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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개혁성향의 대표논객? J목사도 거들었다?

작성자
장운양
작성일
2021-01-20 23:08
조회
969
이 글은 기감파행이 만4년을 채워가던 시절에 제가 작성했던 글입니다. 요즘 감리교소식의 흐름을 보면서 이 9년 전 글이 기억에서 소환되었습니다. 뭔가 이분을 보면 섭정체제 그리고 뒷방 늙은이가 과정신학에서 말하는 합생이 아니라 어설픈 혼종으로 다가옵니다. 제가 놀랐던 것은 9년 전의 이분의 논지야 뻔한 것이고 래토릭이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탄원서에서 자기 자랑을 반 이상하는 이를 탄원서와 진정서가 무엇인지도 헷갈리는 이의 작성문을 판사들은 반드시 읽기는 하지만 크게 고려하지 않습니다. 군산 수원에서 부장판사를 역임하고 지금은 건실한 로펌의 대표변호사로 있는 고등학교 동창 친구의 전언입니다. 이 분으로 인한 피로감이 일주일 사이에 극폭증해서 옮겨 봅니다. 강제삭제보다 더 고약한 것이 자진삭제입니다. 물론 삭제되는 정황이 중요하지요. 자신의 입장의 유불리 때문에 올리자마자 이거 그대로 두면 헛점투성이의 원성의 대상이 되겠다 싶으면 바로 삭제하는 경향이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는 것은 초등학생 언어로 "유치뽕"입니다. 9년 전의 글이지만 감리교소식을 들리는 분들이 읽어 보실만해서 올려 봅니다. 관리자님도 파악하시겠지만 이것은 J? 는 목사의 성만을 영어대문자로 옮기는 것임으로 글 그 어디에도 실명이 없음으로 비판적인 입장의 글이지만 삭제에는 해당사항이 없다고 봅니다. 혹시 J? 그분이 관리자께 전화나 팩스를 넣어서 삭제를 요청해도 해당사항없음이지요. 만일 그렇게 한다면 도둑이 제발저리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저는 앞으로 이분의 글의 한계들을 톺아보고 계속해서 감리교소식란을 청소하듯이 대응하려고 합니다. 이 분의 글쓰기는 심각한 오류와 오점들 투성입니다. 더구나 페이스 북의 P? 박사의 글을 퍼담는 것은 천박한 문빠들의 짜고치는 고스톱같습니다. 제가 2008년 9월 가처분 소동으로 시작된 기감파행사태를 지켜보면서 가장 크게 배운 것은 이것입니다. <그 사람을 직접 겪어 보지 않고는 절대로 함부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비분강개가 터지는 글만 으로 당위성을 강변하고 자기도취에 휘둘리며 자신의 대단한 돈키호테처럼 허우적거리는 이가 영웅처럼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반드시 사람은 겪어 본 이후에 알 수 있다. 이것은 목신대원 어거스틴 고백록 세미나에서 선한용 교수님께서 신신당부하셨던 말씀이기도 합니다>

감리교 개혁성향의 대표논객? J목사도 거들었다?

작성자박운양작성일2012-08-08 14:28조회1065

1. 감리교 개혁성향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나는 잘 모르겠다.

2. 또한 감리교 개혁성향의 대표논객이 J목사 이분인지도 나는 잘 모르겠다.

3. 기감사태가 만4년을 넘어서 장기화되면서, 적지 않은 의견개진이 차고도 넘쳐 왔지만,
필자가, 지금 읽고 있는 니코스카잔차키스의 <성프란체스코>가 제시하는 지평은 다른 듯하다.

4. 그가 젊은 날의 풍운아로서의 삶을 마감하고, 수행정진을 결심하고 그렇게 실행 실천해 갈 때,
당시의 교황을 비롯한 교권세력들의 어처구니 없음은 극단의 대조를 이룬다.

5. 그러나, 성프란체스코가 교회사에서 특히, 웨슬리의 완전성화적 지평의 신학적 모범으로
뽑힐 수 있게 된 맥락은 뭔가? 달랐던 것 같다.

6. 루터의 종교개혁을 칭송하는 이들은 그가 농노들의 인권을 철저하게 능멸했다는 것에 침묵한다
뮌처의 꼬뮨에 가까운 활동과 동선에 동감하는 이들은 쉽게 루터와 뮌쳐를 대립시키지만, 그 사이의 간극은 쉽게 설명될 수 없다.

7. 갈수록 기감사태의 방정식은 답이 하나인 일차방정식에서 이차방정식 삼사 .... 전이되고 있는 듯 싶다. 그러나, 이런 기사들을 보면, 내부자의 시선에 대한 적확한 통찰은 쉽게 폄하되고, 어설프게 당위적인 동선만을 염두하고 기사를 써내고 있는 듯 하여서 불편하다.

8. 막말로, 당신들이 직접 기감개혁에 대해서 달려들고 헌신할 수 있는 이들은 아니지 않는가? 라는 차원에서 말이다.

9. 개혁이 내부와 외부에서 오버랩되는 되는 시간은 예측할 수 없다. 내부에서는 내부에서 보는 것만을 외부에서는 외부에서 보이는 것만을 개혁의 진행되는 수순태라고 규정한다.

10. 그러나, 개혁은 선언도 아니고, 무슨 강령과 선언문이나 성명서로 대치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듯하다.
특히, 비분강개는 더욱도 아니다. 그 비분강개는 자폐적 감정의 대리배설일 뿐일 뿐,

11. 스스로 자폐된 동선의 중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기감의 대중들에게는 시니컬한 어처구니 없음의 이상을 드러낼 수 없도록, 초래한 당사자로서의 책임에서 자유로을 수 없다면, 그 다음은?

12. 그러나, 예수께서 보여주신 특히 누가복음에서 갈릴리의 변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한 동선의 백터의 습격은 한 때의 일희일비가 아니라, <일상의 여정으로서의 신앙>에 대한 촉구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듯 싶다.

13. 기감사태를 시소게임이라고 보는 관점이 갈수록 유효한 이유는? 한 때 양비양시론으로 풍미했던 감게 어느 논객의 관점을 차용한다기보다는, 비분강개와 개떼처럼 세력을 형성해서 결국 해낸 다는 것이 한 인물에 대한 배제에 불과하다면, 차라리 그들만의 리그를 인정해주고 결국 그리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관철시키는 동선을 지켜보고 그 예상되는 종국에 대해서 흘려 버리면 그뿐이 아닐까도 싶다.

14. 간만에 수양회를 다녀오고서 지켜보게 되는 감게는 엄청나게 낯설다. 아바타라고 누굴 비판하지만, 그 비판하는 이도 아바타같다. 필자 역시도 그렇게 해석된다면 할 수 없다.

15. 김성국 목사같은 분이 그동안 <감리교 개혁성향의 대표논객 J 목사>라는 평가에 대한 일련의 설명을 좀 해주시면 감사하겠다.


양기모2012-08-08 14:45
더러운 정치판이 이대로 흘러갈 밖에요.
단지 개싸움이 엎치락 뒤치락한다는 것이죠.
죄송하게 됐습니만 세상에서는 돈내고 소쌈, 개쌈, 닭쌈을 구경하는데 감판에서는 돈 않내고 쌈 구경한다 생각하고 스스로 위로하는 길 밖에 다른 도리가 없습니다.
*
우리 모두 개혁의 길을 찾아봅시다.
교권을 뒤짚어 엎어서
감리교 경제법대로 최저생계비가 보장되고
자격자들이 공정한 기회를 갖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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