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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리더는 자기허명(虛名)관리부터...

작성자
오재영
작성일
2021-03-02 14:44
조회
437
지도자의 생명은 자기허명의 경계(警戒)에서.

최근 이 재철 목사의 유튜브 설교방송 중에 예화로 오래전(20년도 지난) 프로야구 두산베어스 김경문 감독의 모 일간지에 인터뷰한 내용이 생각을 소싯적으로 되돌리게 했다. 공주高의 포수로 첫 우승의 명성을 날리고, 그동안 N.C다이노스를 거쳐 지금은 국가대표팀 소속에 머물고 있는데...

그 내용으로...
“2004년도에 두산베어스에 부임한 김경문 감독은 5년 동안 포스트시즌 진출 4차례, 한국시리즈 준우승 3차례, 특히 작년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야구사상 최초로 우승을 일궈낸 명장(名將)입니다. 그 김경문 감독이 어제 자신의 인터뷰를 이런 말로 끝을 맺었습니다.

“지도자의 자기관리는 허명(虛名)을 경계(警戒)하는 것으로부터 시작 된다” 얼마나 놀라운 통찰력(洞察力)입니까?

어느 분야서든 한사람의 경륜이 쌓이다보면 그 사람에 대한 허명이 나기 마련입니다. 그때, 그 허명에 빠져서 虛名을 탐닉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몰락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허명은 문자 그대로 헛된 명성에 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릇 허명의 유혹에서 벗어나 매일 자기 자신을 바르게 가꾸어나가는 사람만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신앙도 똑같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겸손히 섬길 때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태로든 우리의 삶을 통해 역사 하십니다. 그때 그것이 마치 자기 자신의 능력으로 인함 인양 자기허명과 자기교만(自己驕慢)에 빠지는 사람은 날이 갈수록 하나님과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아무리 자신을 귀하게 쓰셔도 자기허명과 자기교만에 빠지지 않고 베드로처럼, 바울처럼, 일평생 하나님의 피조물 됨을 겸손하게 인식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중단 없이 계속됩니다.

독일의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나는 인간의 우상이 되기보다는 하나님의 눈이 주시하시는 한 마리의 벌레가 되고 싶다”고 고백했습니다. 사람은 조금만 이름이 나면 자기 虛名에 빠져 스스로 하나님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러나 벌레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虛名, 자기 교만에 빠지지 않습니다. 벌레는 언제나 하나님의 피조물의 자리를 넘어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헬무트틸리케가 나는 하나님의 눈이 주시하시는 한 마리의 벌레로 살고 싶다고 고백한 것은 일평생 어떤 순간에도 자기허명과 자기교만(驕慢)에 빠지지 않고 마치 벌레처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피조물로 살아가겠다는 의미의 고백이었습니다.

그때에만 생명보다 더 귀한 인생을 더 이상 의미 없이 낭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고 실천하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대체 누구입니까? 가정에서 내가 누구입니까? 일터에서 나는 누구입니까? 이사회 속에서 나는 대체 누구입니까? 언제 어디서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그렇게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할 그리스도인 됨을 잊지 마십시다.“

언젠가 서울여대 장경철교수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가 恩惠라 사용하는 단어를 세상에서는 재수, 혹은 운(運)이라 해야 알아듣는다고, 모두가 자신의 능력이나 실력과는 상관이 없는 분야로 은혜란 겸손을 전제로 하는 삶의 분야다. 세상의 출세한 이들은 재수와 운을 실력으로 포장하느라 수시로 바뀌지만 정상적인 그리스도인은 그리되어서는 안 된다. 사도베드로와 바울처럼,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야망과 안목의 정욕으로 사탄의 덫에 걸린 가련한 모습들이 우리를 서글프게 한다.

글을 마치며...

신학생 전도사시절 내 생애에 주님께서 축복으로 허락하신 멘토(mentor)께서 임지를 향하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 당시는 흘려들었었는데, 이담에 敎會옮기게 될 때 그때는 현재교회보다 약간 낮은 자리로 가도록해, 그리고, 큰 교회를 가게 되어도 본인 마음에 내가 저 교회 가서 “이 말씀(복음)을 꼭 전해야겠다.”그런 준비가 되어있으면 어느 자리 누구 앞에서든 무시당하지는 않아...



전체 4

  • 2021-03-03 07:51

    우리 믿는 이들은 '주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는 무리들입니다.

    한데 우리들 인생에게는 '이름'이 문제가 되기도 합니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읍과 탑을 건설하여 그 탑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삼하18:18 압살롬이 살았을 때에 자기를 위하여 한 비석을 마련하여 세웠으니 이는 그가 자기 이름을 전할 아들이 내게 없다고 말하였음이더라 그러므로 자기 이름을 기념하여 그 비석에 이름을 붙였으며 그 비석이 왕의 골짜기에 있고 이제까지 그것을 압살롬의 기념비라 일컫더라] 이런 때에 이름에 대한 태도를 살펴보면 그가 타락한 인생인지? 아닌지? 가름이 되기도 합니다. 게시판에 남의 이름을 함부로 소환해 게시하고, 제 맘대로 높이고 낮추는건 예의가 아닙니다. 또 '면전과찬은 비례'입니다. 이는 남의 '혼'을 불러내 억압하려는 비신앙적인 행동으로 판단됩니다.


  • 2021-03-03 11:28

    장로님, 의견에 동의하며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중생 없는 용서를 전하는 기독교...
    어느 신문기자가 구세군 창립자인 ‘윌리엄 부스’ 대장에게 물었습니다.
    “다가오는 미래에 닥쳐올 가장 큰 위험은 무엇이겠습니까?” 마침 윌리엄 부스는 나이가 많아 임종을 가까이 두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신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세계가 직면하게 될 가장 큰 위험은 중생 없는 용서를 전하는 철학적 기독교입니다.
    추상적인 지식만을 전하는 말만하는 철학적 기독교,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리스도 없는 교회입니다.
    교회라고 하지만 그 교회에 가서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 없는 정치, 지옥 없는 천국을 말하는
    잘못된 교리, 이런 것들이 앞으로 문제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자신과 가정, 주변을 위해 진정으로 두려워해야할 것은 이미 우리는 그러한 문제에 깊이 잠겨
    부딪히며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의기도와 삶의 바른 방향입니다. - 샬 롬 -


  • 2021-03-06 07:59

    귀한 글 잘읽고 갑니다. 엄재규 장로님의 성서인용도 아주 적합하다고 봅니다. 시니어 분들이 기감홈피를 빛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ㄱ 꾸벅~


    • 2021-03-06 10:25

      감사... 한데, 저는 시니어는 아닙니다. ㅎㅎㅎ 저는 知天命이나 耳順은 못 미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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