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히 11:1)

작성자
최세창
작성일
2021-01-14 21:13
조회
87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 장(11장)의 서론 격으로 믿음의 본질에 대해서 【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믿음](피스티스, πίστις)에 대한 정의는 완벽한 것은 아니나, 아주 중요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다.① 미헬(Otto Michel)은 “우리는 바울로적인 함축 의미나 교의적인 함축 의미에 따라 믿음에 대한 히브리서의 정의를 재평가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이 정의를 히브리서의 선포로부터 이해하여야 할 것이다. 1절의 언명은 바로 히브리서에서 믿음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나타내고 있다.② 이 믿음 개념을 형성하고 있는 것은 본 서신의 종교사적 상황도 아니고, 공동체의 특수한 형편도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신학적 선포 자체의 내용이다. 믿음에 대한 히브리서의 정의는 사실상 신약성서가 제시하고 있는 유일한 정의이다. 이 구절에서 에스틴(ἔστιν)이 앞에 나오는 것 이외에 관사가 완전히 빠져 있는 것도 그리스어의 개념 정의적 문체에 속한다.”라고 하였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πίστις ἐλπιζομένων ὑπόστασις,)의 [실상](휘포스타시스, ὑπόστασις)은 ‘실상’ 외에도 “본질, 실체”(1:3, NEB), “기초, 토대, 실질”(Augustine, Thomas Aquinas),③ “확실, 확신”(3:14, RSV), “실체”(Vulgate,④ AV), “권리 증서”(C. W. Carter), “보증, 담보”(Otto Michel), “확고한 신뢰”(M. Luther) 등을 뜻하는데, 여기서는 ‘확신’⑤이나 “보증”(Spicq)⑥의 뜻을 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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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석서와 주해서에서 인용할 경우에는 저자의 이름만 밝혔음.
1) 믿음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히브리서 4:2의 주석을 보라.
2) Otto Michel: 히브리서에서 사용된 ‘믿음’이라는 성서신학적 개념에 대해서는 E. Ksemann의 윗글 19 이하를 참조하라. (1) 이 개념 속에는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하느님의 약속에 대한 긍정과 미래에 대한 확신을 갖고 이 긍정을 견지하는 끈기가 그것이다. (2) 객관적인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반향으로서의 믿음은 객관적으로 정초되어 있으며, 또한 확고한 신념 속에서 이 땅의 모든 가결성들을 뛰어넘는 확신이기도 하다.
3) in P. E. Hughes.
4) Vulgate: 405년에 완역된 라틴어 성경.
5) H. Alford, “Meyer, Dods, Vincent”(이상근), RSV.
6) in P. E. Hugh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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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을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미래의 소망에 대한 확신이나 보증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가장 결정적인 미래의 소망이 바로 새 언약 곧 그리스도의 강림과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다. 이러한 소망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엡 2:8, 마 16:16-17. 참조: 고전 12:3)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성취 여부가 불확실한 막연한 미래의 어떤 소망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틀림없이 성취되는 소망이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믿음은 하나님에 의해 약속된 소망의 성취를 보증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믿음과 소망의 결속 관계는 불가분리적이다”(P. E. Hughes).
그리스도의 강림 이전에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강림의 약속이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그 소망의 성취를 보증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다. 실상, 그들에게 있어서 그 소망이란 믿음의 현실이었다. 그들의 현실 생활은 그 소망에 의해 지배되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는 전반부에 대한 부언이 아니라, 전반부에 대한 반복 강조이다. 전반부의 ‘확신’ 또는 ‘보증’이 여기서는 [증거](엘렝코스, ἔλεγχος) 곧 “확실한 증거”(Vincent),⑦ ‘확신’ 또는 ‘신념’, ‘훈계’(욥 6:26, 13:6, 잠 1:25, 30)로 되어 있고, 전반부의 “바라는 것들”은 여기서는 [보지 못하는 것들]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은 반복 강조 형식은 히브리식 표현법의 하나이다.
[것들]로 번역된 프라그마(πραγμά)에 대해서 미헬(Otto Michel)은 “이 개념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왜냐하면, 이 개념은 상태와 사실을 나타낼 뿐 아니라, 사건과 행위를 나타내기도 하기 때문이다. 히브리서에서 프라그마는 어떤 것을 ‘서술’한다기보다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개념이다. 믿음에 대한 히브리서의 정의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바로 이 표현일 것이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하느님에 대한 언급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하늘의 세계를 암시하고, 이를 우회적으로 나타내는 개념만이 나올 뿐이다. 하늘의 세계는 바라는 것의 세계요, 볼 수 없는 것의 세계이다.”라고 잘 설명하고 있다.
믿음은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곧 감각 기관을 가지고는 보지 못하는, 신령한 것들의 존재를 확실하게 증명하는 근거가 된다는 뜻이다. 바울도 그와 유사하게 믿음이 그리스도의 내주의 방편이고, 지식을 뛰어넘는 그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는 방편임을 밝히고 있다(엡 3:17-19).⑧ 카터(C. W. Carter)는 “믿음에는 육체의 감각으로는 알 수 없는 것들을 인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믿음은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감각적 지식에는 감춰져 있는 실체를 포착할 수 있다. 믿음의 영웅들의 체험은 이 사실의 실제적인 증거이다.”라고 하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히브리서 저자는 【2】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하는 것이다. 원문의 첫부분에는 가르(γὰρ)가 있어서 앞 구절의 이유를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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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in C. W. Carter.
8) 저자의 에베소서 3:17-19의 주석을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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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최세창, 히브리서(서울: 글벗사, 2001, 1판 1쇄), pp. 34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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