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5해방과 하느님의 일꾼(이계준목사/연세대 명예교수)

작성자
유삼봉
작성일
2020-08-09 17:30
조회
267
2020. 8. 9. 신반포교회
고후 6:1-10, 히 4:12-13

오늘은 8.15해방 75주년 기념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유월절을 최대 명절로 지키는 것은 애급의 노예에서 해방된 것이 민족사의 출발점이기 때문이고 초대교회가 유월절 절기에 부활절을 최대 명절로 지키게 된 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불의에 사로잡힌 인간들에게 새 생명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한국교회는 8.15해방을 최대 명절로 지켜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민족을 일제의 억압 및 가난과 무지에서 구원하시고 오늘의 위대한 나라를 탄생시킨 새 역사의 모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하느님의 은혜가운데 애국선열들의 헌신과 우리의 피땀으로 세워진 이 나라가 지금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습니다. 우리 하느님의 일꾼들은 이제 8.15해방의 의미를 깊이 새기고 이 위기를 극복할 역사적 사명을 실현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가 무엇인지 바울의 권면을 함께 음미하며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근자에 영국 성공회의 주교이자 신약학자인 톰 라이트의 <바울 평전>이 번역, 출간되었는데 그는 바울의 선교 활동을 유대교 역사와 인류 문화사의 맥락에서 기술하였습니다. 그가 본 바울 사상을 요약하면 이스라엘 민족이 학수고대하던 구원의 메시아가 곧 예수인데 그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온 인류의 메시아임을 믿고 선포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메시아 이해는 오늘의 본문과 직결된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임을 선포할 때 그는 고난에 직면하였습니다. 안으로는 예수가 고대하던 정치적 메시아가 아니라는 유대인의 반발과 밖으로는 황제를 신격화한 로마 권력의 위협에 부딪친 것입니다. 그럼에도 바울은 이에 굴하지 않고 복음 선포에 투신하는 동시에 고린도 교인들도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도록 간청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경험을 통해 하느님의 일꾼은 환난과 궁핍, 옥고와 난동, 곤경과 굶주림 등 불의와 고난을 참고 견디어내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와 함께 순결과 지식, 인내와 친절, 성령의 감동과 진정한 사랑,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 등 초월적 지혜와 정신으로 자기 사명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로 인해 받는 영광과 수치, 칭찬과 비난에 괘념(掛念)치 말고 의의 무기를 들고 힘써 싸우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일꾼들이 이런 방식으로 악의 세력에 대결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초라하고 시답잖다고 해도 속내는 그지없이 알차고 탄탄하다고 확신합니다. 사기꾼 같으나 진실하고 무명 인사 같으나 유명하고 죄수 같으나 죽임당하지 않고 근심에 쌓인 것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해 보이나 사람들을 부요하게 하고 거지 같으나 큰 부자라는 것입니다.

2. 우리 기독교는 지난 2000년 동안 사도 바울이 전한 같은 복음 곧 예수 그리스도는 유대인 뿐만 아니라 온 인류를 해방하고 자유케 하는 메시아임을 고백하고 선포하였습니다. 물론 복음이 곡해와 오해로 굴절된 적도 있었지만 말입니다. 이에 비하여 바울의 원시시대와 오늘의 AI 시대의 차이는 하늘과 땅처럼 무한대로 벌어졌습니다. 물질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원시시대와 현대를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우리 삶의 겉모양은 변화무상하였으나 삶의 질 곧 생명의 존엄과 자유에는 달라진 것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세계적으로는 빈곤과 민족, 성과 이념, 국가와 국가의 갈등과 충돌, 지구 온난화로 인한 종말의 임계점, 대량학살 무기에 대한 공포 등 인간의 생명과 인권을 부정하는 죄악은 그 질 양의 차원에서 원시시대를 방불케 하고도 남습니다.
또한 국내적으로는 과거 우파정권의 적폐가 개인적 부정부패였다면 지금 좌파 정권의 적폐는 집단적이고 구조적이어서 더 심각합니다. 모든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지만 그칠 줄 모르는 온갖 위선과 거짓, 오만과 무치는 우리의 탄식과 울분을 자아내고 우리의 일상을 멍들게 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삼권분립을 부정하고 이 나라를 사회주의 체제로 바꾼 다음 남북통일(스탈린의 남북합작)이라는 미명하에 김일성 주체사상 중심의 독재국가를 만들려는 것 같습니다.
이런 체제변화는 곧 교회탄압과 직결되는 것입니다. 아니 바이러스19 이후 역병을 빙자하여 개신교에 대한 탄압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시중의 식당, 커피샵, 바는 개업하게 하면서 교회의 작은 모임과 식당은 폐쇄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작일 뿐 사회주의 독재의 최종 목표는 북한처럼 교회를 박멸하는 것으로 여당의 전 대표가 이미 공언하였습니다.
이렇듯 급박한 위기상황에서 우리 하느님의 일꾼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하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입니까? 예수께서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눅 10:40)이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불의를 보고 외치지 않으면 하느님은 다른 수단을 동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기독교인도 아닌 윤성렬 총장과 전 동양대 진중권 교수 등이 온갖 위협과 고난을 무릅쓰고 좌우에 상관없이 사악한 세력에 저항해 온 것을 우리는 앎니다. 오늘도 광화문에는 수천, 수만 명이 장마비를 맞으며 “이 나라가 니꺼냐!”라는 구호를 외치고 있습니다. 나라를 제멋대로 난도질하는 권력에 대해 돌들이 일어나 저항하는 것입니다. 평양 근교에 있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별장 뜰에 있는 돌들이 서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저항운동이 우연한 것입니까, 하느님의 섭리입니까?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의 히틀러가 600만 유대인을 학살할 때 가톨릭교회와 독일 개신교는 ‘강 건너 불 보듯’ 하였습니다. 이 무관심과 침묵은 인류 및 교회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죄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제 이 나라와 민족을 역사상 유례가 없는 3대 세습 독재자에게 바치고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세력에 대해 침묵해서야 되겠습니까?

3. 하느님의 일꾼의 사명은 메시아의 구원 곧 인간의 생명과 자유를 부정하는 세력에 대항하여 해방과 자유의 복음을 몸소 살아내는 것입니다. 특히 개신교 protestantism은 자신의 죄에도 저항하는 protest 신앙이므로 모든 목회자와 평신도는 저항운동에 동참해야 합니다. 더욱이 좌파이념에 동조하던 이들은 대오각성하고 예수, 간디, M. L. 킹이 보인 비폭력 저항에 앞장서므로 하느님의 일꾼 의식을 회복해야 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는 힘으로써 양날 칼보다도 날카로워 사람의 생각과 의도를 밝혀낸다.’(히 4:12-13)고 하였습니다. 하느님의 일꾼들은 말씀의 칼날이 되어 모든 불의를 격파하므로 하느님이 주신 8.15해방을 기억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발전시키는 역사적 주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자유민주주의는 비록 불완전하지만 우리와 함께 온 인류가 참 행복과 평화를 향유할 하느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나라를 실현하기 위해 바울의 권면을 다시 한번 마음 깊이 새겨야 하겠습니다. 환난과 궁핍, 곤경과 매 맞음, 옥고와 행패 등 감당키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순결과 지식, 인내와 친절, 성령의 감화와 순수한 사랑,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이란 초월적 지혜를 가슴에 품은 채 두 손에 의의 무기를 들고 선한 싸움에 나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날마다 언행에서 악을 선으로 갚고 불의를 정의로 이겨내고 거짓을 진리로 쫓아내고 증오를 사랑으로 포용하고 인간의 흉계를 하느님의 능력으로 제압하며 정의를 위한 싸움에 과감히 투신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신적, 도덕적 투쟁은 사악한 세력과 싸우는데 극히 나약하고 비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사악한 세력을 제압하는 데는 주먹과 총칼 심지어 핵전쟁이 더 효과적일 것입니다. 그러나 선을 위해 악한 방법을 쓰면 결국 새로운 악을 낳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군사 독재에 항거하고 전 정부를 불법으로 무너뜨린 정권이 낳은 악의 재생산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느님의 일꾼은 하느님 신앙과 영적 능력으로 철두철미 무장하고 어떤 위협과 고난도 물리치므로 영원한 승리를 쟁취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를 차지한다.’ (마 5:10) 고 하였습니다. 저에게 해직이란 박해가 없었다면 하느님의 일꾼으로 감당해야 할 십자가의 고난도 없었을 것이고 새로 거듭나는 영원한 생명도 없었을 것입니다. 불의에 항거하면 세상 권세는 핍박을 가하지만 고난에 대한 하느님의 보상은 생명의 월계관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선물을 거듭난 자아상이라고 밝힙니다. ‘사기꾼과 무명 인사 같고 죽은 듯하고 죄수 같고 걱정이 태산이고 궁핍하고 가난해 보이지만 실은 진실하고 유명하고 살아있고 사형당하지 않고 늘 기뻐하고 사람들을 풍요하게 하고 자신도 부자라’ 합니다. 실로 하느님의 섭리는 절묘하여 그의 일꾼들이 고난의 극복을 통해 차원이 다른 성숙한 인간성과 사람 살만한 공동체를 이루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느님은 온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라고 우리를 그의 일꾼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우리가 주어진 사명을 수행할 때 악의 권세가 창궐하고 우리와 공동체를 위협하겠지만 의의 무기를 굳게 잡고 하느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 헌신해야 할 것입니다. 그때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께서는 영원하고 풍성한 생명의 잔치를 지금 여기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전체 4

  • 2020-08-09 17:39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 2020-08-09 21:02
    오랜만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깨우치고 위로하는 선지자의
    웨치는 말씀을 듣습니다 감사합니다

  • 2020-08-09 21:33
    우리 교단에 아직 잡혀먹히지 않은 남은자들이 있다는게 퍽 다행입니다. 제대로된 지도자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런 시기에,

    단, 글제목에 '하느님'은 뭔가요? 성경의 '하늘의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과 차이가 있나요? 그렇다면, 이니죠..

  • 2020-08-09 21:36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 것입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까? 우리가 읽는 성경은 하나님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여기 성경은 하느님으로 되어 있네요. 제가 아는 성경과 다른 성경인가 봅니다. 내용은 좋아도 영 꺠림찍합니다. 신학서적도 아니고 나 원 참. 혹시 이 글은 설교문은 아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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