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나는 이름의 스승, 혹은 슬픈 4월

작성자
백승학
작성일
2021-05-12 18:35
조회
242
- 빛나는 이름의 스승, 혹은 슬픈 4월

(백승학목사의 기독교적 장편 성장소설 '오랜 날의 길목' 중에서 )

그해 겨울, 해외 여행을 가자고 남편 상후가 제안했을 때 수진은 마치 꿈을 꾸듯이 설렜다. 아마도 수진의 이러한 설렘은 어린 시절부터 수진의 가슴에 담겨있던 본연의 기억 내지는 진심과 연관이 있었을 것이다.

여섯 살이던 수진을 보육원에 맡기러 가는 길에 엄마는 돈 벌러 가는 곳이 아주 먼 나라라서 아무래도 오래 걸릴 테니 조바심 내지 말고 있으라고 내내 당부를 했었다. 

하지만 수진은 끝내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머리를 끄덕이지도 못했다. 보육원으로 가는 버스에 막 올라 타려는 순간부터 시작된 아랫배의 뻐근하고 서늘한 통증 때문이었다. 

엄마에게 아랫배가 아프다는 말을 진즉에 하려고 했으나 그 말 조차 입 속에서만 자꾸 맴돌았다. 체기가 있거나 배탈이 난 것과는 다른 종류였다. 

견디기 어려운 것도, 그렇다고  견딜만한 것도 아닌 만큼의 묘한 통증은 엄마가 하는 말에 내내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수진은 그날, 버스 안에서 엄마가 들려준 말 중에 데리러 오려면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조바심내지말고 잘 지내라는 말 외에 어떤 말도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엄마가 당부하는 말에 내내 대답이 없는 수진에게 엄마의 말이 핑계나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키려는 듯이 구체적으로 또박 또박 일러주던 멀다는 나라의 이름과 지명이 까무룩히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수진은 그 날, 마지막으로 보육원 문을 열고 나가려다가 몇 번이고 돌아서서 눈물범벅인 채로 하염없이 자신을 바라보던 엄마의 시선만큼은 늘 생생하여서 결코 잊혀지지 않았다. 

어쩌면 수진은 처음부터 그것이면 된다고 여겼는지도 모른다. 

그날 그렇게 자신을 향해 보내던 엄마의 시선과 관련된 본연의 기억 내지는 진심에 기대어 지금껏 견뎌오지 않았던가. 

또한 보육원에서 지내는 동안 뿐 아니라 그 이후에도 견디기 힘든 외로움이나 그리움이 밀려올 때마다 어김없이 다가들던 아랫배의 은근하면서도 끈질긴 통증도 수진에게는 오히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견디게 하는 역할을 해 주었다.

그렇더라도 한편으로 수진은 엄마와 헤어지던 날 엄마가 당부하던 것과 더르게 엄마가 자신을 데리러 올 때까지의 기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나름 확신했던 것 또한 사실이었다. 엄마와 함께 살던 시절에 틈만 나면 자신의 이름을 불러대며 자신의 위치를 수시로 확인하던 엄마가 아니던가. 

오래 지날수록 견디지 못하는 것은 수진이 아니라 당연히 엄마일 거라고 마음으로 확신했었다. 

그러나 막상 보육원에서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고 또 새로운 해가 가는데도 엄마는 수진을 데리러 오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수진은 엄마가 자기를 데리러 오지 않은 것은 엄마에게 특별한 사정이 생겼기 때문일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그 특별한 사정이라는 것이 어쩐지 불길하고 어두운 쪽일 것이라는 생각에 자꾸 사로잡히곤 했다. 그럴 때마다 수진의 마음은 자꾸만 움츠러 들었고 덩달아 어깨마저 움추러드는 바람에 자라목처럼 우수꽝스러운 자세로 걸어다니기가 일쑤였다. 

불길하고 어두운 상상이란 일테면 텔레비전 드라마 같은 데서 보듯이 어떤 연유로 엄마가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혹은 어떤 연유로 누명이라도 쓰고 이국의  감옥에 장기간 갇혀 있거나, 또는 자신을 데리러 오다가 비행기가 추락을 한 것은 아닐까하는 것들이었다.

수진은 상후가 조근 조근 말해주는 여행할 나라의 이름과 대략적인 위치 따위는 귀에도 들어오지 않았다. 물론 보육원 시절에 자주 겪곤 했던 복통이 있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와는 전혀 반대 되는 이유에서였다. 그렇게 금방 자신에게로 다시 와 줄 것 같았으나 여직 오지 못하고 있는 엄마를 만나러 가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히며 그토록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그곳이 어디든지 상관이 없다고 여겨지는 것 또한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애초에 엄마가 건너간 나라의 이름도 모르고 있으려니와  그저 지금 가려고 하는 그 나라가  엄마를 만나러 가는 곳이라는 환상이 온통 수진의 가슴을 채우고 있었다. 

여행 둘째 날, 목적지인 세비앙 마을로 가는 길에 많은 눈이 내렸다. 상후는 모던 여행사의 45인승 버스가 느린 속도로 움직이는 동안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 마을의 눈 내리는 전경과 함께 눈 쌓인 삼나무 숲을 흔들어대는 바람의 움직임에 온통 심취해 있었다. 

꽤 오랫동안 쉴 새 없이 퍼붓던 눈이 조금씩 그치기 시작했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햇살이 온 시야를 물들이고 있었다. 

보이는 모든 것들이 하얗게 빛났다.

상후는 하얀색이 저토록 선명하고 눈부신 것이었다면 무채색이 아닌 유채색으로 분류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얀색이 저토록 선명하고 눈부신 것은 모두 다 햇빛 덕분이겠죠?”

옆에 앉은 수진이 불현듯 물었다. 상후가 화들짝 놀라자 왜 그렇게 놀라느냐고 물었다. 수진이 마치 상후의 마음을 읽고 있는 것처럼 말을 하는 것은 여직 살아오면서 드문 일도 아니었다. 

“당신, 자는 줄 알았거든.”

“안 잤어요. 눈 내린 아름다운 풍경을 보느라 눈부셔서 눈을 작게 떠서 자는 것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요.”

“당신, 그거 알아?”

“뭘요?”

“저녁에 뉴스를 보려고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연속극을 보다가 자던 사람이 어느새 눈을 뜨고서 ‘나 안 잤어. 지금 드라마 보고 있는 중이었어.’하며 다시 연속극이 나오는 채널로 돌리라고 하는 것 말야.”

“누가 그랬는데요?”

“우리 엄마.”

“나로서는 당연히 모르죠.”

“아, 미안! 당신이 보육원 출신인 거 깜박했어.”

상후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조심스레 말했다.

“미안해 할 것까지는 없어요. 엄마와 헤어진 것이 여섯 살 때니까 텔레비전이 없었던 거지 엄마와의 추억이 없는 것은 결코 아니니까요. 우리 엄마가 얼마나 미인인지 아마 당신은 짐작도 못할 거예요. 하긴 나를 보면 알 수 있긴 하겠네요. 아무튼  영화배우하고 똑같이 생겼어요.”

상후는 “영화배우 누구?”하고 물어보려다가 그만두었다. 

얼마 후 수진은 잠이 들었다. 상후는 수진이 작은 소리로 코를 고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때 홀연히 어디로부터인가 꿈인 듯 생시인 듯 익숙한 노래 한 구절이 흘러나왔다. 

흘러나온 노래는 서서히 그리고 어느새 버스 안을 가득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아주 오랜 시절의 노래였다. 상후는 어느 한 시절의 이미지가 그 노래를 배경으로 가슴에 펼쳐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지 속에는 어머니가 강물을 바라보며 말없이 앉아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 옆에 상후와 두 동생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마치 푸르고 맑은 강가에 어미 양과 세 마리의 새끼양이 앉아 있는 풍경을 연상케 하는 이미지였다. 

그때 “여보세요!”하며 누군가 전화를 받았다.  잠에 깊이 취해 있었는지 꽤 긴 시간 동안 노래가 흐르고 난 뒤였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버스 뒷좌석 쪽에 앉은 중년 여인이었다. 아직 잠에 취한 목소리였다. 상후는 누군가의 휴대폰 신호음을 통해, 그것도 이국의 버스 안에서 저 노래를 듣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상후는 마치 예기치 않던 누군가로부터 귀하고 소중한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준태는 상후에게 저 노래를 기타로 완벽한 연주를 할 수 있을 때 까지 차근차근 세심하게, 그리고 오랫동안 공들여서 가르쳐 주었었다. 상후가 중학교 1학년이던 해였고  엄마가 죽은 4월의 그 잔인하고 만연하던 봄이 평소보다 몇 백 분, 몇 만분의 1 만큼이나 느리게 지나가고 난 후의 초여름이었다. 

세월이란 느리게 가든 빠르게 가든 속절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할 수 있는 일도 없었고 하고 싶은 일도 없었다.

상후가 준태에게 불려 나간 곳은 마을 위쪽의 빈 공터였다. 준태는  상후보다 네 살이 많았고 상후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상후는 당시 준태가 저 노래를 기타로 가르쳐 주겠다며 빈 공터로 자신을 불러냈을 때 그저 막막한 생각만 앞섰었다. 처음 배우는 기타인데다가 아무리 봐도 결코 쉬워 보이지 않을 곡이어서만은 아니었다. 

상후로서는 그저 꿈이라면 좋았을 일이 꿈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라는 사실로 인해 모든 것에 무력하고 모든 것에 기진맥진하던 시기여서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상후는 곧 준태형이 들려주는 기타의 독특한 음색에 마음을 조금씩 빼앗기기 시작했고 어느새 준태형으로부터 저 노래를 한 마디씩 배워나가는 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기타를 배우는 동안 상후는 팽팽한 기타 줄을 지판에 눌러서 짚는 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느라 손가락 끝이 늘 따가웠을 뿐 아니라 몇 시간을 같은 자세로 앉아있곤 했기에 엉덩이와 허리와 넓적다리 또한 늘 뻐근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준태형이 번역해 주는 저 노래의 가사 때문에 마음이 시리고 아팠었다. 

하지만 빛나는 것도 있었다. 우선 상반리의 아늑한 공터에 내려앉던 가득한 햇빛과, 가향천 상류의 물빛과 세고비아 기타의 선율이 그것이었다. 

그렇더라도 그 해 초여름에 가장 빛난 것은 스승이라는 이름의 준태였다. 상후는 그 당시 준태라는 이름이 빛날 준 자에 빛날 태자일 것이라고 확신할 정도였다.

그때  빛나는 이름의 스승이었던 준태는 우선 상후의 양 쪽 열 손가락이 마치 알콜 중독자처럼 후둘 거리는 증상이 기타를 배우는 데 결코 장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상후에게 따뜻한 어조로 말해 주었다. 

그리고 빛나는 이름의 준태는 한 술 더 떠서 피크로 미끄러지듯이 쳐도 조금씩 느려지거나 더듬거려질 법한 16분 음표의 아르페지오 악보를 고집스럽게도 손가락으로만 연주하도록 가르쳤다. 

“피크로 치면 아무래도 손맛이 안나. 손가락으로 쳐야 손맛이 나지. 그러니까 상후야. 너는 앞으로도 피크 말고 손가락으로 치는 것만 생각 해, 알았지?  그리고 상후야! 손가락을 하나하나 자신 있게 줄 위에 올려놓고 난 후에  각 손가락들이 자신의 역할을 잘 해낼 것이라고 네가 믿어준다면 네가 연주하는 게 아니라 네 손가락이 스스로 연주한다고 느껴질 만큼 익숙해지게 될거야,  알았지?”

또한 빛나는 이름의 준태는 이런 말도 했었다.

 “만약에 누군가의 손가락이, 일테면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이거나 아니면 심장에서 흘러나와 공급되는 피가 손가락에 조금밖에 흘러들어가지 못하거나 해서 손가락에 힘이 없고 후둘 후둘  떨리기까지 한다고 치자. 하지만 그런 사람도 그 후둘 후둘 떨리는 증상으로 후둘 후둘 리듬을 타면 오히려 더 멋진 연주를 할 수 있어. 그러니까 돛단배가 바람을 타듯이 손가락으로 리듬을 타면 되는 거야. 알았지?”

그때 상후는 너무나도 자주, 또한 간헐적으로 먼저 손가락들이 떨려오기 시작하면서 그 떨림과 흔들림이 팔꿈치를 거쳐 심장에까지 순차적으로 이어지곤 했었다.

 하지만 기타를 가슴에 갖다 내고 팔꿈치를 기타 모서리에 얹어놓고 손목과 손가락으로 기타 줄을 튕길 때는 신기하게도 그러한 증상이 사라지곤 했다. 

그때 준태는 왜 기꺼이 상후에게 빛나는 이름의 스승이 되어 주었을까? 왜 기꺼이 상후에게 그토록 정성을 다해 기타를 가르쳐 주었을까? 상후가 엄마를 잃고 난 후부터 양 쪽 열 손가락을 마치 사시나무 떨 듯이 간헐적으로 떨어대는 모습이 가여워 보였던 것일까? 

상후가 기타를 배우던 당시 준태네 식구는 널찍한 공터 아래의 언덕배기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 준태가 세고비아 기타를 처음 가지게 된 계기를 알기 위해서는 가향천 상류에 큰 물난리가 난 때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가향읍 언저리를 휘감아 도는 햇강의 본류에서 물길이 역류하자 가향천의 상류에서 햇강 나들목을 향해 내려가는 물길이 상반리에 갇혀서 전혀 움직이지 못했다. 상반리 주민들은 햇강의 본류가 가향천 상류의 물길을 그렇게까지 막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복두호의 평상시 수면이 서서히 사라지는 것을 시작으로 상반리의 80퍼센트 이상이 물에 잠겼다. 무지산 기슭으로 경사를 이루며 모여 있는 마을이 강의 먼 본류에서 역류하여 그만한 높이에 이르기까지  피해를 입은 일이 자연현상으로서도 드문 일이라며 각 신문사와 방송사가 연일 메인 뉴스로 내 보냈다. 

그 바람에 가향읍의 작은 마을 상반리의 홍수 소식은 나라 전체에 빠르게 알려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전국 각지에서 생활필수품을 비롯한 구호물자가 속속 전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상반리 공터에 산더미처럼 쌓인 구호물자들 틈에 뜬금없기는 했으나 뭔가 고귀한 분위기와 자태를 드러내는 기타 한 대가 섞여 있었다. 검은색 가죽 케이스를 열고 마을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기타를 꺼냈을 때 기타의 울림통  안쪽으로 세고비아라는 이름의 상표가 붙어 있었다. 

음악을 잘 모르는 사람의 눈에도 어딘지 가치가 있어 보이고 고고해 보이는 자태를 드러낸 세고비아 기타는 준태에게 돌아갔다. 나이가 아직 어리긴 하지만 상후에게 주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의견이 몇 사람의 입에서 나온 후 그렇게 하자는 분위기로 기울어지고 있을 때 준태가 제격이라고 강력하게 제안한 것은 상후 아버지였다.

그날 이후 준태는 기타와 함께 잠을 깨고 기타와 함께 잠이 들었으며 가향읍 인근에서 기타연주에 능하다는 사람을 수소문한 후 그를 만나러 수 십리 길을 걷는 것 쯤은 결코 마다하지 않았다.
출처)
https://greenword.postype.com/se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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