻인데, 다니엘 9:27, 11:31, 12:11에 나타난다. 또, 제 1 마카비서 1:54, 6:7에도 같은 의미로 나타난다.

선지자 다니엘의 예언은 주전 168년2)에 수리아 왕 안티오커스 에피파네스(주전 175-164년)가 예루살렘 성전의 번제 제단 위에 가증스런 파멸의 우상을 세운 일(제 1 마카비서 1:54, 6:7)을 가리킨다는 견해가 일반적이다.3)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신탁이 한 가지 이상의 역사적 상황에 적용될 것이라는 사실에 대한 암시이다.

그와 같은 신약 시대의 사건으로는 주후 40년에 로마 황제인 갈리굴라가 예루살렘 성전에 자신의 초상을 건립하도록 조치한 일을 들 수 있다. 이와 같이 의도적인 신성 모독은 대대적인 유대인들의 저항 때문에 페트로니우스 총독에 의해 지연되다가 황제가 암살당함으로써 실행되지 못했다.4)

그 외에도 주후 70년에 로마 군대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함락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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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 Forester, ThWnt I. 598-600”(J. Gnilka, 하권, p. 259).
2) J. D. Stevens, E. Bickersteth, A. E. Sanner, D. W. Burdick, 黑崎幸吉, 이상근. 비교: W. W. Wessel, 山口 昇, 마경일 들은 주전 167년이라고 하고, 공동번역성서는 주전 167년 12월 8일이라고 한다.
3) J. Calvin, E. P. Gould, W. Hendriksen, E. Bickersteth, D. W. Burdick, J. D. Stevens, A. E. Sanner, W. W. Wessel, 黑崎幸吉, 山口 昇, 이상근, 마경일.
4) “Josephus, Antiquities, XVIII. 257-309.” in W. Hendriks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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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을 들 수 있다. 그 때에 로마 군대는 독수리가 그려진 휘장을 들고 성전에 쇄도했었다(E. Bickersteth, R. A. Cole, 이상근).

그러한 사건은 앞으로도 있을 것인데, “그 모든 사건들은 모든 거룩한 것에 대한 최종적인 적그리스도의 신성 모독을 예시하는 것이다”(W. Hendriksen).

서지 못할 곳은 예루살렘, 특히 예루살렘 성전 또는 성소를 가리키는 것이다(마 24:15). {요세푸스(Josephus)는 “더욱이, 그 도시가 점령되었을 때, 로마인들은 자기들의 우상들을 성전으로 가져와서 동쪽 문 위에 두고 희생 제물을 바쳤다”(Jewish Wars, vi권 6장 § 1.)1)라고 하였다.}(마 24:15의 주석).

괄호 속에 있는바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는 “마가가 이 강화를 씀에 있어서 ‘소묵시록’이라고 불리는 성문 자료를 사용한 증거로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말씀하고 계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읽는 자는······등0이라고 말한 것은 모순되기 때문이다”(山口 昇). 그러나 마가가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하면서, 특별히 독자들에게 깨닫도록 강조하기 위해 삽입한 것으로 보면 문제될 것이 없다.2) 이 마가의 기록을 마태가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는 세상 끝에 환난을 피할 길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 최후 심판 때에는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도망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주후 70년에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전에 로마 군대가 쳐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두고 하신 것이다.3) 유대의 산에는 굴이 많아서 전쟁 때에는 아주 좋은 피난처가 되었다(창 14:10, 19:17, 삼하 17:9, 왕상 22:17, 렘 16:16, 슥 14:5, 합 11:38). 그러므로 예수님은 로마 군대가 쳐들어오면(눅 21:20), 속히 산으로 도망하라고 명령하신 것이다.

주후 68년, 로마의 웨스파사누스[베스파시안]가 예루살렘으로 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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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in A. Barnes.
2) 黑崎幸吉, 山口 昇, A. E. Sanner, 마경일 들도 마가가 삽입한 것으로 본다.
3) R. Earle, W. W. Wessel, W. Hendriksen, 山口 昇, 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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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 때(이상근), 대부분의 유대인들은 정반대로 행동하여 성안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소름끼치는 피의 홍수를 초래하였다(W. Hendriksen). 그러나 성에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이 예언을 기억하여 베뢰아의 펠라(Pella)로 피신하였다.1)

예수님이 로마 군대에 의한 끔찍한 재난을 긴급히 피해 목숨만이라도 부지해야 할 것을 말씀하신 것에 대해, 마가는【15】지붕 위에 있는 자는 내려가지도 말고 집에 있는 무엇을 가지러 들어가지도 말며【16】밭에 있는 자는 겉옷을 가지러 뒤로 돌이키지 말지어다라고 하였다.

그 날이 오면 지붕 위에 있는 자는 물건을 가지러 집(2:4의 주석을 보라.)에 들어가지 말고, 밭에서 일하는 사람은 겉옷을 가지러 집으로 돌아가지 말라는 것이다. 집에 들를 여유조차 없을 정도로 급박한 환난이므로, 물질에 연연하지 말고 피신하라는 것이다.

겉옷은 오늘날의 아라비아인의 아바(aba: 소매 없는 겉옷)와 같은 것으로 두터운 울의 장방형의 천을 둘로 접고, 앞에서 손이 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겉옷을 입지 않고 어른 앞에 나서는 것은 실례가 되었다. 밤에는 겉옷을 입고 자기 때문에, 전당 잡은 경우라도 해가 지기 전에 돌려주어야 했다(출 22:26, 신 24:13).

{유세비우스(Usebius)는 “이러한 예언들로 경고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펠라(Pella)와 요단강 너머 다른 지역에까지 피신했으므로, 예루살렘에서 죽은 그리스도인이 한 명이라도 있었다는 증거가 없다.”(Hist. Eccl., 3권 6장)라고 하였다.2)}(마 24:18의 주석).

계속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가는【17】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안티오쿠스 4세(제 1 마카비서 1:60-61)가 어린이들이 있는 여인들을 야만적으로 대했던 일에 근거한 전형적인 묵시문학적 표현이다. 일반적으로 전쟁과 같은 재앙의 때에는 임신한 여인들과 젖먹이는 여인들은 신속하게 피신하기 어렵고, 또한 당하는 화(禍)도 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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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Eusebius, Ecclesiastical History, III. 5:3, in W. W. Wessel. 참조: W. Hendriksen은 확실한 역사적 증거가 없는 이론이라고 한다.
2) in A. Bar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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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다. 그러한 여인들에 대한 연민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계속된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가는【18】이 일이 겨울에 나지 않도록 기도하라라고 하였다.

이렇게 당부하신 이유는 겨울에는 추운 우기로 길이 진흙탕이 되고, 하천 등0이 범람해서 피난하기가 더욱 힘들기 때문이다.
마태복음에는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마 24:20)라고 했는데, 마가는 아마도 이방인 독자들을 생각해서 ‘안식일에’를 생략한 것 같다. 안식일에는 이천 규빗(약 1㎞) 이상의 여행을 해서는 안 됐기 때문에, 피난 가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이다(참조: 출 16:29, 느 13:19-22).

그 이유를 설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가는【19】이는 그 날들은 환난의 날이 되겠음이라 하나님의 창조하신 창조부터 지금까지 이런 환난이 없었고 후에도 없으리라라고 하였다.

다니엘 12:1에 근거한 표현으로, 종말 때의 대 환난(틀립시스, θλίψις)을 가리키는 것 같다.1) 예수님은 이 종말의 전형적인 징표로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의 대 환난을 연상하셨을 것이다.

요세푸스(Josephus)는 그때는 마침 유월절로서 예루살렘에 운집한 유대인들 중에 110만 명이나 되는 엄청난 수의 유대인들이 죽고, 9만 7천 명이 로마 각지로 사로잡혀 갔다고 하였다.2) {그는 로마 군인들은 유대인들을 칼과 창으로 죽였고,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불에 태워 죽였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기근으로 굶어 죽은 유대인들도 적지 않았고, 심지어 자기 유아를 구워 먹는 끔찍한 일까지 있었다고 기록하기도 하였다(참조: 신 28:53, 56, 57).3)}(마 24:21의 주석).

결론적인 예수님의 말씀에 대해, 마가는【20】만일 주께서 그 날들을 감하지 아니하셨더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어늘 자기의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그 날들을 감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마지막 때의 환난이 너무도 극심하기 때문에 그 기간이 길어지면 결국 모든 인간이 견디지 못하고 배교할 것이며, 따라서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인데 하나님께서 믿음에 의해 택하신 백성을 위해서 그 기간을 줄이신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의 택하신 백성은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키는 것이다.

종말 때의 대 환난의 날들을 감하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멸망 때에도 같은 자비를 베푸셨다. 긴급한 개인 사정 때문에 로마의 장군들이 급히 귀국했으므로(A. E. Sanner), 유대인 중 10분의 1이 살아남을 수 있었다(이상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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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W. W. Wessel, J. D. Stevens, 黑崎幸吉, 山口 昇, 마경일.
2) in 이상근.
3) in A. Barnes.

필자의 www.newrema.com의 저서들: 신약 주석(마-계 8610쪽)/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Salvation Before Jesus Came/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설교집 20권/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다수의 논문들 HP 010-6889-3051 T 02-426-3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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