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자유를 주신 목적(삼일절 설교)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2-23 17:03
조회
180
(설교 동영상 : 유튜브)

(갈라디아서 5:1, 13)

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1. 시작하는 말

삼일절은, 1919년에 세계만방에 비폭력 무저항의 자유 독립 선언을 한, 세계사적인 의미가 있는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입니다. 야만적인 정복국인 일본의 잔악한 무력 진압으로 엄청난 살상을 겪은 사건을 상기하며, 자유에 대한 성경의 교훈을 전하려고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좇아 만물을 다스리는 능력과 자유를 얻었지만,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거역하고 사단의 소리를 따른 탓에 죄의 종이 되어 온갖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금강석을 손에 쥐어 줘도, 그 가치를 모르면 자갈을 던지듯이 던져 버리는 것입니다.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인 장 자크 루소는 자신의 저서 「민약론」에서, “자유를 포기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2. 누구 또는 무엇인가의 종인 인생과 자유의 목적

자유가 하나님의 귀중한 선물임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자유의 가치를 안다고 하는 사람들도 물욕의 종노릇이나, 명예욕의 종노릇이나, 권력의 종노릇이나, 교권욕의 종노릇을 합니다. 또, 통치자를 비롯한 유력한 사람들의 종노릇을 합니다. 종노릇을 하게 되는 원인은, 무지와 결핍과 공포심입니다. 아무리 자유롭고 싶어도 어떤 점에 무지하면 그 점에서는 부자유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가진 것이 없으면 부자유스럽게 생활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구 또는 무엇인가에 대해 공포심에 사로잡히면, 꼼짝 못하고 공포에 지배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지와 결핍과 공포는 종살이를 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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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맘닷컴에 인용된 ‘재미있는 설교 유머’의 한 토막입니다.
어떤 믿음이 좋은 사람이 밤길을 걷다가 그만 낭떠러지로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땅바닥에 닿기 전에, 작은 나뭇등걸 하나를 움켜잡았습니다. 그는 버둥대면서 간절하게 “하나님, 저를 좀 살려 주세요. 주님은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놔두고 한 마리의 양을 찾아 나선다고 하지 않았나요? 제발 저 좀 살려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 소리를 들으시고 응답하셨습니다. “그래, 내 아들아, 참 다급한 자리에 있구나! 내가 너를 살려 줄 테니 먼저 그 붙든 것을 놓아라.” 사실, 거기는 낭떠러지가 아니었습니다. 완만한 비탈길에 불과했지만, 어두워서 아래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믿음이 좋은 사람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여보세요, 그 위에 하나님 말고 다른 분은 없어요?”
무지와 결핍과 공포보다 더 인간을 종노릇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죄악입니다. 요한복음 8:34을 보면,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남의 종이 된 적이 없는데 어째서 자유케 되리라고 말하느냐고 항변하는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마서 3:10에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죄와 죽음과 멸망의 지배 아래 있으며, 따라서 창조주요 섭리자이신 하나님을 떠난 어떤 인간도 자유인이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신 주 예수님 밖에 있는 모든 인간은, 종살이 인생입니다. 하나님과 무관한 재물이나 권력, 명예나 교권욕은 물론, 원한이나 증오, 술이나 마약의 종살이를 죽을 때까지 하는 인생도 있습니다.
일류 대학을 졸업한 어떤 사람이 술을 마시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술의 노예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번은 친구와 술내기를 했습니다. 마시고, 또 마시고…얼마를 마셨는지도 모를 정도로 계속 마시다가, 문득 더 마시면 죽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손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친구는 더 마시다가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그도 입원 치료를 받고 겨우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뒤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계속 술독에 빠져 살았습니다. 견디다 못한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가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여전히 술을 못 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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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인 친구가 열심히 전도했습니다. 그 때마다 그 사람이 흐느끼면서 하는 말이 있습니다. “내 마누라 죽었는데, 이제 예수 믿어 뭐 하노. 술 때문에 마누라 죽었으니, 술로 나도 죽어야 된다.”
베드로후서 2:19을 보면, “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됨이니라”라고 했습니다. 무지나 결핍이나 공포로 인한 종살이 인생과 죄악이나 패배로 인한 종살이 인생은 파멸로 끝장날 수밖에 없고, 영원한 지옥의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도둑 중 도둑이요, 강도 중 강도요, 살인자 중 살인자요, 학살자 중 학살자요, 사단의 하수인 중 하수인이 되는 길은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빼앗는 죄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큰 종이 되지 않고는, 남의 나라를 침략하여 빼앗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모든 자유를 빼앗아 노예로 삼고, 하늘과 땅과 바다의 모든 것을 약탈하는 침략자들은 정말 흉악한 족속들이고, 사단의 하수인들인 것입니다. 물론, 통치자와 공직자들과 그들의 충성스러운 섬김을 받아야 하는 국민들이,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자유를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좇아 나라를 든든히 지키고, 발전시켜 인류에 기여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세계 제2차 대전 때에, 유럽 일대에서 독일의 나치스에게 희생된 약 600만 명의 유대인들을 기념하는 ‘야드 바셈’이라는 박물관이 있습니다. 그 기념관 입구에, “우리는 그들을 용서하지만, 결코 잊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씌어 있습니다.
우리 민족 역시 온갖 만행을 저지른 일본을 용서하되 결코 그들의 만행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나라의 자유 독립을 위해 투쟁하다 참혹한 고문 끝에 죽어간 선조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의 장한 기개를 결단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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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미군의 승리를 통해서 해방시켜 주시니까, 정권욕에 눈먼 사람들이 친일파들을 등용하여 활개 치게 만들고, 애국자들을 국민들의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려고 애썼습니다. 그들에게 예속되어 추종한 국민들도 각성해야 합니다. 물론, 자유와 사유 재산권 등을 박탈당한 채, 살아가는 북한도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아직도 우리나라와 민족이, 미국이나 중국이나 일본이나 러시아 등의 선진국들의 영향력 아래 있습니다. 어서 속히 진정한 자유 민주주의 국가가 될 수 있도록 우리 모두가 정치와 경제, 문화와 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정진해야만 합니다. 발전한 그들의 모든 것을 부지런히 받아들이고, 더욱 발전시켜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유인, 자유로운 국민, 자유로운 나라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뿐 아니라, 죄의 종인 모든 사람이 자유롭지 못한 것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십자가를 지게 하셨습니다. 이 놀랍고도 은혜로운 사실을 깨달은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주 예수님이 믿음을 좇지 않고, 무엇 또는 누구의 종노릇을 하거나, 온갖 죄악의 종노릇을 하는 모든 사람에게 대속제물이 되심으로써 자유를 주신 목적이 있습니다. 자유의 목적은 주 예수님의 목숨을 대가로 얻은 자유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국민이 자유의 가치를 알고, 목숨을 걸고라도 자유를 지키고 누릴 각오를 할 수 있도록 힘써 주 예수님을 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들이 독재자들에게 예속될 수밖에 없고, 국가가 정치, 군사, 경제, 문화면에서 강대국에 예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무지나 결핍이나 공포와 패배나 우상 숭배나 죄악은 남의 종이 되는 길이고, 거국적인 무지나 결핍이나 공포와 패배나 우상 숭배나 죄악은 다른 나라의 종이 되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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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를 주신 또 하나의 목적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유의 목적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 본위와 인간 위주의 삶의 기회로 삼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받은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자유가 매우 소중한 것이기는 하나, 자유 자체가 최종 목적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에게서 자유를 선물 받은 우리 교인들에게는 그 자유를 어떻게 누리느냐 하는 과제가 남는 것입니다. 스탐(R. T. Stamm)은 “기독교의 자유란 하나님의 선물이요 인간의 과제이다.”라고 주석했습니다. 칼빈(J. Calvin)은 “방종과 무분별한 남용에서 자유를 지키는 것은 사랑에 의해 통제됨으로써만 가능하다.”라고 주석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인간을 사랑하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사랑의 종노릇을 함으로써만, 자유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의미에서, 인간의 위대성의 척도는 부나 권력, 실력이나 명예가 아니라 사랑의 종노릇입니다. 사랑의 종노릇이란 온 율법의 완성 그 이상이기도 합니다.

3. 맺음말

하나님께서 인간을 꼭두각시가 아니라, 자유로운 영적 교제를 하는 자율적인 인격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귀중한 자유로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사단의 소리에 복종한 탓에 죄와 죽음과 멸망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종노릇을 하는 인간들로 하여금 대속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게 하셔서 자유로운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고린도후서 3:17을 보면,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고,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사랑의 종노릇을 하며 살아감으로써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서 부흥하고 발전하는 데 기여하시기 바랍니다.

설교자의 사이트 newrema.com(T. 426-3051)의 저서: 신약 주석(마~계, 1-15권)/ 설교집 28권/ Salvation Before Jesus Came/ 예수 탄생 이전의 구원/ 눈솔 예화집 I, II. (편저)/ 웃기는 이야기(편저)/ 우린 신유의 도구/ 눈솔 인터넷 선교/ 영성의 나눔 1, 2, 3, 4권/ 영성을 위한 한 쪽/ 다수의 논문들/ 난해 성구 사전 I, II권/ 바울의 인간 이해/ 바울의 열세 서신

전체 2

  • 2021-02-23 20:19
    아멘

    • 2021-02-23 20:30
      필자의 설교에 "아멘"으로 화답하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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